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686. 于女權通文之日 여권통문의 날에/ChatGPT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8. 31. 07:54

686. 于女權通文之日 우여권통문지일/대한신운·()

男女七歲不同席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칠세부동석

封建桎梏何當 (봉건질곡하당)

봉건의 질곡 얼마나 당연했던가!

獻身起家要犧牲 (헌신기가요희생)

헌신으로 집 일으킬 희생을 요구했고

出嫁外人差別 (출가외인차별)

출가외인 차별은 빈번했었네.

七去惡根深蒂固 (칠거악근심체고)

칠거의 악습은 뿌리 깊이 굳어 있었고

順從美德又如 (순종미덕우여)

순종의 미덕 또한 여전했었지!

三日一打方變柔 (삼일일타방변유)

삼 일에 한 번씩 때려야 부드러워진다니!

北魚身世自可 (북어신세자가)

북어 신세 절로 가련했다네.

女性上位大韓力 (여성상위대한력)

여성 상위 대한의 힘

男卑女尊願千 (남비여존원천)

남비여존 천년을 바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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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거지악(七去之惡): 전통사회에서 남편이 아내를 내보낼 수 있다고 여긴 일곱 가지 사유.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不順父母), 아들이 없는 것(無子), 음행(), 질투(), 심한 질병이 있는 것(惡疾), 말이 많은 것(多言), 도둑질(竊盜)을 가리킨다. 특히 자신 뜻과 무관한 질병이나,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일까지 아내를 내칠 사유로 삼았다는 점에서 당시 여성에게 가해진 가혹한 혼인 질서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칠출(七出)이라고도 한다.

* 여권통문의 날이 있을 줄이야! 선구자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달력에 적힌 여권통문의 날을 처음 보고 그야말로 여권(旅券)과 관계된 날인 줄 알았다. 여권(女權)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지 못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지난날 방송통신대에서 교양강좌를 맡다 보면 여학생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여학생이라고 하지만 4050대가 주류를 이루었다. 첫 시간에는 언제나 입학 동기를 써 내게 했는데, 어느 40대 여학생이 쓴 절규 어린 글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총명했고, 무엇보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위로 오빠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국민학교를 마치자마자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고 한다. 가부장인 아버지의 명령은 엄했다. “여자가 배워서 뭐 하느냐!”

그렇게 배움의 꿈을 접고 살다가 고물상을 하는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배우지 못한 한이 평생 남아 있었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도 오빠들처럼 공부시켜 주었다면 어찌 오늘날 이 정도에서 그쳤겠느냐는 신세 한탄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울분이었다.

그러한 글은 한 사람에게서만 나온 것도 아니었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중년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강의를 4년쯤 계속하자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내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였지만 세대가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여성 교육에 대한 의식이 빠르게 바뀌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움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위의 일들은 먼 옛날 역사책 속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한 번쯤은 듣고 자란 말이며 주변에서 실제로 보았던 풍경이기도 하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속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막힌 말이지만 당시에는 우스갯소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다. 더구나 어린 시절 동네의 한 아저씨가 갓 결혼한 아내를 때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기억도 있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누구 하나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때의 무지와 무감각을 한탄하게 된다.

고전시가를 강의하면서 시대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봉건의 역사는 곧 여인 희생의 역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남존여비(男尊女卑), 칠거지악(七去之惡), 출가외인(出嫁外人), 순종을 여성의 미덕으로 삼던 관념은 책 속에만 머문 말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오랜 세월 생활 속에 뿌리내려 여성의 배움과 선택을 막고 때로는 희생마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그래서 강의 때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남존여비가 천 년을 이었으니, 앞으로 이 땅의 남자들은 삼백 년 이상 여인의 발 아래 짓밟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는 말로 서두를 열곤 했다. 학생들은 웃었지만 그 말이 온전히 농담만은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의 80대 이상이라면 앞에서 말한 여러 관념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보다 젊은 세대라 해도 그 잔재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앞선 1898년에 이미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외치며 여권통문(女權通文)을 발표했다. 여성도 배워야 하고 사회에 참여해야 하며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내가 방송통신대에서 만났던 그 여학생이 그토록 절규하듯 원했던 것도 결국 배울 기회였다. 거의 한 세기를 사이에 둔 두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 권리를 외친 선구자는 일찍 나타났지만 그 외침이 생활 구석구석까지 스며드는 데에는 참으로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셈이다.

여권통문의 날을 처음 보고 여행권부터 떠올렸던 무지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 덕분에 오래전 강의실에서 읽었던 한 여학생의 글과 어린 시절 보았던 장면까지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선구자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다만 뒤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오래 기억하고 삶으로 이어 가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ChatGPT 감상평

여권통문의 날은 189891일 발표된 여권통문(女權通文)을 기념하는 날이다. 여권통문은 서울 북촌의 여성들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발표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여성 권리 선언문으로 평가된다. 당시에는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으며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에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권리를 주장하는 글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여권통문은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직업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성 교육을 중요하게 여겨 여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일이 개인의 삶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의 발전과도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여성의 활동 범위를 가정에 한정하던 당시의 현실을 생각하면 매우 앞선 주장이었다.

통문을 발표한 여성들은 주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찬양회(贊襄會)를 조직하여 여성 교육운동을 펼치고 여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은 순성여학교(順成女學校)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여성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고 조직을 만들며 교육기관을 세우려 했다는 점에서 여권통문은 선언문인 동시에 이후 여성운동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더욱이 여권통문이 발표된 1898년은 대한제국(大韓帝國)이 근대 국가를 향한 여러 개혁을 추진하던 때였다.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남녀의 구별과 가부장 질서는 생활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교육과 경제 활동, 사회 참여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여성들 또한 스스로 새로운 삶의 길을 찾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역사의 의미를 기려 2019양성평등기본법이 개정되면서 91일이 여권통문의 날로 지정되었고, 2020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시행되고 있다. 1898년 여성들이 내놓은 외침이 120여 년이 지나 국가 기념일로 되살아난 셈이다.

오늘날 여성의 교육과 사회 진출은 너무나 당연해 보여 여권통문이 제기했던 문제가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당연함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여권통문의 날은 지금 누리는 권리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것을 요구하고 길을 열어 간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여권통문의 날을 기념하여 지난날 우리 사회에 오래 남아 있던 여성의 질곡과 희생을 돌아보고,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데 의미를 두었다. 기념일을 맞아 과거를 기억하고 그 시대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남기는 뜻은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