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九拙菴十詠 구졸암십영 구졸암이 拙을 10수로 읊다 구졸암(九拙菴)
1. 性拙 성품의 졸함
天賦難中革 하늘이 부여한 성품은 중간에 고치기 어려워
천부난중혁
疎慵不自由 소홀하고 나태하여 부자유스럽네.
소용불자유
入城如負罪 성안에 들어가면 죄지은 듯하고
입성여부죄
見客似包羞 손님을 만나면 부끄러움을 감싸안은 듯하네.
견객사포수
身老嫌乘轎 몸은 늙었어도 가마타기를 싫어하고
신로혐승교
冬寒愛弊裘 겨울이 추워도 해진 갖옷을 사랑하네.
동한애폐구
平生常置散 평생 늘 (자신을) 방치하고 산만하여
평상상치산
未肯向人求 결코 타인에게 구하려 하지 않았네.
미긍향인구
*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 1515~1580): 자는 구이(懼易), 호는 구졸암(九拙菴). 중종 35년(1540년)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명종 원년(1546)에 문과 급제하였다. 선조 14년(1581)에는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향년 66세로 일생을 마쳤다. 임종시에 '국은(國恩)을 갚지 못함이 한이로다.' 하고 사사(私事)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명나라 황제가 제문을 보내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을 만큼 학식과 덕망을 갖춘 학자였다. (출처: 함양문화원)
* 2025년 9월 천령한시협회(天嶺漢詩協會) 주최로 추모구졸암(追慕九拙菴) 시회(詩會)를 개최한다. 우선 구졸암 10영을 소개한다.
* 拙은 본래 ‘서투르다, 솜씨가 없다’는 뜻을 가진 한자다. 자형은 손(扌)과 나올 출(出)이 결합한 형태인데, 손을 밖으로 내밀어 무언가를 하려 하지만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손재주 없음’이라는 구체적인 뜻에서 출발했다. 갑골문과 금문 시기부터 비슷한 형태가 보이고, 초기에는 주로 기술이나 동작의 미숙함을 나타냈다.
이 뜻이 점차 넓어져서, 행동이나 말, 계책 전반에서의 서투름과 둔함을 가리키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자기 능력이나 작품을 낮추어 말하는 겸양 표현으로도 쓰였다. ‘拙見’(서투른 의견), ‘拙作’(졸작), ‘拙計’(졸렬한 계책) 같은 말이 그런 예다. 특히 문인 사회에서는 이런 겸손한 어법이 많이 쓰였는데, 자신을 낮추면서도 상대를 높이고, 은근히 자기 품격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拙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고대에는 인위적인 기교를 버리고 순박함과 진솔함을 추구하는 미학이 있었는데, 이때 ‘拙’은 일부러 교묘함을 줄인 아름다움을 뜻하기도 했다. ‘拙中有巧’(서툼 속에 교묘함이 있다) 같은 표현이 그 예고, 노자의 “大巧若拙”(큰 교묘함은 오히려 서툰 듯하다) 구절이 대표적이다. 송대 소식이나 미불 같은 문인들이 서예와 회화를 평할 때 이런 생각을 자주 인용했다.
고전 문헌에도 다양한 용례가 있다. 《맹자》에는 “巧詐不如拙誠”(교활한 속임수는 서툰 정성만 못하다), 《후한서》에는 “拙速不如巧遲”(서툴고 빠름은 교묘하고 느림만 못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문맥에 따라 拙은 부정, 중립, 긍정적으로 쓰였고, 늘 ‘巧(교묘함)’과 대비되어 의미가 뚜렷해졌다.
지금 중국어에서도 ‘笨拙’(서투르다)처럼 부정적인 표현에 자주 쓰이지만, 여전히 ‘拙作’, ‘拙見’처럼 자기 겸양의 표현으로 쓰인다. 또 ‘拙朴’(서툴지만 순박함)처럼 소박함과 진정성을 드러내는 긍정적인 말에도 포함된다.
결국 拙은 ‘기술이 부족하다’는 단순한 뜻에서 시작해, 서투름·둔함·겸양·순박함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상황에 따라 부정과 긍정을 오가는 다층적인 개념으로 발전했다. 이 10수에서의 拙은 모두 자신의 겸양이다.
