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 時序 시서/기(基)운
時運交移文代變 (시운교이문대변)
시대의 운수가 옮겨가며 문장도 따라 변해가니
古今情理如此矣 (고금정리여차의)
예나 지금이나 감정과 이치의 흐름은 이와 같네.
薰風詩於元后也 (훈풍시어원후야)
따사로운 〈남풍〉 시를 순임금이 지은 후에
爛雲歌於列臣矣 (란운가어열신의)
찬란한 〈경운〉가는 늘어선 신하들이 불렀네.
盡其讚美而餘裕 (진기찬미이여유)
그 찬송의 미를 다하면서 여유로웠으니
乃心樂而聲泰矣 (내심락이성태의)
이에 마음이 즐겁고 소리는 태평스러웠네.
古公亶父敎化淳 (고공단보교화순)
고공단보의 교화는 순박하여
邠風樂而不淫矣 (빈풍락이불음의)
〈빈풍〉은 즐기면서도 음란하지 않았네.
文王盛德實偉大 (문왕성덕실위대)
문왕의 성덕은 실로 위대하여
周南勤而不怨矣 (주남근이불원의)
주남의 노래는 부지런하되 원망 없었네.
幽厲昏迷在板蕩 (유려혼미재판탕)
유왕과 여왕의 혼미함은 〈판〉과 〈탕〉에 있고
平王衰微寓黍離 (평왕쇠미우서리)
평왕의 쇠미함은 〈서리〉에 깃들었네.
風動於上波震下 (풍동어상파진하)
위에서 바람이 움직이니 아래에서 물결이 흔들리듯
歌謠文理與世移 (가요문리여세이)
노래와 문장의 결은 세상과 더불어 옮겨가네.
春秋以後角逐戰 (춘추이후각축전)
춘추 시대 이후 각축전
七國爭雄如蜂起 (칠국쟁웅여봉기)
칠국이 다투며 벌 떼처럼 일어났네.
六經泥蟠失大道 (육경니반실대도)
육경의 가르침은 진흙 속에 서려 대도를 잃었고
百家飆駭而怪異 (백가표해이괴이)
백가 사상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괴이해졌네.
韓魏背晉而力政 (한위배진이력정)
한·위는 진나라를 등지고 힘으로 다스리니
自强變法方是時 (자강변법방시시)
자강 변법이 바로 이때라네.
權謀術數則燕趙 (권모술수즉연조)
권모술수 즉 연과 조나라
五蠹六蝨排經矣 (오두육슬배경의)
오두·육슬로 경전을 배척했네.
嚴於秦令亦排經 (엄어진령역배경)
진나라 법령은 엄격하여 또한 경전을 배척하니
道義墮地惟力耳 (도의타지유력이)
도의는 땅에 떨어지고 오직 힘뿐이었네.
唯齊楚頗有文學 (유제초파유문학)
오직 제나라와 초나라만은 문학이 제법 성하여
雖亂世而未絶矣 (수난세이미절의)
비록 난세였으나 그 맥이 끊어지지 않았네.
齊開莊衢之第也 (제개장구지제야)
제나라는 대로에 학자를 위한 별장을 열었고
楚廣蘭臺之宮矣 (초광란대지궁의)
초나라 또한 난대의 별궁을 확장했네.
荀卿宰邑扇淸風 (순경재읍선청풍)
순경은 고을을 다스리며 맑은 바람을 일으켰고
孟軻賓館說仁義 (맹가빈관설인의)
맹가는 빈관에 머물며 인의의 도를 유세했네.
鄒衍以談天飛譽 (추연이담천비예)
추연는 하늘을 논함으로 명성을 날렸고
蘭陵香風如春矣 (난릉향풍여춘의)
난릉의 향기로운 바람은 봄날 같았네.
屈原聯藻於日月 (굴원연조어일월)
굴원은 일월처럼 문채를 엮어 빛냈고
騶奭以雕龍奔馳 (추석이조룡분치)
추석은 용을 새기는 변설로 내달렸네.
宋玉交彩於風雲 (송옥교채어풍운)
송옥은 풍운에 문채를 교차했으니
觀其豔說貫珠矣 (관기염설관주의)
그 고운 변설 보면 구슬을 꿰었네.
