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熱讀〈天理〉 열독〈천리〉 천리를 열독하다 기(基)운
天理昭昭何在遠 하늘의 이치는 밝고 밝아 어찌 멀리 있겠는가!
천리소소하재원
四季巡行覺眞意 사계의 순행에서 진의를 깨닫네.
사계순행각진의
七情調和心自安 칠정이 조화해야 마음 절로 편안하고
칠정조화심자안
四端發現世更美 사단이 발현되면 세상 더욱 아름답네.
사단발현세갱미
夫子敎仁明大倫 공자는 인을 가르치며 대륜을 밝혔고
부자교인명대륜
老聃隨易說無爲 노자는 주역 따라 무위를 설파했네.
노담수역설무위
九拙性情奉聖賢 아홉 졸의 성정이 성현을 받드나니
구졸성정봉성현
大巧若拙歸天理 큰 교묘함은 졸 같아 천리로 돌아가네.
대교약졸귀천리
* 25.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독후감 시: 가능한 〈天理〉의 원문을 많이 활용하도록 한다.
⇕
天理 하늘 이치 구졸암(九拙菴)
天理昭昭非在遠 하늘의 이치는 밝고 밝아 멀리 있는 것 아니니
천리소소비재원
看來都只備吾身 살펴보니 모두 내 몸에 갖추어져 있네.
간래도지비오신
七情未動風雷靜 칠정이 움직이지 않으니 바람과 우레도 고요하고
칠정미동풍뇌정
兩眼重明日月新 두 눈이 다시 밝아지니 해와 달이 새롭네.
양안중명일월신
老子漸衰方驗易 늙은이 점차 쇠해짐에 비로소 주역을 체험했고
노자점쇠방험역
少兒日長可觀仁 아이들 매일 자람에 인의 본성을 살필 수 있네.
소아일장가관인
如何後學求諸外 어찌 후학들은 모두 바깥에서 구하려 하는가!
여하후학구제외
從事虛無不着眞 허무에 종사하면 진리에 정착하지 못하나니!
종사허무부착진
‧ 讀覺〈言拙〉 말의 졸함을 읽고 깨닫다
笑裏藏刀李義府 웃음 속에 칼을 감춘 이의부
소리장도이의부
口蜜腹劍李林甫 입술에 꿀 바르고 배에 칼 찬 이임보
구밀복검이임보
巧言令色鮮仁者 교언영색에 어진 자 드물고
교언영색선인자
拙朴誠心合天道 졸박의 성심이 천도에 합쳐지네.
졸박성심합천도
忍受屈辱無訟事 굴욕을 참고 견디며 송사하지 않고
인수굴욕무송사
當遭誣告堪嘲笑 무고를 당해도 조소를 감내하네.
당조무고감조소
小人懷土以巧窮 소인은 토지 품어도 공교함으로 궁해지고
소인회토이교궁
君子懷德以拙高 군자는 덕을 품어 졸로서 고귀해지네.
군자회덕이졸고
* 15. 고(高)운: 고, 교, 노, 뇨, 로, 료, 도, 모, 묘, 보, 소, 오, 요, 조, 초, 토, 포, 표, 호, 효
* 원문의 〈言拙〉을 칠언(七言)으로 재구성했다.
* 小人懷土, 君子懷德: 《논어(論語)·이인(里仁)》의 인용이다.
⇕
言拙 언졸 말이 졸함 구졸암(九拙菴)
人皆口舌饒 사람들 모두 (청탁의) 입과 혀 놀림 넉넉한데
인개구설요
我獨政如膠 나만 유독 (청탁의) 정치에는 아교처럼 굳어버리네.
아독정여교
見屈猶無訟 굴욕을 당해도 오히려 송사하지 않고
견굴유무송
當誣未解嘲 무고를 당해도 조소에 해명하지 않네.
당무미해조
欲言疑已餂 말하려 하면 의뭉하다며 이미 낚아채고
욕언의이첨
將發被人剿 말을 시작하려 하면 타인에게 잘려버리네.
장발피인초
默笑觀時變 묵묵히 웃으며 시대의 변화를 관찰해 보니
묵소관시변
期期漸可抛 기대하고 기대했던 일은 점차 포기하려네.
기기점가포
‧ 함양향교 천령(天嶺) 한시 협회 시회(詩會) 개최
1. 일시: 2025년 9월 중
2. 장소: 미정
3. 시제: 追慕九拙菴(추모 구졸암)
4. 작시 방법: 대한신운(大韓新韻) 칠언율시(七言律詩). 구졸암(九拙菴)의 시 내용을 독후감 형식으로 구성한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변형하여 최소한 2구 이상은 반영이 되도록 구성하기를 권장한다.
5.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 양희(梁喜 1515~1580)는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1520~1578),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과 더불어 함양의 삼걸(三傑)로 칭해졌다. 1515년(중종 10)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효우촌(孝友村)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자는 구이(懼而), 호는 구졸암(九拙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양천지(梁川至),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일로당 양관(梁灌 1437~1507). 아버지는 첨정(僉正) 양응곤(梁應鵾)이다.
1540년(중종 35) 26세의 나이로 사마시(司馬試)에 장원 급제하였고,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과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대윤(大尹) 윤임(尹任 1487~1545)의 권세로 인하여 외직으로 나갔다가 김해 부사를 끝으로 서울로 소환되어 1568년(선조 1)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춘추관 편수관을 겸직하여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파주목사, 사간, 의주목사, 승지를 거쳐 1580년(선조 13)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를 지냈다. 같은 해 동지사(冬至使) 사행길에 올라 명나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옥하관(玉河館)에서 향년 66세로 병사하였다. 양희의 유고는 남원양씨 문인들의 글을 수집한 《용성세고(龍城世稿)》에 전한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6. 구졸암 양희 선생 시 모음(九拙菴梁喜詩) * 앞서 모두 올렸다.
‧ 玉河館臨終製一節奉呈同行 옥하관에서 임종 시에 절구 한 수 지어 동행한 사람에게 드리다
萬里關河氷雪嚴 만 리의 옥하관에 얼음과 눈 엄혹하고
만리관하빙설엄
迢迢無暇駐征驂 멀고 먼 길에 원정의 말을 주둔할 틈이 없네.
초초무하주정참
有人若問儂消息 만약 누군가가 내 소식을 묻는다면
유인약문농소식
王事驅馳死不嫌 왕의 일로 내달리며 죽음 꺼리지 않았다고 전하길!
왕사구치사불혐
‧ 天理 천리 하늘 이치
天理昭昭非在遠 하늘의 이치는 밝고 밝아 멀리 있는 것 아니니
천리소소비재원
看來都只備吾身 살펴보니 모두 내 몸에 갖추어져 있네.
간래도지비오신
七情未動風雷靜 칠정이 움직이지 않으니 바람과 우레도 고요하고
칠정미동풍뇌정
兩眼重明日月新 두 눈이 다시 밝아지니 해와 달이 새롭네.
양안중명일월신
老子漸衰方驗易 늙은이 점차 쇠해짐에 비로소 주역을 체험했고
노자점쇠방험역
少兒日長可觀仁 아이들 매일 자람에 인의 본성을 살필 수 있네.
소아일장가관인
如何後學求諸外 어찌 후학들은 모두 바깥에서 구하려 하는가!
여하후학구제외
從事虛無不着眞 허무에 종사하면 진리에 정착하지 못하나니!
종사허무부착진
‧ 冬雪夜 눈 내리는 겨울밤
幽人要結歲寒盟 은자는 세밑 추위 견디려는 맹약을 결심했지만
유인요결세한맹
獨訪江樓興轉狂 홀로 강변 누각을 찾은 흥은 광기로 바뀌네.
독방강루흥전광
雪墮吟脣詩欲凍 눈발 서슬 떨어지니 입술로 읊는 시조차 얼어붙으려 하고
설타음순시욕동
梅飄歌扇曲生香 매화는 흩날려져 부채로 노래하는 곡에서만 향기 나네.
매표가선곡생향
人從銀漢橋邊過 사람 다리 변에서 은하수 따라 지나가지만
인종은한교변과
月卦瓊瑤宮裏凉 달 궁전 속에는 옥을 걸어도 처량할 뿐이라네.
