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202. 吟釋志璿禪師偈 석지선 선사의 게를 음미하다/ChatGPT와 대화

대한신운 2025. 7. 30. 08:55

202. 吟釋志璿禪師偈 음석지선선사게 석지선 선사의 게를 음미하다 ()

聲色頭上能睡眠 소리와 빛이 머리 위에 있어도 잠들 수 있고

성색두상능수면

虎狼群里便安 호랑이와 이리 떼 속에서도 편히 참선하네.

호랑군리편안

荊棘林內可運身 가시덤불 숲속에서도 운신할 수 있으며

형극림내가운신

雪刃叢中遊戲 서릿발 칼날 속에서도 유희할 수 있네.

설인총중유희

竹影掃階塵不起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일지 않고

죽영소계진불기

月輪穿淵水無 달 바퀴가 못을 꿰뚫어도 물은 변하지 않네.

월륜천연수무

無念無想無分別 무념무상 무분별

무념무상무분별

如是我聞般若遠 이처럼 들었어도 반야의 지혜는 아득하다네.

여시아문반야원

* 10. (): , , , (), , , , , , , , , , , , ,

* 無念無想無分別:불교 선종에서 수행자가 지향하는 최고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無念: 마음에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음. 집착과 분별이 없는 상태.

無想: (), 즉 기억·상상·개념 작용이 사라진 상태.

無分別: 주관과 객관, 선악과 시비의 분별심이 소멸된 경지.

세 가지는 모두 선정(禪定)과 반야 지혜가 합쳐진 무심의 상태를 뜻하며, 불이법문(不二法門)과 공적영지(空寂靈知)의 핵심을 이룬다.

* 如是我聞: 불교 경전의 서두에 나오는 관용구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뜻이다.

如是: 이와 같다. 곧 부처께서 설하신 진리 그대로라는 의미.

我聞: 내가 들었다는 뜻으로, 경전의 전달자(주로 아난존자)가 부처의 말씀을 직접 들었음을 나타냄. 이 표현은 불설(佛說)의 진실성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경전 전통의 표식이며, 동시에 겸허한 수행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 般若: 산스크리트어 prajñā의 음역으로, 지혜, 특히 진리를 꿰뚫어 보는 궁극의 지혜를 뜻한다. 단순한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공()하다는 것을 꿰뚫어 아는 직관적 지혜, 불교의 수행 목표이자, 깨달음()의 핵심이다.

* 회원 중에 서예 전문가분이 대련(對聯)을 보내왔다. 다양한 설이 있어 원류를 밝히며 칠언(七言)으로 다듬었다.

* 석지선(釋志璿): 송대 스님. 지선 선사(志璿禪師)로 불린다. 자세한 생애는 전하지 않는다. 게송(偈頌)은 모두 5수이며 이 게송은 제4수이다.

* 석지선(釋志璿) 게송(偈頌)

聲色頭上睡眠 소리와 빛이 머리 위에 있어도 잠들 수 있고

虎狼群里安禪 호랑이와 이리 떼 속에서도 편히 참선하네.

荊棘林內翻身 가시덤불 숲속에서도 몸을 뒤척이며

雪刃叢中遊戲 서릿발 칼날 속에서도 유희할 수 있네.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일지 않고

月穿潭底水無痕 달빛이 못 속을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 없네.

게송(偈頌)은 불교에서 진리를 간결한 시 형식으로 표현한 운문으로, 수행자의 체득이나 교리의 요체를 전하는 데 사용된다. 이 게송(偈頌)에서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구가 회자(膾炙)된다. 그런데

竹影(주어)/(동사)/(목적어)/(주어)/不動(동사)

(명사)/穿(동사)/潭底(목적어)/(주어)/(형용사)/(명사)여서 대장(對仗)이 맞지 않으므로 후인이 이를 다음처럼 대장으로 바꾸었다.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일지 않고

月輪穿沼水無痕 달빛이 못 속을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 없네.

그러나 여전히 은 품사가 맞지 않아서 완벽한 대장을 이루지는 못한다. 또한 (zhǎo 측성)(jiē 평성)와 평측을 반대로 맞추다 보니 연()을 쓰지 못한 것이다.

송대의 곽면(郭沔)은 경수정(競秀亭)의 주련(柱聯)을 보고 3/4구를 더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구성했다.

