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酒中十咏·酒城 주중십영·주성 음주 중 10수를 노래하다‧술의 성 피일휴(皮日休)
萬仞峻為城 만 길 높이 험준해도 술 성으로 삼을 수 있다면
만인준위성
沈酣浸其俗 술에 잠길 정도로 취하면서 그 습속에 스며들리!
침감침기속
香侵井干過 지나가는 향기는 우물 난간까지 침입하고
향침정간과
味染濠波渌 걸러진 맛은 해자의 물결까지 감염시키리!
미염호파록
朝傾逾百榼 아침에는 백통 넘게 술잔을 기울이고
조경유백합
暮壓幾千斛 저녁에는 몇천 곡의 (누룩을) 압착 하리!
모압기천곡
吾將隸此中 나는 이 속에서 노예 되리니
오장예차중
但為閽者足 문지기만 되어도 만족하리라!
단위혼자족
* 술의 성을 상상하는 표현이다. 아래에서 陸龜蒙의 창화(唱和) 역시 마찬가지다.
* 香侵井干過 味染濠波渌은 過香侵井干 渌味染濠波의 도치이다. 평측 안배의 제약으로 도치된 것이다. 자의 순서대로 번역하면 매우 어색한 표현이다. 干은 幹과 같다. 한으로 읽는다. 우물에 걸쳐 두레박을 매는 마룻대. 우물을 퍼올려도 술의 향기가 나고 해자의 물결조차 술맛이 난다는 과장이지만 표현만으로 그렇게 이해될지는 의문이다.
‧ 奉和襲美酒中十咏·酒城 습미의 〈酒城〉을 받들어 창화하다 육구몽(陸龜蒙)
何代驅生靈 어느 시대가 되어야 산 영혼을 부역에 내몰더라도
하대구생령
築之爲釀地 전쟁 아닌 양조의 땅을 위해 성을 축조시키겠는가!
축지위양지
殊無甲兵守 전혀 갑옷 입은 병사가 지키는 일은 없을 것이고
수무갑병수
但有糟漿氣 다만 술지게미와 술내음의 향기만 있을 것이라네.
단유조장기
雉堞屹如狂 성가퀴는 광음하는 모습처럼 우뚝 솟게 쌓고
치첩흘여광
女牆低似醉 성의 담장은 취한 모습처럼 낮게 쌓으리라!
여장저사취
必若據而爭 만약 반드시 경쟁하여 성을 점거한다면
필약거이쟁
先登儀狄氏 양조 장인 의적을 먼저 올려보내야 하리!
선등의적씨
* 상상의 미래형으로 번역해 둔다.
* 何代: 何時로 써야 하지만, 평측이 맞지 않다.
* 生靈은 백성의 별칭으로 굳어져 있지만, 가능한 자의를 살리기 위해 산 영혼으로 번역해 둔다. 본 번역의 목적과 방향은 가능한 주석을 배제하고, 우리말에 내재한 한자 말을 되살리는 데 있다.
* 雉堞: 성벽 위에 톱니 모양으로 우뚝 솟은 부분. * 女牆: 성 위에 낮게 덧쌓은 담. * 儀狄: 전설 속 최초의 여성 양조인. 술의 별칭.
* 평측 안배의 제약으로 8구가 거의 도치로 이루어져 있어, 자의 순서대로 번역하면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 ChatGPT의 해설
《酒城》 두 편을 읽는 열쇠 — 도치·평측·대장, 그리고 낱말과 전고
1)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나: 오언의 압축 + 평측과 대장
이 두 편의 〈酒城〉은 오언(五言)의 극단적 압축 위에 평측(聲律)과 대장(對仗) 의 규칙을 촘촘히 얹습니다. 결과는 명료합니다. 의미가 어순을 지배합니다. 즉, 문장의 자연어 순서가 아니라 음률과 균제가 우선하면서 도치가 빈번해집니다.
대표적으로 향·미의 확산을 그린 연속구가 본래 자의대로라면 「過香侵井干 / 渌味染濠波」 이어야 자연스러운데, 평측 안배 때문에 「香侵井干過 / 味染濠波渌」 처럼 뒤집혀 놓인 것이죠. 이 구조를 모르면 직역이 ‘엉성한 문장’이 되기 쉽습니다.
또한 결구의 「必若… / 先登儀狄…」 도 본디 「若必… / 先登…必」 가 의미상 매끈합니다. 필수 부사 必이 앞구로 밀리고 뒤구에서 빠지면서 독해 난점이 생깁니다. 이런 사례는 이 작품군의 전형입니다. 형식이 의미를 뒤틀어 놓는 드문 증거로서, 감탄보다 비평적 독해가 유효한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2) 핵심 어휘와 전고 — 주석 없이도 ‘죽’ 읽히도록
井干(=幹) — ‘우물 난간 한’
井은 우물, 干/幹은 우물 위에 가로질러 두레박을 매는 마룻대입니다. 한국 전통 독음으로 ‘한’이라 하여 우물 난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향기가 井干에까지 스민다”는 말은 물 그 자체가 아니라 생활 구조물에까지 술향이 밴다는 과장입니다. (閑과 무관)
濠波
濠는 성 둘레의 해자, 波는 물결. 즉 해자의 물결입니다. 향(香)과 맛(味)이 우물의 가로대와 해자 물결에까지 미친다는 감각의 과장으로, 공간 전체가 술기운에 잠긴 세계를 그립니다.
