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716. 雙三 한 쌍의 삼/ChatGPT Pro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9. 15. 09:20

716. 雙三 쌍삼/대한신운·()

三三五五三疊肉 (삼삼오오삼첩육)

삼삼오오 삼겹살

炙炙翻翻涎自 (자자번번연자)

굽고 뒤집으며 군침 절로 흐르네.

脂契脂契甘雨聲 (지글지글감우성)

지글지글 단비 소리

執固執固無限 (집고집고무한)

집고 집는 무한 손

萵蒜三層調合味 (와산삼층조합미)

상추와 마늘 삼 층 조합 맛

燒麥九杯潤滑 (소맥구배윤활)

소맥 아홉 잔 윤활유

亂場快樂實難尋 (난장쾌락실난심)

난장판 쾌락 실로 찾기 어려우니

晝夜嚼嚼解萬 (주야작작해만)

주야로 씹고 씹어 만 근심을 푸네.

* (): , , (), (), , , , , , , , , , ,

* 삼겹살 소비 촉진을 염원하며 삼겹살데이로 구성해 둔다. 삼겹살은 우리 한자 표현으로 삼층육(三層肉)이라 나타내기도 한다. 중국어로는 오화육(五花肉, wǔhuāròu)으로 꽃처럼 미화한 이름이라는 점에서는 좋지만, 우리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삼층육(三層肉) 역시 삼겹살이라는 우리말의 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고 여겨 삼첩육(三疊肉)으로 조어했다. ()은 겹치고 포개진다는 뜻이므로 살코기와 지방이 겹겹이 포개진 모습과 삼 겹이라는 우리말을 함께 살릴 수 있다.

지글지글은 어떤 한자로도 그 소리와 맛을 온전히 나타내기 어려운 우리말 고유의 의성어다. 이를 지글지글(脂契脂契)로 음역했다. ()는 기름이라는 뜻이어서 삼겹살에서 흘러나오는 기름과도 맞고, ()로도 읽으며 붙잡다·애쓰다라는 뜻도 있다. 이를 조어했으므로 대장도 집고집고(執固執固)로 조어했다. ()은 붙잡는다는 뜻이고 고()는 굳게 한다는 뜻이 있어, 꽉 집고 또 집는다는 모습까지 그럴듯하다. 언어유희지만 이 또한 한국 한자음과 우리말을 함께 활용하는 대한신운(大韓新韻)만의 장점이다.

와산삼층(萵蒜三層)은 상추·마늘·삼겹살이 포개진 그야말로 삼 층이다. 구배(九杯)3×3=9를 생각하여 안배했다. 아홉 잔은 당연히 과음이겠지만, 술이 술을 부르면 반주일 뿐이다.

ChatGPT Pro 감상평

숫자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난히 많은 뜻을 품고 있다. 동양에서는 천지인(天地人)을 삼재(三才)라 하고 과거·현재·미래를 삼세(三世)라 한다. 삼고초려(三顧草廬)는 거듭 찾아가는 정성을 말하고 삼인성호(三人成虎)는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거짓도 참처럼 믿게 됨을 경계한다. 삼사이후행(三思而後行)처럼 거듭 생각한 뒤 행동하라는 말도 있다. 불교에는 삼십삼천(三十三天)이 있고 관세음보살의 삼십삼신(三十三身)도 전한다. 우리 역사로 오면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도 떠오른다.

서양에서도 3은 오랫동안 특별한 수로 여겨졌다. 기독교에서는 성부·성자·성령을 하나의 신으로 보는 삼위일체(三位一體)가 신앙의 핵심 교리 가운데 하나이며, 예수가 죽은 뒤 사흘째 되는 날 부활했다는 믿음에서도 3이 중요하게 나타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상징하는 세 여신인 삼미신(三美神)이 있고,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운명의 세 여신도 등장한다. 서양의 이야기와 수사에서도 세 번의 반복은 시작·전개·완결처럼 안정된 구성을 이루는 방식으로 자주 쓰인다. 이처럼 3은 동서양에서 단순한 숫자를 넘어 완성·반복·성찰·인연과 질서를 생각하게 하는 수로 자리해 왔다.

또한 음력 33일은 예부터 삼짇날이라 하여 봄을 맞는 명절로 지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로 여겼으며 화전(花煎)을 부쳐 먹고 봄놀이를 즐기는 풍속도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는 이러한 삼짇날 풍속보다 양력 33일의 삼겹살데이가 생활 속에서 더 쉽게 와닿는다. 삼겹살데이는 2003년 무렵 양돈농가를 돕고 돼지고기 소비를 늘리려는 취지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3)이 겹치는 날과 삼겹살을 연결한 이름부터 한국인의 언어 감각이 담겨 있다.