爰至有漢接燔書 (원지유한접분서)
한나라에 이르러도 분서 뒤를 이었으니
劉邦尚武戲儒矣 (유방상무희유의)
유방은 무를 숭상하며 유학자를 조롱했네.
雖有叔孫通蕭何 (수유숙손통소하)
비록 숙손통과 소하 같은 인재가 있었으나
詩書如前未裕矣 (시서여전미유의)
시와 서는 여전히 돌볼 여유 없었네.
然大風鴻鵠之歌 (연대풍홍곡지가)
그러나 〈대풍가〉와 〈홍곡가〉 같은 노래는
亦天縱之英作矣 (역천종지영작의)
또한 하늘이 내린 영웅의 작품이었네.
施及孝惠迄文景 (시급효혜흘문경)
효혜제를 거쳐 문제와 경제 시기에 이르러서는
經術頗興而未備 (경술파흥이미비)
경술이 자못 일어났으나 아직 미비했다네.
賈誼被陷貶長沙 (가의피함폄장사)
가의는 참소를 입어 장사로 귀양 갔고
鄒陽枚乘亦抑矣 (추양매승역억의)
추양과 매승 또한 억눌려 지냈다네.
孝武崇儒潤鴻業 (효무숭유윤홍업)
효무제가 유교를 숭상해 큰 업적을 윤택하게 하니
辭藻競騖禮樂輝 (사조경무예악휘)
사조는 다투어 치닫고 예악은 빛이 났네.
金堤製恤民之詠 (금제제휼민지영)
금제에서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읊조림을 지었고
柏梁展朝讌之詩 (백량전조연지시)
백량대에서는 조정 연회의 시를 펼쳤다네.
徵枚乘以蒲輪也 (징매승이포륜야)
매승을 부름에는 부들 수레를 보냈고
申主父以鼎食矣 (신주부이정식의)
주부언을 발탁함에는 솥을 펼친 식사였다네.
擢公孫之對策也 (탁공손지대책야)
공손홍의 대책을 뽑아 등용했고
歎兒寬之懿奏矣 (탄예관지의주의)
예관의 훌륭한 상소문에 감탄했다네.
相如滌器而被繡 (상여척기이피수)
사마상여는 그릇을 닦다가 수놓은 비단옷을 입었고
買臣負薪而錦衣 (매신부신이금의)
주매신은 땔나무를 지다가 비단 옷을 입었다네.
史遷壽王之徒歟 (사천수왕지도여)
사마천·오구수왕 같은 무리여!
嚴終枚皋之屬矣 (엄종매고지속의)
엄안·종군·매고 같은 부류여!
應對篇章如綺羅 (응대편장여기라)
응대하는 글과 장들이 비단처럼 아름다워
遺風餘采莫與比 (유풍여채막여비)
그 남긴 풍운과 남은 채색은 비길 데가 없네.
越昭及宣繼武績 (월소급선계무적)
소제와 선제에 이르러 무제의 공적을 이으니
馳騁石渠暇文會 (치빙석거가문회)
석거각을 내달리며 문장의 모임을 즐겼네.
集雕篆之軼材也 (집조전지일재야)
아로새긴 듯 빼어난 인재들을 모았고
發綺縠之高喻矣 (발기곡지고유의)
비단같이 고운 높은 비유들을 펼쳤네.
於是王褒之等也 (어시왕포지등야)
이에 왕포와 같은 인재들은
樂祿俸待詔書矣 (락록봉대조서의)
녹봉을 즐기며 조서를 기다렸네.
自元帝暨成帝也 (자원제기성제야)
원제로부터 성제에 이르기까지
學術振興盡力矣 (학술진흥진력의)
학술의 진흥에 진력했다네.
美玉屑之深譚也 (미옥설지심담야)
옥가루 같은 깊은 담론 아름답고
淸金馬之大路矣 (청금마지대로의)
금마문의 큰길은 깨끗했네.
劉向讎校於六藝 (유향수교어육예)
유향은 육예를 교정했고
揚雄銳思於千記 (양웅예사어천기)
양웅은 수많은 기록에 생각을 가다듬었네.
迄至成哀顧百齡 (흘지성애고백령)
성제와 애제에 이르러 백년을 돌아보니
爰自漢室眞美矣 (원자한실진미의)
이에 한나라 황실은 참으로 아름답다네.
