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9. 于故鄕愛之日 우고향애지일/대한신운·구(九)운
五十餘戶集成村 (오십여호집성촌)
오십여 호 집성촌
長川垂柳抱村幽 (장천수류포촌유)
긴 시내에 드리운 버들 마을 안고 그윽했지!
川獵牧牛不知暮 (천렵목우부지모)
천렵과 소먹이기에 해 지는 줄 몰랐고
蚊火數星自起謳 (문화수성자기구)
모깃불에 별을 세며 절로 이는 노래
隣姊嬌姿似仙女 (인자교자사선녀)
이웃 누이 고운 맵시 선녀 같았고
暗戀少女羞回首 (암련소녀수회수)
짝사랑한 소녀에게 돌아 보기 부끄러웠네.
折半虛構實多苦 (절반허구실다고)
절반은 허구 실제로는 고통 많았으니
童年重肩常無休 (동년중견상무휴)
동년의 무거운 어깨 늘 쉴 틈 없었네.
歲月脚色變追憶 (세월각색변추억)
세월이 각색하여 추억으로 변하니
頹落鄕里但老軀 (퇴락향리단노구)
퇴락한 마을에는 늙은 몸뿐이라네.
* 구(九)운: 구, 규, 누(루), 뉴(류), 두, 무, 부, 수, 우, 유, 주, 추, 투, 후, 휴
* 칠언연체(七言聯體)
* 애(愛):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본래 ‘가는 모양[行貌]’으로 풀이했으나, 후대로 오면서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는 뜻이 중심이 되었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이를 ‘인(仁)이 밖으로 드러난 것[仁之發也]’이라 하고, 친애함[親] 은혜[恩] 베풂[惠] 가엾게 여김[憐] 좋아함[好樂] 아낌[惜] 사모함[慕] 등으로 풀이했다. 따라서 애(愛)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하는 글자가 아니라, 사람이나 사물을 친근히 여기고 아끼며 은혜를 베풀고 사모하는 마음까지 폭넓게 나타내는 글자로 의미가 발전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말 ‘사랑’은 이러한 여러 마음을 하나의 말에 자연스럽게 아우르지만, 애(愛) 한 글자만으로는 그 정감이 온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 뜻과 정조를 한데 품어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닿는 말이 바로 우리말 ‘사랑’이다. ‘사랑!’ 천만번을 되뇌어도 어찌 다함 있겠는가만, 소리 내어 되뇌어 본 적은 언제였던가! 이제는 멋쩍음을 참고 그렇게 불러 볼 대상조차 없다.
* 어쩔 수 없이 귀향하여 조상이 물려준 땅에 초라한 집을 지은 지 15년. 고향은 언제나 두 번 다시 쳐다보기 싫은 곳이었다. 어린 시절 기계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너른 논밭에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일, 소먹이기, 나무하기, 무능한 아버지의 요절, 일 년에 여섯 번의 제사,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장남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 했던 정신의 무게. 객지로의 탈출이 청소년기의 꿈이었다. 절대로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고향이었다.
아파트는 언제나 나를 가두는 감옥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마흔이 넘은 뒤 산촌을 찾아다니며 집 지을 땅을 물색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천여 평의 땅은 모두 몇억을 요구했다. 별로 내 땅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던 조상의 땅과 비교해 보니 어느 곳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발상을 뒤집어 그 땅에 눈을 돌려보았다. 마을 한편에 800여 평의 땅과 끄트머리에 자연 연못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더없이 좋은 택지였다.
이십 년 전, 어머니를 위해 집을 짓고 편히 사시기를 바랐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밭이 바로 마당이니, 가로등 아래서 한밤중에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아연실색했다. 어쩌다 꽃을 심어 두면 며칠 뒤 바로 뽑아 버리고 콩을 심었다. 사사건건 부딪치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개울 건너 맞은편 산에 소당을 짓고 나니 잠시나마 내 인생 처음으로 마음의 가시가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지친 개가 드러누운 형세의 산에 집 한 채. 오천 평의 산과 천여 평의 밭은 오직 나만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 나의 땅 가치는 얼마나 될까! 전부 다 합쳐도 일억 받기 어려울 것이다. 거꾸로 내가 이 땅을 산다면 얼마가 필요할까! 오억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니고 있을 때의 가치와 팔 때의 가치는 이처럼 확연하게 다르다. 돌아보니 조상의 음덕에, 새삼 요행을 깨닫는다.