월괘경요궁리량
明日日高風正急 내일 해가 높이 뜨고 바람 바야흐로 급해지면
명일일고풍정급
招魂何處覓餘芳 어느 곳에서 혼을 불러 남은 향기를 찾겠는가!
초혼하처멱여방
* 冬雪夜 눈 내리는 겨울밤. 단순한 겨울밤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의 겨울밤이다. 사화와 당쟁의 참화를 풍자하려 했으나 지나친 은유로 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 人從銀漢橋邊過, 月卦瓊瑤宮裏凉: 人橋邊從銀漢過, 月宮裏卦瓊瑤凉이 되어야 올바르지만, 지나친 은유로 구를 뒤섞었다. 직설로 표현했으면, 참화를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 ChatGPT의 해설
첫 구 「幽人要結歲寒盟」 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은자’로 세우지만,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혹한의 시대를 견디겠다는 결의다. ‘세한(歲寒)’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사화와 당쟁의 서슬 퍼런 정치 겨울을 가리킨다. 이어지는 「獨訪江樓興轉狂」 은 그 결의를 다지려 홀로 강루에 오르지만, 높이에서 조망되는 현실은 결의보다 격정과 광분을 먼저 불러낸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의지가 긴장과 불안으로 뒤집히는 순간이다.
세 번째 구 「雪墮吟脣詩欲凍」 의 ‘눈(雪)’은 차가운 날씨가 아니라 권력의 서슬이다.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해 입속으로만 중얼거리는 풍자시(詩經적 ‘刺’의 전통)조차 얼어붙게 만든다. 네 번째 구 「梅飄歌扇曲生香」 에서 ‘매화’는 고결의 표상인데 ‘飄’는 나부낌이 아니라 표령(漂零)의 뉘앙스를 띤다. 곧, 고결함은 바람에 흩어져 자취를 감추고, 연회(歌扇)의 곡조에서만 그럴듯한 향기(허울 좋은 명성)만 남는 세태를 비꼰다.
이어서 문제의 다섯·여섯 구가 나온다. 원문은 「人從銀漢橋邊過, 月卦瓊瑤宮裏凉」 이지만, 의미상으로는 「人橋邊從銀漢過, 月宮裏卦瓊瑤凉」이 더 자연스럽다. 앞부분은 ‘놋다리 곁에서 은하를 건너간다’는 뜻이고, 뒷부분은 ‘달 궁전 속에 옥을 걸었으나 서늘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어순을 바꿨다. 형식적 이유로는 7언의 운율·평측 자리를 맞추려는 도치가 있고, 내용적으로는 ‘銀漢(높고 먼 권력자)’과 ‘卦(掛/卦의 중의—달빛이 걸린 형상과 운명적 조짐)’을 전면에 내세워 독자의 시선을 먼저 꽂기 위한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권력에 접근하는 사람들—그러나 달의 옥궁은 냉엄하다’는 메시지가 이미지 선행 방식으로 각인된다.
마지막 두 구에서 「明日日高風正急」 은 ‘맑은 내일’이 아니라 권력의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각, 숙청의 바람이 정면으로 거세지는 때를 암시한다. 그래서 「招魂何處覓餘芳」 의 ‘남은 향기(餘芳)’는 반드시 고결한 인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때 번성했던 가치의 잔향일 수도, 허울뿐인 명성의 남은 냄새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사라진 것들을 부르려 하나 더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허무가 결구에 남는다.
요컨대 이 시는 사화와 당쟁의 불안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쓰지 못하던 시대의 문법을 따른다. 직설은 목을 잃는 길이었기에, 시인은 눈·매화·노래부채·놋다리·은하·옥궁 같은 상징과 도치를 방패 삼아 말한다. 겉으로는 ‘겨울 눈의 밤’이지만, 속으로는 권력의 냉혹과 희생, 그리고 상실의 탄식이 촘촘히 깔려 있다.
‧ 九拙菴十詠(구졸암십영) 구졸암이 졸(拙) 10수를 읊다
① 性拙 성졸 성품의 졸함
天賦難中革 하늘이 부여한 성품은 중간에 고치기 어려워
천부난중혁
疎慵不自由 소홀하고 나태하여 부자유스럽네.
소용불자유
入城如負罪 성안에 들어가면 죄지은 듯하고
입성여부죄
見客似包羞 손님을 만나면 부끄러움을 감싸안은 듯하네.
견객사포수
身老嫌乘轎 몸은 늙었어도 가마타기를 싫어하고
신로혐승교
冬寒愛弊裘 겨울이 추워도 해진 갖옷을 사랑하네.
동한애폐구
平生常置散 평생 늘 (자신을) 방치하고 산만하여
평상상치산
未肯向人求 결코 타인에게 구하려 하지 않았네.
미긍향인구
② 貌拙 모졸 용모의 졸함
鐵面元非婉 쇠처럼 굳은 얼굴은 본디 부드럽지 않고
철면원비완
齒牙又可憎 치아 또한 가증스럽게 생겼다네.
치아우가증
厖眉愁不展 숱 많은 눈썹은 근심에 펴지질 않고
방미수불전
白眼疲生稜 흰자위 눈은 피로에 서슬이 생기네.
백안피생릉
耐冷松丫鶴 추위를 견디는 소나무 가지의 학 같고
내냉송아학
休糧竹院僧 양식 끊겨도 (태연한) 대숲 사원의 중 같네.
휴량죽원승
猶甘顔駟醜 오히려 안사의 추함은 달갑게 여기지만
유감안사추
羞與子朝稱 자조와 함께 불리기는 부끄럽다네.
수여자조칭
* 안사(顔駟):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인물. 한 문제(漢文帝,기원전 180~157) 때부터 郎(낭, 황제를 시종하는 관직)으로 재직함. 《한무고사(漢武故事)》에 따르면: 문제 때는 무(武)를 좋아해 문(文)을 중시하는 황제와 맞지 않았고, 경제(景帝)는 용모가 준수한 신하를 좋아했는데 안사는 외모가 추해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무제(武帝)는 젊고 유능한 신하를 좋아했는데, 그 무렵 안사는 이미 늙어 있었다. 그래서 세 황제를 거치는 동안 번번이 발탁되지 못하고, “白首爲郎悲顔駟(백발에도 郞에 그친 비운의 안사)”라는 말이 생겼다. 재능이 있어도 시운을 만나지 못한 인물의 상징이다.
* 자조(子朝): 춘추시대 송(宋)나라 대부. 본명 송조(宋朝). 용모와 언변은 뛰어났으나 덕망과 실질이 부족하여, 후대에 겉만 번지르르한 인물의 상징으로 인용된다.
③ 言拙 언졸 말이 졸함
人皆口舌饒 사람들 모두 (청탁의) 입과 혀 놀림 넉넉한데
인개구설요
我獨政如膠 나만 유독 (청탁의) 정치에는 아교처럼 굳어버리네.
아독정여교
見屈猶無訟 굴욕을 당해도 오히려 송사하지 않고
견굴유무송
當誣未解嘲 무고를 당해도 조소에 해명하지 않네.
당무미해조
欲言疑已餂 말하려 하면 의뭉하다며 이미 낚아채고
욕언의이첨
將發被人剿 말을 시작하려 하면 타인에게 잘려버리네.
장발피인초
默笑觀時變 묵묵히 웃으며 시대의 변화를 관찰해 보니
묵소관시변
期期漸可抛 기대하고 기대했던 일은 점차 포기하려네.
기기점가포
* 期期: 기기애애(期期艾艾)의 준말. 말을 더듬는 모양. 중국 전한(前漢)의 주창(周昌)은 원래 말을 더듬는 데다 몹시 성이 나서 간(諫)하느라 황제 앞에서 “신(臣)은 기(期), 기필코(期必-) 그것이 불가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臣期期知其不可).”라고 말을 더듬었다는 데서 유래(由來)한다. 즉 주창이 더듬으면서 불가하다고 황제 앞에 간언한 것처럼, 더듬거리며 불가하다는 말은 점차 포기한다는 뜻이지만 자의대로 더 잘 통한다.
④ 文拙 문졸 문장의 졸함)
少年從學懶 젊어서는 학문을 따르는데 나태했고
소년종학나
絶域見聞偏 단절된 지역이라 견문은 편협했네.