2. 貌拙 용모의 졸함
鐵面元非婉 쇠처럼 굳은 얼굴은 본디 부드럽지 않고
철면원비완
齒牙又可憎 치아 또한 가증스럽게 생겼다네.
치아우가증
厖眉愁不展 숱 많은 눈썹은 근심에 펴지질 않고
방미수불전
白眼疲生稜 흰자위 눈은 피로에 서슬이 생기네.
백안피생릉
耐冷松丫鶴 추위를 견디는 소나무 가지의 학 같고
내냉송아학
休糧竹院僧 양식 끊겨도 (태연한) 대숲 사원의 중 같네.
휴량죽원승
猶甘顔駟醜 오히려 안사의 추함은 달갑게 여기지만
유감안사추
羞與子朝稱 자조와 함께 불리기는 부끄럽다네.
수여자조칭
* 안사(顔駟):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인물. 한 문제(漢文帝,기원전 180~157) 때부터 郎(낭, 황제를 시종하는 관직)으로 재직함. 《한무고사(漢武故事)》에 따르면: 문제 때는 무(武)를 좋아해 문(文)을 중시하는 황제와 맞지 않았고, 경제(景帝)는 용모가 준수한 신하를 좋아했는데 안사는 외모가 추해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무제(武帝)는 젊고 유능한 신하를 좋아했는데, 그 무렵 안사는 이미 늙어 있었다. 그래서 세 황제를 거치는 동안 번번이 발탁되지 못하고, “白首爲郎悲顔駟(백발에도 郞에 그친 비운의 안사)”라는 말이 생겼다. 재능이 있어도 시운을 만나지 못한 인물의 상징이다.
* 자조(子朝): 춘추시대 송(宋)나라 대부. 본명 송조(宋朝). 용모와 언변은 뛰어났으나 덕망과 실질이 부족하여, 후대에 겉만 번지르르한 인물의 상징으로 인용된다.
3. 言拙 말이 졸함
人皆口舌饒 사람들 모두 (청탁의) 입과 혀 놀림 넉넉한데
인개구설요
我獨政如膠 나만 유독 (청탁의) 정치에는 아교처럼 굳어버리네.
아독정여교
見屈猶無訟 굴욕을 당해도 오히려 송사하지 않고
견굴유무송
當誣未解嘲 무고를 당해도 조소에 해명하지 않네.
당무미해조
欲言疑已餂 말하려 하면 의뭉하다며 이미 낚아채고
욕언의이첨
將發被人剿 말을 시작하려 하면 타인에게 잘려버리네.
장발피인초
默笑觀時變 묵묵히 웃으며 시대의 변화를 관찰해 보니
묵소관시변
期期漸可抛 기대하고 기대했던 일은 점차 포기하려네.
기기점가포
* 期期: 기기애애(期期艾艾)의 준말. 말을 더듬는 모양. 중국 전한(前漢)의 주창(周昌)은 원래 말을 더듬는 데다 몹시 성이 나서 간(諫)하느라 황제 앞에서 “신(臣)은 기(期), 기필코(期必-) 그것이 불가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臣期期知其不可).”라고 말을 더듬었다는 데서 유래(由來)한다. 즉 주창이 더듬으면서 불가하다고 황제 앞에 간언한 것처럼, 더듬거리며 불가하다는 말은 점차 포기한다는 뜻이지만 자의대로 더 잘 통한다.
4. 文拙 문장의 졸함
少年從學懶 젊어서는 학문을 따르는데 나태했고
소년종학나
絶域見聞偏 단절된 지역이라 견문은 편협했네.
절역견문편
燥吻思尤涸 건조한 입술처럼 사고는 더욱 고갈되고
조문사우학
沈吟句未圓 침잠하며 음미해도 자구의 이해는 원숙하지 않네.
침음구미원
羈愁惟有嘯 나그네 우수에는 오직 (탄식의) 휘파람만 있고
기수유유소
閑適只供眠 한적해지면 단지 잠에 이바지할 뿐!
한적지공면
湖嶺遊將遍 영호남을 거의 편력하며 유람했는데
호령유장편
樓臺欠一聯 누대에는 한 연을 남기는데도 결핍이 있네.
