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4. 于春湖 우춘호/대한신운·간(間)운
岳陽樓記讀千遍 (악양루기독천편)
〈악양루기〉는 천 번 읽었는데
琴韻愈讀反積患 (금운유독반적환)
거문고 같은 운치는 읽을수록 도리어 근심을 쌓았네.
春和景明尋東湖 (춘화경명심동호)
봄기운 온화하고 햇빛 밝아 동호를 찾아가니
波瀾不驚抱萬山 (파란불경포만산)
물결은 잔잔하여 온 산을 품었네.
上下天光不知界 (상하천광부지계)
위아래 하늘빛은 경계를 알 수 없고
一碧萬頃水鳥閑 (일벽만경수조한)
한없이 푸른 물에는 물새 한가롭네.
沙鷗翔集相比羽 (사구상집상비우)
모래톱 갈매기 날다가 모여 서로 깃을 맞대고
錦鱗游泳起清湍 (금린유영기청단)
비단 물고기 헤엄치며 맑은 여울을 일으키네.
岸芷汀蘭香益遠 (안지정란향익원)
언덕의 지초와 모래섬 난초 향기는 더욱 멀리 퍼지고
鬱鬱青青連遠巒 (울울청청련원만)
울창하고 푸른빛은 먼 산봉우리까지 이어지네.
長煙一空八仙去 (장연일공팔선거)
넓게 드리운 안개 걷히며 여덟 신선 떠나자
皓月千里織女紈 (호월천리직녀환)
천리의 밝은 달빛은 직녀의 흰 비단이라네.
浮光躍金夜光珠 (부광약금야광주)
금빛으로 일렁이는 물 위의 빛은 야광주요
靜影沉璧落銀漢 (정영침벽락은한)
옥처럼 잠긴 고요한 그림자는 은하수에서 떨어졌네.
漁歌互答欸乃聲 (어가호답애내성)
어부의 노래 서로 화답하며 어〜영차 소리 내고
樵笛相和送歸雁 (초적상화송귀안)
나무꾼의 피리 서로 어우러져 돌아가는 기러기를 전송하네.
心曠神怡倚高臺 (심광신이의고대)
마음 탁 트이고 정신 즐거워 높은 누대에 기대며
寵辱偕忘解衣冠 (총욕해망해의관)
총애와 치욕 모두 잊고 의관을 풀어놓네.
把酒臨風乘醉興 (파주임풍승취흥)
술잔 들고 바람 맞으며 취흥에 겨워
其喜洋洋任揮翰 (기희양양임휘한)
그 기쁨 넘쳐 마음껏 붓을 휘두르네.
敬服一邊使折筆 (경복일변사절필)
경탄과 감복의 한편에는 붓을 꺾게 만드니
神筆如此無所刪 (신필여차무소산)
신묘한 문장은 이와 같아 덜어낼 곳 없다네.
* 간(間)운: 간, 관, 난(란), 단, 만, 반, 산, 안, 완, 잔, 찬, 탄, 판, 한, 환
*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 한 단락을 취해 각 구의 앞 네 자는 원문 그대로 옮기고 뒤에 사족을 달았다. 사족이 참으로 부끄럽지만, 원문을 재음미하는 뜻에서 엮어둔다. 漁歌互答에 대장(對仗)한 樵笛相和는 덧붙인 것이다.
* 천 번을 읽었다고 했으나 사실 축소한 것이다. 기억이란 참으로 믿기 어려워, 서른 번쯤 읽고 나면 백 번은 읽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벼 가마 수를 셀 때 쓰던 방법처럼 바를 正 자로 횟수를 표시해 가며 읽었다. 그렇게 읽어 나가니 600번을 넘어서면서 저절로 외짐을 당하게 되었다. 아무리 둔해도 300번쯤이면 충분할 법한데, 새삼 둔한 머리를 한탄했다.
속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내용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300번을 넘어서자 50초를 넘지 않아, 이때부터는 휴대폰 스톱워치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천 번을 넘긴 뒤로는 더 이상 횟수를 세지 않았다.
그런데 천 번을 읽어도 대강의 내용조차 잘 와닿지 않았으니,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무의미하게 천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꼼꼼하게 번역해 보는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옛사람의 뜻도 뜻을 잘 새겨가며 백 번 읽으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읽은 것이 아니라 앵무새의 흉내를 낸 셈이었다.
그래도 스톱워치를 켜 두고 달리기 시합하듯 읽는 버릇은 한 편을 천 번 읽어낼 때마다 계속되었다. 〈천자문(千字文)〉은 일독에 1분 40초 이내, 금강경(金剛經)은 10분 이내로 읽게 되었다. 시작은 누구는 《논어》를 백 번 읽었다느니 누구는 《맹자》를 백 번 읽었다느니 하는 말을 듣고 반발심과 과연 그러한지 확인해 볼 마음, 그리고 공자(孔子)의 위편삼절(韋編三絶)을 체험해 보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생각은 차츰 사라지고, 어느새 긴 세월 나 자신과 경쟁하며 읽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어느 정도 숙달된 뒤부터는 읽는 데 걸린 시간도 모두 기록해 두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두문불출하며 마치 100미터 신기록을 깨는 심정으로 얼마나 짧은 시간에 읽어낼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무엇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는 성격과 읽기 자체를 지나치게 즐기는 버릇이 크게 한몫한 듯하다.
돌아보면 참으로 무모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많이 읽고 빠르게 읽었어도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의미하게 백 천 번 읽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꼼꼼하게 뜻을 새기고 번역해 보는 편이 훨씬 나았다. 다만 이러한 읽기에서 얻은 한 가지 특별한 효과라면 한자가 한글처럼 눈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부작용이라면 이 재미에 빠질수록 세상일에 무관심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자칫 오만한 자랑처럼 비칠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긴 세월 내가 어떻게 글을 읽어 왔는지를 돌아보는 기록이다. 〈岳陽樓記〉를 대하는 순간 까닭 없이 울컥하는 마음이 일고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에 무모했던 읽기 체험을 굳이 감추거나 꾸미지 않고 담담하게 기록해 둔다.