절역견문편
燥吻思尤涸 건조한 입술처럼 사고는 더욱 고갈되고
조문사우학
沈吟句未圓 침잠하며 음미해도 자구의 이해는 원숙하지 않네.
침음구미원
羈愁惟有嘯 나그네 우수에는 오직 (탄식의) 휘파람만 있고
기수유유소
閑適只供眠 한적해지면 단지 잠에 이바지할 뿐!
한적지공면
湖嶺遊將遍 영호남을 거의 편력하며 유람했는데
호령유장편
樓臺欠一聯 누대에는 한 연을 남기는데도 결핍이 있네.
루대흠일련
⑤ 官拙 벼슬의 졸함
世人非我棄 세상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며 포기하라 하고
세인비아기
吏部用賢臣 관리 임용 부서에서는 (나 대신) 현신을 기용했다네.
이부용현신
雅望皆前列 아정하고 명망 있는 자들은 이들은 모두 앞 열에 서고
아망개전렬
疎慵獨後塵 소원하고 게으른 나는 유독 뒤따르는 먼지 같네.
소용독후진
朝廷常屏跡 조정에서는 언제나 병풍 같은 자취요
조정상병적
州縣或藏身 주현에서도 때로는 간혹 감추어야 할 (낮은) 신분이네.
주현혹장신
自識休官好 관직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스스로 알았지만
자식휴관호
浮沈只為貧 부대끼다 침잠함은 단지 가난 때문이었네.
부침지위빈
* 後塵 후진: 사람이나 마차가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먼지.
⑥ 與人交拙 여인교졸 타인과의 교제가 졸함
位下人誰記 지위 낮은 이를 누가 기억하랴!
위하인수기
名微不與言 명성이 미미하니 함께 말할 수 없네.
명미불여언
詩成還自和 시가 이루어지면 다시 스스로에게 화답하고
시성환자화
酒熟獨開罇 술이 익으면 홀로 술독을 개봉하네.
주숙독개준
寂寞憑松竹 적막한 신세는 소나무와 대나무에 기대니
적막빙송죽
清貧友子孫 아들과 손자는 청빈을 벗 삼네.
청빈우자손
浮沈六十歲 부대끼며 침잠한 60년 세월
부침육십세
朝暮掩衡門 아침저녁 막대로 가로지른 문을 닫네.
조모엄형문
* 淸貧友子孫: 子孫友淸貧의 도치이다. 평측 안배와 대장을 맞추기 위해 도치되었다.
⑦ 政拙 정졸 정사에 졸함
一生惟率意 일생은 오직 내 뜻에 따랐으니
일생유솔의
萬事日荒嬉 만사는 매일 황폐해짐으로 기뻐했네.
만사일황희
奉獻常居後 받들어 바치는 일은 언제나 뒤서면서
봉헌상거후
催科不用笞 세금을 재촉하여 매질하지 않았네.
최과불용시
墻傾仍補缺 담장이 기울면 그럭저럭 결함을 보수하고
장경잉보결
屋老任扶危 집이 낡으면 임의로 위험한 곳을 받쳤네.
옥노임부위
尸坐經時月 시체처럼 앉아 세월을 보내며
시좌경시월
因循只自欺 인습으로 순환하며 단지 자신을 속일 뿐!
인순지자기
* 荒嬉:業荒於嬉의 준말.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 속 “業精於勤, 荒於嬉. 行成於思, 毀於隨” 공부는 부지런함으로 이루어지고, 놀기에 빠지면 황폐해진다. 행동은 사색으로 완성되고, 아무렇게나 따라다니면 훼손된다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지나치게 오락에 빠지면 학업이나 사업이 황폐해진다는 뜻.
* 尸: 尸位素餐 준말. 시체처럼 아무 일 안 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공짜로 밥만 먹는다. 직책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실질적인 일을 하지 않고 녹(祿)만 축낸다는 뜻이지만 자의만으로도 잘 통한다.
⑧ 身謀拙 신모졸 자신을 도모함에 졸함
齷齪唯招辱 악착의 성정은 오직 치욕을 초래했으니
악착유초욕
清狂只自迷 청렴에 미쳐 단지 스스로 혼미해졌네.
청광지자미
畫蛇仍着足 뱀을 그리면 이에 발을 붙이는 격
화사잉착족
操瑟願求齊 비파를 타면 제나라 (선왕이) 구해주길 원하는 격
조슬원구제
盛世功名薄 태평성세에 공명은 박했고
성세공명박
豐年婦子啼 풍년에도 처자식은 울었네.
풍년부자제
蝸休猶有殼 달팽인 쉴 때도 오히려 껍질 속에 있지만
와휴유유각
無地一枝棲 나에게는 한 가지가 깃들 땅조차 없네.
무지일지서
* 畵蛇仍着足: 화사첨족(畫蛇添足)과 같다.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에 나오는 이야기. 제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후, 여러 사람이 함께 술 한 병을 상으로 받았다. 사람들이 뱀을 그려서, 제일 먼저 그린 사람이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남보다 먼저 뱀을 다 그린 뒤, ‘아직 시간 있다’며 뱀에 발까지 그렸습니다. 그사이에 다른 사람이 먼저 완성해 버려, 결국 그는 술을 마시지 못했다. 군더더기를 붙이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
* 求齊: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 齊나라 宣王의 비파(琵琶) 연주 고사. 제나라 선왕이 어느 날 연회에서 악사(樂師)들을 불러 연주를 시켰다. 한 악사가 비파를 타는데, 그는 현을 뜯는 시늉만 하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선왕은 그 연주가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상을 내렸다. 뒤에 다른 악사가 진짜로 비파를 연주하자, 선왕은 “이전의 연주가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하가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진정한 연주를 들은 것이 아니라, 모양과 모습에만 현혹된 것입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일을 풍자하는 뜻으로 쓰인다. 성어에는 성어로 대장해야 하므로 위와 같이 번역해 둔다.
⑨ 子孫計拙 자손계졸 자손에 대한 계책의 졸함
物性最無知 동물의 성정이 가장 무지한 한 것 같아도
물성최무지
慈天若有彛 자애로운 천성은 마치 떳떳한 인륜이 있는 듯
자천약유이
牛頑猶咶犢 소는 미련해도 오히려 송아지를 핥고
우완유홀이
鳩拙尙飼兒 비둘기는 어리석어도 또한 새끼를 먹이네.
구졸상사아
數頃湖田薄 몇 이랑의 논은 척박하고
수경호전박
三間草屋欹 세 칸 초가집은 기울었네.
삼간초옥기
問渠將底業 개천 신세에 묻노니, 장차 밑바닥 업일 것을!
문거장저업
付與子孫貽 자손에게까지 따라붙어 끼칠 것이니!
부여자손이
* 湖田: 水田으로 써야 하지만, 평측 안배 때문에 호전으로 표현했다.
⑩ 合而詠之 합이영지 합하여 졸을 읊음
此老生平困 이 늙은이 평생 곤궁했으니
차로생평곤
都緣一拙偏 모두 일방의 졸에 치우쳤기 때문이네.
도연일졸편
力排應不去 (졸을) 힘써 배척하려 해도 제거할 수 없었고
역배응불거
角逐又無便 (졸로써) 각축한들 또한 방편 없었네.
각축우무편
自識皆由命 절로 알았으니, 모두가 운명에 기인한 것을!
자식개유명
人言始得天 사람들은 말하길 일찍부터 천성으로 체득한 것이라네.
인언시득천
猶嫌乞巧女 여전히 공교한 직녀의 (베 짜는 솜씨) 구걸을 싫어하여
유혐걸교녀
抱甕願終年 독 안고 (물 나르는 수고를 감내하며) 만년 마치길 원하네.
포옹원종년
* 猶嫌乞巧女: 직녀(織女)에게 솜씨를 구하는 것을 싫어함. 乞巧는 칠월 칠석 밤에 여인들이 직녀(織女)에게 재주(바느질·수놓기 솜씨)를 빌며 바늘 꿰기, 바느질 시합 등을 하는 풍속. 직녀는 은하수 건너 견우와 떨어져 지내는 베짜기 신으로, 솜씨와 재주를 관장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乞巧女는 “칠석날 솜씨를 비는 여자”를 가리키며, 여기서는 타인의 재주나 복을 빌려 쓰는 것을 빗대어 한 말. 동진(東晉) 간보(干寶)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등에 실려 있다.
