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735. 十二干支第十一 십이간지 제11·술·개/ChatGPT Pro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9. 27. 05:26

735. 十二干支第十一·戌·犬 십이간지제십일·술·견/대한신운·구(九)운

人間末種不如犬 (인간말종불여견)

인간 말종은 개보다 못하다니

疑問一敗豈比狗 (의문일패기비구)

의문의 1패 어찌 개에 비교하는가!

糞狗體軀未七十 (분구체구미칠십)

똥개의 체구 70센티 미만이나

野狼後裔常隨主 (야랑후예상수주)

늑대의 후예는 언제나 주인을 따르네.

晝間雖睡識外人 (주간수수식외인)

낮에는 비록 자다가도 외부인을 알아차리고

夜來頻吠防群獸 (야래빈폐방군수)

밤이 오면 자주 짖어 뭇짐승을 막네.

山中豪傑守門將 (산중호걸수문장)

산중호걸 수문장은

獨居伴侶減一憂 (독거반려감일우)

독거의 반려자로 한시름 덜어 주네.

* 구(九)운: 구, 규, 누(루), 뉴(류), 두, 무, 부, 수, 우, 유, 주, 추, 투, 후, 휴

* 개는 소재가 다양하여 구성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지만, 막상 쓰려니 모두 진부한 표현으로 흐르기 쉬워 현재 키우는 잡종견을 소재로 삼았다. CCTV와는 별도로 산속에서 개는 간혹 낯선 사람의 접근을 알려주고 산짐승, 특히 멧돼지의 접근을 막아 한 줄 심어 놓은 고구마를 지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ChatGPT Pro 감상평

십이지(十二支)의 열한 번째는 술(戌)이며 동물로는 개에 해당한다. 술(戌)은 방위로 서북서쪽을 가리키고 시간으로는 오후 7시부터 9시까지인 술시(戌時)에 해당한다. 달로는 음력 9월이며 계절로는 늦가을이다. 오행(五行)으로는 토(土), 음양(陰陽)으로는 양(陽)에 속한다. 하루로 보면 해가 지고 어둠이 깊어지는 때이며 한 해로 보면 결실을 거두고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사람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을 무렵 집 주변을 살피며 낯선 기척에 짖는 개의 모습은 술(戌)의 시간과도 잘 어울린다.

개는 사람이 가장 오래 길들여 함께 살아온 동물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의 개와 현생 늑대는 오래전 공통된 늑대 계통에서 갈라진 것으로 본다. 사람과 함께한 세월도 농경의 시작보다 오래되었다. 사냥을 돕고 위험을 알리던 개는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면서 집과 가축, 농작물을 지켰고, 오늘날에는 경찰견·군견·탐지견·구조견·안내견에서 반려견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았다.

개를 뜻하는 한자로는 견(犬)과 구(狗)가 있다. 둘 다 개를 뜻하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 느껴지는 쓰임에는 차이가 있다. 반려견(伴侶犬)·애견(愛犬)·안내견(案內犬)·경찰견(警察犬)·군견(軍犬)처럼 사람과 함께 생활하거나 일정한 임무를 맡은 개에는 犬이 널리 쓰인다. 반면 狗는 현대 한국어의 일상 한자어에서는 쓰임이 많지 않지만, 옛 고사와 성어에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구장인세(狗仗人勢)는 남의 세력을 믿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을 가리키고, 구급도장(狗急跳牆)은 궁지에 몰리면 뜻밖의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비유한다. 걸견폐요(桀犬吠堯)는 걸왕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다는 뜻으로, 주인의 선악을 가리지 않는 충성을 생각하게 한다. 개를 두고 만든 말이지만 실상은 대부분 인간의 행태를 비추는 말이다.

《열자(列子)》에 전하는 양포타구(楊布打狗)도 흥미롭다. 양포(楊布)가 흰옷을 입고 나갔다가 비를 만나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오자,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짖었다. 화가 난 양포가 개를 때리려 하자 양주(楊朱)는 만일 네 개가 흰 모습으로 나갔다가 검은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너 역시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느냐고 타일렀다. 개가 주인을 몰라본 일을 말하는 듯하지만, 정작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부터 탓하는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도 주인을 구하고 죽었다는 의견(義犬) 설화가 여러 지역에 전하고, 서양에는 오랜 방랑 끝에 돌아온 오디세우스(Odysseus)를 알아본 늙은 개 아르고스(Argos)가 있으며 일본에는 죽은 주인을 기다렸다는 하치코가 있다. 견마지로(犬馬之勞)와 견마지성(犬馬之誠) 같은 말에서도 사람이 개에게서 보아 온 충성과 헌신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애완견’보다 ‘반려견’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졌고,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먹이고 재우는 데 그치지 않고 옷과 미용, 병원 진료와 건강관리에 많은 정성을 들인다. 생명을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지나침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부모나 사람보다 반려견을 더 떠받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자기에게 소중한 개이니 다른 사람도 당연히 그렇게 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공동주택에서 계속되는 짖음, 공용공간의 배설물, 목줄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산책은 다른 사람에게 불편과 두려움을 줄 수 있다. 우리 개는 순하다거나 물지 않는다는 말은 주인의 생각일 뿐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보장이 되지 않으며 경계의 대상일 뿐이다. 반려견을 아끼는 마음과 이웃을 배려하는 예절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

더 큰 모순은 그렇게 가족처럼 떠받들던 개를 마음에 들지 않거나 키우기 힘들어지면 버리는 일이다. 어릴 때 귀엽다고 데려왔다가 몸집이 커졌다고 버리고, 늙거나 병들었다고 버리며, 이사나 생활의 불편을 이유로 내다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편에서는 사람보다 귀하게 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필요 없으면 버린다.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충성을 요구하면서 정작 사람 자신은 필요에 따라 관계를 끊어 버리는 셈이다. 개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욕설을 생각하면 아무 잘못 없이 비교 대상으로 끌려온 개가 오히려 억울할 만하다.

이 작품은 이러한 수많은 충견 이야기나 반려견에 대한 거창한 찬양에서 한발 비켜선다. 인간 말종은 개보다 못하다는 익숙한 말에 의문의 1패라는 오늘날의 해학을 붙이고, 이름난 명견 대신 평범한 잡종견 한 마리를 내세웠다. 낮에는 사람의 기척을 살피고 밤에는 짐승을 막으며 집을 지키는 모습 속에서 개와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까닭을 찾는다. 犬과 狗, 늑대의 후예와 똥개, 산중호걸과 독거의 반려자라는 서로 다른 표현이 어울리면서 작품 전체에 소박한 익살도 흐른다.

결국 이 작품이 보여 주는 것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부터 사람은 집 가까이에 개를 길렀고 개는 낯선 기척에 짖고 집과 생활 터전을 지켰다. 사람은 그 곁에서 조금 마음을 놓았다. 시대가 바뀌어 애완견이 반려견으로 불리고 사람과 개의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사람이 개와 함께 살아온 가장 오래되고 일상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戌·犬〉은 십이지의 개를 돌아보며 그 평범하고 오래된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