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734. 十二干支第十酉·십이간지 제10·닭/ChatGPT Pro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9. 26. 09:48

734. 十二干支第十酉·鷄 십이간지제십유·계/대한신운·건(建)운

啐啄同時母子逢 (줄탁동시모자봉)

줄탁동시 어미와 새끼가 만나고

育雛多情今不見 (육추다정금불견)

육추의 다정은 이제 볼 수 없네.

鷄籠束縛悲運命 (계롱속박비운명)

닭장에 속박된 슬픈 운명

主人貪欲奪全權 (주인탐욕탈전권)

주인의 탐욕이 모든 권리를 빼앗네.

放飼鷄卵甚高價 (방사계란심고가)

방사한 계란은 너무 비싸지만

眩惑廣告無奈選 (현혹광고무내선)

광고에 현혹되어 부득이 선택하네.

燒麥一杯齧炸鷄 (소맥일배설작계)

소맥 한잔에 치킨 물어뜯으니

具備五德自可憐 (구비오덕자가련)

오 덕을 구비 해도 절로 가련하구나!

* 건(建)운: 건, 견, 권, 년(련), 면, 번, 변, 선, 언, 연, 원, 전, 천, 편, 헌, 현, 훤

* 닭에 대해서는 이전에 지은 바 있어 십이간지와 연관하여 다시 읊으면 내용이 겹칠 수 있으므로 이번에는 해학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는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쪼는 줄(啐)과 어미 닭이 밖에서 때맞추어 쪼는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져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가리킨다. 뒤에는 안과 밖의 힘이 알맞은 때에 서로 호응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넓어졌으며, 특히 제자의 깨달음이 무르익었을 때 스승의 가르침이 때맞추어 응하는 일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닭의 오덕(五德)은 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이다.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이요, 발에 거(距)가 있으니 무이며, 적을 만나 물러서지 않으니 용이다. 먹이를 보면 서로 부르니 인이며, 때를 어기지 않고 새벽을 알리니 신이다.

⇓ChatGPT Pro 감상평

십이지(十二支)의 열 번째인 유(酉)는 닭에 해당한다. 유는 방위로는 서쪽, 오행으로는 금(金), 음양으로는 음(陰)에 속하며, 시간으로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인 유시(酉時)를 가리킨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밖에서 먹이를 찾던 닭이 둥지로 돌아갈 무렵이다. 닭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가장 가까이 살아온 가축 가운데 하나다. 고기와 알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시계가 없던 시대에는 새벽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일정한 때를 어기지 않고 운다는 점에서 신(信)의 상징이 되었으며, 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의 오덕(五德)을 갖춘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머리에 관(冠)을 썼으니 문이요, 발에 거(距)가 있으니 무이며, 적을 만나 물러서지 않으니 용이다. 먹이를 발견하면 동료를 부르니 인이며, 때를 어기지 않고 새벽을 알리니 신이다.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만큼 닭과 관련한 말과 고사도 많다. 줄탁동시(啐啄同時)를 비롯하여 문계기무(聞鷄起舞)는 닭 울음을 듣고 일어나 무예를 닦았다는 조적(祖逖)의 고사에서 나와 뜻을 세우고 부지런히 노력함을 말한다. 계명구도(鷄鳴狗盜)는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거나 개처럼 물건을 훔치는 보잘것없는 재주를 가리켰지만, 맹상군(孟嘗君)의 고사에서는 하찮아 보이는 재주도 위급한 때에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는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는 말로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수단을 쓸 필요가 없음을 비유한다.

계륵(鷄肋)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닭갈비’라고 하면 매콤하게 양념하여 볶아 먹는 맛있는 음식이 먼저 떠오르지만, 고사 속 계륵은 전혀 다른 의미다. 조조(曹操)가 한중(漢中)을 두고 진퇴를 고민할 때 ‘鷄肋’이라고 하자 양수(楊修)는 닭의 갈비는 먹자니 얻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처럼 한중 또한 지키자니 큰 이익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다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여기에서 계륵은 큰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뜻하게 되었다. 같은 닭갈비라도 옛사람에게는 버리기 아까운 뼈에 가까웠는데 오늘날에는 일부러 돈을 내고 찾아 먹는 음식이 되었으니, 세월에 따른 의미의 변화도 재미있다.

닭은 이처럼 부지런함과 신의, 용기와 인정을 상징하는 한편 인간 사회의 욕망과 처세를 비유하는 데에도 끊임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닭의 삶은 옛 고사에서 보던 모습과 크게 달라졌다. 알을 품은 어미가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마당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고, 닭은 거대한 축산업에서 산란계와 육계로 나뉘어 알과 고기를 생산한다. 생산량과 효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좁은 공간에 많은 닭을 기르는 사육 방식이 자리 잡았으며, 닭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흙을 헤치며 본래의 습성을 드러낼 공간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사육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방사란과 동물복지 계란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 그러나 사육 공간을 넓히고 환경을 개선하면 생산비가 높아서 이는 가격에도 반영된다. 소비자는 좁은 닭장에 갇힌 닭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장바구니 앞에서는 가격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포장지에는 방사 동물복지 유정란 등 여러 문구가 붙는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망설이다가 더 나은 환경에서 생산되었다는 광고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닭의 복지를 바라는 마음과 생활비를 아껴야 하는 현실이 한 장바구니 안에서 만나는 셈이다.

고기로서 닭의 쓰임은 더욱 넓다. 삼계탕 백숙 닭볶음탕 닭갈비 닭강정 치킨에 이르기까지 닭은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빠뜨리기 어려운 음식이 되었다. 특히 치킨은 배달 문화와 결합하면서 식사와 야식, 술안주의 경계까지 허물었다. 과거에는 집에서 닭 한 마리를 잡는 것이 특별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휴대전화 몇 번의 조작만으로 튀긴 닭 한 마리가 집 앞에 도착한다. 닭고기를 접하는 횟수는 늘었지만, 그것이 한 생명이었다는 감각은 오히려 희미해졌다.

이 지점에서 작품의 마지막 두 구 燒麥一杯齧炸鷄/具備五德自可憐의 해학이 살아난다. 문·무·용·인·신의 5덕을 모두 갖추었다는 닭도 인간의 식탁에서는 치킨이 된다. 소맥 한잔을 앞에 놓고 5덕을 구비한 닭을 물어뜯는 모습은 우습지만 그 웃음 뒤에는 인간의 모순이 남는다. 한편에서는 닭의 사육 환경을 걱정하고 비싼 방사란을 고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닭고기를 끊임없이 찾는다.

오늘날 닭은 인간에게 알과 고기를 제공하고 수많은 음식과 산업을 만들어 주는 가축이다. 그만큼 인간이 닭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다. 더 넓은 사육 공간과 더 나은 복지를 바라면서 동시에 싼 계란과 값싼 치킨을 원하는 데에는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 작품은 어느 한쪽을 꾸짖거나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줄탁동시에서 계롱과 방사란을 거쳐 소맥과 치킨에 이르는 모습을 해학으로 엮어, 너무나 익숙해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오늘날의 양계 현실과 닭 소비를 한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