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 十二干支第四卯·兎 십이간지제사묘·토/대한신운·각(各)운
前脚短小悲獸兮 (전각단소비수혜)
앞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이여!
四方天敵垂涎撲 (사방천적수연박)
사방의 천적이 침 흘리며 덮치네.
猛禽急降伸銳爪 (맹금급강신예조)
맹금은 급강하여 날카로운 발톱을 뻗고
野獸疾走誇强顎 (야수질주과강악)
야수는 질주하여 강한 턱을 과시하네.
無罪蜷曲常戰慄 (무죄권곡상전율)
죄 없이 웅크려 언제나 전율하고
不斷顧盼嘆軟弱 (부단고반탄연약)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연약을 한탄하네.
弱肉强食世上事 (약육강식세상사)
약육강식 세상사
人間驅兔最殘虐 (인간구토최잔학)
인간의 토끼몰이 가장 잔학하구나!
* 언젠가부터 산에서 토끼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한 기사도 본 기억이 있다. 너구리가 주범이라고 하지만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하기는 어찌 너구리뿐이겠는가! 묘(卯)에 이르니 자연스럽게 토끼의 연약한 몸과 삶이 떠올라 구성하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해 겨울방학을 앞두고 눈이 내린 어느 날 전교생이 뒷산에 올라가 토끼몰이에 동원되었다. 아마 500명쯤 되었을 것이다. 명목은 추위를 이기는 체력 단련이었다. 아직 토끼처럼 여린 근골인데 무슨 체력 단련이란 말인가!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는 말이다. 상습의 체벌이 이루어지고 선생의 말이 곧 법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철이 없어 좋아하며 뛰쳐나갔다.
토끼몰이는 반드시 산 위에서 함성을 지르며 아래로 에워싸 내려와야 한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은 데다 겁에 질리면 내리막에서 제대로 달아나지 못해 어렵지 않게 잡혔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 열 마리쯤 잡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토끼들은 선생들의 회식에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나 세상이 좋아졌는가! 이제는 나 같은 약자도 어느 정도 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이려니! 兮는 오늘날 거의 쓰이지 않는 글자로 여겨지지만 영탄을 나타내는 데 가장 알맞은 어조사이다.
⇓ChatGPT Pro 감상평
십이지(十二支)의 네 번째인 묘(卯)는 토끼에 해당한다. 묘시(卯時)는 오전 5시부터 7시까지로 밤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오는 때이며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에 해당한다. 토끼는 고래로 신화와 전설, 고사와 성어 등에 자주 등장하며 다양한 상징과 이야기를 남겼다.
달 속에서 약 방아를 찧는 옥토끼(玉兔)는 그 대표 사례다. 옛사람은 달의 검은 무늬에서 토끼를 떠올렸고, 옥토는 마침내 달의 별칭이 되었다. 금오옥토(金烏玉兔)에서 금오(金烏)가 해를 가리키고 옥토가 달을 가리키는 것도 여기서 나왔다. 토끼는 지상에서는 연약한 짐승이지만 하늘에서는 달을 상징하는 신령스러운 존재가 된 셈이다.
고사 속의 토끼는 또 매우 빠르고 영리하다. 수주대토(守株待兔)는 우연히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얻은 농부가 다시 그런 행운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한비자(韓非子)》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우연한 성공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을 토끼가 드러낸다. 탈토지세(脫兔之勢)는 달아나는 토끼처럼 매우 빠른 기세를 말한다. 교토삼굴(狡兔三窟)은 위험에 대비하여 여러 피난처를 마련한다는 뜻으로 《전국책(戰國策)》과 《사기(史記)》의 맹상군(孟嘗君) 이야기와 연결된다. 교토(狡兔)를 무조건 ‘교활한 토끼’라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토끼는 다른 동물을 속여 잡아먹는 포식자가 아니다. 위험을 먼저 알아차리고 빠르게 달아나야 살아남는 피식동물이다. 그러므로 여러 굴과 빠른 도주는 간사함이라기보다 약자가 가진 생존 수단으로 읽을 여지가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狡를 본래 ‘어린 개(少狗)’라는 뜻으로 풀이하며,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는 그 뜻이 확대되어 狂·滑·疾·健 등의 의미로 쓰였다고 설명한다. 이 가운데 滑은 교활함과 통하지만, 疾과 健은 빠르고 날램을 뜻한다. 따라서 狡兔의 狡를 오늘날의 ‘교활하다’라는 뜻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천적을 피해 재빨리 달아나고 여러 은신처를 마련하는 토끼의 생태를 생각하면 ‘날래고 민첩한 토끼’라는 뜻으로 이해할 여지도 충분하다
토사구팽(兔死狗烹)은 한층 냉혹하다. 토끼가 모두 잡히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어져 버림받는다는 이야기다. 토끼는 여기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권력과 공로와 배신의 관계를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토사호비(兔死狐悲) 또한 토끼의 죽음을 통해 같은 처지에 놓인 존재가 서로의 불행을 슬퍼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이처럼 고사 속 토끼는 달과 신선 세계에서부터 속도와 지혜, 생존과 죽음, 권력과 배신에 이르기까지 뜻밖에 넓은 상징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런 익숙한 고사를 직접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끼 자체의 연약함을 바라본다. 수련(首聯)의 前脚短小悲獸兮는 그 출발이다. 앞다리가 짧은 토끼를 슬픈 짐승이라 부르고 마지막에 兮를 놓았다. 이 한 글자가 중요하다. 兮는 문장 가운데나 끝에서 감탄의 어기를 나타내는 어조사이며 《초사(楚辭)》에서는 거듭 사용되어 문장의 리듬과 감정을 끌어올린다. 실제 《초사》에는 哀哉兮와 같이 兮를 거듭 사용하여 탄식과 감정을 드러내는 구절이 이어진다.