楚辭餘影成大體 (초사여영성대체)
초사의 남은 그림자가 대첼ㄹ 이루었으니
辭人九變而所歸 (사인구변이소귀)
문사들이 아홉 번 변해도 돌아간 바라네.
哀平之際王莽簒 (애평지제왕망찬)
애제와 평제 사이 왕망이 찬탈했으나
光武靖亂復興矣 (광무정란부흥의)
광무제가 난을 평정하고 부흥했다네.
然深懷圖讖之術 (연심회도참지술)
그러나 깊이 도참의 술수에 빠져들었으니
文華頗略欲傾矣 (문화파략욕경의)
문장의 정화가 자못 소략해져 기울어질 뻔했네.
於中班彪參奏草 (어중반표참주초)
그러한 가운데도 반표는 상소 초안에 참여했고
杜篤獄中獻誄矣 (두독옥중헌뢰의)
두독은 옥중에서도 뇌문을 지어 올렸다네.
大勢已擴難制御 (대세이확난제어)
대세 이미 확장되어 억누르기는 어려웠으니
雖非旁求不遐棄 (수비방구불하기)
비록 널리 구하지 않았어도 멀리 버리지도 않았네.
明章疊耀崇儒術 (명장첩요숭유술)
명제와 장제가 거듭 빛내며 유교를 숭상하니
白虎觀及璧堂矣 (백호관급벽당의)
백호관과 벽당에 이르렀네.
班固珥筆于漢書 (반고이필우한서)
반고는 붓을 꽂고 〈한서〉를 서술했고
賈逵給札獻頌矣 (가규급찰헌송의)
가규는 목판을 받아 송을 헌상했네.
東平擅其懿文也 (동평천기의문야)
동평왕도 훌륭한 문장을 떨쳤고
沛王振其通論矣 (패왕진기통론의)
패왕도 그 통론을 떨쳤다네.
帝則藩儀相輝照 (제즉번의상휘조)
황제의 법도와 번왕의 서로 빛나고 비추며
自安和至順桓矣 (자안화지순환의)
안제와 화제로부터 순제와 환제에 이르렀네.
班固三崔王延壽 (반고삼최왕연수)
반고·최인·최원·최식·왕연수
張衡蔡邕及傅毅 (장형채옹급부의)
장형·채옹·부의
磊落鴻儒才無窮 (뇌락홍유재무궁)
돌무더기 떨어지듯 홍유의 재능 무궁하여
一一詳論不可矣 (일일상론불가의)
일일의 상론은 불가하다네.
然而中興之後也 (연이중흥지후야)
그런데 후한의 부흥이 일어난 뒤에는
群才稍改前轍矣 (군재초개전철의)
뭇 선비들이 조금씩 전대의 전철을 고쳤으니
華實所附斟經辭 (화실소부짐경사)
화려와 실질이 부합한 경전의 말을 참작하면서
儒風講論而漸聚 (유풍강론이점취)
유풍의 강론으로 점점 취했네.
降及靈帝好辭製 (강급영제호사제)
영제 때에 이르러 글짓기를 좋아하니
開放鴻門作皇羲 (개방홍문작황희)
홍도문을 개방하고 〈황희〉를 지었다네.
而樂松之徒惡用 (이악송지도악용)
그런데 악송의 무리가 악용하여
招集淺陋而誇示 (초집천루이과시)
천박하고 비루한 자들을 불러 모아 과시했네.
故楊賜號為驩兜 (고양사호위환두)
그러므로 양사는 그들을 환두라 일컬었고
蔡邕比之俳優矣 (채옹비지배우의)
채옹은 그들을 광대에 비유했다네.
獻帝播遷如蓬轉 (헌제파천여봉전)
헌제의 파천은 쑥대 전전하듯 하다가
建安之末始定矣 (건안지말시정의)
건안 말기에 비로소 안정되었네.
魏武以相王之尊 (위무이상왕지존)
위무제 조조는 재상이자 왕의 존귀함으로
愛好詩章爲趣味 (애호시장위취미)
시와 문장을 사랑하여 취미로 삼았고
文帝以副君之重 (문제이부군지중)
문제인 조비는 태자의 중임에도
辭賦眞情妙善矣 (사부진정묘선의)
사부는 정을 다해 오묘하고 뛰어나네.
