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3. 總術 총술/기(基)운
無韻者筆有韻文 (무운자필유운문)
운 없음이 필이며 운 있음을 문이라 하며
常道曰經傳述之 (상도왈경전술지)
항상의 도를 경이라 하고 전은 경을 전하네.
知九變之貫匪窮 (지구변지관비궁)
아홉 번 변화하며 꿰뚫음은 끝이 없으니
知言之選難備矣 (지언지선난비의)
말을 아는 선택은 갖추기 어렵다네.
精慮造文競新麗 (정려조문경신려)
정성 들여 글 지어도 신기하고 고운 것만 다투고
多欲練辭忽研矣 (다욕련사홀연의)
표현 다듬기에만 힘쓸 뿐 작법은 소홀히 하네.
落落之玉或混石 (락락지옥혹혼석)
드문드문 놓인 옥은 혹 돌과 뒤섞이기도 하고
碌碌之石似玉矣 (록록지석사옥의)
흔해 빠진 돌이 때로는 옥처럼 보이기도 하네.
精巧者要約而盡 (정교자요약이진)
정교한 자는 요약하여 뜻을 다하고
困窮者단如尠耳 (곤궁자단여선이)
빈약한 자는 단지 적게 쓴 듯할 뿐이네.
博學者該贍而秀 (박학자해섬이수)
박학한 자는 풍부하고도 빼어나며
荒蕪者但煩雜耳 (황무자단번잡이)
거친 자는 단지 번잡할 뿐이라네.
達辯者昭晢而明 (달변자소절이명)
달변가는 밝고도 명석하지만
淺薄者惟欲露耳 (천박자유욕로이)
천박한 자는 오직 드러내고만 싶어 하네.
深奧者複隱而蓄 (심오자복은이축)
심오한 자는 겹겹이 숨겨 쌓아두고
詭辯者但歪曲耳 (궤변자단왜곡이)
궤변가는 단지 왜곡할 뿐이라네.
或義華而聲悴也 (혹의화이성췌야)
혹은 뜻은 화려하나 소리는 초라하며
或理拙而文澤耳 (혹리졸이문택이)
혹은 이치는 졸렬하나 문장은 매끄럽네.
知夫調鐘未易也 (지부조종미이야)
종의 소리를 조율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겠고
欲張琴絃實難矣 (욕장금현실난의)
거문고 줄을 고르기가 참으로 어렵다네.
伶州鳩雖告調和 (영주구수고조화)
영주구가 비록 조화로움을 고할지라도
豈盡窕槬之中矣 (기진조확지중의)
어찌 악기의 규격에 다 맞을 수 있겠는가!
雖翩翩起舞揮扇 (수편편기무휘선)
비록 너울너울 춤추며 부채를 흔든들
豈窮初終之韻矣 (기궁초종지운의)
어찌 처음과 끝의 운율을 다할 수 있겠는가!
夫不截錯綜盤根 (부부절착종반근)
무릇 어지럽게 얽힌 뿌리를 자르지 않고는
豈以證驗利器矣 (기이증험리기의)
어찌 예리한 칼날을 시험해 보겠는가!
夫不剖析文之奧 (부불부석문지오)
대개 글의 오묘함을 분석해 보지 않고는
豈以能辯通才矣 (기이능변통재의)
어찌 통달한 재주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是以執術馭篇야 (시이집술어편야)
이로써 작법을 잡고 편장을 다스림은
似善奕之窮數矣 (사선혁지궁수의)
바둑 고수가 수의 끝을 읽는 것 같고
棄術任心揮筆야 (기술임심휘필야)
작법을 버리고 마음대로 붓을 휘두름은
如博塞之邀遇矣 (여박세지요우의)
도박꾼이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네.
博塞之文借巧儻 (박세지문차교당)
도박 같은 글은 요행히 얻은 기교를 빌리니
前功而後難繼矣 (전공이후난계의)
앞서 공이 있더라도 뒤를 잇기 어렵네.
少既無以相接也 (소기무이상접야)
적으면 이어나갈 방도가 없으며
多亦不知所刪矣 (다역부지소산의)
많아도 깎아낼 줄을 모른다네.
乃多少之並惑也 (내다소지병혹야)
이에 많고 적음에 함께 미혹되었으니
何妍蚩之能制矣 (하연치지능제의)
어찌 아름다움과 추함을 조절하겠는가!
