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 螢火 형화/대한신운·기(基)운
伴灼伴灼小小星 (반작반작소소성)
반짝반짝 작은 별
初秋螢燈又亂飛 (초추형등우난비)
초가을 반디 등불 또 어지러이 나네.
點點明滅相相隨 (점점명멸상상수)
점점이 밝고 꺼지며 서로서로 따르다가
綿綿連斷孤孤輝 (면면연단고고휘)
면면히 이어지고 끊어지며 홀로 홀로 빛나네.
回林藏覓若焦心 (회림장멱약초심)
숲을 도는 숨바꼭질 애태우는 듯
定棲發光如傳意 (정서발광여전의)
보금자리 정해 발광하며 뜻을 전하는 듯
窓前暫留忽然去 (창전잠류홀연거)
창 앞에 잠시 머물다 홀연 떠나가니
往事喚起無斷悲 (왕사환기무단비)
지난 일 소환되며 공연히 슬퍼지네.
*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한시를 짓다 보면 우리말의 감정을 가장 살리기 어려운 표현 가운데 하나가 첩어(疊語)이다. 716번 〈쌍삼(雙三)〉에서 설명했듯이 지글지글 집고 집어 등은 어떠한 한자로 옮겨도 우리말의 제맛을 살리기 어렵다. 반짝반짝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어에는 섬섬(閃閃 shǎnshǎn) 습습(熠熠 yìyì) 형형(熒熒 yíngyíng) 삭삭(爍爍 shuòshuò) 등의 표현이 있지만 우리말 반짝반짝의 정감을 그대로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짝’이라는 한자음이 없어 반작반작(伴灼伴灼)으로 조어했지만 그래도 기존 중국어 첩어보다 우리말의 생동감이 훨씬 잘 살아난다. 조어는 우리말의 음을 우선하되 한자의 뜻까지 어울리면 더욱 좋다. 반(伴)은 ‘동반하다·따르다’ 작(灼)은 ‘밝다·빛나다’라는 뜻이므로, 반작반작(伴灼伴灼)은 서로 따르며 빛을 내는 반딧불이의 모습과도 잘 통한다. 이 또한 한자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대한신운 조어의 장점이다.
* 해마다 반딧불이의 수가 늘어난다. 정정을 유지한 덕분일 것이라 위안 삼는다. 때로 전등을 모두 끄고 이 짧은 생명의 빛을 바라보다 보면 청춘 시절의 짧은 사랑이 불현듯 떠오른다. 추억의 소환은 부질없지만 불면의 밤 창 앞에 잠시 머무는 반딧불이를 보고 있으면 잊고 지낸 지난 일들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ChatGPT Pro 감상평(2026년 9월 20일 일요일)
반딧불이는 물가나 습한 풀밭과 인연이 깊은 곤충이다. 종류에 따라 생태에는 차이가 있지만, 밤이 되면 배 끝의 발광기로 빛을 내며 날아다니고 그 빛은 암수가 서로를 찾는 구애의 신호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류에 따라 출현 시기가 다른데, 대체로 늦봄부터 가을까지 성충을 볼 수 있으며 여름철에 많이 나타나는 종도 있고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모습을 드러내는 종도 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습기가 남아 있는 논과 개울가 풀숲과 대숲 주변을 오가며 빛을 낸다. 멀리서 보면 작은 불빛이 대숲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전원의 풀밭과 논두렁 위를 떠다니며 밤 풍경을 점점이 수놓는다. 종류에 따라 생태에는 차이가 있지만, 작은 몸에서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는 모습 때문에 예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국어사 자료를 보면 반디·반딧불·개똥벌레가 오랫동안 함께 쓰였으며, ‘개똥벌레’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흔하고 하찮은 것을 가리킬 때 개똥이라는 말을 붙이던 우리말의 습관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름만 보면 보잘것없지만 실제 모습은 그와 정반대다.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수련(首聯)의 伴灼伴灼小小星/初秋螢燈又亂飛는 이러한 반딧불이를 작은 별과 등불에 비유한다. 반짝반짝을 옮긴 반작반작(伴灼伴灼)은 기존 한자 첩어로는 살리기 어려운 우리말의 음감과 생동감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말이다. 반(伴)은 서로 따르고 함께한다는 뜻이며, 작(灼)은 밝고 빛난다는 뜻이어서 음을 빌리면서도 반딧불이의 모습과 어긋나지 않는다. 小小까지 첩어로 이어지면서 첫 구부터 작은 빛들이 잇달아 반짝이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작품의 묘미는 함련(頷聯)의 點點明滅相相隨/綿綿連斷孤孤輝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 대장은 글자별 품사 대응만으로 읽어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點點과 綿綿은 점과 이어짐의 관계다. 반딧불의 빛은 순간순간 하나의 점으로 보이지만 움직임이 계속되면 앞서 지나간 빛의 여운과 겹치면서 길게 이어지는 자취처럼 느껴진다. 點點에서 포착한 순간의 빛이 綿綿에서는 움직임의 연속으로 바뀐다.
