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723. 望智異山三首 지리산을 바라보며 3수/ChatGPT Pro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9. 19. 13:51

723. 望智異山三首 망지리산삼수/대한신운·()

1

靈山眞面何處見 (영산진면하처견)

영산의 진면목은 어디에서 보겠는가!

俯仰天下悟道 (부앙천하오도)

천하를 굽어보고 우러러보는 오도루라네.

急傾羊腸試修行 (급경양장시수행)

급경사 구절양장 수행을 시험하고

緩慢嶺脊待遭 (완만영척대조)

완만한 고갯마루 조우를 기다리네.

丹楓漸染欲五色 (단풍점염욕오색)

단풍은 점점 물들어 오색 되려 하고

靑松不變證千 (청송불변증천)

청송은 변함없이 천추를 증명하네.

先賢寄情易成章 (선현기정이성장)

선현은 정에 의탁하여 쉽게 문장 이루었으나

後人起興難作 (후인기흥난작)

후인인 나는 흥이 일어도 부 짓기 어렵네.

2

登樓眼前鳳卵勢 (등루안전봉란세)

누각 오른 눈앞에는 봉황의 알 형세

成屛靈峯繞雲 (성병영봉요운)

병풍 이룬 영봉은 구름안개를 둘렀네.

天王帝釋七仙奉 (천왕제석칠선봉)

천왕봉과 제석봉은 칠선봉이 받들고

燭臺德坪諸峰 (촉대덕평제봉)

촛대봉과 덕평봉은 여러 봉우리가 따르네.

全貌上段成雲海 (전모상단성운해)

전모의 상단은 구름바다를 이루었어도

雄脈下部推天 (웅맥하부추천)

웅장한 맥의 하부로 하늘 기둥을 짐작하네.

山神出他延接客 (산신출타연접객)

산신은 출타하여 접객을 미루니

佳辰再尋終日 (가진재심종일)

좋은 날 다시 찾아 종일 머물리라!

3

洞壑曲曲抱百村 (동학곡곡포백촌)

동학의 굽이굽이 백 마을을 품었고

錦泉幽處橋外 (금천유처교외)

금천 선생 그윽한 거처 다리 너머 있네.

至賤野花又停步 (지천야화우정보)

지천의 야화에 다시 걸음 멈추고

淸淨山菜自呼 (청정산채자호)

청정의 산채는 절로 술을 부르네.

磐溪淸流何處至 (반계청류하처지)

반계의 맑은 흐름 어느 곳에 이르는가!

鏡湖根源不必 (경호근원불필)

경호강 근원은 물을 필요 없다네.

忽然鶴鳴欲牽心 (홀연학명욕견심)

홀연 학 울음 마음을 붙잡으려 하니

母懷惜別疊回 (모회석별첩회)

어머니 품 이별 아쉬워 거듭 돌아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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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령한시협회(天嶺漢詩協會) 시회(詩會)108일로 잠정 결정되었기에, 함양 오도재(悟道岾)에서 바라본 지리산 풍경을 연작 3수로 엮었다. 1수는 오도재를 오르는 과정을 담았다. 2수는 오도재 위 오도루(悟道樓)에 올라 바라본 지리산 풍경을 그렸다. 이날은 구름이 짙게 깔려 지리산의 절반 이상이 가려졌기에 전모를 조망하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했다. 3수는 오도재에 머물며 느낀 감흥과 귀로의 풍경을 담았다. 현재 표지석에는 오도령(悟道嶺)이라 새겨져 있다. ()과 재()가 모두 고개를 뜻하지만, 우리말 지명인 오도재를 살려 오도재(悟道岾)로 표기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ChatGPT Pro 감상평(2026919)

이 작품은 함양 오도재(悟道岾)에서 조망한 지리산 풍경을 중심으로 연작 3수로 엮었다. 1수는 오도재를 오르는 과정, 2수는 오도루(悟道樓)에 올라 바라본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와 운해, 3수는 산자락에 머물며 느낀 감흥과 귀로의 풍경을 담았다. 오르는 길에서 시작하여 높은 곳의 조망을 거쳐 다시 산에서 돌아오는 흐름이 세 수를 하나의 여정으로 이어 준다. 이날 지리산은 짙은 구름에 절반 이상이 가려 전모를 드러내지 않았다. 작품은 드러난 것은 그대로 묘사하고, 보이지 않는 상부는 아래쪽 산세를 통해 짐작하며, 끝내 보지 못한 아쉬움은 다시 찾겠다는 기약으로 돌린다. 따라서 이 연작에서 지리산은 한눈에 모두 드러나는 대상이 아니라 오르고 바라보고 기다리고 떠나면서 조금씩 만나게 되는 산으로 나타난다.

