대한신운

318. 信陽毛尖 신양모첨/ChatGPT와 대화로 다듬다

대한신운 2025. 10. 24. 06:48

318. 信陽毛尖三仙缸 신양모첨삼선항 장배금(張培金)

1.

兩山之間夾平石 두 산 사이의 협곡에는 평평한 바위 있고

양산지간협평석

石山流泉水色碧 돌산에 흐르는 샘물은 푸른 벽옥 색깔이라네.

석산류천수색벽

連山三巧圓而堅 연이은 세 산 모습은 교묘하게 둥글면서도 견고한 성벽 같고

연산삼교원이견

口大如瓮深百尺 삼선항 입구는 크고 항아리 같고 깊이는 백 척

구대여옹심백척

2.

桃花紅映仙缸春 복사꽃 붉음이 신선 항아리에 비치어 봄을 알릴 때

도화홍영선강춘

第一烹茶味更醇 제일 가는 삼선항 물로 달인 차 맛 더욱 순하네.

제일팽차미갱순

可惜品題無陸羽 아쉽게도 품평하여 시를 지을 다성(茶聖) 육우는 없고

가석품제무육우

年年只好待遊人 해마다 단지 유람객만 기다리는 일만 좋아할 뿐!

년년지호대유인

* 칠언절구(七言絶句) 2

* 只好는 단지할 뿐이라는 관용어로 쓰이지만, 체념과 기대가 동시에 섞여있는 말로서, 자의를 최대한 살리는 것이 좋다.

* 신양모첨(信陽毛尖) 예모봉(豫毛峰)이라고도 하며, 녹차류에 속하고 중국의 10대 명차 가운데 하나이며, 허난성의 대표적인 특산물 중 하나이다. 민국 초기에 신양 차구의 5대 다사(茶社)에서 품질이 우수한 본산모첨차(本山毛尖茶)를 생산함에 따라, 정식으로 신양모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신양모첨은 가늘고, 둥글며, 윤택하고, 곧고, 백호(白毫)가 많고, 향이 높으며, 맛이 진하고, 탕색이 녹색이라는 독특한 풍격을 지니고 있다. 신양시 시하구 차윈산(車雲山), 집운산(集雲山), 운무산(雲霧山), 천운산(天雲山), 연운산(連雲山), 흑룡담(黑龍潭), 백룡담(白龍潭), 하가채(何家寨) 통칭 오운양담일채(五雲兩潭一寨)’라고 부른다.

칠언절구(七言絕句)는 한 구가 일곱 글자로 이루어진 네 구절의 정형시로, 절제된 언어와 정연한 구조, 그리고 압운과 평측 안배를 통해 운율미와 함축미를 극대화하는 시형이다. 전통적으로는 둘째 구절(2)과 넷째 구절(4)에 운을 맞추며, 평측(平仄)과 대구(對仗)가 정밀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상적인 형식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형식미는 시적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기도 하여, 어휘의 선택과 정서의 직설적 표현이 종종 희생되곤 했다.

장배금(張培金)삼선항(三仙缸)연작 2수는 이러한 칠언절구의 기본 형식을 취하면서도, 전통적인 평측 안배의 엄격한 규율을 과감히 벗어난 작품이다. 첫 수는 삼선항이라는 장소의 자연 지형과 수려한 경관을 묘사하고 있다. “兩山之間夾平石에서 두 산 사이의 협곡에 끼워진 평평한 바위를 보여주고, “石山流泉水色碧에서 푸른 벽옥빛 샘물이 흐르는 모습을 통해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어 連山三巧圓而堅에서는 세 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둥글면서도 단단한 형세를 이루고 있음을 묘사하고, “口大如瓮深百尺에서는 삼선항의 지형적 형상을 항아리에 빗대어 공간감을 정밀하게 형상화한다.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감각적 표현이 평측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진다.

둘째 수에서는 경물 묘사에서 정서와 현실의 풍자로 전환된다. “桃花紅映仙缸春은 복사꽃 붉음이 삼선항에 비치는 봄날의 생동감을 담고, “第一烹茶味更醇에서는 이 물로 달인 차의 맛이 더욱 순하고 깊다는 감각적 체험을 생생히 전한다. 그러나 분위기는 곧 전환된다. “可惜品題無陸羽에서 시인은 다성(茶聖) 육우(陸羽)와 같은 품평자가 이곳에 없음을 아쉬워하고, 마지막 年年只好待遊人에서는 이러한 고상한 감상 대신 해마다 유람객만 반기게 된 현실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只好의 해석이 중요하다. 관용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문맥을 살리면 육우 같은 인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람객 맞이하기만 좋아한다는 풍자적 뉘앙스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뉘앙스의 섬세함은 오히려 평측의 구속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작품은 전통 율격을 벗어나 운자만을 지키고 평측 안배를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운 작법으로 씌어졌다. 만약 평측율에 얽매였다면 이러한 생생한 표현의 절반도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청대 시단의 대다수는 여전히 전통 격율을 충실히 따랐으나, 바로 이 시기부터 장배금과 같은 시인들이 등장해 형식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시풍을 선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자유시는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격률이라는 단일한 길이 아닌 또 하나의 길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대한신운(大韓新韻)**은 바로 이 청대 소수파의 자유시풍을 본받아, 한국어 시에서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평측을 과감히 배제하고, 오직 압운을 기본으로 하여 의미와 표현의 정밀함에 집중하는 방식을 주창한다. 이는 음운 구조가 전혀 다른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과도 자연스럽게 부합하며, 시인의 의도와 감각을 형식에 억누르지 않고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대한신운은 고전적 전통과 현대적 표현의 자유를 잇는 하나의 정당하고 창조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