善奕之文有恆數 (선혁지문유항수)
바둑 고수 같은 글은 일정한 법칙이 있어
按部整伍以待會 (안부정오이대회)
대열을 정비하고 감정이 모이길 기다리네.
因時順機不失正 (인시순기부실정)
때를 타고 기회를 따라 바름을 잃지 않으니
數逢其極立正機 (수봉기극입정기)
법칙이 지극함에 이르러 바른 기틀을 세우네.
則義味騰躍而生 (즉의미등약이생)
뜻과 맛이 기운차게 솟구쳐 생겨나고
辭氣叢雜而至矣 (사기총잡이지의)
말의 기세는 수풀이 섞이듯이 지극함에 이르네.
視之則錦繪畵也 (시지즉금회화야)
이를 보면 비단에 그린 그림이요
聽之則絲簧音矣 (청지즉사황음의)
이를 들으면 악기의 연주 소리라네.
味之則甘腴疊求 (미지즉감유첩구)
이를 맛보면 단맛과 기름짐을 거듭 구하게 되고
佩之則芬芳又喜 (패지즉분방우희)
이를 차면 그 향기에 또다시 즐겁다네.
驥足雖駿忌長纆 (기족수준기장묵)
천리마 발이 비록 빠르나 긴 굴레 줄을 꺼리니
萬分一累廢千里 (만분일루폐천리)
만분의 일이라도 얽매이면 천 리 길을 포기하네.
文體多術相彌綸 (문체다술상미륜)
문장의 체제에는 많은 법이 있어 서로 보완하니
一物攜貳莫不乖 (일물휴이막불괴)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어그러지지 않음이 없네.
備摠情變成一篇 (비총정변이성일편)
온갖 감정의 변화를 총괄하여 한 편을 이루면
三十之輻一轂矣 (삼십지폭일곡의)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이리라!
務先大體必窮源 (무선대체필궁원)
힘써 대체를 먼저 세우고 반드시 근원을 궁구하며
乘一總萬舉要治 (승일총만거요치)
하나를 타서 만 가지를 총괄하고 요체를 들어 다스린다네.
思無定契雖神思 (사무정계수신사)
생각에는 정해진 틀이 없어 비록 신비로운 생각일지라도
理有恆存以進矣 (이유항존이진의)
이치는 항상 존재하는 법이니 이를 따라 나아가야 한다네.
*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총술(總術)의 ‘술(術)’은 방법이나 기술 등의 뜻으로, 창작의 방법과 기술 등을 총괄한다는 의미이다. 제26편 〈신사(神思)〉 이하에서 창작의 원리와 방법 등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논했는데, 본편에서는 이러한 방법들을 하나로 묶어 매듭을 짓는다는 의미에서 ‘총술(總術)’이라 했다.
⇓ Gemini 3 Flash의 해설: 총술(總術): 작법 원리의 총괄
〈총술(總術)〉은 글쓰기의 모든 기법을 하나의 원리로 총괄한 편이다. 술(術)이란 단순히 글을 쓰는 기술을 넘어 문장을 운용하는 근본 법식과 전략을 의미한다. 운율이 있어 노래할 수 있는 것을 문이라 하고 운율 없이 기록하는 산문을 필이라 불르지만, 이는 편의일 뿐이며 모든 문장은 인간의 생각과 말을 무늬로 옮겨놓은 것이기에 그 뿌리가 같다.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육경(六經)을 글쓰기은 글쓰기의 절대 기준과 같다. 육경이란 시를 모아 인간의 순수한 정서를 담은 《시경(詩經)》, 성군들의 정치 기록과 산문 문장의 원형인 《서경(書經)》,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정리한 《예기(禮記)》, 우주 만물의 변화 원리를 풀이한 《역경(易經)》, 역사를 엄정하게 기록한 《춘추(春秋)》, 그리고 음악의 원리를 다루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악경(樂經)》을 말한다. 이 경전들은 우주의 변치 않는 도리인 상도(常道)를 담고 있으며 그 해석인 전(傳)은 이 도리를 세상에 펴는 역할을 한다. 육경은 말과 글이 완벽하게 조화된 지극한 경지이기에 이를 단순히 문이냐 필이냐는 잣대로 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문장의 변화는 구변(九變)이라 일컬어질 만큼 끝이 없다. 구(九)는 단순히 숫자 구가 아니라 무한한 변화를 상징한다. 이 무한한 변화의 흐름을 꿰뚫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가려내는 지언(知言)의 안목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대의 작가들은 내실을 다지기보다 겉모양의 화려함과 참신함만을 다투는 데만 몰두하여, 정작 글을 운용하는 지혜인 술(術)은 소홀히 한다. 이처럼 안목이 없는 시대에는 거친 돌이 옥 대접을 받기도 하고 진귀한 옥이 돌무더기에 섞여 버려지기도 한다. 이는 모두 작법의 원리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해 가치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폐해이다.