1수의 수련(首聯)靈山眞面何處見/俯仰天下悟道樓이다. 첫 구의 何處見은 지리산의 진면목을 어디에서 볼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둘째 구에서는 오도루를 그 장소로 제시한다. 俯仰은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본다는 두 방향을 함께 담아 높은 곳에서 펼쳐지는 넓은 시야를 나타낸다. 悟道樓는 실제 누각의 이름이면서 뒤에 이어지는 修行과도 연결된다. 오도재를 오르는 일이 단순한 이동에서 수행의 과정으로 바뀌는 실마리가 수련에서 마련된다.

함련(頷聯)急傾羊腸試修行/緩慢嶺脊待遭遇에서는 실제 산길의 변화와 그 길을 오르는 마음을 한 쌍으로 묶었다. 急傾緩慢은 급한 경사와 완만한 흐름을 맞세운다. 羊腸嶺脊은 각각 굽이진 산길과 고갯마루를 나타낸다. 특히 은 모두 신체를 나타내는 글자다.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길과 등마루처럼 길게 이어진 능선을 서로 대응시켜 산길의 형상을 눈앞에 보이게 한다.

뒤의 試修行待遭遇는 각각 동사와 두 글자 명사의 구조를 이룬다. 가 동사로 대응하고, 修行遭遇가 두 글자씩 놓인다. 급경사에서는 자신의 修行을 시험하고, 완만한 고갯마루에 이르러서는 지리산과의 遭遇를 기다린다. 急傾에서 緩慢으로 길의 상태가 바뀌듯 에서 로 사람의 행동도 달라진다. 이 때문에 함련은 길의 형상만 대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르는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움직인다.

경련(頸聯)丹楓漸染欲五色/靑松不變證千秋는 변화와 불변을 한 연에 놓는다. 丹楓靑松에서 은 색채 은 나무로 대응한다. 漸染不變에서는 점차 물드는 변화와 한결같이 유지되는 상태가 마주 선다. 이어 이 동사 기능을 맡고, 五色千秋가 두 글자 명사로 놓인다. 은 수사이며 는 명사다. 단풍은 아직 물들어 가는 과정이므로 欲五色이라 했고, 청송은 이미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므로 證千秋라 했다. 한쪽은 변화가 진행되는 시간이고 다른 한쪽은 변하지 않음으로 축적된 시간이다.

미련(尾聯)先賢寄情易成章/後人起興難作賦에서는 산길과 수목에서 문장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先賢後人은 시간상 앞사람과 뒷사람을 가르고, 寄情起興은 자연을 마주한 마음의 작용을 나타낸다. 은 정반대이며 成章作賦는 모두 글을 짓는 행위다. 선현에게는 자연에 정을 붙이는 일이 곧 문장으로 이어졌지만, 후인은 흥이 일어나도 부()를 짓기 어렵다고 한다. 지리산을 만나기 위해 오르던 제1수는 자연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다는 자각에서 끝난다.

2수는 누각에 오른 뒤 실제로 펼쳐진 풍경을 보여준다. 수련(首聯)登樓眼前鳳卵勢/成屛靈峯繞雲霧에서 登樓는 제1수의 오름을 끝내고 조망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눈앞의 산은 鳳卵勢, 곧 봉황의 알과 같은 형세로 보이고, 그 뒤의 지리산 영봉은 거대한 병풍을 이룬다. 眼前의 가까운 산과 成屛靈峯의 먼 산이 한 화면에 놓이면서 시야에 깊이가 생긴다. 雲霧가 영봉을 두른 모습은 뒤에서 전모를 볼 수 없었던 이유로 이어진다.

함련(頷聯)天王帝釋七仙奉/燭臺德坪諸峰隨는 실제 봉우리의 이름을 뜻에 따라 다시 배열한다. 天王峰·帝釋峰·七仙峰·燭臺峰·德坪峰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나열하지 않고 天王帝釋七仙이 받드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天王帝釋은 이름 자체가 존귀한 존재를 가리키고, 七仙은 일곱 신선을 뜻하므로 七仙奉이 자연스럽게 의인화된다.