陳思以公子之豪 (진사이공자지호)
진사왕 조식은 공자의 호방함으로
下筆琳琅則無比 (하필림랑즉무비)
붓을 들면 옥 소리 나니 비할 데가 없네.
體貌英逸以禮請 (체모영일이례청)
체모와 영기가 빼어나고 예우로 청하니
俊才雲蒸以興起 (준재운증이흥기)
준재는 구름처럼 솟아 이로써 흥기 했네.
王粲委質於漢南 (왕찬위질어한남)
왕찬은 한남에서 몸을 굽혀 섬겼고
陳琳歸順於北地 (진림귀순어북지)
진림은 북쪽에서 귀순했으며
徐幹從宦於靑土 (서간종환어청토)
서간은 청토에서 벼슬길에 올랐고
劉楨徇質於僻里 (유정순질어벽리)
유정은 벽촌에서 절개를 지켰으며
應瑒綜其斐然思 (응양종기비연사)
응창은 화려한 문채의 생각을 모았고
阮瑀展其翩翩嬉 (완우전기편편희)
완우는 펄펄 나는 듯한 풍류를 즐겼으며
文蔚繁欽之儔也 (문울번흠지주야)
문울과 번흠은 서로 무리를 이루었고
盧欽楊修之侶矣 (노흠양수지려의)
노흠과 양수는 서로의 벗이었네.
傲雅觴豆之前也 (오아상두지전야)
술잔과 제기 앞에서 오만하면서도 우아하고
雍容衽席之上矣 (옹용임석지상의)
자리에 앉아서는 온화하고 너그러웠네.
灑筆以成酣歌也 (쇄필이성감가야)
붓을 휘둘러 흥겨운 노래를 완성하고
和墨以藉談笑矣 (화묵이자담소의)
먹을 갈아 담소의 즐거움을 빌렸다네.
觀其時文好慷慨 (관기시문호강개)
그 시대의 문장을 보니 강개함을 좋아했으니
怨望風俗歷亂離 (원망풍속력난리)
풍속을 원망하며 난리를 겪었기 때문이라네.
並志深而筆長也 (병지심이필장야)
모두 뜻은 깊고 필력은 유장하니
故梗概而多氣矣 (고경개이다기의)
그러므로 뼈대가 굳세고 기운이 넘치네.
明帝置崇文之觀 (명제치숭문지관)
명제 조예가 숭문관을 설치하니
何劉群才迭相輝 (하유군재질상휘)
하안과 유정 등 뭇 천재들이 번갈아 빛났네.
高貴鄕公文彩燦 (고귀향공문채찬)
고귀향공의 문채는 찬연했으니
動脣成論使驚耳 (동순성론사경이)
입술을 움직여 논하면 귀를 놀라게 했네.
正始餘風而體澹 (정시여풍이체담)
정시의 남은 풍조로 체제가 담박했으니
嵇阮應繆並奔馳 (혜완응무병분치)
혜강·완적·응창·무습이 나란히 내달렸네.
武帝惟新承泰平 (무제유신승태평)
무제인 사마염은 유신으로 태평을 승계했으나
降及懷愍綴旒耳 (강급회민철류이)
회제와 민제에 이르러 명맥만 이을 뿐이네.
然晉雖疏詩文也 (연진수소시문야)
그러나 진나라는 비록 시와 문장에 소홀했지만
人才實盛爭華美 (인재실성쟁화미)
인재들은 실로 무성하여 화려함과 미를 다투었네.
張華搖筆而散珠 (장화요필이산주)
장화가 붓을 흔드니 구슬이 흩어지는 듯하고
左思研墨而貫瑋 (좌사연묵이관위)
좌사가 먹을 갈자 기이함이 꿰어지듯 가득하네.
岳湛曜聯璧之華 (악담요련벽지화)
반악과 하후잠은 연벽의 화려함을 빛내고
機雲摽二俊之輝 (기운표이준지휘)
육기와 육운의 두 준걸은 광휘를 드날렸네.
應傅三張之徒也 (응부삼장지도야)
응거·부현·장화·장재·장협의 무리며
孫摯成公之屬矣 (손지성공지속의)
손초·지우·성공수와 같은 부류라네.