루대흠일련
5. 官拙 벼슬의 졸함
世人非我棄 세상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며 포기하라 하고
세인비아기
吏部用賢臣 관리 임용 부서에서는 (나 대신) 현신을 기용했다네.
이부용현신
雅望皆前列 아정하고 명망 있는 자들은 이들은 모두 앞 열에 서고
아망개전렬
疎慵獨後塵 소원하고 게으른 나는 유독 뒤따르는 먼지 같네.
소용독후진
朝廷常屏跡 조정에서는 언제나 병풍 같은 자취요
조정상병적
州縣或藏身 주현에서도 때로는 간혹 감추어야 할 (낮은) 신분이네.
주현혹장신
自識休官好 관직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스스로 알았지만
자식휴관호
浮沈只為貧 부대끼다 침잠함은 단지 가난 때문이었네.
부침지위빈
* 後塵 후진: 사람이나 마차가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먼지.
6. 與人交拙 타인과의 교제가 졸함
位下人誰記 지위 낮은 이를 누가 기억하랴!
위하인수기
名微不與言 명성이 미미하니 함께 말할 수 없네.
명미불여언
詩成還自和 시가 이루어지면 다시 스스로에게 화답하고
시성환자화
酒熟獨開罇 술이 익으면 홀로 술독을 개봉하네.
주숙독개준
寂寞憑松竹 적막한 신세는 소나무와 대나무에 기대니
적막빙송죽
清貧友子孫 아들과 손자는 청빈을 벗 삼네.
청빈우자손
浮沈六十歲 부대끼며 침잠한 60년 세월
부침육십세
朝暮掩衡門 아침저녁 막대로 가로지른 문을 닫네.
조모엄형문
* 淸貧友子孫: 子孫友淸貧의 도치이다. 평측 안배와 대장을 맞추기 위해 도치되었다.
7. 政拙 정사에 졸함
一生惟率意 일생은 오직 내 뜻에 따랐으니
일생유솔의
萬事日荒嬉 만사는 매일 황폐해짐으로 기뻐했네.
만사일황희
奉獻常居後 받들어 바치는 일은 언제나 뒤서면서
봉헌상거후
催科不用笞 세금을 재촉하여 매질하지 않았네.
최과불용시
墻傾仍補缺 담장이 기울면 그럭저럭 결함을 보수하고
장경잉보결
屋老任扶危 집이 낡으면 임의로 위험한 곳을 받쳤네.
옥노임부위
尸坐經時月 시체처럼 앉아 세월을 보내며
시좌경시월
因循只自欺 인습으로 순환하며 단지 자신을 속일 뿐!
인순지자기
* 荒嬉:業荒於嬉의 준말.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 속 “業精於勤, 荒於嬉. 行成於思, 毀於隨” 공부는 부지런함으로 이루어지고, 놀기에 빠지면 황폐해진다. 행동은 사색으로 완성되고, 아무렇게나 따라다니면 훼손된다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지나치게 오락에 빠지면 학업이나 사업이 황폐해진다는 뜻.
* 尸: 尸位素餐 준말. 시체처럼 아무 일 안 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공짜로 밥만 먹는다. 직책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실질적인 일을 하지 않고 녹(祿)만 축낸다는 뜻이지만 자의만으로도 잘 통한다.
8. 身謀拙 자신을 도모함에 졸함
齷齪唯招辱 악착의 성정은 오직 치욕을 초래했으니
악착유초욕
清狂只自迷 청렴에 미쳐 단지 스스로 혼미해졌네.
청광지자미
畫蛇仍着足 뱀을 그리면 거듭 발을 붙이는 격
화사잉착족
操瑟願求齊 비파를 타면 제나라 (선왕이) 구해주길 원하는 격
조슬원구제
盛世功名薄 태평성세에 공명은 박했고
성세공명박
豐年婦子啼 풍년에도 처자식은 울었네.
풍년부자제
蝸休猶有殼 달팽인 쉴 때도 오히려 껍질 속에 있지만
와휴유유각
無地一枝棲 나에게는 한 가지가 깃들 땅조차 없네.
