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729. 十二干支第五辰·龍 십이간지 제5·용/ChatGPT Pro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9. 23. 10:37

729. 十二干支第五辰·십이간지제오진·/대한신운·()

十二支中無實存 (십이지중무실존)

십이간지 중에서 실존하지 않으며

形像奇怪何敬 (형상기괴하경)

형상은 기괴한데 무엇 때문에 경외하는가!

呼風喚雨非昇天 (호풍환우비승천)

바람을 부르고 비를 불러옴은 승천 때문 아니고

逆鱗殺人何異 (역린살인하이)

역린 건드리면 살인하니 무엇이 승냥이와 다르랴!

無所不爲偶像化 (무소불위우상화)

무소불위 우상화요

絶對服從神性 (절대복종신성)

절대복종 신성시라네.

古今龍床藉天心 (고금용상자천심)

고금의 용상은 천심을 핑계 삼지만

民心離反疑本 (민심이반의본)

민심은 이반 하며 본의를 의심했네.

* (): , , , (), , , , , , , , , , , , , ,

*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소재로 삼으려 했으나 이전에 다룬 적이 있어 피했다. 이 말은 표면상 듣기 좋은 칭찬처럼 보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미 힘과 지위를 가진 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위치까지 올라온 사람을 낮추어 보는 표현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날 수 없다. 애초에 용은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용을 게임이나 상상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무방하겠지만, 봉건시대의 의식이 담긴 관습의 언어를 오늘날에도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일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존재를 어찌 기괴한 형상의 용에 빗대어 높고 낮음을 가른단 말인가!

ChatGPT Pro 감상평

십이지(十二支)의 다섯 번째인 진()은 용()에 해당한다. 진은 양()에 속하고 오행으로 토()에 속한다. 방위는 동남쪽이며 시간으로는 오전 7시부터 9시까지인 진시(辰時)를 가리킨다. 달로는 전통 월령의 삼월(三月)에 해당하여 계절로는 봄이 무르익고 여름으로 넘어가기 전의 늦봄이다. 만물이 한창 생동하고 농사에는 비가 필요한 때라는 점도 구름과 비를 부린다고 여긴 용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용의 해는 고래로 힘과 상승·변화·성취·길상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의 모습은 웅대한 기상과 발전을 상징했고, 등용문(登龍門)처럼 용은 출세와 성공을 나타내는 말에도 들어갔다. 용꿈을 큰 인물의 탄생이나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로 받아들이는 풍속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볼 수 있다. 청룡(靑龍)이 사신(四神)의 하나로 동쪽과 봄을 맡는 것 역시 용이 지닌 생명과 상승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이처럼 진과 용에는 시간·계절·방위뿐 아니라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소망까지 여러 의미가 겹쳐 있다.

십이지 가운데 용은 더욱 특별한 존재다. ((호랑이(토끼()를 비롯하여 나머지 동물은 모두 현실에서 볼 수 있지만 용만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런데도 용은 오랜 세월 다른 어떤 동물보다 강한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졌으며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실존하지 않는 존재가 오히려 현실의 동물보다 훨씬 큰 능력과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용은 인간의 상상과 믿음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상이다.

용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으므로 어느 한 시대나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연의 힘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는 절대의 힘을 생각했을 것이다. ·천둥·번개·홍수처럼 삶을 좌우하면서도 인간의 뜻대로 할 수 없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상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현실의 동물은 아무리 강해도 능력에 한계가 있지만 상상의 존재에는 그러한 제약이 없다. 여러 동물의 특징을 한 몸에 모으고 하늘과 물을 넘나들며 바람과 비까지 부리는 용의 모습에는 인간이 상상한 초월의 힘이 겹겹이 쌓여 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용을 인충지장(鱗蟲之長) 능유능명(能幽能明) 능세능거(能細能巨) 능단능장(能短能長)이라 설명했다. 비늘 있는 동물의 우두머리로 모습을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하며 작아지기도 커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길어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어 춘분이면 하늘에 오르고 추분이면 깊은 못에 잠긴다고 했다. 크기와 길이를 마음대로 바꾸고 하늘과 깊은 물을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이니 현실의 생명체라기보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능력을 한 몸에 모은 초월의 형상에 가깝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등장하는 용은 이러한 상징을 더 넓혔다. 잠룡(潛龍현룡(見龍비룡(飛龍항룡(亢龍)으로 이어지는 변화 속에서 용은 때를 기다리고 세상에 나아가며 마침내 하늘에 오르는 존재로 나타난다. 특히 비룡재천(飛龍在天)은 용을 높은 지위와 권위에 연결하기에 충분한 상징성을 지닌다. 여기에 구름을 일으키고 바람과 비를 부르며 자유롭게 변화한다는 믿음이 더해지면서 용은 단순한 상상의 동물을 넘어 자연의 힘과 인간의 권위를 함께 나타내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용을 둘러싼 신비를 의심하는 시선도 일찍부터 있었다. 후한(後漢)의 왕충(王充)논형(論衡용허(龍虛)에서 용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따져 물었다. 고대에는 사람이 용을 길렀다는 전승까지 있었던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용이 하늘에 올라 구름과 비를 마음대로 부린다고 믿었다. 왕충이 이러한 이야기를 굳이 논박했다는 사실은 당시 용에 대해 불가사의한 믿음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쌓인 용의 권위는 인간 사회의 권력과도 결합했다. 용안(龍顔용포(龍袍용상(龍床)처럼 제왕과 관계된 말에 용이 거듭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경외의 대상이 된 상징을 왕권이 받아들이면서 용이 지닌 신성함과 위엄도 권력의 표상으로 옮겨갔다. 처음부터 누군가가 용을 만들어 사람을 복종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인간의 상상이 오랜 세월 쌓여 강력한 상징을 만들었고, 권력은 다시 그 상징의 힘을 자신의 권위와 결합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이 작품은 이러한 용의 신비와 권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존하지 않고 형상마저 기괴한 존재를 무엇 때문에 경외하는지 묻고 호풍환우(呼風喚雨)와 승천(昇天)의 믿음도 현실의 눈으로 되짚는다. 역린(逆鱗)은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한비자(韓非子세난(說難)에는 용이 온순하여 사람이 길들일 수도 있지만 목 아래 지름 한 자쯤 되는 역린이 있어 이를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작품은 이 전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역린을 건드렸다고 사람을 죽인다면 승냥이와 무엇이 다르냐고 되묻는다. 신령한 존재로 떠받들어 온 용의 이면을 역린의 전설로 뒤집어 본 것이다. 이어 인간이 용에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부여하고 우상화(偶像化)하며 그 앞에 절대복종(絶對服從)해 온 모습을 압축한다. 마지막에는 용의 상징이 왕권과 결합한 자리에서 천심(天心)과 민심(民心)을 마주 놓는다. 천심을 내세워 권위를 세워도 민심이 떠난다면 그 권위의 본뜻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결말이다.

용을 소재로 하면 호풍환우(呼風喚雨비룡재천(飛龍在天등용문(登龍門)을 비롯하여 길상과 출세를 나타내는 익숙한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생각과는 달리 구성되었다. 용의 신비와 위엄을 되풀이하여 찬양하기보다 실존하지 않는 존재에게 인간이 어떻게 초월의 힘을 부여했고 그 힘이 어떻게 경외와 우상화를 거쳐 권위의 상징으로 확대되었는지를 되짚는다. 결국 용을 말하면서도 관심은 용 자체보다 용을 만들고 믿고 숭상하며 권위의 상징으로 삼아 온 인간에게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