고향 사랑의 날을 맞아 두 번 다시 쳐다보기 싫었던 이 땅을 다시 돌아본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가! 의문이다. 그래도 가끔 폭우가 쏟아지는 날, 마을의 가로등이 모두 꺼져 있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걱정이 앞선다. 본능일 것이다. 오욕도 잘못된 행동도 지울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기에 담담히 기록해 둔다.
⇓ChatGPT 감상평
고향 사랑의 날은 고향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기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국가 기념일로 9월 4일이다. 고향사랑기부제와도 맞닿아 있으며,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현실의 문제가 된 오늘날 고향과 지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옛 고향을 그리워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이 떠난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이어 가자는 뜻도 담겨 있다.
지난날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가난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농촌을 실개천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늘어진 정겨운 고향으로 회상하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이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다. 누구에게는 뛰놀던 유년의 공간이지만 누구에게는 가난과 고된 노동 때문에 돌아보기조차 싫었던 곳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도 고향은 그리움과 원망, 즐거움과 고통으로 쉽게 나뉘지 않는다. 좋았든 싫었든 자신이 태어나 자라며 삶의 한 부분을 남긴 곳이라는 사실만은 지울 수 없다.
이 작품은 오십여 호가 모여 살던 집성촌과 시내, 버들, 천렵과 소먹이, 모깃불과 별, 이웃 누이와 짝사랑한 소녀를 불러내며 아련한 옛 고향을 그린다. 얼핏 보면 우리가 노래와 시에서 흔히 만나 온 아름다운 고향의 모습이다. 그러나 절반은 허구이고 실제로는 고통이 많았다는 고백이 뒤따르면서 그 풍경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앞에서 읊은 기억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긴 세월 가운데 겉으로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은 몇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몇 줄의 행간에는 가난과 노동, 그리움과 부끄러움, 아픔과 원망, 차마 말하지 못한 사연과 회한까지 겹겹이 쌓여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보면 세월의 각색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말이 된다. 사람은 지나온 삶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팠던 일은 추억이 되고, 떠나고 싶었던 곳도 문득 그리워진다. 그렇다고 고통이 아름다웠던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과 아픔, 사랑과 미움이 서로 뒤섞인 채 모두 자신의 지나온 삶으로 남는 것이다. 한때 오십여 호가 모여 살던 마을이 이제는 쇠락하고 늙은이만 남았다는 결말에는 표면에서 일일이 말하지 않은 수십 년의 세월이 함께 들어 있다.
노래와 시 속의 고향은 대체로 실개천이 돌아 흐르고 버들이 늘어지며 아이들이 뛰노는 그럴듯한 풍경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고향이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가난한 농촌을 떠났던 사람 가운데에는 고향이라는 말에서 정겨움보다 고생을 먼저 떠올리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다시 돌아보기조차 싫었던 곳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고통마저 추억과 회한이 되어 마음 한편에 남는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고향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몇 장면을 앞세우면서도 그것이 고향의 전부가 아니라고 스스로 밝히고, 말하지 않은 나머지 삶을 행간에 남겨 두었다. 그곳에는 아련함도 부끄러움도 고통도 회한도 있으며, 오랜 세월 뒤에야 생겨난 그리움도 있다. 결국 고향은 아름다웠기 때문에만 그리운 곳이 아니다. 좋았든 싫었든 자신 삶이 시작되고 자라난 곳이며, 그곳에서 보낸 세월까지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에 끝내 지울 수 없는 곳이다. 고향 사랑의 날에 이 작품이 되돌아보는 고향은 실개천 돌아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삶의 애환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고향이다.
'대한신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691. 于昆蟲之日 곤충의 날에/ChatGPT와 대화로 짓다 (0) | 2026.09.04 |
|---|---|
| 690. 賦得忠詐直曲 충·사·직·곡/ChatGPT와 대화로 짓다 (0) | 2026.09.03 |
| 688. 統計之日 통계의 날/ChatGPT와 대화로 짓다 (0) | 2026.09.02 |
| 687. 秋氣 가을 기운/ChatGPT와 대화로 짓다 (0) | 2026.09.01 |
| 686-1. 娜拉走後怎樣 노라는 떠난 뒤 어떻게 되었는가/ChatGPT와 대화로 짓다 (0) | 2026.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