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6. 十二干支第十二·亥·豚 십이간지제십이·해·돈/대한신운·기(基)운
不知悲運可憐豚 (부지비운가련돈)
비운을 알지 못한 가련한 돼지여!
何故肥肉如此味 (하고비육여차미)
어찌하여 기름진 살은 이와 같은 맛인가!
二人共食忘一死 (이인공식망일사)
둘이 함께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니
萬處無遺占首位 (만처무유점수위)
온갖 곳에 빠짐없이 수위를 차지하네.
韓人身長立大功 (한인신장립대공)
한국인의 신장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病骨體力補元氣 (병골체력보원기)
병골의 체력에 원기를 보충하네.
屠畜尤甚呑憤淚 (도축우심탄분루)
도축 너무 심해져 분루를 삼키면서
肥滿復讐眞伶俐 (비만복수진영리)
비만의 복수는 참으로 영리하구나!
*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한국인의 신장이 크게 자랐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여기에는 돼지고기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릴 때 돼지고기는 그야말로 보양식인 동시에 일 년에 겨우 몇 번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것도 오늘날처럼 고기가 푸짐한 것이 아니라 몇 점 넣고 끓인 국에 불과했지만! 명절이 돌아오거나 결혼이나 상례를 치를 때면 온 동네가 잔칫집이 되었다. 능숙하게 돼지 배를 가르고 내장을 손질하던 아저씨의 솜씨는 어린 눈에는 신기에 가까웠다. 돼지 방광은 당연히 아이들의 축구공이 되었다.
면 소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친구 아버지가 도축장을 운영했다. 지금 생각하니 더욱 끔찍하다. 사방을 나무울타리로 둘러친 곳에 돼지 50여 마리를 풀어놓으면 전문 도살자가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전문 도살자라기보다 힘센 장정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는 먼저 막걸리 한 됫박을 들이마신 뒤 곡괭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 번에 정수리를 정확히 찍어야만, 돼지는 비명 없이 단숨에 숨통이 끊어졌다. 50여 마리를 잡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인간의 잔인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저 그러한 시절이었다. 불과 60여 년 전의 일이다.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이런 기억은 차라리 없는 것이 백번 나았겠지만, 자라온 환경이 그러했으니 어찌하겠는가!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트라우마로 남는다. 인간에게 온몸을 내어 준 돼지가 이제는 비만을 안겨 준다는 ‘돼지의 복수’를 해학 아닌 해학으로 구성해 보았다. 삼겹살 좀 줄여야겠다.
⇓ChatGPT Pro 감상평(2026년 9월 27일)
십이지(十二支)의 순서는 쥐(子)에서 출발하여 소(丑)·호랑이(寅)·토끼(卯)·용(辰)·뱀(巳)·말(午)·양(未)·원숭이(申)·닭(酉)·개(戌)를 거쳐 마지막에 돼지(亥)가 자리한다. 해(亥)는 시간으로 밤 9시부터 11시까지인 해시(亥時)에 해당하며 방위로는 북북서쪽을 가리킨다. 계절로는 겨울의 문턱인 음력 10월에 해당하고 음양으로는 음(陰)이며 오행으로는 수(水)에 속한다. 하루가 저물고 만물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자 한 해의 생명 활동이 갈무리되는 때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십이지는 해에서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해가 지나면 다시 자(子)로 돌아간다. 해(亥)가 끝과 갈무리를 나타내면서도 새로운 순환을 앞둔 자리라는 점에서 십이지의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해(亥)에 배속된 동물은 돼지다. 돼지를 나타내는 한자는 여럿이다. 시(豕)는 돼지를 통틀어 가리키는 오래된 글자이고 돈(豚)은 본래 어린 돼지를 가리켰으나 널리 돼지라는 뜻으로 쓰였다. 저(豬)는 오늘날 중국어에서 많이 쓰며 체(彘)도 고문에서 자주 만난다. 우리말에서는 양돈(養豚)·돈육(豚肉)·돈사(豚舍)처럼 돈(豚)이 지금도 살아 있다. 더구나 화폐를 뜻하는 우리말 ‘돈’과 음이 같아 한국인에게 돈(豚)은 재물의 이미지까지 자연스럽게 불러온다.