結藻清英韻綺麗 (결조청영운기려)
문채를 맺음은 맑고 빼어나며 운율은 기려하지만
前史以為涉末期 (전사이위섭말기)
전대의 사가들은 말기를 건넌다고 여겼네.
而不逢時未展才 (이불봉시미전재)
그러나 시대를 만나지 못해 재능을 펴지 못했으니
懷抱餘恨誠歎矣 (회포여한성탄의)
회포의 남은 한은 참으로 한탄이라네.
元帝中興立太學 (원제중흥립태학)
원제인 사마예가 중흥하여 태학을 세우니
劉刁禮吏而寵矣 (유조예리이총의)
유외와 조협이 예법의 관리로 총애받았네.
郭璞文敏而特擢 (곽박문민이특탁)
곽박은 문장이 민첩하여 특별히 발탁되었고
明帝明哲而再起 (명제명철이재기)
명제는 밝고 총명하여 다시 흥기 했네.
精練誥策孳孳藝 (정련고책자자예)
고와 책을 정련하고 부지런히 기예를 닦으며
升儲御極樂文會 (승저어극락문회)
황태자에서 황제에 올라서도 문회를 즐겼네.
庾亮以筆才逾親 (유량이필재유친)
유량은 문필의 재능으로 더욱 친밀해졌고
振采於辭與賦矣 (진채어사여부의)
사와 부에서 그 광채를 떨쳤으며
溫嶠以文思益厚 (온교이문사익후)
온교는 이에 문사가 더욱 도타웠으니
揄揚風流明君矣 (유양풍류명군의)
풍류를 끌어당겨 드높인 명군이었네.
西晉貴玄至江左 (서진귀현지강좌)
서진은 현학의 귀히 여겨 동진에 이르니
因談餘氣成文繪 (인담여기성문회)
청담의 남은 기운으로 인해 문장의 채색을 이루었네.
是以世極迍邅也 (시이세극준전야)
이로써 세상은 지극히 어렵고 험난하였으나
而辭意夷泰平矣 (이사의이태평의)
문장의 뜻은 오히려 평온하고 태평하였네.
賦乃莊周之義疏 (부내장주지의소)
부라 하면 장자의 뜻을 풀이한 것이요
詩必老聃之旨歸 (시필노담지지귀)
시라 하면 반드시 노자의 뜻으로 귀결되었네.
知文變染乎世情 (지문변염호세정)
문장의 변화가 세속의 정에 물듦을 알겠으니
興廢繫乎時序矣 (흥폐계호시서의)
문사의 흥망은 시대의 질서에 매여 있다네.
窮究根源括結果 (궁구근원괄결과)
그 근원을 궁구하고 결과를 묶어 살펴보니
雖百世以後可知 (수백세이후가지)
설령 백 대 이후일지라도 알 수 있으리!
宋武愛文文帝彬 (송무애문문제빈)
유송의 무제는 문장을 애호했고 문제는 빛났으며
孝武多才秉文矣 (효무다재병문의)
효무제는 재능이 많아 문장의 기틀을 잡았다네.
爾其縉紳之林也 (이기진신지림야)
그리하여 그 유송의 관료와 선비들의 숲은
霞蔚而飆風起矣 (하울이표풍기의)
노을처럼 화려하게 우거지고 폭풍처럼 일었네.
顏謝重葉以鳳采 (안사중엽이봉채)
안연지와 사령운은 잎을 포갠 듯 봉황의 광채를 드러냈고
何范張沈之徒矣 (하범장심지도의)
하손·범운·장융·심약의 무리가 뒤따랐네.
海岳入神文思溢 (해악입신문사일)
바다와 산의 신이 들어 문사 넘치고
橫飛龍於天衢矣 (횡비룡어천구의)
비룡이 하늘길을 횡행하는 듯하네.
經典禮章明朝廷 (경전예장명조정)
경전과 예장이 조정을 밝히며
駕騏驥於萬里矣 (가기기어만리의)
천리마에 올라 만 리를 내달리네.
其鼎盛乎懿采歟 (기정성호의채여)
그 성대함이여! 찬란한 광채여!
短筆敢陳讚此時 (단필감진찬차시)
짧은 붓으로 감히 이 시대를 찬양하노라!