* 抱甕願終年: 독(항아리)을 안고 평생 살기를 원함. 《열자(列子)·황제편(黄帝篇)》에 나오는 포옹관원(抱甕灌園)의 고사. 송(宋)나라 한 농부가 밭에 물을 주려 두레박으로 길어 항아리에 옮겨 담아 나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더 편한 방법(물레방아 같은 기계)이 있다”고 알려주자, 농부는 “그런 편한 방법을 쓰면 탐욕스러운 마음이 생겨 결국 자연과 멀어지고 재앙이 생긴다”며 거절했다. 抱甕은 문자 그대로 “독을 안다”지만, 고사에서는 스스로 수고를 감수하며 순박하게 사는 태도를 상징한다.
7. 題九拙菴上梁明府 제구졸암상양명부 구졸암 양명부에 대해 쓰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大朴散生巧 큰 교묘함은 흩어져 졸박을 낳으니
대박산생교
拙乃物之初 졸박이 바로 만물의 시초라네.
졸내물지초
使君已聞道 사군께서는 이미 노자의 도를 깨달아
사군이문도
自修恒有餘 스스로 수양하여 항상 여유 있으시네.
자수항유여
直性乘眞率 곧은 성품에 진솔함을 곱하였고
직성승진솔
古貌又淸疏 예스러운 용모에 또한 맑고 소탈하시네.
고모우청소
有言實不華 말은 진실하며 부화함이 없고
유언실불화
有文鬱而舒 문장은 응집되어 펼치네.
유문울이서
觀德不主皮 덕을 살핌에 겉모습을 위주로 하지 않고
관덕불주피
宦遊任乘除 벼슬은 유람하듯 가감승제에 맡기네.
환유임승제
貧交淡若水 청빈의 사귐은 담담하여 물과 같고
빈교담약수
屢空常晏如 쌀독 누차 비어도 항상 태연하였네.
루공상안여
子孫遺以安 자손에게는 남긴 것은 안분이려니
자손유이안
負郭無菑畬 성곽 짊어진 (벼슬했어도) 묵정밭 새 밭조차 없네.
부곽무자여
裝點此九拙 이 아홉 가지 질박함을 점철로 장식하여
장점차구졸
作扁揭林居 편액을 만들어 숲속 거처에 걸었네.
작편게림거
一菴小如舟 한 채의 암자는 작은 배와 같고
일암소여주
細逕直通閭 좁은 오솔길은 곧바로 마을과 통하네.
세경직통려
土砌種節友 흙 계단에는 절개 벗의 (상징을) 심었고
토체종절우
峯翠蘸淸渠 비취 봉우리는 맑은 개울에 잠기었네.
봉취잠청거
簷前蔓龍鬚 처마 앞에는 용수염 같은 (등심초가) 뻗어 있고
첨전만용수
柳下觀游魚 버드나무 아래에는 유영하는 고기를 볼 수 있네.
유하관유어
逍遙岸烏紗 강 언덕에서 소요하는 (지난날의) 오사모
소요안오사
野老牽衣裾 시골 노인이 옷자락을 잡아 이끄네.
야로견의거
夕日曖山城 석양빛은 산성에 어슴푸레하고
석일애산성
嵐光落幽廬 산 아지랑이 빛은 그윽한 초가에 내려앉네.
남광낙유려
入室人語靜 방 안에 드니 사람 말소리 조용조용하고
입실인어정
四壁盈圖書 사방 벽에는 도서로 가득하네.
사벽영도서
俯仰生事足 굽어보고 우러러보아도 인생사 만족하니
부앙생사족
拙境樂只且 졸박의 경지지만 그저 또한 즐겁다네.
졸경락지차
聊將拙作郡 그저 졸박으로 이끌어 고을을 진작하였으니
요장졸작군
愛民勞拮据 백성을 사랑하여 힘써 일하고 일했다네.
애민로길거
催科自考下 위에서 세금을 독촉해도 스스로 고려하여 내려주니
최과자고하
四野樂耕鋤 사방 들판의 농민들은 논밭 갈고 호미질을 즐겼다네.
사야락경서
苦被赤子挽 갓난아이처럼 순박한 백성들이 만류하여 괴로웠으나,
고피적자만
南望吟歸歟 남쪽을 바라보며 귀향 노래를 읊조렸다네.
남망음귀여
江干訪散人 속박을 풀어버린 산인을 강변에서 찾았더니
강간방산인
映林孑干旟 매 그림 깃발처럼 외로이 숲에서 빛나네.
영림혈간여
薤水愧無箴 달래와 한잔 물 대접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경계 없으니
해수괴무잠
木瓜挑瓊琚 모과 같은 소박함이 옥 같은 우정을 돋우네.
목과초경거
何當陪杖屨 언제 마땅히 지팡이와 짚신 벗을 모시며
하당배장구
一宿雲窓虛 구름 창 있는 빈방에서 하룻밤 숙박할까!
일숙운창허
*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정치가, 성리학의 대가로서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 大朴散生巧, 拙乃物之初: 《노자(老子)》 45장. 大巧若拙 변형 표현이다. 큰 교묘함은 마치 졸박(拙朴)과 같다. 재주나 솜씨가 아주 큰 사람일수록 억지로 꾸미지 않고, 마치 서투른 듯 담백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 使君: 태수, 자사. 한 고을의 수령. 당신의 존칭.
* 江干訪散人, 映林孑干旟: 江干의 干은 邊과 같고, 孑干의 干은 장대를 뜻한다. 干旟는 ‘매 무늬 깃발’이 상징하는 현자를 맞이하는 의장의 표징이다. 《시경(詩經)·鄘風(용풍)·干旄(간모)》의 인용이다.
* 薤水: 하남(河南)의 방참(庞参)은 처음에는 군(郡)에서 벼슬을 시작했으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남윤(河南尹) 방분(庞奋)이 그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였고, 좌교령(左校令)에 임명되었다. 법을 어겨 약루(若卢)에 부역으로 보내졌다. ……이후 방참이 한양태수(汉阳太守)로 임명되었다. 임당(任棠)이라는 자는 기이한 절개를 지닌 인물로, 은거하며 가르침을 베풀고 있었다. 방참이 부임하자, 먼저 그를 찾아갔다. 임당은 말없이 염교(薤) 한 뿌리와 물 한 사발을 집 문 앞의 병풍 앞에 놓고, 스스로 손자를 안고 문 아래 엎드려 있었다. 주부(主簿, 기록·행정 담당 관리)가 이를 보고 오만하다고 여겼다. 그러자 방참이 그 깊은 뜻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오래 지나서 말했다. “임당이 태수인 나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로다. 물은 내가 맑기를 바람이요, 큰 염교 뿌리를 뽑아 놓은 것은 내가 강한 세족(宗)을 쳐서 뽑아내기를 바람이요, 아이를 안고 문 앞에 있는 것은 내가 문을 열어 고아를 구휼하기를 바람이다.” 이에 방참은 탄식하며 돌아갔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과연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우며, 은혜로운 정치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범엽(范曄)이 지은 《後漢書》 권72 〈庞参列傳〉에 근거한다. 이 고사의 인용으로 읽히지만 薤를 天 즉 부추 水를 한잔의 물로 보면 오히려 더 잘 통한다.
* 木瓜挑瓊琚: 木瓜는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선물. 瓊琚 값진 선물. 선물의 경중에 관계없이 우정과 보답을 나타낸다. 《시경(詩經)‧위풍(衛風)·모과(木瓜)〉에 근거한다.
* 何當陪杖屨, 一宿雲窓虛: 何의 의문은 虛까지를 포함한다. 杖屨는 고결한 은자의 상징. 一宿雲窓虛은 雲窓虛一宿이 올바르지만, 虛가 압운이므로 이처럼 안배되었다.