무지일지서
* 畵蛇仍着足: 화사첨족(畫蛇添足)과 같다.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에 나오는 이야기. 제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후, 여러 사람이 함께 술 한 병을 상으로 받았다. 사람들이 뱀을 그려서, 제일 먼저 그린 사람이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남보다 먼저 뱀을 다 그린 뒤, ‘아직 시간 있다’며 뱀에 발까지 그렸습니다. 그사이에 다른 사람이 먼저 완성해 버려, 결국 그는 술을 마시지 못했다. 군더더기를 붙이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
* 求齊: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 齊나라 宣王의 비파(琵琶) 연주 고사. 제나라 선왕이 어느 날 연회에서 악사(樂師)들을 불러 연주를 시켰다. 한 악사가 비파를 타는데, 그는 현을 뜯는 시늉만 하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선왕은 그 연주가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상을 내렸다. 뒤에 다른 악사가 진짜로 비파를 연주하자, 선왕은 “이전의 연주가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하가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진정한 연주를 들은 것이 아니라, 모양과 모습에만 현혹된 것입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일을 풍자하는 뜻으로 쓰인다. 성어에는 성어로 대장해야 하므로 위와 같이 번역해 둔다.
피리
9. 子孫計拙 자손에 대한 계책의 졸함
物性最無知 동물의 성정이 가장 무지한 한 것 같아도
물성최무지
慈天若有彛 자애로운 천성은 마치 떳떳한 인륜이 있는 듯
자천약유이
牛頑猶咶犢 소는 미련해도 오히려 송아지를 핥고
우완유홀이
鳩拙尙飼兒 비둘기는 어리석어도 또한 새끼를 먹이네.
구졸상사아
數頃湖田薄 몇 이랑의 논은 척박하고
수경호전박
三間草屋欹 세 칸 초가집은 기울었네.
삼간초옥기
問渠將底業 개천 신세에 묻노니, 장차 밑바닥 업일 것을!
문거장저업
付與子孫貽 자손에게까지 따라붙어 끼칠 것이니!
부여자손이
* 湖田: 水田으로 써야 하지만, 평측 안배 때문에 호전으로 표현했다.
10. 合而詠之 합하여 졸을 읊음
此老生平困 이 늙은이 평생 곤궁했으니
차로생평곤
都緣一拙偏 모두 일방의 졸에 치우쳤기 때문이네.
도연일졸편
力排應不去 (졸을) 힘써 배척하려 해도 제거할 수 없었고
역배응불거
角逐又無便 (졸로써) 각축한들 또한 방편 없었네.
각축우무편
自識皆由命 절로 알았으니, 모두가 운명에 기인한 것을!
자식개유명
人言始得天 사람들은 말하길 일찍부터 천성으로 체득한 것이라네.
인언시득천
猶嫌乞巧女 여전히 공교한 직녀의 (베 짜는 솜씨) 구걸을 싫어하여
유혐걸교녀
抱甕願終年 독 안고 (물 나르는 수고를 감내하며) 만년 마치길 원하네.
포옹원종년
* 猶嫌乞巧女: 직녀(織女)에게 솜씨를 구하는 것을 싫어함. 乞巧는 칠월 칠석 밤에 여인들이 직녀(織女)에게 재주(바느질·수놓기 솜씨)를 빌며 바늘 꿰기, 바느질 시합 등을 하는 풍속. 직녀는 은하수 건너 견우와 떨어져 지내는 베짜기 신으로, 솜씨와 재주를 관장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乞巧女는 “칠석날 솜씨를 비는 여자”를 가리키며, 여기서는 타인의 재주나 복을 빌려 쓰는 것을 빗대어 한 말. 동진(東晉) 간보(干寶)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등에 실려 있다.
* 抱甕願終年: 독(항아리)을 안고 평생 살기를 원함. 《열자(列子)·황제편(黄帝篇)》에 나오는 포옹관원(抱甕灌園)의 고사. 송(宋)나라 한 농부가 밭에 물을 주려 두레박으로 길어 항아리에 옮겨 담아 나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더 편한 방법(물레방아 같은 기계)이 있다”고 알려주자, 농부는 “그런 편한 방법을 쓰면 탐욕스러운 마음이 생겨 결국 자연과 멀어지고 재앙이 생긴다”며 거절했다. 抱甕은 문자 그대로 “독을 안다”지만, 고사에서는 스스로 수고를 감수하며 순박하게 사는 태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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