*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시서(時序)란 ‘시대의 순서를 따라 서술한다’라는 의미다. 여러 가지 창작 양식을 축으로 한 시대순 서술은 제6편 〈명시〉 이하 여러 편에서 설명했다. 본 편은 시대의 추이를 중심에 두고, 모든 창작은 형식과 내용이 각각 그 시대 상황에 따른 정치·경제·학술·사상·풍속 등 모든 상황과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개된다는 견해를 서술했다. 50편 중 제일 편폭이 길다.
⇓Gemini 3 Flash의 해설: 시서(時序): 시대의 변천에 따른 문장의 기세
1. 상고 시대의 질박
시대의 기운이 교차하고 바뀜에 따라 문학 창작의 내용과 표현은 질박함에서 화려함으로 대체되고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지금의 문학 창작에 나타나는 감정과 이치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옛날 도당씨(陶唐氏)라고도 불리는 요(堯)임금은 덕이 훌륭하여 교화가 두루 미쳤다. 그러한 교화의 영향은 한 시골 노인이 땅을 치며 “임금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노래하며 그 혜택을 깨닫지 못할 정도였고, 교외의 아이들은 뜻을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부르며 평화를 누렸다. 유우(有虞)라고도 불리는 순(舜)임금은 이를 계승하여 힘쓰니, 정치는 충실해지고 백성들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순임금이 직접 〈남풍(南風)〉의 시를 지었고, 줄지어 있는 신하들은 〈경운(卿雲)〉의 노래를 불렀다. 〈남풍〉은 “남풍의 따사로움이여, 우리 백성의 노여움을 풀어주리라!”라는 임금의 자애를 담았고, 〈경운〉은 상서로운 구름이 일듯 성군과 신하의 만남을 찬양했다. 이러한 시가가 그 아름다움 다하고 있는 까닭은 임금과 신하 모두 마음이 즐거워 음악도 평온한 것이다.
하나라 우왕(禹王)이 지세를 관찰하여 아홉 구역의 행정구역으로 나눔에 이르러서는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의 육부와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의 삼덕(三德)을 바탕 삼은 아홉 가지 공적을 노래했다. 은나라의 탕(湯)왕은 성인으로 추앙받아 “아아 훌륭하도다!”라고 칭찬하는 송(頌)이 지어졌다. 주나라 문왕(文王)은 덕이 훌륭했기 때문에 《시경·주남(周南)》 편에는 은의 주왕에 의해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원망의 감정이 없으며, 문왕의 할아버지 대왕(大王: 고공단보)의 교화에 순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경·빈풍(邠風)》은 즐거우나 지나침이 없다. 빈(邠)은 지금의 섬서성 일대로, 고공단보가 야만족을 피해 백성을 데리고 이주하여 정착한 곳이다. 반면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때는 정치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시경·판(板)》과 《시경·탕(蕩)》 편에는 뒤집힌 하늘을 원망하는 백성들의 노여움이 나타나 있고, 평왕(平王)은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시경·서리(黍離)》 편에는 나라 잃은 슬픔이 보리 이삭에 깃들어 있다. 이처럼 노래의 표현과 내용은 세상의 변천에 따른 추세이므로, 바람이 위에서 불면 아래에서는 물결이 진동하는 것이다.
2. 전국의 각축과 제·초의 문풍
춘추 시대 이래로 영웅들은 세력을 다투었기 때문에, 신성한 육경(六經)은 진흙 속에 묻히고 백가의 설이 광풍처럼 불었다. 이러한 시대에 즈음하여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무력으로 이웃 나라를 침략했고, 조(趙)나라와 연(燕)나라는 권모술수를 신뢰하면서 예악(禮樂) 및 시서(詩書) 등에 대해 법령으로 엄격하게 규제하였다. 다만 제(齊)나라와 초(楚)나라는 자못 학문을 장려했다.
제나라는 학자들을 위해 사통팔달의 길가인 장구(莊衢)에 호화로운 별장을 지어 직하(稷下) 궁을 세웠으며, 초나라는 ‘난대(蘭臺)’라는 별궁을 확장했다. 맹가(孟軻: 맹자)는 제나라의 영빈관에서 극진히 맞아들여졌고, 순경(荀卿: 순자)은 초나라 난릉(蘭陵)현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제나라 도읍인 임치(臨淄)의 성문 아래에는 담론의 풍조가 울려 퍼지고, 난릉에는 훌륭한 풍속이 더욱 무성해졌다.