8. 吏曹參判贈吏曹判書梁公墓碣銘 이조참판증이조판서양공묘갈명 이조참판을 지내고 사후에 이조판서로 증직(贈職)된 양공(梁公)의 묘갈명 이덕수(李德壽)
梁出耽羅. 上世有三神人. 曰良. 曰高. 曰夫. 皆以乙那爲名. 鼎峙立國. 至後世. 通好新羅. 改良爲梁. 賜貫南原. 自是爲南原人. 公遠祖諱朱雲. 仕麗朝. 爲太子中允. 封龍城君. 其後若修文殿學士文節公思道, 右政丞忠敏公宜生. 皆著名德. 光于史策. 入我朝. 有諱經. 知珍山郡事. 是爲公高祖. 曾祖諱川至. 作家訓以敎子孫. 祖諱灌. 同知敦寧府事. 成廟甞賜御札. 褒其廉白. 號逸老堂. 考諱應鯤. 用薦. 官至司導寺僉正贈戶曹參判. 妣贈貞夫人晉州姜氏. 成均館典籍贈禮曹判書文會女.
양(梁)씨는 탐라에서 나왔다. 상고(上古)에 세 명의 신인(神人)이 있었는데, 이름은 양(良), 고(高), 부(夫)라 하였으며, 모두 을나(乙那)를 성(姓)으로 삼아 솥발처럼 삼각으로 서서 나라를 세웠다. 후세에 이르러 신라와 통호(通好)하니, 양(良)을 양(梁)으로 고치고, 남원(南原)의 관적(貫籍)을 하사받았다. 그때부터 남원 사람이 되었다. 공(公)의 먼 조상 휘(諱)는 주운(朱雲)으로, 고려조(麗朝)에 벼슬하여 태자중윤(太子中允)이 되고 용성군(龍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에 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 문절공(文節公) 사도(思道)와, 우정승(右政丞) 충민공(忠敏公) 의생(宜生)이 있었으니, 모두 저명한 덕을 지녀 사책(史策)에 빛났다.
우리 조선(朝鮮)에 들어와서는, 휘 경(經)이라는 이가 있어 진산군사(珍山郡事)를 지냈으니, 이가 곧 공의 고조(高祖)이다. 증조(曾祖)의 휘는 천지(川至)로, 집안의 훈계를 지어 자손을 가르쳤다. 조부(祖)의 휘는 관(灌)으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냈다. 성종(成廟)이 일찍이 어찰(御札)을 내려 그 청렴하고 순백함을 포상하며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호를 내렸다. 부친의 휘는 응곤(應鯤)으로, 천거를 받아 벼슬에 올라 사도시첨정(司導寺僉正)을 지냈고, 사후에는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 모친은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증정부인(贈貞夫人)에 봉해졌으며,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문회(文會)의 따님으로, 사후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증직되었다.
公諱喜字懼而. 自號九拙庵. 幼聡慧異凡兒. 及長. 與盧玉溪禛, 李靑蓮後白. 相切磋爲學. 時稱天嶺三傑. 庚子. 中司馬一等. 丙午. 又擢文科. 時權奸當國. 淸流不能見容. 公亦斂避名塗. 屢求外出. 歷典三邑. 至康陵. 末年. 始自金海任所. 承召還朝. 敭歷臺省. 其立朝. 言論必多可觀者. 而年代寢遠. 文籍散亡. 至於官職所歷. 亦無所考. 惟就見於遺稿者. 畧記其一二焉. 內則兩司吏兵曹知製敎, 掌樂正, 承旨, 諫長, 判决事兼金吾. 外則忠淸, 慶尙都事, 益山, 金海, 楊州, 義州, 安東, 坡州.
공(公)의 휘(諱)는 희(喜), 자(字)는 구이(懼而)이며, 스스로 구졸암(九拙庵)이라 호하였다. 어려서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보통 아이와 달랐다. 장성하여 노옥계(盧玉溪) 정(禛), 이청련(李靑蓮) 후백(後白)과 더불어 학문을 절차탁마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천령삼걸(天嶺三傑)’이라 불렀다. 경자년(庚子)에 사마시에 일등으로 합격하였고, 병오년(丙午)에 다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권신이 정권을 잡고 있어 청류(淸流)는 등용되지 못했으므로, 공 역시 이름난 벼슬길을 피하고 여러 차례 외직을 자청하였다. 세 고을 수령을 역임하고 강릉에 이르렀으며, 만년에는 김해부사 재임 중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돌아와 대·성(臺省) 관직을 두루 거쳤다. 공이 조정에 섰을 때는 그 언론이 볼 만한 것이 많았으나, 연대가 점차 멀어지고 문적이 흩어져 관직 경력을 상세히 고증할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유고에서 보이는 바를 대략 기록하면, 내직으로는 양사(兩司)·이조·병조 지제교(知製敎), 장악정(掌樂正), 승지(承旨), 간장(諫長), 판결사(判决事) 겸 금오(金吾)를 지냈고, 외직으로는 충청·경상도사(都事), 익산·김해·양주·의주·안동·파주의 수령을 지냈다.
萬曆庚辰. 以冬至進賀使. 朝京師. 十一月二十三日. 病沒于玉河館. 春秋六十六. 臨絶之語. 唯以未報國恩爲恨. 不及其私. 訃聞. 皇帝惻然. 賻賜甚厚. 遣禮部侍郞河洛. 賜祭. 其文曰. 文章節義. 東表之英. 肅將使命. 來覲闕庭. 季子觀周. 德禮修考. 盡瘁長終. 良深感悼. 本朝致祭文. 亦有病不忘君. 言不及私之語. 盖紀實也.
만력 경진년(庚辰, 명) 동지에 진하사(進賀使)로 베이징에 가서, 11월 23일 옥하관(玉河館)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였다. 임종에 이르러 한 말은 나라 은혜를 갚지 못함이 한스럽다는 것이었고, 사사로운 일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부고가 전해지자 황제가 슬퍼하여 부의와 하사품을 두텁게 내리고, 예부시랑(禮部侍郞) 하락(河洛)을 보내어 제사를 내렸다. 그 제문에 이르기를, “문장과 절의가 동쪽 지방의 영걸이요, 엄숙히 사명을 받들어 궁정에 나아왔도다. 계자(季子)가 주나라를 찾아 덕과 예를 닦았듯, 정성을 다하고 마침내는 생을 마쳤으니, 참으로 깊이 느끼고 애도한다.” 하였다. 본조(조선)의 치제문(致祭文)에도 ‘병중에도 임금을 잊지 않고, 말에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이 있으니, 이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辛巳. 葬于咸陽郡治北牛山下艮向之原. 公少孤. 能自力爲學. 大夫人性嚴. 其敎公. 不以愛而弛. 公克承克循. 不敢或違. 及居憂. 啜粥哀毁. 幾不獲全.
신사년(辛巳)에 함양군 치소 북쪽 우산 아래 간향(艮向)의 언덕에 장사하였다.
공은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스스로 힘써 학문에 전심하였다. 대부인(大夫人)의 성품이 엄하여, 공을 가르침에 사랑으로 인해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공은 이를 잘 받들고 순종하여 감히 어기지 않았다. 상을 당했을 때는 죽만 먹으며 애통하여 거의 몸을 보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位列卿宰. 而淸貧如寒士. 甞搆少齋. 扁以九拙. 啚書松竹. 列置內外. 題詩以詠. 九拙之意. 謂性拙貌拙言拙文拙官拙政拙與朋友交拙爲身謀拙爲子孫計拙也. 栗谷李先生. 亦有詩贊其高.
벼슬이 경·재(卿宰)의 반열에 이르렀으나 청빈하여 한사(寒士)와 같았다. 일찍이 작은 재실을 지어 ‘구졸(九拙)’이라 편액하고, 집 안팎에 소나무와 대나무 그림을 두고 시를 지어 읊었다. 구졸의 뜻은 성품이 졸(拙)하고, 용모가 졸하고, 말이 졸하고, 문장이 졸하고, 벼슬이 졸하고, 정사가 졸하고, 벗과의 사귐이 졸하고, 몸을 도모함이 졸하고, 자손을 위함이 졸하다는 것이었다. 율곡 이이(栗谷李先生)도 시를 지어 그 높음을 찬미하였다.
