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處暑 처서 여본중(呂本中)
平時遇處暑 평안의 시대에 (고향에서) 처서를 맞이하면
평시우처서
庭戶有餘涼 뜰과 문간에는 약간의 서늘함이 있었지!
정호유여량
乙紀走南國 (황제 즉위) 둘째 해에 남국으로 도주했는데
을기주남국
炎天非故鄕 (이곳에는 처서에도) 염천이라 고향과 다르네.
염천비고향
寥寥秋尚遠 쓸쓸히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갈) 가을은 오히려 요원하여
료료추상원
杳杳夜光長 아득히 아득히 밤 빛은 길어져만 가네.
묘묘야광장
尙可留連否 오히려 이곳에서 머물 날이 이어질지도!
상가류련부
年豐粳稻香 해마다 풍년 들어 멥쌀 벼는 향기롭네.
년풍갱도향
* 행간의 의미를 보충해야만 비로소 내용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유명한 작품으로 알려 있지만,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 여본중(吕本中 1084~1145) 생애와 〈處暑〉의 맥락: 여본중은 자(字)를 성지(成之)라 하고 호를 직옹(直翁)이라 하였으며, 북송 말에서 남송 초에 걸쳐 활동한 시인이다. 젊은 시절에는 북송의 마지막 황제 휘종(徽宗)·흠종(欽宗) 연간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곧 靖康之變(1127) 을 겪으며 시대적 격변 속에 휘말렸다. 금나라 군대가 북송의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두 황제를 포로로 끌고 간 사건으로, 북송은 이때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른바 정강지치(靖康之恥)이다.
국가가 무너지자, 조정 대신들과 문사들은 남쪽으로 피난했고, 조카였던 조구(趙構)가 항주에서 즉위하여 송 고종(宋高宗)이 되었으며, 새로운 정권인 남송이 성립하였다. 여본중도 이 무렵 강남으로 내려가 새 왕조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는 이후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시대의 아픔과 실향의 정조는 끝내 그의 문학 전반을 지배하였다.
〈處暑〉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지어진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의 “乙紀走南國”이라는 구절은 고종 즉위 뒤 둘째 해, 곧 建炎 2년(1128) 전후의 상황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走”자는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나라 잃고 달아나는 피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시 속의 계절 묘사, 곧 북방의 처서에는 집과 뜰에 “餘凉(남은 서늘함)”이 돌았다는 회상과, 남방의 처서는 여전히 “炎天(무더위)”에 시달린다는 대비는 단순한 기후 관찰이 아니다. 이는 곧 잃어버린 고향과, 낯선 땅에서의 체념적 삶을 상징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尙可留連否?年豐粳稻香”이라 자문자답하는 대목은,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역사적 현실과 풍년과 풍요 속에 안주해야 하는 남송의 체제를 동시에 비추고 있다.
⇓ChatGPT의 해설
여본중의 시 〈처서〉는, 남송으로 피난 내려온 시인이 계절의 변화를 맞으며 느낀 마음을 담은 작품입니다. 시의 첫머리에서 시인은 고향 북방의 처서를 떠올립니다. “평소 처서를 맞으면 뜰과 문간에는 약간의 서늘함이 있었지.” 고향에서는 입추와 처서만 되면 더위가 한풀 꺾이고, 집 안팎으로 선선한 기운이 스며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남방입니다. “황제 즉위 둘째 해에 남쪽으로 도주해 왔는데, 이곳은 처서에도 여전히 염천이라 고향과는 다르다.” 남쪽의 처서는 여전히 무덥고 습하여, 북방에서 누렸던 그 서늘함을 전혀 맛볼 수 없습니다.
이어서 시인은 시간의 감각을 말합니다. “쓸쓸히 쓸쓸히, 가을은 아직도 멀고, 아득히 아득히 긴긴 밤빛만 이어진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가을’은 끝내 닿지 않고, 대신 끝없는 여름밤만 달빛 아래 길게 이어지는 듯합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계절의 묘사만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갈 가망이 점점 희박해지는 실향인의 비애가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두 구에서 시인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히려 이곳에 눌러앉아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자기 체념이 섞여 있고, 또 다른 층위에서는 무능한 황제가 남쪽에 안주할 기미를 풍자하는 뉘앙스도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답합니다. “해마다 풍년이 들어 멥쌀 벼 향기가 가득하니.” 남방은 비록 고향이 아니지만, 해마다 벼가 잘 익고 곡식이 풍족하니 삶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픔을 품은 채, 현실 속 풍족함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체념과 순응의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이 시는 단순히 “계절의 풍경”을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북방과 남방의 기후 차이를 대비하며, 여름의 끝 무렵을 묘사한 계절 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망국인의 상실감, 고향 회귀 불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순응의 정서가 겹겹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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