⇓ChatGPT 감상평
북송(北宋)의 범중엄(范仲淹)이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는 경력(慶曆) 4년(1044) 등자경(滕子京)이 파릉군(巴陵郡)에 부임하여 이듬해 악양루(岳陽樓)를 중수한 뒤 범중엄에게 기문을 부탁하면서 지어진 글이다. 범중엄은 당시 악양루에 직접 가 보지 않고 이 글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동정호(洞庭湖)를 그린 문장은 눈앞에서 바라보고 쓴 듯 생생하다. 함원산 탄장강(銜遠山 吞長江)이라 하여 먼 산을 머금고 장강을 삼키는 광대한 동정호를 펼쳐 보이고, 기상만천(氣象萬千)이라 하여 아침저녁으로 변화하는 수많은 모습을 짧은 문장에 담았다.
이어 범중엄은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동정호의 모습과 사람의 마음을 대비한다. 음풍노호 탁랑배공(陰風怒號 濁浪排空)이라 하여 거센 바람이 울부짖고 탁한 물결이 하늘로 치솟는 궂은 날을 그리고, 이러한 경치를 마주한 사람은 거국회향(去國懷鄉)하여 고향을 그리워하고 참소와 비방을 두려워하며 슬픔에 잠기지만, 반대로 날이 개면 봄빛과 잔잔한 물결, 밝은 달빛과 어부의 노래가 어우러지고, 누각에 오른 사람은 심광신이 총욕해망(心曠神怡 寵辱偕忘), 곧 마음이 탁 트이고 정신이 즐거워져 총애와 치욕마저 모두 잊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범중엄은 비바람에 슬퍼하는 마음에도, 맑은 경치에 기뻐하는 마음에도 머물지 않는다. 불이물희 불이기비(不以物喜 不以己悲)라 하여 외물 때문에 기뻐하지 않고 자신 처지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옛 어진 사람의 마음을 내세운다. 그리고 마침내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곧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뒤에 즐긴다는 두 구에 이른다. 어두운 동정호에서 슬픔을, 밝은 동정호에서 기쁨을 보여 준 뒤 그 두 감정을 넘어 천하를 먼저 생각하는 선비의 자세로 나아가는 것이 〈악양루기〉의 큰 흐름이다.
이 작품은 〈악양루기〉 가운데 봄날 동정호의 밝고 평온한 풍경을 묘사한 대목을 취해 엮었다. 춘화경명(春和景明)에서 기희양양(其喜洋洋)에 이르는 원문의 네 자를 각 구의 앞에 그대로 두고 뒤에 세 글자를 덧붙였다. 그 가운데 어가호답애내성(漁歌互答欸乃聲)은 고전의 한 구절을 끌어들여 원문의 정취를 넓힌 대목이다. 어가호답(漁歌互答)은 〈악양루기〉 원문이지만, 뒤에 덧붙인 애내성(欸乃聲)은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어옹(漁翁)〉에 나오는 연소일출불견인 애내일성산수록(煙銷日出不見人 欸乃一聲山水綠)을 떠올리게 한다. 애내(欸乃)는 노 젓는 소리 또는 뱃사람이 노를 저으며 내는 소리로 풀이된다. 범중엄의 ‘어부의 노래가 서로 화답한다는 장면에 유종원의 ‘애내’ 한 소리에 산수가 푸르다는 시상을 겹쳐 놓음으로써, 짧은 세 글자에 두 작품의 정취가 만난다.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은 이러한 경치 묘사를 감싸면서 화자의 독서 감상을 드러낸다. 첫 두 구 악양루기독천편(岳陽樓記讀千遍)과 금운유독반적환(琴韻愈讀反積患)은 〈악양루기〉를 거듭 읽어 온 경험에서 출발한다. 천 번을 거듭 읽을수록 그 문장의 운치는 거문고 소리처럼 더욱 깊이 다가오지만, 읽을수록 도리어 근심이 쌓인다고 했다. 여기서 환(患)은 범중엄이 말한 천하의 근심과는 다르다. 뛰어난 문장을 거듭 읽으며 감탄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붓을 들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데서 생긴 근심이다.
이 감정은 마지막 경복일변사절필(敬服一邊使折筆)과 신필여차무소산(神筆如此無所刪)에서 그 까닭이 밝혀진다. 경탄하고 감복하는 한편으로는 오히려 붓을 꺾게 되고, 아무리 읽어도 덜어낼 곳을 찾기 어려운 문장 앞에서 자신의 표현을 돌아보게 된다. 첫머리에서 던진 반적환(反積患)이 마지막의 절필(折筆)과 무소산(無所刪)에서 풀리는 구조다. 가운데에는 〈악양루기〉의 아름다운 봄날 풍경을 두고, 처음과 마지막에는 그 뛰어난 작품을 읽으며 느낀 화자의 감정을 배치하여 수미를 맞추었다.
그런데 비록 〈악양루기〉의 원문을 취해 엮었지만, 그 속의 물결과 산빛, 물새와 물고기, 안개와 달빛은 어느 호수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같은 풍경을 보고도 범중엄처럼 표현하지 못한다는 감탄과 아쉬움은 이 작품을 엮게 한 또 하나의 바탕이다. 고문을 읽는 일은 옛글의 뜻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장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한신운(大韓新韻)은 고문을 읽으며 받은 느낌과 생각을 시로 엮는 독서 감상 작시에도 폭넓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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