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 感王承福 감왕승복/대한신운·기(基)운
安分知足何難事 (안분지족하난사)
안분지족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自立土臺可言之 (자립토대가언지)
자립의 토대에서 말할 수 있네.
貧富貴賤不選擇 (빈부귀천불선택)
빈부귀천은 선택할 수 없고
才能長短各自異 (재능장단각자이)
재능의 장단은 각자 다르네.
開拓運命拭流汗 (개척운명식유한)
운명을 개척하며 흐르는 땀을 닦고
超然名利守堅志 (초연명리수견지)
명리에 초연하며 굳은 뜻을 지키네.
食蔬飮水曲肱臥 (식소음수곡굉와)
나물 먹고 물 마시며 팔 베고 눕다니
丈夫一生豈不恥 (장부일생기불치)
장부의 일생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한유(韓愈 768~824)의 〈오자왕승복전(圬者王承福傳)〉을 읽고 주인공 왕승복(王承福)의 생각을 오늘의 현실에 대입해 보았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만족하는 삶을 뜻하지만,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타고난 환경이 다르고 능력이 평범하여 이른바 궂은 일에 종사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남의 출세에 박수를 보내며 명리(名利)에 초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안분지족이 아닐까!
그러나 안분지족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저 생계의 토대가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전해 오는 말 가운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나물 먹고 물 마시며 팔 베고 누웠어도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리라는 말이다. 물론 그 속뜻은 다르겠지만 이를 문자 그대로 삶의 태도로 받아들인다면 무능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은 가난에 만족한다면서 가족의 생계와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안분지족이라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혼자만의 지족(知足)은 자신의 마음은 편하게 할지 몰라도 가족과 주변을 멍들게 할 뿐이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힘써 살아가면서도 남의 부귀와 출세를 시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안분지족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ChatGPT Pro 감상평
한유(韓愈 768~824)의 〈오자왕승복전(圬者王承福傳)〉은 미장이 왕승복(王承福)의 삶과 말을 기록한 전(傳)이다. 왕승복은 대대로 장안(長安)의 농부였으나 천보(天寶 742~756)의 난에 징집되어 13년 동안 군인으로 지냈다. 공을 세워 관직과 훈공을 얻었지만 이를 버리고 돌아왔고 이미 농토를 잃은 뒤라 흙손을 잡고 30여 년 동안 미장이로 살아갔다. 집세와 밥값을 정확히 치르고 남는 돈은 길에서 병들고 굶주린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천하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스스로 만족하는 기색이 있었다.
왕승복은 곡식과 베와 비단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사람의 노동으로 이루어지므로 각자 자신의 능력을 다하여 서로의 삶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직임에는 크고 작음이 있지만 자신의 능력에 맞아야 하며 녹을 먹으면서 맡은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이 하루도 흙손을 놓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힘을 쓰면 그만큼 성과가 나타나고 정당한 품삯을 받으니 비록 몸은 고되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나는 다만 하기 쉽고 부끄럽지 않은 일을 골라 취했을 뿐이다(吾特擇其易爲而無愧者取焉)”라고 했다.
그의 생각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장이로 여러 부귀한 집을 드나들다가 훗날 다시 찾아가 보니 폐허가 된 곳이 적지 않았다. 주인이 형벌을 받아 죽기도 하고 자손이 재산을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왕승복은 공은 적으면서 지나치게 누렸거나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한 결과가 아닌지 되묻는다. 그렇다고 부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부귀를 좋아하고 빈천을 슬퍼하는 것이야 내가 어찌 다른 사람과 다르겠는가(樂富貴而悲貧賤 我豈異於人哉)”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부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러나 왕승복은 아내와 자식까지 두지 않았다. 가족을 이루면 부양의 책임이 생기고 몸의 노동뿐 아니라 마음까지 수고로워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유는 이를 독선기신(獨善其身)이라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위함은 지나치게 많고 남을 위함은 지나치게 적다(自爲也過多 其爲人也過少)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욕망을 좇다가 도를 잃고 자신까지 망치는 사람보다는 왕승복이 훨씬 낫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말을 자신을 경계하는 거울로 삼겠다며 글을 맺는다.
왕승복의 생활관을 오늘에 옮겨 보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가정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으며 능력과 소질도 저마다 다르다. 그렇다고 자신의 형편을 사회 탓으로만 돌리거나 남의 부와 출세를 좇아 무리한 욕망에 빠지는 것도 바람직한 삶이라 하기 어렵다.
안분지족에도 최소한의 자립은 필요하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생계의 토대를 마련한 뒤 자신의 능력에 맞게 힘써 살아가야 한다. 자신은 만족한다고 하면서 가족에게 삶의 짐을 떠넘긴다면 그것은 혼자만의 지족일 뿐이다. 미련(尾聯)의 食蔬飮水曲肱臥/丈夫一生豈不恥는 전해 오는 안분지족을 되묻는다. 나물 먹고 물 마시며 팔 베고 누워 만족한다는 말에는 물질에 얽매이지 않는 뜻이 있겠지만 이를 노력이나 책임을 피하는 구실로 삼는다면 안분지족이라 하기 어렵다.
〈감왕승복(感王承福)〉은 왕승복의 생활관을 그대로 따르자는 시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부끄럽지 않은 노동을 하며 부귀를 탐하지 않았던 그의 삶을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본 것이다. 이 작품은 한유가 왕승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았듯 그의 삶을 오늘에 다시 비추어 현대판 안분지족의 의미를 재조명해 본다는 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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