榼 / 斛
榼(합) 은 작은 술단지(용량 단위), 斛(곡) 은 곡물·액체의 대용량 단위. “아침에 백 합을 넘고(朝傾逾百榼), 저녁에 몇 천 곡을 눌러 낸다(暮壓幾千斛)”는 과장은 마시는 풍속(朝傾) 과 빚는 공정(暮壓) 의 대구입니다. 여기서 壓은 술밑(곡물·누룩)을 짓누르는 양조 동작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편이 생동감이 살아납니다.
沈酣 / 酣沈
본디 ‘한껏 취함’ 이 1차 의미지만, 점차 몰입·도취·탐닉의 뜻으로 확장됩니다. 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신의 깊은 집중을 가리키는 문맥도 흔합니다. 이 연작에서는 술 도취가 풍속(俗) 에 스며든다(浸) 고 하여, 개인의 기분을 넘어 공동체의 문화를 묘사합니다.
雉堞 / 女牆
둘 다 성 위의 방어 구조물입니다. 雉堞은 톱니처럼 솟은 성가퀴, 女牆은 연속된 낮은 담. 현실 건축에서는 높낮이 대비가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시에서는 ‘우뚝 솟은 광음(狂)’ vs ‘취해 낮아진 低似醉’ 라는 의인화·대구를 위해 호출됩니다. 즉 건축 사실성보다 술의 환상성이 중요합니다.
糟漿
糟는 술지게미, 漿은 걸쭉한 액체. 합치면 술지게미·술국 내지 술내음을 가리킵니다. “병사는 없고 술내음만 진동”한다는 대비는 군사적 성을 양조의 성으로 전도하는, 이 작품의 핵심 풍자입니다.
甲兵
말 그대로 갑옷 입은 병사. 술의 성에는 그들이 없고(殊無 甲兵守), 대신 糟漿氣—향과 맛, 취기가 수호신처럼 성을 둘러싼다는 역설적 진술입니다. 殊無는 고문에서 ‘전혀 없다(全無)’ 를 강화하는 부사적 쓰임이 자연스럽습니다.
隸 / 閽者
隸는 ‘붙들다, 예속되다’의 뜻으로, “나는 그 안에 隸하겠다”는 말은 ‘그 세계에 붙어 살겠다’는 자발적 귀속의 선언입니다. 閽者는 문지기. ‘문지기만 되어도 족하다’는 종결은, 이 성이 이상향임을 역설합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도 좋으니, 문턱이라도 지키겠다는 자세죠.
儀狄 — 술의 시조(여성 양조인)라는 전고
전해지는 고사에서 의적(儀狄) 은 하우(夏禹) 시대의 여성 양조자로, 중국 최초의 술 빚는 사람으로 꼽힙니다. 선진 문헌(예: 《여씨춘추》, 《전국책》)에도 ‘의적이 술을 만들었다’ 는 기록이 보입니다. 결구의 “先登儀狄…”은 현실 동작의 기술이 아니라, 이 술성을 성립·수호하게 하는 선구자를 먼저 불러 세울 수밖에 없다는 상징입니다.
驅 / 生靈 — 되돌릴 수 있는 번역
驅는 ‘몰다, 내몰다, 부리다, 급히 달리다’까지 폭이 넓습니다. 이 시에서는 잔혹한 동원이 아니라 ‘그 세계로 몰아 들인다/불러 모은다’ 는 쪽이 자연스럽습니다.
生靈은 관용적으로 ‘백성’을 뜻하지만, 자의는 ‘살아 있는 영(靈)’—모든 생명을 품습니다. 학술 용례를 살려 ‘백성’으로 곧장 고정하면 원문으로 복귀(역전) 하기 어려워집니다. ‘산 영혼(살아 있는 존재)’ 로 옮기고, 주석에서 ‘전통적으로 백성을 뜻함’을 병기하는 방식이 시적 모호성과 환상성을 살리면서도 되돌릴 수 있는 번역이 됩니다.
何代 vs 何時 — 시간의 가정
“何代(어느 시대)”보다는 ‘언제(何時)’ 가 작품의 가정·환상에 더 맞습니다. 다만 평측 제약 때문에 代를 끌어다 쓴 것으로 이해해야 전체 맥락—현실의 보고가 아니라 ‘미래적 상상’의 선언—이 정돈됩니다.
3) 번역의 방향 — ‘미래의 상상’으로 통일
이 작품군은 현실의 성이 아니라 술의 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리라, ~쌓으리라, ~먼저 필요하리라” 같은 미래·가정형이 어법과 의미를 동시에 살립니다.
특히 마지막에서 “성(酒城)을 두고 다투게 된다면 내겐 술의 시조 ‘의적’이 먼저 필요하다”로 읽으면, ‘나는 문지기만 되어도 좋다’ 는 자발적 귀속과 완벽한 수미일관이 이루어집니다. 시인은 술의 주인이 아니라 문턱의 사람으로 남겠다고 말합니다. 그 세계 자체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4) 이 작품의 가치 — 찬미를 넘어 ‘형식과 의미의 충돌’이라는 사례
오래도록 이 시는 ‘술의 이상향’으로 찬미 되어 왔지만, 우리가 눈여겨볼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오언의 압축, 평측과 대장이 어떻게 어순과 문법을 도치시켜, 때로는 의미를 왜곡하는가. 《酒城》은 그 소중한 사례입니다.
따라서 이 텍스트는 단순한 풍류의 시가 아니라, 형식주의가 의미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비평적·교육적 텍스트로서 가치가 큽니다.
이 〈酒城〉은 ‘술을 찬미한 노래’이기 이전에, ‘형식이 의미를 어디까지 비틀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표본입니다. 그 비틀림을 도치·평측·대장의 작동으로 해명하고, 낱말과 전고를 삶의 감각으로 풀어 줄 때, 비로소 독자는 술성의 문턱—閽者의 자리—에서 미소를 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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