제나라 추연(鄒衍)은 우주의 원리를 논하는 담론으로 명예를 드날리고, 추석(騶奭) 또한 용을 새길 정도의 훌륭한 미사여구로 명성을 내달렸다. 굴원(屈原)이 표현한 문장의 수식은 해와 달의 밝음에 미칠 정도였으며, 송옥(宋玉)이 늘어놓은 아름다운 수식은 바람과 구름의 변화에 비교될 정도였다. 굴원과 송옥의 아름다운 주장을 살펴보면, 《시경》의 〈아(雅)〉와 〈송(頌)〉 같은 훌륭한 표현이 온통 뒤덮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 나타난 표현의 신기함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전국 시대의 기이한 풍속이 종횡으로 변화하는 가운데서 나왔기 때문이다.
3. 한 대의 문운
한나라 초기에 이르러서도 아직은 서적을 불태웠던 진나라의 기운을 이어받게 되었다. 한의 고조 유방(劉邦)은 무력을 숭상하여 유학자를 희롱하고 학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비록 숙손통(叔孫通)에게 명하여 예의로써 군신의 위치를 정하게 하고 소하(蕭何)가 법령의 초고를 정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시경(詩經)》과 《상서(尙書)》에 나타난 훌륭한 뜻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고조가 지은 〈대풍가(大風歌)〉와 〈홍곡가(鴻鵠歌)〉는 하늘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은 영웅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제2대 천자인 효혜제(孝惠帝)에서 제5대 문제(文帝)와 6대 경제(景帝)에 이르기까지도, 경학이 어느 정도 성행하기는 했으나 유학에 관련된 문장가의 중용에는 소홀했다. 가의(賈誼)가 모함으로 인해 장사(長沙) 지방으로 폄적(貶謫) 되고, 추양(鄒陽)이 옥에 갇히고, 매승(枚乘)은 관직을 박탈당하는 등 문사들이 억눌러지게 된 것은 또한 이미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제7대 천자인 효무제(孝武帝)는 유학을 존숭하여, 그의 정치 업적을 윤택하게 하는 데 이르러서는 예의와 음악이 다투어 빛나고 문사들은 문학 창작의 길을 경쟁하며 내달리게 되었다. 무제는 노년의 매승을 초빙하기 위해 고급 수레인 포륜(蒲輪)을 보냈고, 제나라 사람 주부언(主父偃)에게는 소·양·돼지·물고기·사슴 등으로 만든 훌륭한 음식을 솥에 가득 차려 대접하는 정식(鼎食)으로 우대했다. 정식은 당시 제후나 대신들이 누리던 지극한 예우의 식사였다.
또한 공손홍(公孫弘)이 국가 정책에 대해 논한 ‘대책문’을 발탁하고, 예관(倪寬)이 고쳐 쓴 상주문에 감탄했다. 가난한 주매신(朱買臣)은 장작을 팔러 왔다가 문학 재능에 의해 회계 태수가 되어 비단옷을 입는 출세를 하게 되었고,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식기 세척 하는 일에서 문학 창작의 재능에 의해 수를 누빈 옷을 입는 영달을 누리게 되었다. 사마천(司馬遷)·오구수왕(吾丘壽王)·엄조(嚴助)·종군(終軍)·매고(枚皋)의 일파는 모두 무제를 보좌하면서 당연히 응대도 자유자재이며 문학 작품 또한 부족하지 않으니, 그들이 후세에 남긴 기풍과 빛나는 업적은 비견될 자가 없다.
제8대 천자였던 소제(昭帝) 이후 9대 선제(宣帝)까지는 충실하게 무제의 업적을 계승했다. 문인들은 궁중 도서관인 석거각(石渠閣)에 모여 활약하면서 학문에 관한 모임을 여유 있게 즐기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의 글을 모으고, 문학을 ‘기려한 비단(綺縠)’의 비유로 표현했다. 이리하여 왕포(王褒)의 무리는 봉록을 즐기며 조서의 전달을 기다렸다.
