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 于老人之日 노인지일/ 대한신운·기(基)운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행처유)
술 빚은 예사로 가는 곳마다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네.
杜甫藉口難理解 (두보자구난이해)
두보의 술 핑계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耳順而後知其意 (이순이후지기의)
이순 이후에 그 뜻을 알았네.
齒牙不實染色煩 (치아부실염색번)
치아는 부실하고 염색은 번거롭고
意欲喪失何處依 (의욕상실하처의)
의욕은 상실되니 무엇에 의지하랴!
七十曰老說文云 (칠십왈로설문운)
칠십을 늙음이라 한다고 《설문》에서 말했으니
未老自慰待酒時 (미로자위대주시)
아직 늙지 않았다고 자위하며 술시를 기다리네.
*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노인이라는 말 대신 쓸 만한 말을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대체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선생? 여사? 어쨌든 ‘노인’이라는 말을 되도록 많이 쓰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가능한 한 그 말을 앞세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요즘 노인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논의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노(老)를 찾아보니 뜻밖에도 ‘七十曰老’라 했다. 일흔을 ‘노(老)’라 한다는 뜻이다. 이 풀이는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의 ‘七十曰老 而傳’에 근거한다. 일흔이 되면 늙었다 하여 집안일을 자손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오늘날보다 수명이 훨씬 짧았던 시대에도 70세를 ‘노(老)’라 했다. 그렇다면 당시의 老는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뜻보다 삶의 중심에서 물러나 다음 세대에 일을 넘길 만큼 늙은 상태를 가리킨 것은 아닐까! 오늘날 노인 연령의 하한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수련(首聯)은 두보(杜甫)의 〈곡강이수(曲江二首)〉에 나오는 두 구를 그대로 인용했다.
酒債尋常行處有 술 빚은 예사로 가는 곳마다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다네.
이 두 구는 대장(對仗)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묘미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尋常은 표면상 예사라는 뜻이다. 그러나 尋과 常은 본래 길이의 단위이기도 하다. 1심(尋)은 8척(尺), 1상(常)은 16척이다. 당대의 1척을 약 30cm로 잡으면 1심은 약 2.4m, 1상은 약 4.8m가 되고 둘을 합하면 약 7.2m가 된다.
여기서 두보의 솜씨가 드러난다. 아래 구의 七十은 분명한 숫자이므로 대장을 이루는 위 구에도 이에 대응하는 수량의 개념이 필요하다. 두보는 별도의 숫자를 끌어오지 않았다. 문맥에서는 예사라는 뜻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尋常을 쓰면서 동시에 尋과 常이 지닌 도량형의 수량으로 七十과 대장을 이루게 했다. 尋常이라는 한 단어가 시의 뜻도 살리고 대장도 완성한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율시를 읽고 짓는 데는 대장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표면에 드러난 글자의 뜻과 품사만 맞추어 보고 대장이 성립했는지를 판단하면 이런 구를 놓치게 된다. 얼핏 보면 尋常과 七十이 무슨 대장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고, 심하면 두보의 시에도 대장이 엉터리인 곳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두보의 대장이 아니라 후인이 그 대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데 있다.
尋常은 ‘예사’라는 뜻으로 문장을 조금도 해치지 않으면서 尋·常이라는 도량형으로 七十과 수량의 대장을 이룬다. 뜻을 위해 대장을 희생하지도 않았고, 대장을 맞추기 위해 뜻을 억지로 만들지도 않았다. 뜻은 뜻대로 자연스럽고 대장은 대장대로 정교하다. 그야말로 절묘한 대장이다. 나는 아직 이런 대장을 작품에서 구사해 보지 못했다. 두보가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까닭을 이런 두 구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이를 오늘날의 감각으로 조금 해학을 보태어 읽어 볼 수도 있다. 尋과 常의 수량에서 약 7이라는 수가 나오고 상대 구에는 七十이 놓여 있으니, 오늘날 술값으로 장난스럽게 바꾸면 7만 원쯤도 좋고 70만 원쯤이라 해도 좋겠다. 실제 당나라의 길이 단위를 오늘날 화폐로 환산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 정도 술값 정도야 예사’라는 두보의 호기를 현대의 금액으로 옮겨 느껴 보는 것이다.