삼겹살은 살코기와 지방이 번갈아 겹쳐 보이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수련(首聯)三三五五三疊肉은 작품의 성격을 첫 구부터 드러낸다. 여기에 三疊肉을 붙이니 삼이 거듭되면서 33일의 시제까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炙炙翻翻涎自流에서는 굽고 뒤집는 동작만으로 군침이 절로 흐르는 모습을 그렸다.

함련(頷聯)은 가장 파격의 표현이다. 脂契脂契甘雨聲脂契脂契은 뜨거운 불판에서 기름이 끓고 튀며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와 모습까지 한꺼번에 전하는 우리말이다. 이를 어떤 한자로 옮겨도 그 맛을 온전히 살리기 어렵다. 그래서 지()와 글()을 빌려 지글지글(脂契脂契)로 음역 되었다. ()는 기름이라는 뜻까지 있어 삼겹살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계()로도 읽는다. 단순히 음만 빌린 조어가 아니라 글자의 뜻까지 일부 살아 있는 셈이다. 그 지글지글하는 소리를 감우성(甘雨聲), 곧 기다리던 단비 소리에 비유했으니, 삼겹살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불판의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해학으로 드러난다.

대장(對仗) 되는 執固執固無限手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든 말이다. ()은 붙잡는다는 뜻이고 고()는 굳게 한다는 뜻이니 집고집고라고 조어해 놓고 보면 꽉 집고 또 집는다는 모습까지 제법 그럴듯하다. 지글지글이 불판의 소리를 귀로 들려준다면 집고집고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을 눈앞에 보여준다. 甘雨聲無限手도 재미있다. 한쪽에는 단비 한쪽에는 한계가 없으며, 는 소리와 동작으로 맞선다.

경련(頸聯)萵蒜三層調合味에서는 불판에서 쌈으로 장면이 옮겨 간다. 상추 와와 마늘에 삼겹살 한 점을 더하면 상추·삼겹살·마늘이 포개진 그야말로 삼층이 된다. 여기서 다시 삼층이 나타나 3이라는 숫자의 유희가 이어진다.

대장의 燒麥九杯潤滑油에는 현대의 삼겹살집 풍경이 그대로 들어온다. 두 구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미련(尾聯)은 이러한 흥겨움을 모두 수렴한다. 난장(亂場)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굽고 뒤집고 집어 먹으며 이야기가 오가는 왁자지껄한 자리다. 이런 즐거움을 실로 찾기 어렵다고 했으니 삼겹살이 최고라는 말을 직접 하지 않고도 삼겹살 예찬이 드러난다. 실난심(實難尋), 곧 실로 찾기 어렵다는 말이 직접직설의 찬사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결구의 晝夜嚼嚼解萬愁는 다시 과장과 해학으로 돌아온다. 삼겹살데이의 난장 같은 즐거움과 그 맛을 잊지 못해, 자리가 끝난 뒤에도 집에서 주야로 삼겹살을 씹고 또 씹는다는 익살이다. 먹는 사람에게는 삼겹살이 일상의 근심을 푸는 즐거움이고, 이렇게 집에서도 계속 찾아 먹어 소비가 늘어나면 양돈농가의 근심 또한 덜 수 있다. 삼겹살 소비를 촉진하고 양돈농가를 돕자는 삼겹살데이의 본뜻이 마지막에 숨어 있는 셈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삼겹살이라는 소재 자체만이 아니다. 삼첩육(三疊肉)을 새로 만들고 지글지글(脂契脂契)과 집고집고(執固執固)를 한자의 뜻과 한국 한자음으로 빚어냈으며 소맥(燒麥)까지 오늘의 언어로 끌어들였다. 중국인이 중국 음으로 읽으면 지글지글도 집고집고도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한자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고 우리말로 생각할 때 비로소 살아나는 표현이다.

한시는 반드시 옛 중국의 시어만 되풀이해야 하는가! 오늘의 한국인이 삼겹살집 불판 앞에서 듣는 지글지글을 옛 한자어에서 찾을 수 없다면 우리 한자음으로 새로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이 단순한 말장난에 그치지 않고 글자의 본뜻과 작품의 상황까지 맞아떨어진다면 새로운 시어가 된다. 김삿갓의 한시가 한자의 뜻과 우리말의 소리를 넘나들며 웃음과 재치를 만들어냈듯, 대한신운(大韓新韻)도 한국인의 말과 생활을 한자어로 새롭게 담을 수 있다. 옛 문자를 쓰되 오늘을 말하고 중국에서 온 글자를 쓰되 한국인의 소리와 정서를 담는 것, 바로 이러한 자유로움이 대한신운이 가진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