自少好讀書. 尤深於易. 吳德溪健聞名遠訪. 遂結道義之契. 文詞富麗. 詩尤淸新. 甞有詠梅詩. 其一聯云雪打吟唇詩欲凍. 花飄歌扇曲生香. 人皆傳誦. 所著述盡逸於兵燹. 只若干篇. 藏于家.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고, 특히 『주역(周易)』에 깊었다. 오덕계(吳德溪) 건(健)이 명성을 듣고 멀리서 찾아와 도의로 맺어졌다. 문장은 화려하고, 시는 더욱 청신하였다. 일찍이 지은 영매시(詠梅詩) 중 한 구절에 “눈은 읊조리는 입술을 쳐 시가 얼어붙으려 하고, 꽃은 흩날려 노래 부채 곡조 속에 향기를 싣네.”라고 하여, 사람들이 모두 전송하였다. 저술은 병화(兵燹)로 거의 잃었고, 다만 몇 편이 집에 전한다.
夫人豊川盧氏. 參奉友奭女. 有一女. 適士人權世臣. 繼夫人星州李氏. 學生延年女. 後公一年辛巳五月卒. 祔葬公墓. 有三男三女. 男長弘澍. 義禁府都事. 次弘溥. 次弘浚. 女長適鄭仁弘. 次適監察李汝儉. 次適全時暘. 肅庙辛巳. 咸陽多士議建書院於逸老堂遺址.
부인은 풍천 노씨(豊川盧氏)로, 참봉(參奉) 우석(友奭)의 딸이다. 슬하에 1녀를 두어 사인(士人) 권세신(權世臣)에게 시집보냈다. 계부인은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학생(學生) 연년(延年)의 딸인데, 공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 신사년(辛巳) 5월에 졸하여 공의 묘에 합장되었다. 아들 3명과 딸 3명을 두었으니, 장남 홍수(弘澍)는 의금부 도사, 차남 홍부(弘溥), 삼남 홍준(弘浚), 장녀는 정인홍(鄭仁弘)에게, 차녀는 감찰(監察) 이여검(李汝儉)에게, 셋째 딸은 전시양(全時暘)에게 각각 시집갔다. 숙종 신사년(辛巳)에 함양의 선비들이 일로당(逸老堂) 옛터에 서원을 세울 것을 논의하였다.
以公及姜琴齋漢, 表灆溪沿洙, 李靑蓮後白腏享. 而朝廷亦以公死於王事. 贈吏曹判書. 兼帶如例. 公之潛德翳光. 於是乎昭著無遺憾矣. 始公之孫佐郞榞. 宰南邑. 規爲公繫牲之石. 是伐是琢. 未卒役而榞病沒. 石埋墓下. 旋失其處. 頃年潦雨崖崩. 其石自出. 人皆異之.
공(公)과 강금재(姜琴齋) 한(漢), 표남계(表灆溪) 연수(沿洙), 이청련(李靑蓮) 후백(後白)과 함께 향사(享祀)에 배향되었다. 조정에서도 공이 임무 수행 중 나라 일로 순절하였음을 인정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증직하고, 예에 따라 부가 관직을 겸하게 하였다. 공의 숨어 있던 덕과 가려져 있던 빛이 이로써 드러나, 조금도 유감이 없게 되었다. 처음에 공의 손자 좌랑(佐郞) 원(榞)이 남원(南原)의 수령이 되었을 때, 공을 위해 희생(犧牲)을 묶는 돌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직접 베고 다듬었으나, 완공하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돌은 묘 아래에 묻혔다가 곧 그 위치가 잊혀졌다. 수년 뒤 장마와 폭우로 절벽이 무너져 그 돌이 저절로 나왔으니, 사람들이 모두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今公七世孫參議君廷虎. 以其曾王考敎官公諱錫九所爲狀. 眎余. 求爲隧道之銘. 余於參議君. 從遊有年. 義不可辭. 遂按狀. 序而銘曰.
이제 공의 7세손 참의군(參議君) 정호(廷虎)가 그 증왕고(曾王考) 교관공(敎官公) 휘 석구(錫九)가 지은 행장(行狀)을 나에게 보이며, 수도명(隧道之銘, 묘지명)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참의군과 함께 지낸 세월이 여러 해이니, 의리상 사양할 수 없었다. 이에 행장을 살펴보고, 서문을 지은 뒤 명(銘)을 썼다.
一拙亦可 한가지 졸함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일졸역가
奚九之多 어찌 아홉 가지나 된단 말인가!
해구지다
唯其多有 아아! 그 많은 졸함을 모두 지녔으니
유기다유
善莫之加 이 졸의 선함에 더할 것이 없도다.
선막지가
淳白旣化 순후함과 결백함이 이미 몸에 배었으니
순백기화
穰穰殺機 가득하고 가득한 졸이 위태로운 기미조차 없앴도다.
양양살기
梔蠟言貌 하얀 치자꽃과 밀랍 같은 말씀과 용모에
치랍언모
俳優文辭 배우처럼 재치 있고 뛰어난 문장
배우문사
刑名爲聖 형법을 다스리는 명분은 성인의 능력과 같으니
형명위성
華膴競規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마저 다투어 법규를 지키게 했도다.
화부경규
勢利有交 세력 있는 자와도 사귀되
세리유교
臭若芝蘭 그 향기는 지초와 난초 같았네.
취약지란
身占便宜 몸은 졸함의 편의를 차지하고
신점편의
業務子孫 졸함의 업으로 자손에게 힘썼도다.
업무자손
了此一世 이 한 세상을 마치는 자를 보면
료차일세
惟巧之溺 생각건대 교묘함으로 탐닉하도다.
유교지닉
公唯反是 공은 오직 이와 반대로
공유반시
所以爲拙 졸함을 위했도다.
소이위졸
或麗于菑 교묘함에는 때로 재앙이 달라붙으니
혹려우재
巧之窮矣 교묘함은 결국 궁해지는 것이로다.
교지궁의
拙常有裕 졸함은 언제나 여유가 있으며
졸상유유
冥乎物始 깊도다! 만물의 시작이려니!
명호물시
彼巧反拙 저 교묘함은 도리어 졸하게 되고
피교반졸
此拙乃巧 이 졸함이 바로 참된 교묘함이로다.
차졸내교
銘以牗迷 이 명문은 들창으로 들어오는 빛처럼 흐릿하지만
명이유미
來者宜曉 미래의 사람들은 마땅히 졸의 뜻을 깨달아야 하리라!
내자의효
1727년 영조 3년 예조참의(禮曹參議) 이덕수(李德壽)
* 이덕수의 《서당사재(西堂私載)》 8권에 실려 있다. 私載는 사사로이 싣다. 자신의 겸양이다.
* 이덕수(李德壽 1673~1744): 조선 후기의 문신(). 자(字)는 인로(仁老). 호는 서당(西堂), 벽계(蘗溪). 문장이 출중하여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의 관직에 여러 차례 올랐으며 성품이 근후(謹厚)하여 영조(英祖)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저서(著書)에 《서당집(西堂集)》 등이 있다.
* 或麗于菑, 巧之窮矣: 巧之窮矣, 或麗于菑로 전사되어 있으나 순서가 잘못된 전사로 보아야 한다.
* 銘以牗迷: 들창으로 드는 빛처럼 흐리다. 글 쓰는 이의 겸양 표현이다.
- 2025년 8월 7일에 새로 선보인 ChatGPT5는 이전의 ChatGPT40에 비해 번역에서 매우 진전된 능력을 보인다. 서문은 ChatGPT5의 번역을 그대로 싣는다. 오역이 있을 수 있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아직 4언과 오언(五言) 및 한시의 번역 능력은 부족하지만, 대화의 과정에서 바로 잡을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명문(銘文)은 ChatGPT와 대화로 다듬었다. 번역은 언제나 자의 중심과 행간의 의미를 보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예를 들면 우(憂)는 근심이지만, 한자를 익히는 측면에서 우수(憂愁)로 번역하는 경우이다.
梁出耽羅. 上世有三神人. 曰良. 曰高. 曰夫. 皆以乙那爲名. 鼎峙立國. 至後世. 通好新羅. 改良爲梁. 賜貫南原. 自是爲南原人. 公遠祖諱朱雲. 仕麗朝. 爲太子中允. 封龍城君. 其後若修文殿學士文節公思道, 右政丞忠敏公宜生. 皆著名德. 光于史策. 入我朝. 有諱經. 知珍山郡事. 是爲公高祖. 曾祖諱川至. 作家訓以敎子孫. 祖諱灌. 同知敦寧府事. 成廟甞賜御札. 褒其廉白. 號逸老堂. 考諱應鯤. 用薦. 官至司導寺僉正贈戶曹參判. 妣贈貞夫人晉州姜氏. 成均館典籍贈禮曹判書文會女.
