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 靑年之日 청년지일/대한신운·강(姜)운
何謂因痛是青春 (하위인통시청춘)
어찌 아프니까 청춘이라 하는가!
傲慢識者慰勞妄 (오만식자위로망)
오만한 식자의 위로는 터무니없네.
青春苦生買也云 (청춘고생매야운)
청춘의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니!
心理操縱猶加傷 (심리조종유가상)
가스라이팅은 오히려 상처를 더하네.
熱血應當恣歡樂 (열혈응당자환락)
뜨거운 피 응당 마음껏 즐겨야 하니
戀愛勞動皆盡享 (연애노동개진향)
연애 노동 모두 마음껏 누려야 한다네.
虛號濫發爲政者 (허호남발위정자)
헛된 구호 남발하는 위정자
何時實質安全網 (하시실질안전망)
어느 때 실질의 안전망이리오.
* 강(姜)운: 강, 광, 낭, 당, 랑, 량, 망, 방, 상, 쌍, 앙, 양, 왕, 장, 창, 탕, 팡, 항, 향, 황
* 청년의 날을 맞아 위로를 건네는 마음을 담아 보았다. 이 역시 공허한 말이기는 하지만. 이전에도 한 번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심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기성세대의 관념일 뿐이다. 아픈 청춘을 이용해 교묘한 필치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 한 인간의 부만 축적해 준 셈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금수저로 태어나 아프지 않은 청춘은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엊그제 유튜브에서 한 기자가 대학가를 찾아 전월세 실태를 취재한 방송을 보았다. 보통 월세가 80〜90만 원에 이른다.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과연 자립할 수 있겠는가! 20대 지지율이 20%대라고 하니 청년을 위한다는 정책이 연일 지면을 메운다.
공허한 위로보다 주위의 청년에게 커피 한 잔, 라면 하나라도 챙겨주는 일이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노동이나 주어진 임무마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실질 장치가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겪었던 뼈를 깎는 노력의 관념으로 지금의 청년을 바라보는 일이 과연 옳을까! 밤을 새워도 다 말하지 못할 잡념 일어나니, 억지로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 ‘가스라이팅’은 조어한다면 심리조종(心理操縱) 정도가 될 것이다.
⇓ChatGPT 감상평
청년의 날은 매년 9월 셋째 토요일이다. 청년기본법에 따라 청년의 권리 보장과 청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정한 법정기념일로, 청년의 날부터 1주간은 청년 주간으로 운영된다. 법에서는 청년을 19세 이상 34세 이하로 규정하지만, 다른 법령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서는 정책의 성격에 따라 연령 범위를 달리 정할 수 있다.
청년의 날이 마련된 까닭은 청년을 단순한 지원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 사회를 함께 이끌어 갈 주체로 바라보자는 데 있다. 청년기본법 역시 청년의 권리와 책임,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 고용과 능력 개발 주거와 복지 금융 생활 지원 등 청년의 삶과 직결된 여러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다룬다. 청년의 날은 이러한 문제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청년이 안정된 삶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년이 처한 현실을 보면 이 기념일의 의미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학교를 졸업한다고 곧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것도 아니며, 취업했다고 곧 자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소득과 주거비의 간격이 커지면서 독립은 늦어지고 안정된 주거를 마련하지 못하면 연애와 결혼 출산과 같은 삶의 선택도 영향을 받는다. 취업·소득·주거·결혼·출산이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어느 시대든 자신의 삶을 세우는 데 노력과 인내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넘기 어려운 벽까지 청년의 의지 부족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일해도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 할 삶의 여러 부분을 미뤄야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각오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청년정책이 필요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기성세대가 살아온 시대와 지금의 청년이 살아가는 시대는 크게 달라졌다. 과거의 경험은 귀중하지만, 그것이 오늘의 현실을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고생을 이겨 낸 사람에게는 삶의 교훈일 수 있지만, 지금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들이밀면 위로보다 짐이 될 수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견디는 법만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노력한 만큼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자리의 숫자만큼 일자리의 질이 중요하고, 주택의 공급만큼 실제 청년이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가 중요하다. 연애와 결혼 출산 또한 구호로 권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청년이 자신의 노동으로 생활을 꾸리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청년을 위한 정책은 듣기 좋은 구호보다 취업·소득·주거·복지 등 생활에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안전망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작품은 청년에게 아파야 성장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성세대가 청년의 아픔을 대신 짊어지고 청년은 아무런 고통도 겪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삶에서 아픔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문제는 아프지 말라고 해도 아플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둔 채, 그 아픔에 청춘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견디라고 하는 데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미화하는 위로가 아니라 고통을 덜어 줄 조건이다. 결국 이 작품이 청년의 날에 던지는 물음은 단순하다. 청년에게 아픔을 견디라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왜 이토록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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