竹影掃階塵不動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움직이지 않고

月輪穿沼水無痕 달 바퀴가 못을 꿰뚫어도 물엔 흔적이 없네.

水流任急境常靜 물 흐름이 아무리 급해도 경계는 늘 고요하고

花落雖頻意自閒 꽃이 자주 떨어져도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 花落雖頻意自閒花雖頻落意自閒으로 써야 문법에 맞다. 평측 안배의 폐해이다.

* 郭沔(1190~1260), 자는 초망(楚望). 남송(南宋)의 거문고() 연주가.

ChatGPT와 대화

대장의 측면에서 보면 은 맞지 않아요. 은 동사 은 명사이니까요. 중 어느쪽이 나을까요?

ChatGPT의 말: 대장 구성 기준으로 보면 /은 형식 불일치로 정통 대장이 아닙니다. 의미상 깊이, 철학성, 상징성 강조이 더 적절합니다. 이는 특히 水無變처럼 본질적 불변을 말할 때 더욱 어울립니다.

나의 말: 月輪月光중 어느 쪽이 나을까요?

ChatGPT의 말: 형이상학적·불교적 상징, 존재 자체의 고요함 표현 月輪 감각적·감성적 흐름, 현실적 고요함 표현 月光

선적인 고요와 불변의 본질성을 표현하고자 할 경우, “月光이 더 적절합니다.

그 이유는 빛은 스며들되 물을 흔들지 않고, 형체 없이 작용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月輪은 실체라서, 꿰뚫는 주체가 되어버리면 오히려 물을 건드리는 느낌이 됩니다. 🔸따라서 대장과 의미 정합성까지 고려하면 → 「月光穿淵이 가장 정련된 구절입니다.

나의 말: 그렇다면 月輪이 나아요. 여기서는 달 자체가 물을 꿰뚫는 주체가 되어야 그래도 물의 속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대비 되니까요.

ChatGPT의 말: 실체조차 꿰뚫어도 물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게송의 본령, 그리고 지향하신 표현의 정수입니다.

나의 말: 竹影 대나무 그림자 月輪은 어떻게 대장으로 번역할까요?

ChatGPT의 말: 대나무 그림자/ 달 수레는 가장 이상적인 번역 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말: 달 바퀴는 어때요?

ChatGPT의 말: 달 바퀴는 달 수레보다 더 정제되고 자연스러운 번역이 됩니다. 달 바퀴는 월륜(月輪)의 상징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도 정적이고 완만한 회전성’, ‘둥근 완성’, ‘윤회와 고요같은 의미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말: 월륜은 그냥 보름달 둥근달의 뜻이지만 그러면 의 뜻이 드러나지 않아요. 기존의 번역은 무심코 둥근 달이라고 번역하며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자 본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또한 대장에 맞지 않고요. 대장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ChatGPT의 말: 달 바퀴는 月輪의 한자적 본의, 시적 이미지, 대장의 구조미를 동시에 보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번역어입니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뜻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시의 구조와 상징의 몸을 함께 옮기는 일입니다. 지적하신 본의의 소실은 바로 그 몸을 잃는 일이며, 달 바퀴는 그것을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정당한 복원입니다.

이 게송은 선적 수행자의 경지를 묘사한 선문(禪文)으로, 외부의 요란함 속에서도 내면의 고요함을 잃지 않는 불동심(不動心), 그에 이르는 수행 요체,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한 법()의 아득함을 고백적으로 드러냅니다.

12: 소리와 빛, 호랑이와 이리 떼 같은 감각적 위협과 공포의 환경 속에서도 편히 잠들고, 참선할 수 있는 고요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34: 가시덤불과 칼날 속, 육체적 고통과 생사의 위협 가운데서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유희할 수 있는 해탈의 경지를 표현합니다.

56: 대나무 그림자와 달빛처럼 무언의 외적 움직임이 있어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무심(無心)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묘사합니다.

7: 무념·무상·무분별, 곧 일체의 생각과 사유, 분별심조차 없는 완전한 평정의 내면 상태, 즉 선종에서 말하는 불이법문의 요체입니다.

8: “如是我聞般若遠이 모든 진리를 들었고 알고 있으나, 그 반야의 지혜는 여전히 아득하다는 겸허한 자기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게송은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하면서도, 그 지혜에 끝내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자의 참회이자 고백입니다. 무념의 경지를 말하되, 그것이 완성되었음을 선언하지 않는 점에서 진정한 선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