양(梁)씨는 탐라에서 나왔다. 상고(上古)에 세 명의 신인(神人)이 있었는데, 이름은 양(良), 고(高), 부(夫)라 하였으며, 모두 을나(乙那)를 성(姓)으로 삼아 솥발처럼 삼각으로 서서 나라를 세웠다. 후세에 이르러 신라와 통호(通好)하니, 양(良)을 양(梁)으로 고치고, 남원(南原)의 관적(貫籍)을 하사받았다. 그때부터 남원 사람이 되었다. 공(公)의 먼 조상 휘(諱)는 주운(朱雲)으로, 고려조(麗朝)에 벼슬하여 태자중윤(太子中允)이 되고 용성군(龍城君)에 봉해졌다. 그 뒤에 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 문절공(文節公) 사도(思道)와, 우정승(右政丞) 충민공(忠敏公) 의생(宜生)이 있었으니, 모두 저명한 덕을 지녀 사책(史策)에 빛났다.
우리 조선(朝鮮)에 들어와서는, 휘 경(經)이라는 이가 있어 진산군사(珍山郡事)를 지냈으니, 이가 곧 공의 고조(高祖)이다. 증조(曾祖)의 휘는 천지(川至)로, 집안의 훈계를 지어 자손을 가르쳤다. 조부(祖)의 휘는 관(灌)으로,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냈다. 성종(成廟)이 일찍이 어찰(御札)을 내려 그 청렴하고 순백함을 포상하며 ‘일로당(逸老堂)’이라는 호를 내렸다. 부친의 휘는 응곤(應鯤)으로, 천거를 받아 벼슬에 올라 사도시첨정(司導寺僉正)을 지냈고, 사후에는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 모친은 진주강씨(晉州姜氏)로, 증정부인(贈貞夫人)에 봉해졌으며,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문회(文會)의 따님으로, 사후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증직되었다.
公諱喜字懼而. 自號九拙庵. 幼聡慧異凡兒. 及長. 與盧玉溪禛, 李靑蓮後白. 相切磋爲學. 時稱天嶺三傑. 庚子. 中司馬一等. 丙午. 又擢文科. 時權奸當國. 淸流不能見容. 公亦斂避名塗. 屢求外出. 歷典三邑. 至康陵. 末年. 始自金海任所. 承召還朝. 敭歷臺省. 其立朝. 言論必多可觀者. 而年代寢遠. 文籍散亡. 至於官職所歷. 亦無所考. 惟就見於遺稿者. 畧記其一二焉. 內則兩司吏兵曹知製敎, 掌樂正, 承旨, 諫長, 判决事兼金吾. 外則忠淸, 慶尙都事, 益山, 金海, 楊州, 義州, 安東, 坡州.
공(公)의 휘(諱)는 희(喜), 자(字)는 구이(懼而)이며, 스스로 구졸암(九拙庵)이라 호하였다. 어려서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보통 아이와 달랐다. 장성하여 노옥계(盧玉溪) 정(禛), 이청련(李靑蓮) 후백(後白)과 더불어 학문을 절차탁마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천령삼걸(天嶺三傑)’이라 불렀다. 경자년(庚子)에 사마시에 일등으로 합격하였고, 병오년(丙午)에 다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권신이 정권을 잡고 있어 청류(淸流)는 등용되지 못했으므로, 공 역시 이름난 벼슬길을 피하고 여러 차례 외직을 자청하였다. 세 고을 수령을 역임하고 강릉에 이르렀으며, 만년에는 김해부사 재임 중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돌아와 대·성(臺省) 관직을 두루 거쳤다. 공이 조정에 섰을 때는 그 언론이 볼 만한 것이 많았으나, 연대가 점차 멀어지고 문적이 흩어져 관직 경력을 상세히 고증할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유고에서 보이는 바를 대략 기록하면, 내직으로는 양사(兩司)·이조·병조 지제교(知製敎), 장악정(掌樂正), 승지(承旨), 간장(諫長), 판결사(判决事) 겸 금오(金吾)를 지냈고, 외직으로는 충청·경상도사(都事), 익산·김해·양주·의주·안동·파주의 수령을 지냈다.
萬曆庚辰. 以冬至進賀使. 朝京師. 十一月二十三日. 病沒于玉河館. 春秋六十六. 臨絶之語. 唯以未報國恩爲恨. 不及其私. 訃聞. 皇帝惻然. 賻賜甚厚. 遣禮部侍郞河洛. 賜祭. 其文曰. 文章節義. 東表之英. 肅將使命. 來覲闕庭. 季子觀周. 德禮修考. 盡瘁長終. 良深感悼. 本朝致祭文. 亦有病不忘君. 言不及私之語. 盖紀實也.
만력 경진년(庚辰, 명) 동지에 진하사(進賀使)로 베이징에 가서, 11월 23일 옥하관(玉河館)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였다. 임종에 이르러 한 말은 나라 은혜를 갚지 못함이 한스럽다는 것이었고, 사사로운 일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부고가 전해지자 황제가 슬퍼하여 부의와 하사품을 두텁게 내리고, 예부시랑(禮部侍郞) 하락(河洛)을 보내어 제사를 내렸다. 그 제문에 이르기를, “문장과 절의가 동쪽 지방의 영걸이요, 엄숙히 사명을 받들어 궁정에 나아왔도다. 계자(季子)가 주나라를 찾아 덕과 예를 닦았듯, 정성을 다하고 마침내는 생을 마쳤으니, 참으로 깊이 느끼고 애도한다.” 하였다. 본조(조선)의 치제문(致祭文)에도 ‘병중에도 임금을 잊지 않고, 말에 사사로움이 없다’는 말이 있으니, 이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辛巳. 葬于咸陽郡治北牛山下艮向之原. 公少孤. 能自力爲學. 大夫人性嚴. 其敎公. 不以愛而弛. 公克承克循. 不敢或違. 及居憂. 啜粥哀毁. 幾不獲全.
신사년(辛巳)에 함양군 치소 북쪽 우산 아래 간향(艮向)의 언덕에 장사하였다.
공은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스스로 힘써 학문에 전심하였다. 대부인(大夫人)의 성품이 엄하여, 공을 가르침에 사랑으로 인해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공은 이를 잘 받들고 순종하여 감히 어기지 않았다. 상을 당했을 때는 죽만 먹으며 애통하여 거의 몸을 보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位列卿宰. 而淸貧如寒士. 甞搆少齋. 扁以九拙. 啚書松竹. 列置內外. 題詩以詠. 九拙之意. 謂性拙貌拙言拙文拙官拙政拙與朋友交拙爲身謀拙爲子孫計拙也. 栗谷李先生. 亦有詩贊其高.
벼슬이 경·재(卿宰)의 반열에 이르렀으나 청빈하여 한사(寒士)와 같았다. 일찍이 작은 재실을 지어 ‘구졸(九拙)’이라 편액하고, 집 안팎에 소나무와 대나무 그림을 두고 시를 지어 읊었다. 구졸의 뜻은 성품이 졸(拙)하고, 용모가 졸하고, 말이 졸하고, 문장이 졸하고, 벼슬이 졸하고, 정사가 졸하고, 벗과의 사귐이 졸하고, 몸을 도모함이 졸하고, 자손을 위함이 졸하다는 것이었다. 율곡 이이(栗谷李先生)도 시를 지어 그 높음을 찬미하였다.
自少好讀書. 尤深於易. 吳德溪健聞名遠訪. 遂結道義之契. 文詞富麗. 詩尤淸新. 甞有詠梅詩. 其一聯云雪打吟唇詩欲凍. 花飄歌扇曲生香. 人皆傳誦. 所著述盡逸於兵燹. 只若干篇. 藏于家.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고, 특히 『주역(周易)』에 깊었다. 오덕계(吳德溪) 건(健)이 명성을 듣고 멀리서 찾아와 도의로 맺어졌다. 문장은 화려하고, 시는 더욱 청신하였다. 일찍이 지은 영매시(詠梅詩) 중 한 구절에 “눈은 읊조리는 입술을 쳐 시가 얼어붙으려 하고, 꽃은 흩날려 노래 부채 곡조 속에 향기를 싣네.”라고 하여, 사람들이 모두 전송하였다. 저술은 병화(兵燹)로 거의 잃었고, 다만 몇 편이 집에 전한다.
