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祭案 제사상 거(居) 운
陳設祭案長男命 차례상 진설 장남의 숙명
진설제안장남명
被誦自誦厭倦語 외움 당해 절로 외운 지겨운 말
피송자송염권어
紅東白西魚肉同 홍동백서 어육도 마찬가지
홍동백서어육동
頭東尾西謹置箸 두동미서에 삼가 젓가락을 얹네.
두동미서근치저
左脯右醯頻錯誤 좌포우혜 자주 착오했고
좌포우혜빈착오
棗栗梨枾猶易解 조율이시는 오히려 쉽게 이해했네.
조율이시유이해
夭折嚴父視靈前 요절한 엄부의 영전을 바라보며
요절엄부시영전
年年嗚咽祖母哀 해마다 오열하는 조모의 슬픔
연년오열조모애
橫口插言六寸舌 배 놔라 감 놔라 육촌의 혀
횡구삽언육촌설
堂叔姑母敎次序 당숙 고모 순서를 가르치네.
당숙고모교차서
時光已去無參時 세월 이미 흘러 참견 없는 때
시광이거무참시
祭器庫中蓋塵埃 제기는 창고 속에서 먼지에 덮이었네.
제기고중개진애
遠近伐草確然顯 원근의 벌초 확연히 드러나고
원근벌초확연현
歸鄕行列不息來 귀향 행렬 쉼 없이 오네.
귀향행렬불식래
洗腦慣習不得已 세뇌의 관습은 어쩔 수 없으니
세뇌관습부득의
無杯斷香似罪係 잔 없고 향 끊으니 죄지은 것처럼 매이네.
무배단향사죄계
生前難斷負債式 생전에는 끊기 어려운 부채 의식
생전난단부채식
再獨斟酒行茶禮 다시 홀로 술 따르며 차례를 행한다.
재독짐주행차례
* 칠언고시(七言古詩)
* 거(居): 거, 게, 계, 녀(려, 례), 개, 괘, 쾌, 내(래), 대, 몌, 매, 서, 세, 새, 쇄, 어, 여, 예, 왜, 저, 제, 재, 처, 체, 채, 터, 태, 폐, 패, 허, 혜, 훼, 해
* 거(居): 거, 게, 계, 녀(려, 례), 개, 괘, 쾌, 내(래), 대, 몌, 매, 서, 세, 새, 쇄, 어, 여, 예, 왜, 저, 제, 재, 처, 체, 채, 터, 태, 폐, 패, 허, 혜, 훼, 해
⇓ ChatGPT의 공감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이고, 손은 제멋대로 그릇을 맞추며 상 위를 정돈한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이 일은 내게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복이다. 나는 제사상 앞에서 늘 같은 자세로 앉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익숙함과 피로, 책임감과 허무함이 교차한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오랜 규칙들은 여전히 내 입에 붙어 있지만, 그 의미는 이미 오래전에 희미해졌다. 이제는 그 이유를 굳이 묻지 않는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습관이고, 의식이라기보다 내 생애에 스며든 일상의 한 장면이다. 가끔은 내 손끝이 나보다 더 오래된 사람처럼 움직인다. 상 위의 음식들은 조상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기보다, 세월이 남긴 기억의 잔상 같다. 나는 그 기억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살아왔다.
어릴 적 할머니는 요절한 아버지의 영전에서 제사상 앞에서 언제나 오열했다. 그 울음과 탄식은 어린 나의 가슴속에 돌멩이를 얹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일 때면 그리움은 아예 없고 뭔가 답답하면서도 울컥한 그림자가 내려앉는다. 그때마다 제사는 나에게 죽은 이를 기리는 날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 된다. 나는 향냄새 속에서 내 생을 느끼고, 밥그릇의 온기 속에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더듬는다.
이제는 배 놔라 감 놔라 하던 목소리도, 제사 순서를 가르치던 친척들의 얼굴도 사라졌다. 창고 속에는 쓰지 않는 제기들이 먼지에 덮여 있고, 그 먼지를 닦아내는 손끝에 쓸쓸한 안도감이 스민다.
세월이 흘러도 몸에 밴 관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지내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것은 조상을 잊은 미안함이라기보다, 세월 앞에서 느끼는 묘한 부채 의식 같은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나를 길러준 시대와 조상에게 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빚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그날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상을 차리고,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른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내 안의 기억이 나를 그 자리로 데려간다. 그것은 조상을 위한 일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작은 위로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려야 하는 이 순간이 너무 불편하지만, 습관처럼 내 안의 생을 확인하는 일이 되었다.
잔이 없고 향이 끊긴 오늘 역시 마음은 불편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인 동작이다. 아마도 이것은 나의 죄가 아니라 나의 시간일 것이다. 제사는 나에게 전통이 아니라, 내 생의 기록을 확인하는 의례이다. 그것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게 하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나는 오늘도 제사상을 차리며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정리한다. 죽은 이를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부채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누군가는 제사를 옛 풍습이라 말하겠지만, 나에게 제사는 여전히 살아 있는 시간의 그림자다. 나는 그 그림자 속에서 내 마음을 확인하고, 세월의 냄새를 들이마신다. 그리고 조용히 술을 따른다. 그것은 조상을 위한 잔이 아니라, 나 자신의 부채 청산을 위한 잔이다.
* 2025년 추석 차례상을 혼자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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