前脚短小悲獸에서 끝났다면 토끼의 신체를 바라본 하나의 진술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前脚短小悲獸兮가 되면 말하는 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품 안으로 들어온다. 앞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이여! 라는 탄식이다. 오늘날 일상에서는 거의 만나기 어려운 兮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이 한 글자의 영탄이 더 돋보인다. 이어지는 四方天敵垂涎撲은 그 탄식의 까닭을 설명한다. 사방의 천적이 침을 흘리며 덮쳐 오니 토끼에게 안전한 방향은 없다.
함련(頷聯)은 이 작품에서 대장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猛禽急降伸銳爪/野獸疾走誇强顎은 猛禽과 野獸로 하늘과 땅의 천적을 마주 세운다. 禽은 날짐승을, 獸는 들짐승을 뜻하므로 글자 자체에서부터 하늘과 땅의 공간 대장이 이루어진다. 急降과 疾走는 각각 공중과 지상의 공격 방식이며 伸과 誇는 그 공격성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마지막 銳爪와 强顎에서는 대장이 더 구체화 된다. 하늘의 맹금에게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고 땅의 야수에게는 강한 턱이 있다. 토끼를 가운데 놓고 보면 위에서는 발톱이 내려오고 옆에서는 턱이 달려드는 형국이다. 단순히 명사와 동사의 품사를 맞춘 대장이 아니라 토끼를 포위하는 공간까지 대장으로 만들었다. ‘하늘과 땅’ ‘급강하와 질주’ ‘날카로운 발톱과 강한 턱’이 층층이 맞선다.
경련(頸聯)은 시선을 포식자에게서 다시 토끼에게 돌린다. 無罪蜷曲常戰慄/不斷顧盼嘆軟弱에서도 대장은 의미를 조직한다. 蜷曲은 몸을 웅크리는 모습이고 顧盼은 이리저리 돌아보는 모습이다. 하나는 몸의 자세이고 하나는 눈과 고개의 움직임이다. 戰慄은 공포의 결과이며 軟弱은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자신의 조건이다. 특히 첫머리의 無罪가 중요하다. 토끼에게 죄가 있어서 쫓기는 것이 아니다. 약하기 때문에 쫓긴다. 이 한마디가 자연의 먹이사슬을 도덕의 언어로 잠시 바꾸어 놓는다. 자연에는 죄와 벌이 없지만 인간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아무 죄도 없는 것이 왜 평생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라고 묻게 된다.
그 물음이 미련(尾聯)의 弱肉强食世上事로 이어진다. ‘약육강식 세상사’ 더 설명하지 않는다. 앞의 여섯 구가 이미 약한 살과 강한 이빨의 관계를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구 人間驅兔最殘虐에서 시선이 돌연 인간에게 향한다. 야수와 맹금은 살기 위해 토끼를 잡는다. 인간의 토끼몰이는 반드시 같은 이유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약육강식보다 인간의 행위가 더 잔학할 수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 생긴다.
이 결구는 자연의 먹이사슬을 넘어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까지 생각하게 한다. 권력이 강자에게 집중되면 약자는 잘못이 없어도 끊임없이 주변을 살펴야 한다. 자신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 몸을 움츠린다. 이때 無罪蜷曲常戰慄/不斷顧盼嘆軟弱은 더 이상 토끼만의 모습으로 읽히지 않는다. 힘없는 사람이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고 권력 주변의 여러 세력이 약자를 몰아세우는 모습에도 겹친다.
토사구팽이 오랫동안 정치와 권력의 비정함을 설명하는 말로 살아남은 까닭도 이와 멀지 않다.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필요한 사람을 가까이하지만,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버릴 수 있다는 권력의 속성을 토끼 사냥에 빗댄 말이다. 이 작품은 토사구팽을 직접 쓰지 않았지만, 마지막의 人間驅兔는 역설로 그 오랜 비유를 다시 불러낸다. 사냥하는 자와 사냥당하는 자, 몰아가는 자와 몰리는 자의 관계가 자연에서 인간 사회로 옮겨진다.
그래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어쩌면 ‘토끼’가 아니라 弱과 强이다. 함련의 强顎에서 드러난 强은 경련의 軟弱을 거쳐 미련의 弱肉强食으로 모인다. 강자는 발톱과 턱을 가졌고, 약자는 웅크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시는 강한 야수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인간에게 질문을 돌린다. 야수의 포식은 생존의 법칙이지만 인간은 법과 제도와 도덕을 만들어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힘을 가진 인간이 약자를 몰이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자연의 약육강식보다 무엇이 나은가!
달에서는 옥토끼라 높이고 고사에서는 토끼의 지혜와 민첩함을 말하면서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쫓기는 존재가 토끼다. 〈十二干支第四·卯〉는 이 오래된 상징들을 되돌아본 끝에 토끼를 아름다운 설화 속에 놓아두지 않는다. 짧은 앞다리와 떨리는 몸, 두리번거리는 눈을 현실로 끌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토끼를 바라보던 연민을 인간 사회의 약자에게 돌려놓는다. 그것이 悲獸兮에서 시작하여 最殘虐으로 끝나는 이 작품의 수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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