夫人豊川盧氏. 參奉友奭女. 有一女. 適士人權世臣. 繼夫人星州李氏. 學生延年女. 後公一年辛巳五月卒. 祔葬公墓. 有三男三女. 男長弘澍. 義禁府都事. 次弘溥. 次弘浚. 女長適鄭仁弘. 次適監察李汝儉. 次適全時暘. 肅庙辛巳. 咸陽多士議建書院於逸老堂遺址.
부인은 풍천 노씨(豊川盧氏)로, 참봉(參奉) 우석(友奭)의 딸이다. 슬하에 1녀를 두어 사인(士人) 권세신(權世臣)에게 시집보냈다. 계부인은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학생(學生) 연년(延年)의 딸인데, 공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 신사년(辛巳) 5월에 졸하여 공의 묘에 합장되었다. 아들 3명과 딸 3명을 두었으니, 장남 홍수(弘澍)는 의금부 도사, 차남 홍부(弘溥), 삼남 홍준(弘浚), 장녀는 정인홍(鄭仁弘)에게, 차녀는 감찰(監察) 이여검(李汝儉)에게, 셋째 딸은 전시양(全時暘)에게 각각 시집갔다. 숙종 신사년(辛巳)에 함양의 선비들이 일로당(逸老堂) 옛터에 서원을 세울 것을 논의하였다.
以公及姜琴齋漢, 表灆溪沿洙, 李靑蓮後白腏享. 而朝廷亦以公死於王事. 贈吏曹判書. 兼帶如例. 公之潛德翳光. 於是乎昭著無遺憾矣. 始公之孫佐郞榞. 宰南邑. 規爲公繫牲之石. 是伐是琢. 未卒役而榞病沒. 石埋墓下. 旋失其處. 頃年潦雨崖崩. 其石自出. 人皆異之.
공(公)과 강금재(姜琴齋) 한(漢), 표남계(表灆溪) 연수(沿洙), 이청련(李靑蓮) 후백(後白)과 함께 향사(享祀)에 배향되었다. 조정에서도 공이 임무 수행 중 나라 일로 순절하였음을 인정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증직하고, 예에 따라 부가 관직을 겸하게 하였다. 공의 숨어 있던 덕과 가려져 있던 빛이 이로써 드러나, 조금도 유감이 없게 되었다. 처음에 공의 손자 좌랑(佐郞) 원(榞)이 남원(南原)의 수령이 되었을 때, 공을 위해 희생(犧牲)을 묶는 돌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직접 베고 다듬었으나, 완공하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돌은 묘 아래에 묻혔다가 곧 그 위치가 잊혀졌다. 수년 뒤 장마와 폭우로 절벽이 무너져 그 돌이 저절로 나왔으니, 사람들이 모두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今公七世孫參議君廷虎. 以其曾王考敎官公諱錫九所爲狀. 眎余. 求爲隧道之銘. 余於參議君. 從遊有年. 義不可辭. 遂按狀. 序而銘曰.
이제 공의 7세손 참의군(參議君) 정호(廷虎)가 그 증왕고(曾王考) 교관공(敎官公) 휘 석구(錫九)가 지은 행장(行狀)을 나에게 보이며, 수도명(隧道之銘, 묘지명)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참의군과 함께 지낸 세월이 여러 해이니, 의리상 사양할 수 없었다. 이에 행장을 살펴보고, 서문을 지은 뒤 명(銘)을 썼다.
一拙亦可 한가지 졸함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일졸역가
奚九之多 어찌 아홉 가지나 된단 말인가!
해구지다
唯其多有 아아! 그 많은 졸함을 모두 지녔으니
유기다유
善莫之加 이 졸의 선함에 더할 것이 없도다.
선막지가
淳白旣化 순후함과 결백함이 이미 몸에 배었으니
순백기화
穰穰殺機 가득하고 가득한 졸이 위태로운 기미조차 없앴도다.
양양살기
梔蠟言貌 하얀 치자꽃과 밀랍 같은 말씀과 용모에
치랍언모
俳優文辭 배우처럼 재치 있고 뛰어난 문장
배우문사
刑名爲聖 형법을 다스리는 명분은 성인의 능력과 같으니
형명위성
華膴競規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마저 다투어 법규를 지키게 했도다.
화부경규
勢利有交 세력 있는 자와도 사귀되
세리유교
臭若芝蘭 그 향기는 지초와 난초 같았네.
취약지란
身占便宜 몸은 졸함의 편의를 차지하고
신점편의
業務子孫 졸함의 업으로 자손에게 힘썼도다.
업무자손
了此一世 이 한 세상을 마치는 자를 보면
료차일세
惟巧之溺 생각건대 교묘함으로 탐닉하도다.
유교지닉
公唯反是 공은 오직 이와 반대로
공유반시
所以爲拙 졸함을 위했도다.
소이위졸
或麗于菑 교묘함에는 때로 재앙이 달라붙으니
혹려우재
巧之窮矣 교묘함은 결국 궁해지는 것이로다.
교지궁의
拙常有裕 졸함은 언제나 여유가 있으며
졸상유유
冥乎物始 깊도다! 만물의 시작이려니!
명호물시
彼巧反拙 저 교묘함은 도리어 졸하게 되고
피교반졸
此拙乃巧 이 졸함이 바로 참된 교묘함이로다.
차졸내교
銘以牗迷 이 명문은 들창으로 들어오는 빛처럼 흐릿하지만
명이유미
來者宜曉 미래의 사람들은 마땅히 졸의 뜻을 깨달아야 하리라!
내자의효
1727년 영조 3년 예조참의(禮曹參議) 이덕수(李德壽)
* 이덕수의 《서당사재(西堂私載)》 8권에 실려 있다. 私載는 사사로이 싣다. 자신의 겸양이다.
* 이덕수(李德壽 1673~1744): 조선 후기의 문신(). 자(字)는 인로(仁老). 호는 서당(西堂), 벽계(蘗溪). 문장이 출중하여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의 관직에 여러 차례 올랐으며 성품이 근후(謹厚)하여 영조(英祖)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저서(著書)에 《서당집(西堂集)》 등이 있다.
* 或麗于菑, 巧之窮矣: 巧之窮矣, 或麗于菑로 전사되어 있으나 잘못된 전사로 보아야 한다.
* 銘以牗迷: 글 쓰는 이의 겸양 표현이다.
天理昭昭非在遠 하늘의 이치는 밝고 밝아 멀리 있는 것 아니니
천리소소비재원
看來都只備吾身 살펴보니 모두 내 몸에 갖추어져 있네.
간래도지비오신
七情未動風雷靜 칠정이 움직이지 않으니 바람과 우레도 고요하고
칠정미동풍뇌정
兩眼重明日月新 두 눈이 다시 밝아지니 해와 달이 새롭네.
양안중명일월신
老子漸衰方驗易 늙은이 점차 쇠해짐에 비로소 주역을 체험했고
노자점쇠방험역
少兒日長可觀仁 아이들 매일 자람에 인의 본성을 살필 수 있네.
소아일장가관인
如何後學求諸外 어찌 후학들은 모두 바깥에서 구하려 하는가!
여하후학구제외
從事虛無不着眞 허무에 종사하면 진리에 정착하지 못하나니!
종사허무부착진
‧ 玉河館臨終製一節奉呈同行 옥하관임종제일절봉정동행 옥하관에서 임종 시에 절구 한 수 지어 동행한 사람에게 드리다
萬里關河氷雪嚴 만 리의 옥하관에 얼음과 눈 엄혹하고
만리관하빙설엄
迢迢無暇駐征驂 멀고 먼 길에 원정의 말을 주둔할 틈이 없네.
초초무하주정참
有人若問儂消息 만약 누군가가 내 소식을 묻는다면
유인약문농소식
王事驅馳死不嫌 왕의 일로 내달리며 죽음 꺼리지 않았다고 전하길!
왕사구치사불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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