글의 풍격은 작가의 재능과 작법의 이해도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실력 있는 자는 요점만을 뽑아내어 뜻을 완벽히 전달하지만, 재능이 부족한 이는 그저 분량만 줄여 간결한 척을 한다. 박학한 이는 내용이 풍부하고 빼어나지만 조리 없는 이는 번잡하게 말을 늘어놓을 뿐이다.
춘추 시대 주나라의 음악 관리였던 영주구(伶州鳩)는 경왕(景王)이 ‘무역(無射)’이라는 종을 만들었을 때 모든 신하가 소리가 조화롭다고 아부했으나 영주구만은 그 소리가 음률의 규격에 맞지 않아 백성의 원성을 살 것이라 직언했다. 조(窕)는 종의 입구 구멍이 너무 깊은 것이고 확(槬)은 구멍이 너무 넓어 소리가 퍼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겉보기에 훌륭한 문장이라도 이러한 미세한 규격과 법도에 맞지 않으면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춤추는 무희가 너울너울(翩翩) 부채를 휘둘러도 음악의 처음과 끝이라는 운율의 틀을 벗어나면 그것은 소음일 뿐이다.
이러한 통제력을 시험하는 장이 바로 착종반근(錯綜盤根)이다. 착종(錯綜)은 베를 짤 때 실이 복잡하게 교차하듯 엉킨 상태를 말하고 반근(盤根)은 나무뿌리가 땅속에서 단단히 뒤틀려 얽힌 것을 뜻한다. 나무뿌리가 험하게 얽힌 곳을 잘라보아야 칼의 날카로움을 알 수 있듯이 복잡하고 난해한 문장의 구조를 명확히 분석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통달한 재주를 가진 통재(通才)라 부를 수 있다. 작법을 제대로 장악하고 글을 쓰는 것은 바둑 고수인 선혁(善奕)이 수만 가지 변화인 수(數)를 미리 읽고 대응하는 것과 같다. 때를 기다려 군대의 대오를 정비하듯 감정을 차분히 갈무리하면 어느 순간 뜻과 맛이 용솟음치고 문장의 기세가 수풀이 우거지듯(叢雜) 무리 지어 몰려온다. 반면 법식을 무시하고 마음 가는 대로 붓을 놀리는 자는 쌍육(雙六)이라 불리는 도박에서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도박꾼이 운 좋게 한두 번 큰 점수를 얻을 수는 있어도 실력이 아니기에 나중에는 밑천이 드러나듯 작법 없는 글은 결국 앞뒤가 맞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천리마인 기(驥)가 제아무리 발이 빨라도 말의 고삐나 굴레를 뜻하는 묵(纆)이 너무 길어 통제를 벗어나면 천 리 길을 갈 수 없다. 마부의 손끝에서 만분의 일만큼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말은 제 길을 가지 못하고 쓰러지는데 이를 아주 미세한 허물이라는 뜻에서 일루(一累)라 부른다. 문장 역시 수많은 작법이 서로 그물처럼 얽혀(彌綸) 보완되어야 한다. 한 가지 원칙이라도 어긋나면 전체의 조화는 깨지고 만다.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모이듯이 수많은 작법과 기교라는 바큇살이 제각기 흩어져 있는 듯해도 결국은 하나의 중심인 바퀴통으로 수렴되어야만 수레가 힘차게 굴러갈 수 있는 것과 같다. 글을 쓰는 이는 문장의 큰 줄기인 대체(大體)를 먼저 세우고 근원을 파고들어야 한다. 사람의 생각(思)은 정해진 약속이나 틀이 없어 신비롭고 변화무쌍하지만, 밑바닥을 관통하는 이치(理)는 항상 변치 않고 존재한다. 그 이치를 붙잡고 부단히 나아가야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글의 홍수 속에서도 창작의 참된 가치를 지켜내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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