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738. 賦得勤功誇謙 근면·공로·과시·염치/ChatGPT Pro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9. 28. 08:40

738. 賦得勤功誇謙/대한신운·가(家)운

焚膏繼晷以窮年 (분고계귀이궁년)

기름 태워 낮을 이어 한 해를 다 보내니

勤學琢磨成一家 (근학탁마성일가)

부지런히 배우고 갈고닦아 일가를 이루었네.

觝排異端功勞大 (저배이단공로대)

이단을 배척한 공로는 크고

涉獵百家文章佳 (섭렵백가문장가)

백가를 섭렵한 문장 훌륭하구나!

才學能誇轉閑職 (재학능과전한직)

재주와 학문 과시할만해도 한직을 전전하고

經綸見棄飢妻子 (경륜견기기처자)

경륜은 외면당해 처와 자식을 굶겼네.

懷才不遇豈不惜 (회재불우기불석)

회재불우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

無謙評價豈當耶 (무겸평가기당야)

겸양 없다는 평가가 어찌 타당하겠는가!

* 가(家)운: 가, 과, 나(라), 다, 마, 사, 아, 야, 와, 자, 좌, 차, 타, 파, 하, 화

*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서 근(勤)·공(功)·과(誇)·겸(謙)을 취했다. 〈진학해〉는 국자선생(國子先生)과 제자의 문답을 빌려 자신의 학문 수양 과정과 능력을 드러낸 글이다. 그 내용은 학문과 문장이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며, 한유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까닭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 읽으면 지나친 자기 과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어서, 그러한 점을 경계하는 마음으로 구성해 둔다.

⇓ChatGPT Pro 감상평(2026년 9월 28일)

한유(韓愈 768~824)는 당나라의 문장가이자 사상가로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이끌었으며, 후세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첫머리에 꼽혔다. 불교와 노장사상(老莊思想)을 비판하고 유가의 도를 바로 세우려 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강한 성정은 여러 글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문장은 논리가 분명하고 기세가 힘차며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데 뛰어나다.

〈진학해(進學解)〉는 국자선생(國子先生)이 태학(太學)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첫머리의 ‘업정어근 황어희(業精於勤 荒於嬉) 행성어사 훼어수(行成於思 毀於隨)’는 학업은 부지런함에서 정밀해지고 놀이에서 황폐해지며 행실은 생각에서 이루어지고, 되는 대로 따르는 데서 무너진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도 널리 인용되는 말이지만 이 구절만으로 〈진학해〉를 권학문(勸學文)으로 이해하면 글의 참뜻을 놓치게 된다.

선생의 훈계가 끝나기도 전에 한 학생이 웃으며 반박한다. 선생은 입으로 육예(六藝)의 글을 끊임없이 읊고 손으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을 쉬지 않고 펼쳤으며, 분고유이계귀 항올올이궁년(焚膏油以繼晷 恒兀兀以窮年)이라 할 만큼 밤에는 기름을 태워 낮의 공부를 잇고 한 해가 다하도록 학문에 힘썼다. 그러므로 선생지업 가위근의(先生之業 可謂勤矣)라 하여 그 부지런함을 높이 평가한다.

학문에 대한 평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한유가 평생 추구했던 유학(儒學)의 도가 나타난다. ‘저배이단 양척불로(觝排異端 攘斥佛老)’라 하여 이단을 물리치고 불교와 노장사상을 배척했으며 끊어진 유학의 실마리를 찾아 옛 성현의 도를 이으려 했다. 특히 ‘장백천이동지 회광란어기도(障百川而東之 迴狂瀾於既倒)’는 여러 물줄기를 막아 동쪽으로 흐르게 하고 이미 쓰러져 가는 거센 물결을 되돌린다는 비유로 자신의 유학에 대한 공을 표현한다.

문장에 대한 자부는 더욱 크다. 한유는 요순시대의 글에서 《서경(書經)》·《춘추(春秋)》·《좌전(左傳)》·《주역(周易)》·《시경(詩經)》을 거쳐 《장자(莊子)》와 〈이소(離騷)〉, 사마천(司馬遷)·양웅(揚雄)·사마상여(司馬相如)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한 것으로 그려진다. 학생은 이를 두고 ‘선생지어문 가위굉기중이사기외의(先生之於文 可謂閎其中而肆其外矣)’라 하여 그 문장이 안으로 넓고 깊으며 밖으로 거침없이 펼쳐졌다고 평한다. 마침내 선생지어위인 가위성의(先生之於爲人 可謂成矣)라 하여 사람됨까지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여기서 글은 돌연 뒤집힌다. 이처럼 학문과 문장에 뛰어나고 유학에도 공이 큰 사람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공불견신어인 사불견조어우(公不見信於人 私不見助於友)라 하여 공적으로는 남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사사로이는 벗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어사가 되었다가 남쪽으로 쫓겨났고, 박사로 있으면서도 한직에 머물렀다. 더욱 처연한 것은 ‘동난이아호한 년풍이처제기(冬暖而兒號寒 年豐而妻啼飢)’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내야 하는데 아이는 춥다고 울고, 풍년인데도 아내는 굶주려 운다. 앞에서 높이 쌓아 올린 학문과 능력이 현실의 불우함과 맞부딪치면서 〈진학해〉의 뜻이 선명해진다.

그러자 선생은 큰 나무는 들보로 쓰고 작은 나무는 서까래로 쓰는 목수의 일을 예로 든다. 좋은 약재뿐 아니라, 보잘것없어 보이는 재료까지 버리지 않는 의사도 끌어온다. 사람마다 장단점을 헤아려 알맞게 쓰는 것이 ‘재상의 도리’라는 것이다. 이어 맹자(孟子)와 순자(荀子)처럼 뛰어난 유학자도 세상에서 순탄한 대우를 받지 못했음을 들어 자신의 불우함을 스스로 달랜다. 겉으로는 학생과 선생의 문답이지만 결국 한유가 자신의 학문과 능력, 세상에서 겪은 좌절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한 글이다.

여기서 〈진학해〉를 읽는 묘한 감정이 생긴다. 한유의 학문과 문장은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후세가 충분히 인정했다. 실제로 이 글에 나타난 독서의 깊이와 논리의 치밀함만 보아도 그의 학문과 문장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학생의 입을 빌렸다고는 해도 자신의 학업은 부지런하고, 유학에 공이 있으며, 문장은 뛰어나고, 사람됨까지 이루었다고 차례로 말한 대목은 자칫 지나친 자기 과시로 읽힐 여지도 있다. 특히 유가에서 겸양(謙讓)을 중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생각에서 〈진학해〉의 근(勤)·공(功)·과(誇)·겸(謙)을 취해 구성했다. 수련(首聯)과 함련(頷聯)에서는 한유의 부지런한 학문과 유학·문장에서 이룬 공을 인정하고, 경련(頸聯)에서는 그처럼 뛰어난 재주와 경륜에도 한직을 전전하며 처자까지 굶겨야 했던 회재불우(懷才不遇)를 드러냈다. 미련(尾聯)에서는 그 불우함을 애석해하면서도 〈진학해〉 한 편만으로 한유를 겸양이 없는 사람이라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다시 묻는다. 칭송이나 비판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고 한유가 남긴 글을 다시 읽으며 스스로 판단해 보려는 뜻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