4. 후한의 중흥과 위·진의 풍골
제10대 천자였던 원제(元帝)부터 11대 성제(成帝)에 이르러서는 서적과 경전의 편찬에 힘을 기울이니, 옥가루와 같은 문장은 문인들이 드나드는 금마문(金馬門)의 길을 깨끗하게 했다. 유향(劉向)은 육예를 교정했고 양웅(揚雄)은 수많은 기록을 가다듬었다. 광무제(光武帝)가 중흥한 이후에도 두독(杜篤)은 옥중에서 ‘뇌문’을 올려 죄를 사면받았고, 반표(班彪)는 상주문 초안 작성을 도왔다. 명제(明帝)와 장제(章帝) 시대에는 백호관(白虎觀)과 벽당(璧堂)에서 유학이 강론되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를 집필하고, 가규(賈逵)는 붓과 종이를 공급받아 〈신작송(神雀頌)〉을 지었다. 최인(崔駰)·최원(崔瑗)·최식(崔寔)·왕연수(王延壽)·마융(馬融)·장형(張衡)·채옹(蔡邕) 등 기라성(綺羅星)의 홍유(鴻儒)는 돌무더기 떨어지듯 무궁한 재능을 떨쳤다. 그러나 영제(靈帝) 때 악송(樂松) 무리가 홍도문(鴻都門)에 모여 문학을 악용하자 양사(楊賜)는 그들을 악당이라 불렀고 채옹(蔡邕)은 광대에 비유했다.
헌제(獻帝) 이후 위(魏)나라의 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식(曹植) 삼부자는 인재를 예우하여 왕찬(王粲)·진림(陳琳)·서간(徐幹)·유정(劉楨)·응창(應瑒)·완우(阮瑀)·문울(文蔚)·번흠(繁欽)·노흠(盧欽)·양수(揚修) 등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것이 뼈대가 굳세고 기운이 넘치는 건안풍골(建安風骨)이다. 서진(西晉)의 장화(張華)·좌사(左思)·반악(潘岳)·하후잠(夏侯湛)·육기(陸機)·육운(陸雲)과 더불어 성공수(成公綏)는 천지의 소리를 담은 〈소부(嘯賦)〉로 이름을 떨쳤다. 성공수는 박학다식하여 자연의 섭리를 문장으로 빚어낸 서진의 대표 재사다. 손초(孫楚)·지우(摯虞) 등이 기려(綺麗)한 운율을 맺었으나, 말기의 징조 속에 재능을 다 펴지 못한 한탄 속에 스러져 갔다.
5. 강좌(江左)의 현학(玄學)과 유송의 광채
영가(永嘉)의 난으로 중원을 잃고 도읍을 남쪽으로 옮긴 동진(東晉) 시대에, 사람들은 양자강 하류 남쪽 지역을 강좌(江左)라 불렀다. 이곳에서 문사들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현학(玄學)에 침잠했다. 원제(元帝)와 명제(明帝)가 문학을 중흥시키자 유외(劉隗)와 조협(刁協)은 예법을, 곽박(郭璞)은 문장으로 발탁되었다. 문필가 유량(庾亮)과 온교(溫嶠)가 풍류를 이끌었으나, 시는 노자의 뜻으로 귀결되고 부는 장자의 뜻을 주석하는 현언시의 유행으로 문장이 세속의 정에 물들었다.
마침내 유송(劉宋) 왕조에 이르러 무제(武帝), 문제(文帝), 효무제(孝武帝)가 문학을 애호하며 눈부신 전성기를 맞이했다. 안연지(顔延之)는 치밀한 문장을, 사령운(謝靈運)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봉황의 광채(鳳采)"처럼 눈부시게 그려냈다. 사령운은 산수 시의 개척자로 자부심이 대단했던 천재였다. 또한 심약(沈約)은 사성과 팔병을 정리하고 《송서(宋書)》를 저술한 대가였으며, 범운(范雲)과 하손(何遜)은 흐르는 물과 핀 꽃이라 칭송받았다. 왕승달(王僧達)·원숙(袁淑)·장융(張融)·하장유(何長瑜)·범태(范泰)·장부(張敷)·심회문(沈懷文) 등의 인재들이 노을처럼 화려한 숲을 이루었다. 이 장엄한 성세를 목격하며, 문학의 흥망은 시대의 질서(時序)에 매여 있음을 확언하게 된다. 자신의 짧은 붓대로 이 찬란한 시대의 아름다움(懿采)을 찬양하며 대미를 장식하는 그 숭고한 통찰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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