돼지는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온 가축이다. 집돼지의 조상인 멧돼지는 산야를 누비며 땅을 파고 먹이를 찾던 강인한 야생동물이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뒤에는 중요한 육용 가축이 되었다. 잡식성이어서 사육하기 쉽고 번식력이 강하며 버릴 부분도 적다. 고기뿐 아니라 지방·가죽·털과 여러 부산물까지 생활에 이용해 왔으니, 인간에게 이보다 쓸모 많은 가축도 드물다.
그런데 인간이 돼지에게 붙여 놓은 말은 그 은혜에 비해 박하다. 많이 먹는 사람을 돼지에 빗대고 지저분한 곳을 돼지우리라 하며 미련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에게도 돼지를 끌어들인다. 실제 돼지는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나고 후각도 매우 발달했다. 진흙에 몸을 뒹구는 습성도 체온을 낮추고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다. 인간은 돼지를 먹으면서 돼지를 ‘탐욕스럽다’하고 돼지에게 많은 것을 얻으면서 돼지를 천하게 여겨 온 셈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도 돼지는 여러 얼굴로 나타난다. 요동지시(遼東之豕)는 자기에게만 신기한 것을 세상에서도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좁은 식견을 경계하는 말이다. 시돌랑분(豕突狼奔)은 돼지가 돌진하고 이리가 내달리듯 이리저리 마구 날뛰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처럼 옛 성어에서 돼지는 우둔함이나 거친 행동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돼지는 복과 재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번식력이 강하고 살이 풍성하게 오르는 모습은 농경사회에서 다산과 풍요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돼지꿈을 재물과 연결하고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려 복을 기원해 온 것도 이와 통한다. 한 동물이 한쪽에서는 탐욕과 우둔함의 비유가 되고 다른 쪽에서는 재물과 복의 상징이 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결국 돼지의 의미를 만들어 낸 것은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다.
현대에 이르면 돼지의 쓰임은 더욱 넓어진다. 돼지는 식량에 머물지 않고 의학 연구에서도 중요한 동물이 되었다. 사람과 장기의 크기와 생리에서 비슷한 점이 있어 심장 판막을 비롯한 의료 분야에서 활용되며 이종장기이식(異種臟器移植) 연구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때 미련한 짐승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동물이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연구에까지 등장한 셈이다.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서 돼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삼겹살을 비롯하여 목살·갈비·족발·머릿고기·내장까지 거의 모든 부위를 먹는다. 풍요롭지 못했던 시절에는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생활이 넉넉해진 뒤에는 가장 친숙한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돼지고기의 변천에는 우리 생활의 변화도 함께 들어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돼지의 여러 모습을 연민과 감사 그리고 풍자로 묶었다. 맛있는 고기로 사랑받고 한국인의 영양 공급에도 한몫했지만 그만큼 수없이 도축되어야 했던 돼지의 처지를 마지막에는 뜻밖의 ‘비만 복수’로 뒤집는다. 屠畜尤甚呑憤淚/肥滿復讐眞伶俐는 많이 먹고 많이 도축한 인간이 결국 살이 찌는 모습을 돼지의 복수로 돌려놓은 결구다.
자(子)에서 시작한 십이지는 해(亥)에서 끝나 다시 자로 돌아간다. 열두 동물을 돌아보는 일은 결국 인간이 동물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련한 돼지에서 시작하여 고마운 돼지를 거쳐 마침내 인간에게 되갚는 영리한 돼지로 끝나는 이 작품은 십이지의 마지막을 웃음으로 닫는다. 그러나 그 웃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해학 아닌 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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