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0. 善花公主 선화공주/대한신운(大韓新韻)·거(居)운
薯童求愛薯童謠 (서동구애서동요)
서동이 사랑 구한 서동요
超越身分國境愛 (초월신분국경애)
신분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
他密只嫁良置古 (타밀지가량치고)
남몰래 혼인해 두고
夜矣卯乙抱去如 (야의묘을포거여)
밤에 몰래 안고 간다네.
逆境難關何所用 (역경난관하소용)
역경과 난관이 무슨 소용이랴!
靑春熾愛豈制御 (청춘치애기제어)
청춘의 불타는 사랑을 어찌 억제하랴!
答㐎嘉名忽然浮 (답글가명홀연부)
댓글의 아름다운 이름이 문득 떠오르니
現代鮮花何處在 (현대선화하처재)
현대의 선화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 선화라는 분이 댓글을 달았기에 문득 선화공주가 떠올라 구성해 보았다. 함련(頷聯)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수록된 〈서동요(薯童謠)〉의 향찰(鄕札) 표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시제는 선화(善花)지만, 제8구에서는 선화(鮮花)로 바꾸어 중의로 표현했다.
댓글은 중국어로 유언(留言 liúyán) 평론(评论 pínglùn) 근첩(跟帖 gēntiě) 이라 하고 답글은 회복(回复 huífù) 회첩(回帖 huítiě) 등으로 표현하지만, 어느 것도 우리말 댓글과 답글의 함의가 썩 와닿지 않아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보았다. ‘댓’에 해당하는 적절한 한자가 없어 답글(答㐎)로 조어했는데, 의외로 댓글과 답글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표현이 되었다.
㐎은 ‘글’이라는 뜻으로 우리식의 한자이며, 자형을 들여다보면 마치 새가 글을 이고 이곳저곳 날아다니는 형상이어서 댓글과 답글을 아우르는 그럴듯한 조어로 느껴진다.
⇓ChatGPT Pro 감상평
백제의 서동(薯童)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善花公主)를 사모하여 신라로 건너갔다. 그는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며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을 찾아간다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이 노래가 궁중에까지 퍼지자, 선화공주는 왕궁에서 쫓겨났고 마침내 서동과 인연을 맺어 백제로 향했다. 훗날 서동은 백제 무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것이 《삼국유사(三國遺事)》 〈무왕(武王)〉 조에 실린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다. 이 설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서동이 지어 퍼뜨렸다는 〈서동요(薯童謠)〉다. 우리말을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기록한 향찰(鄕札)로 전해지는 4구체 향가로 원문과 독음 및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님은
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 남몰래 혼인해 두고
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 서동의 방을
서동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 밤에 몰래 안고 간다네.
야의묘을포견거여
향찰은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한문 문법에 따르지 않고 우리말의 어순과 문법을 나타낸 표기 방식이다. 한자의 뜻을 빌리는 훈차(訓借)와 소리를 빌리는 음차(音借)를 함께 활용했다. 둘째 구의 他密只嫁良置古에서 他는 남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嫁는 시집가다 置는 ‘두다’는 뜻을 나타낸다. 반면 只·良·古 등은 우리말의 소리나 문법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한자의 뜻과 소리를 함께 빌려서 우리말 문장을 기록한 것이다. 다만 개별 글자의 음가와 문법 해석에는 학설에 따라 차이가 있다.
향찰은 한자음을 하나하나 읽는 것만으로는 본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夜矣卯乙抱遣去如를 ‘야의묘을포견거여’라고 읽어서는 노래의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말의 어순에 따라 ‘밤에 몰래 안고 간다네’라고 풀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현대어 풀이는 당시의 발음을 그대로 되살린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향찰은 한자의 복잡한 음훈 체계를 익혀야 하므로 널리 보급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문과 다른 우리말의 어순과 문법을 기록하려 했다는 점에서 뛰어난 발상이었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현하려 했던 선인들의 노력은 우리 문자문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의 함련(頷聯)은 〈서동요〉의 둘째 구와 넷째 구를 가져왔다. 다만 원문의 넷째 구는 여덟 글자이므로 칠언 형식에 맞추어 遣자를 생략했다. 수련(首聯)의 薯童求愛薯童謠는 〈서동요〉를 사랑을 얻기 위한 간절한 구애의 노래로 바라본다. 이어지는 超越身分國境愛는 신분과 국경마저 뛰어넘는 사랑을 노래한다. 왕실의 공주와 가난한 청년이라는 신분의 차이도 신라와 백제라는 국경도 사랑 앞에서는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니라는 뜻이다.
경련(頸聯)의 逆境難關何所用과 靑春熾愛豈制御는 작품의 중심 정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역경과 난관이 무슨 소용이며 청춘의 불타는 사랑을 누가 억제할 수 있겠는가! 엄격한 대장에 얽매이기보다 외부의 장애와 마음속 열정을 대비시키고 두 구를 반문으로 연결하여 사랑의 힘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탄생한 계기는 뜻밖에도 댓글 하나였다. 선화라는 이름으로 달린 댓글을 보고 작가는 문득 옛 선화공주를 떠올렸다. 미련(尾聯)의 答㐎嘉名忽然浮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구절이다. 댓글에서 만난 아름다운 이름 하나가 천 년도 훨씬 넘은 사랑 이야기를 불러낸 셈이다.
시제에서는 선화(善花)를 사용했지만, 마지막 구에서는 現代鮮花何處在라 하여 선화(鮮花)로 바꾸었다. 옛 선화공주의 이름을 연상시키면서도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을 겹쳐 놓았다. 현대의 선화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에는 오늘날에도 그처럼 뜨겁고 순수한 사랑이 존재하는가! 하는 여운이 담겨 있다.
특히 答㐎嘉名의 답글(答㐎)은 시인이 새롭게 만든 말이다. 㐎은 사전에 등재된 한자지만 ‘글’이라는 뜻으로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자형에서 새가 답하는 글을 이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떠올린 발상이 흥미롭다. 댓글과 답글을 하나로 아우르면서도 글이 오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조어다. 한글(韓㐎)처럼 기존 한자를 우리말의 감각으로 새롭게 활용하려는 작가의 어휘관(語彙觀)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서동과 선화공주에 관한 역사와 전설의 진위를 따지려는 표현이 아니다. 서동의 출생과 왕위 계승 과정이나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 그리고 미륵사 창건에 얽힌 논쟁은 작품의 관심 밖에 있다. 서동요가 만들어진 경위 또한 계략이나 소문보다는 사랑을 이루려는 간절한 구애의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시인이 주목한 것은 오직 신분과 국경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려 했던 두 청춘남녀의 뜨거운 열정이다. 천 년도 훨씬 넘은 설화 속 사랑을 오늘의 감성으로 다시 풀어내고 댓글에서 만난 선화라는 이름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옛 선화공주의 사랑을 노래하면서 현대의 선화를 찾는 마지막 물음은 독자에게도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역사와 전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청춘의 사랑 그 자체를 새롭게 조명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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