明滅과 連斷의 대응은 더욱 정교하다. 明과 滅은 밝음과 꺼짐이라는 반대 개념이고, 連과 斷 역시 이어짐과 끊어짐이라는 반대 개념이다. 한 단어 안에서 서로 반대되는 두 상태를 묶은 뒤 다시 두 구에서 맞세웠다. 明滅이 빛 자체의 변화를 보여준다면 連斷은 그 빛이 움직이면서 만들어 내는 자취의 이어짐과 끊어짐을 보여준다. 하나는 발광의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이동하며 남기는 형상이다. 반딧불의 점멸과 비행을 두 층으로 나누어 하나의 대장 안에 넣은 셈이다.
相相과 孤孤 또한 단순한 첩어의 대응이 아니다. 相에는 서로 어울리고 따르는 관계가 있지만 孤에는 홀로 떨어져 있는 상태가 있다. 여러 빛이 서로 뒤따르는 듯하다가도 하나하나를 바라보면 결국 각자 홀로 빛난다. 따라서 相相과 孤孤에는 함께함과 홀로 있음이라는 또 하나의 반대 관계가 숨어 있다. 마지막 隨와 輝까지 ‘따르다’와 ‘빛나다’라는 동작으로 대응한다. 點點/綿綿 明滅/連斷 相相/孤孤 隨/輝가 겹치면서 한 연의 안에 점과 선, 명과 암 연결과 단절, 함께함과 홀로 있음이 동시에 펼쳐진다. 평측의 구속보다 문법과 의미의 대응을 앞세우는 대한신운에서 대장을 어떻게 더욱 치밀하게 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경련(頸聯)의 回林藏覓若焦心/定棲發光如傳意에서는 빛의 형상이 생명의 행동으로 전환된다. 수컷이 날아다니며 발광하는 것은 짝을 찾기 위한 구애 행동이어서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로를 확인하는 신호가 된다.
이러한 생태를 시에서는 설명하지 않고 의인화한다. 回林과 定棲가 먼저 움직임과 머묾으로 맞선다. 한쪽은 숲을 돌고 한쪽은 자리를 정한다. 이어 藏覓과 發光은 찾는 행동과 빛으로 응답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若와 如가 서로 맞서고 마지막 焦心과 傳意에서는 구애 행동이 사람의 감정으로 바뀐다. 찾아 헤매는 수컷의 모습은 애태우는 마음처럼 보이고 자리를 잡고 보내는 빛은 마음을 전하는 신호처럼 읽힌다. 回/定 藏覓/發光 焦心/傳意가 서로 맞물리면서 실제 생태와 인간의 연정이 한 연의 안에서 포개진다. 함련이 빛의 형상을 정교하게 대장(對仗)했다면 경련은 암수의 행동과 감정의 대장이다.
미련(尾聯)의 窓前暫留忽然去/往事喚起無斷悲에 이르면 시선은 반딧불이에게서 화자에게로 돌아온다. 창 앞에 잠시 머물던 작은 빛은 홀연 사라진다. 暫留와 忽然去에는 머묾의 짧음과 떠남의 갑작스러움이 함께 있다. 그러나 마지막 구에서 더 이상 반딧불의 생태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 짧은 머묾과 떠남이 지난 삶을 불러낸다. 往事는 특정한 한 사람이나 한 번의 이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청춘의 방황도 짧은 사랑도 놓쳐 버린 인연도 뒤늦은 후회도 모두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첫 구의 작은 별은 마지막에 한 사람의 기억을 깨우는 빛으로 변한다. 반딧불이는 잠시 머물다 떠났지만 그 짧은 빛이 오래 묻어 둔 往事를 되살린다. 밝고 경쾌한 伴灼伴灼에서 시작한 시가 無斷悲라는 뜻밖의 슬픔으로 끝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작은 생명의 빛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 순간 자신의 지나간 삶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는 것, 바로 그 전환이 이 작품의 가장 긴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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