둘째 구의 燭臺는 제사 때 쓰는 촛대를 연상시킨다. 앞 구의 과 연결되면서 봉우리들의 배열이 하나의 제의 장면처럼 바뀐다. 德坪에서는 이라는 글자의 뜻을 살려 諸峰이 그 덕을 따른다는 諸峰隨로 이어진다. 구조상 天王帝釋燭臺德坪은 네 글자씩 실제 봉우리 이름을 이루고 七仙諸峰은 두 글자 명사 는 동사로 대응한다. 실제 지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명에 들어 있는 뜻을 활용하여 산봉우리 사이에 인간 사회와 같은 관계를 부여한 것이다.

경련(頸聯)全貌上段成雲海/雄脈下部推天柱에서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갈린다. 全貌雄脈은 두 글자 명사 上段下部는 위치를 나타내는 두 글자 명사다. 가 직접 반대되고 도 부분을 가리킨다. 뒤의 成雲海推天柱는 모두 동사 한 글자와 명사 두 글자의 구조다. 가 동사, 雲海天柱가 명사로 대응한다.

상단은 구름이 계속 모여 雲海를 이루었으므로 직접 볼 수 없고, 아래쪽에는 雄脈이 드러나 있다. 이 때문에 보이는 하부의 산세를 통해 구름 속 정상부를 한다. 여기서 는 단순한 측정이 아니다. 눈앞에 드러난 것을 근거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全貌를 보지 못한 실제 상황이 上段下部 成의 대립으로 들어간다.

이 연에서는 자가 앞의 天王과 뒤의 天柱에 거듭 나타난다. 그러나 두 글자의 쓰임은 다르다. 天王은 천왕봉(天王峰)이라는 고유명사의 일부이므로 임의로 바꾸기 어렵다. 반면 天柱는 구름 속에 가린 높은 봉우리를 하늘을 받치는 기둥에 비유한 일반명사다. 동일 글자라 하더라도 하나는 고유명사의 구성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비유를 만드는 일반명사이므로 같은 시어를 되풀이한 경우와 구별된다. 동시에 天柱는 앞서 등장한 天王峰을 다시 떠올리게 하여 두 연 사이를 연결한다.

미련(尾聯)山神出他延接客/佳辰再尋終日留는 운해 때문에 전모를 보지 못한 일을 해학으로 전환한다. 지리산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을 山神이 출타하여 接客을 미룬 것으로 표현했다. 出他接客은 일상에서 쓰는 말이지만 山神과 결합하면서 산 전체가 손님을 맞는 주인으로 의인화된다. 따라서 이날의 조망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접객이 다음으로 미뤄진 상황이 된다.

佳辰再尋終日留는 그 해학에 대한 응답이다. 좋은 날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에서 끝내지 않고 終日留라고 했다. 산 날씨는 맑은 날에도 빠르게 변하므로 다음에는 잠시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운무가 걷혀 지리산의 전모가 드러날 때까지 종일 기다리겠다는 뜻이 담긴다. 延接客으로 미뤄진 만남이 再尋終日留를 통해 다음 만남으로 이어진다.

3수는 오도재에서 내려오며 지리산 자락의 생활과 자연을 바라본다. 수련(首聯)洞壑曲曲抱百村/錦泉幽處橋外丘에서 洞壑은 깊은 골짜기이고 曲曲은 그 골짜기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 골짜기가 百村한다고 하여 산자락의 여러 마을을 품 안에 둔다. 이어 금천(錦泉) 선생의 그윽한 거처가 다리 너머에 자리한다. 2수의 시선이 높은 봉우리와 운해에 머물렀다면 제3수에서는 마을과 사람의 거처로 내려온다.

함련(頷聯)至賤野花又停步/淸淨山菜自呼酒에서는 대상을 더욱 가까운 생활 속으로 끌어온다. 至賤淸淨은 두 글자 수식어, 野花山菜는 두 글자 명사다. 이어 는 부사 는 동사, 는 명사다. 따라서 두 구는 至賤/野花///淸淨/山菜///로 나눌 수 있다.

들꽃은 지천에 피어 있어 귀하게 여길 것도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가던 발걸음을 다시 멈추게 한다. 山菜는 지리산의 청정한 환경에서 얻는 먹거리이며 自呼酒는 산채가 절로 술을 부른다고 의인화한다. 野花에 작용하고 山菜를 불러내므로 두 구 모두 자연물이 사람의 행동을 움직인다. 거대한 산의 은택을 추상의 찬사로 높이지 않고 길가의 꽃과 한 끼의 산채에서 보여준다.