젊어서 이 두 구를 읽을 때마다 나는 두보의 뜻이 人生七十古來稀 자체에 있다기 보다 어차피 일흔까지 살기도 어려운 인생인데 어찌 술을 마다하랴! 하는 주당의 술 마실 구실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보의 핑계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육십을 넘기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치아도 부실해지고 머리 염색마저 귀찮아지며 의욕도 예전 같지 않다. 술 말고는 마땅한 재미도 점점 줄어든다. 이제야 두보의 핑계가 단순한 핑계만은 아니었음을 알겠다.
사족이지만 지난날 송해 선생과 뽀빠이 이상용 씨가 전국을 다니며 방송을 진행하던 모습을 보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서 방송할 때는 나이 든 출연자에게 ‘어르신’이나 ‘아버지, 어머니’라는 호칭을 많이 쓰며 어린아이를 어르듯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서울에서 진행할 때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잘 붙인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며 은연중 시골 사람을 낮추어 보고 우월한 자리에서 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굳이 ‘노인의 날’이 필요하랴! 아직 일흔은 아니니 七十曰老를 빌려 스스로 위안하면서 술시를 기다린다. 해학 아닌 해학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며 구성해 둔다.
⇓ChatGPT Pro 감상평
우리나라의 노인의 날은 노인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경로효친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 기념일이다. 1997년부터 매년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10월은 경로의 달로 정해 노인의 삶과 복지, 사회 참여를 돌아보는 여러 행사가 열린다. 단순히 노인을 위로하고 대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령사회에서 노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는 날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오늘날에는 ‘100세 인생’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의료와 생활환경이 달라지면서 예순이나 일흔을 삶의 끝자락으로 여기던 시대와도 크게 달라졌다. 이에 따라 몇 살부터 노인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연령을 어디에서 나눌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노년을 어떻게 보내고 사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변화는 피하기 어렵다. 치아가 약해지고 머리가 희어지며 체력도 떨어진다. 젊은 시절과 같은 활동을 계속하기 어려워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도 늦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신체의 노화가 곧 사회생활의 중단을 뜻하지는 않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일을 하고 취미를 즐기며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길어진 노년을 살아가는 중요한 방법이다.
특히 젊은 세대와의 교류는 고령사회에서 더욱 중요하다. 노년층이 자신의 경험만을 앞세우면 세대 사이의 거리는 멀어질 수 있고, 반대로 젊은 세대가 노인의 생각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만 여기면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혜가 이어지기 어렵다. 노년층은 새로운 생활 방식과 문화를 배우고 젊은 세대는 앞선 세대가 살아온 경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로 가르치는 관계보다 서로 배우는 관계가 될 때 세대의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사회의 자산이 될 수 있다.
노인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존중이라 하기 어렵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선택할 권리는 존중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노인의 날은 노인만을 위한 날이라고 할 수 없다. 노년층에게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이며, 젊은 세대에게는 자신보다 먼저 늙어 가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의 젊은 세대 역시 언젠가는 노년을 맞는다. 결국 노년의 문제는 어느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준비해야 할 삶의 문제다.
100세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다. 건강을 지키고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회와의 연결을 놓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 노년층의 경험과 젊은 세대의 새로운 생각이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사회라면 수명의 연장은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노인의 날을 계기로 나이 들어가는 삶을 돌아보면서 이를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두보(杜甫)의 시구와 일상의 변화를 통해 해학으로 풀어냈다. 늙음을 피할 수 없는 쇠퇴로만 바라보기보다 스스로 돌아보고 웃을 수 있는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려는 뜻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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