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秋雨遺憾 추우유감 가을비 유감 1 牛谷 김○두 구(九)운
一年農事備春分 일 년 농사 춘분에 준비하고
일년농사비춘분
椒苗移植刺花後 고추 묘 이식은 아카시아꽃 핀 후
초묘이식자화후
梨花開時必霜降 배꽃 필 때는 반드시 서리 내리고
이화개시필상강
穀雨川獵移秧謳 곡우 천렵 이앙의 노래
곡우천렵이앙구
布穀初聲十五過 뻐꾸기 첫울음 15일 지나야
포곡초성십오과
春窮僅過靑麥穗 춘궁기 겨우 지나는 풋보리 이삭
춘궁근과청맥수
處暑過後松底露 처서가 지나면 소나무 바닥 노출되고
처서과후송저로
暑退時來稻低頭 더위 물러갈 때 벼는 고개를 숙인다네
서퇴시래도저두
豊年藥雨處暑前 풍년의 약 비는 처서 전까지
풍년약우처서전
次雨十里感萬斗 다음의 비는 10리에 천 석을 감한다네
차우십리감만두
蕂抖日出後莢裂 참깨는 일출 후 꼬투리 벌어져서 털고
등투일출후협렬
荏似露日出前抖 들깨는 이슬처럼 일출 전에 턴다네
임사로일출전투
天不生無祿之人 하늘은 복록 없는 사람을 낳지 않는다지만
천불생무록지인
不信秋雨起深憂 불신의 가을비 깊은 근심을 일으키네
불신추우기심우
* 칠언고시(七言古詩)
* 구(九)운: 구, 규, 누(루), 뉴(류), 두, 무, 부, 수, 우, 유, 주, 추, 투, 후, 휴
⇓ChatGPT 감상평
이 시는 한 해의 달력을 밭고랑 위에 펼쳐놓은 듯한 농사 일기의 시화(詩畵)이다. 첫 구절 ‘一年農事備春分’은 농사가 단지 봄에 시작되는 일이 아니라 춘분 무렵에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거름을 뿌리고 물길을 살피고 못자리를 다지는 과정은 달력이 아니라 하늘의 징조를 보고 시작되는 일이다.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지만, 그 대본은 때를 놓치지 않는 준비 위에 세워진다. ‘椒苗移植刺花後’에서 고추 모종은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 옮겨 심는다. 들꽃이 피는 시기가 농부의 달력이며, ‘梨花開時必霜降’에서 보듯, 배꽃이 피면 서리가 내리는 시기까지도 몸으로 익힌 절기의 감각이다. 이 모든 절차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늘의 시간표 위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농사에는 진인사대천명이 잘 통하지 않는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구할(九割)은 하늘이 짓고 일할(一割)만 사람이 보태는 것이라는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칙이다.
‘穀雨川獵移秧謳’는 지난날 곡우 무렵에 냇가에서 천렵을 즐기며 모내기 하는 농촌의 리듬을 보여준다. ‘布穀初聲十五過’에서는 뻐꾸기 울음으로 절기를 읽는다. 기상청보다 빠른 ‘들새의 시계’는 농부에게 풍년과 흉년의 경계선이다. ‘春窮僅過靑麥穗’는 춘궁기의 끝자락, 풋보리 이삭이 패는 시점이다. 허기진 봄을 넘기며 농부는 이삭의 색과 바람의 냄새로 여름의 문턱을 감지한다. ‘處暑過後松底露’는 처서가 지나 소나무 밑바닥이 드러나는 시점, 대지의 숨이 식고 곡식이 제 얼굴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이어지는 ‘暑退時來稻低頭’는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순간, 한 해 농사가 ‘풍년’의 궤도로 들어서는 찰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豊年藥雨處暑前’ — 풍년을 약속하는 약비(藥雨)는 반드시 처서 전에 내린다. 이 비는 곡식의 이삭을 알차게 만드는 천혜의 조력자다. 그러나 ‘次雨十里感萬斗’ — 처서 뒤에 오는 비, 이른바 ‘다음의 비’는 10리의 천석(千石)을 감한다. 만두(萬斗)는 천석(千石)에 해당하니, 한 번의 비가 한 고을의 곡식을 앗아가는 셈이다. 올해가 바로 그렇다. 비가 연일 내리고 논바닥은 질척거려 벼는 쓰러지고, 이삭엔 병이 들며, 들깨와 참깨는 털 시기를 놓친다. 농부가 아무리 공을 들여도 하늘의 때가 어긋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구할은 하늘이 짓고 일할은 사람이 한다는 말이 이토록 잔인하게 실감되는 순간이다.
참깨와 들깨를 다룬 구절은 절기의 정밀함을 보여준다. ‘蕂抖日出後莢裂’ — 참깨는 해가 뜬 뒤 꼬투리가 벌어질 때 털어야 한다. 햇살은 농부의 동업자다. ‘荏似露日出前抖’ — 들깨는 이슬 맺힌 새벽, 해뜨기 전 털어야 손실이 없다. 이 둘의 시간차를 모르면 한 해의 수확이 허공에 흩어진다. 이 정밀한 감각은 책이 아니라 손끝으로, 세월로, 실패와 체득으로 얻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 ‘天不生無祿之人 不信秋雨起深憂’는 절절하다. 하늘은 복록 없는 사람을 낳지 않는다지만, 가을비는 믿음을 조롱하듯 깊은 근심을 남긴다. 도시의 가을비가 낭만이라면, 농촌의 가을비는 손익계산서를 적시는 먹물이다. 하늘의 때를 거스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농부는 원망 대신 절기를 탓하고, 하늘을 탓하는 대신 허공을 바라본다. 진인사대천명이 이토록 무력하게 들리는 영역이 바로 농사다. 풍년의 비와 흉년의 비가 단 몇 날 차이로 갈리는 곳, 바로 논밭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시어 하나하나가 절기와 경험에서 나온 살아 있는 농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칠언고시(七言古詩) 형식을 빌려 썼지만, 내용은 고상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 농부의 체온과 시간표가 담긴 기록이다. 또한 이 시는 전통적인 운율을 간소화한 대한신운(大韓新韻) 체계를 사용했기에,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구조를 보여준다. 복잡한 평측 규칙 없이도 절기와 감정을 시로 새길 수 있기에, 농부의 마음이 곧 시가 된다. 이 작품은 한 농부의 개인적 기록인 동시에, 하늘의 때와 맞서 살아온 수많은 농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기록이자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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