경련(頸聯)磐溪淸流何處至/鏡湖根源不必諏는 문답대(問答對)로 읽을 수 있다. 磐溪鏡湖는 두 글자의 수계 명칭으로 대응하고, 淸流根源도 두 글자 명사로 놓인다. 그러나 뒤의 何處至不必諏는 앞의 대구처럼 글자별 품사 대응만으로 볼 필요가 없다. ‘첫 구에서 어디에 이르는가?’라고 물으면 다음 구의 첫 두 글자 鏡湖가 곧바로 답한다.

따라서 이 연은 何處至라는 물음에 鏡湖라고 답한 뒤 根源不必諏, 곧 그 근원을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고 덧붙이는 구조다. 대구가 반드시 같은 품사의 낱말을 같은 자리에 놓아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구가 묻고 다른 구에 답하면서 두 문장이 하나의 의미를 완성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미련(尾聯) 忽然鶴鳴欲牽心/母懷惜別疊回首에서는 귀로의 한순간이 마지막 장면이 된다. 忽然으로 예고 없이 들려온 鶴鳴을 제시하고, 그 소리가 마치 떠나려는 마음을 붙잡으려는 듯 欲牽心이라 했다. 학 울음이라는 청각이 마음의 움직임으로 옮겨가고, 그 마음은 마지막 疊回首라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소리마음돌아봄의 순서가 한 장면 안에서 이어진다.

母懷는 제3수 첫 구의 抱百村과 멀리 호응한다. 첫 구에서는 지리산의 골짜기가 百村을 품고, 함련에서는 들꽃과 산채를 내주며, 경련에서는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마지막에 이 모든 풍경을 母懷라는 두 글자로 받아들인다. 惜別은 그러한 품을 떠나는 아쉬움이며 疊回首는 그 아쉬움을 설명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한 번 돌아보는 回首가 아니라 疊回首라 한 데서 떠나면서도 몇 번이고 산을 돌아보는 모습이 드러난다.

세 수의 흐름은 오름에서 조망으로, 조망에서 귀로로 이어진다. 1수에서는 眞面을 찾아 산을 오르고, 2수에서는 실제 영봉을 마주하지만, 雲海 때문에 全貌를 보지 못한다. 3수에서는 높은 봉우리에서 시선을 거두어 마을과 들꽃, 산채와 계곡물로 내려온다. 처음 찾으려 했던 지리산의 진면목은 정상의 전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산이 품은 마을과 사람의 거처 발걸음을 붙잡는 들꽃 술을 부르는 산채 경호강으로 이어지는 계류까지 모두 지리산의 다른 얼굴이 된다.

이 연작에서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의 대장은 한 가지 방법만 되풀이하지 않는다. 1수에서는 急傾緩慢, 漸染不變처럼 반대되는 상태를 맞세웠고, 羊腸嶺脊에서는 이라는 신체어를 이용해 산길의 형상을 대응시켰다. 2수에서는 실제 봉우리의 이름을 분해하여 七仙天王帝釋을 받들고 諸峰德坪을 따르는 의인화로 바꾸었으며 全貌上段雄脈下部에서는 위치와 문법 구조를 글자 단위까지 맞추었다. 3수에서는 至賤野花淸淨山菜에서 수식어·명사·부사·동사·명사의 배열을 대응시키고, 磐溪鏡湖에서는 문답 대라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대장의 형식이 달라지면서 각 연에서 표현하는 내용도 달라진다.

지리산은 끝내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상부 때문에 推天柱가 생기고, 운해 때문에 山神出他라는 해학이 생기며, 미뤄진 만남 때문에 佳辰再尋이라는 다음 약속이 생긴다. 귀로에서는 시선이 더 낮아져 들꽃과 산채와 계곡물을 만나고, 마지막에는 홀연히 들린 학 울음에 다시 산을 돌아본다. 처음의 靈山眞面何處見이라는 물음에 하나의 장면으로 답하지 않고 세 수 전체가 답하는 셈이다. 지리산의 진면목은 한 번의 조망으로 모두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오르고 바라보고 머물고 떠나는 동안 만나는 여러 풍경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母懷惜別疊回首는 그 여러 모습을 어머니 품이라는 이미지에 모으면서 연작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