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十二干支第六巳·蛇 십이간지제6사·사/대한신운·거(居)운
毒蛇發音同毒死 (독사발음동독사)
독사의 발음은 독사(毒死)와 같으니
殺死衝動難制御 (살사충동난제어)
죽이고 싶은 충동을 제어하기 어렵네.
辣澟兩舌似巧言 (날름양설사교언)
날름거리는 두 갈래 혀는 교언하는 것 같고
挴撕小眼凌險宰 (매서소안능험재)
매서운 작은 눈은 음흉한 재상을 능가하네.
山中必須備長靴 (산중필수비장화)
산중에는 필수로 장화를 준비해야 하고
草間恒常着厚鎧 (초간항상착후개)
풀 속에서는 항상 갑옷처럼 차려입네.
突攫蛙狀目前睹 (돌확와상목전도)
개구리를 갑자기 낚아채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可恐狂氣豈不慨 (가공광기기불개)
가공할 광기에 어찌 개탄하지 않으랴!
* 거(居): 거, 게, 계, 녀(려, 례), 개, 괘, 쾌, 내(래), 대, 몌, 매, 서, 세, 새, 쇄, 어, 여, 예, 왜, 저, 제, 재, 처, 체, 채, 터, 태, 폐, 패, 허, 혜, 훼, 해
* ‘날름날름’은 한자어로 토설(吐舌) 신설(伸舌) 빈토설(頻吐舌) 등으로 그 동작을 나타낼 수 있고,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섬섬(閃閃) 같은 첩어를 빌려 표현할 수도 있다. ‘매섭다’ 역시 예리(銳利) 엄랭(嚴冷) 냉준(冷峻) 등의 말로 그 뜻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 한자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별로 문제가 없을지라도 ‘날름날름’이라는 한국어 의태어의 생생한 말맛이나 ‘매서운 눈’에서 느껴지는 한국어의 정서까지 그대로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辣澟辣澟을 ‘날름날름’으로, 挴撕를 ‘매서’로 읽도록 조어한 것은 이러한 간극을 줄이려는 대한신운의 새로운 모색이다. 여기서는 한자의 뜻보다 먼저 음을 빌린 가차(假借)의 방법을 취한다. 조어는 반드시 글자의 본뜻과 새말의 뜻이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음의 여러 글자 가운데 대상과 뜻이나 자형까지 어울리는 글자를 고를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조어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撕의 ‘찢다’라는 뜻은 ‘매서운 눈’의 날카로운 느낌과도 자연스럽게 겹친다.
이 과정에서는 벽자(僻字)도 새롭게 활용할 수 있다. 벽자는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아 낯선 한자를 말한다. 전통 한시에서는 벽자가 독해를 방해하므로 대체로 피했지만, 대한신운에서는 이를 지식을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말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해 볼 수 있다. 익숙한 한국어의 소리를 따라 낯선 한자를 찾아보고 그 뜻과 모양까지 살펴 어울리는 글자를 고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언어유희가 된다.
오늘날 한자의 쓰임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에서 한자를 다시 단순한 암기 대상으로 되돌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한자를 ‘옛 문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음(音)·뜻(義)·모양(形)을 조합하는 창작의 재료로 바라보면 어떨까! ‘날름날름’을 어떤 한자로 만들 수 있을까! 라고 묻는 순간 한자는 외워야 할 글자가 아니라 찾아보고 조합하고 새말을 만들어 보는 놀이의 재료가 된다. 辣澟辣澟과 挴撕 같은 작은 시도를 통해 한자를 한국어의 감성과 결합하고 나아가 새로운 놀이 문화와 창작의 영역으로 넓혀 갈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산중 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뱀이다. 자주 출몰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씩 스〜윽 지나갈 때마다 그야말로 전율이다. 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마주치면 살의가 절로 인다. 어릴 때 모내기하던 중에 종아리가 순간 따끔거려 돌아보니 물뱀이 물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물뱀은 독이 없다고 하지만 자고 나니 제법 큰 반점처럼 퍼런 멍 자국이 생겼다. 중학교 동창 가운데 왼쪽 검지 끝마디가 없는 친구가 있다. 낫으로 풀을 베다가 순간 독사가 손끝을 물자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낫으로 손가락 끝을 베어냈다고 한다. 동네 아저씨가 독사에게 물려 대학병원 신세를 진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일반 병원에 해독제가 없어 대학병원으로 가야 했다. 병문안을 갔더니 작은 독사에게 종아리를 물렸는데 처음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자, 눈앞이 점점 흐려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했다. 이런 경험과 이야기가 겹쳐 뱀만 보면 거의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간혹 만화나 뱀의 해가 돌아오면 뱀을 예쁜 모습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뱀은 오직 사악함의 상징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엊그제 정원에 나갔다가 약간의 검은빛을 띤 70센티미터 남짓한 뱀이 쏜살같이 내 앞으로 오더니 순간 방향을 틀어 개구리를 낚아챘다. 뱀이 그렇게 빠른 동물인지 처음 알았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번은 뱀이 내 앞으로 쏜살같이 돌진하다가 순간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겨우 옆으로 스쳐 지나간 적도 있다. 아마 처음에는 나를 사냥감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독 없는 뱀은 대체로 사람을 보면 재빨리 피해 가는데 독사는 마주치면 마치 노려보듯 한동안 버티다가 지나가는 듯하다. 개구리를 잡아먹는 것이야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니 이해하려 해도 뱀만은 나와 참으로 상극이다.
⇓ChatGPT Pro 감상평
십이지(十二支)의 여섯째 사(巳)는 뱀에 해당한다. 사시(巳時)는 오전 9시부터 11시이며 방위는 남남동이고 달로는 음력 4월에 해당한다. 뱀은 허물을 벗는 습성 때문에 재생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한편 독과 은밀한 움직임 때문에 죽음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중국에서 뱀은 매우 오래된 신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중국 신화의 복희(伏羲)와 여와(女媧)는 인두사신(人頭蛇身). 곧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한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복희는 문명의 창시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여와는 인간을 만들고 무너진 하늘을 오색 돌로 보수한 창조신으로 전해진다. 두 신을 뱀의 몸으로 형상화했다는 사실은 중국 고대인이 뱀을 단순한 흉물로만 여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뱀은 생명과 번식 재생과 신성한 힘을 나타냈으며 용과도 깊은 관계를 맺어 소룡(小龍)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뱀에 대한 공포 역시 매우 오래되었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타 충야 종충이장 상원곡수미형(它 虫也 从虫而長 象冤曲垂尾形) 상고초거환타 고상문무타호(上古艸居患它 故相問無它乎)라 했다. 타(它)는 본래 뱀을 나타낸 글자로 구부러져 꼬리를 늘어뜨린 모습을 본떴으며 상고 사람들이 풀숲에서 살면서 뱀으로 인한 피해를 걱정했기 때문에 서로 만나면 뱀으로 인한 변고는 없었는가? 라고 물었다는 뜻이다. 뱀이 고대인의 일상에서 실제로 경계해야 할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서양에서도 뱀은 양면의 상징을 지닌다. 성서에서는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으로 이끄는 존재로 나타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는 의술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지팡이를 감은 뱀이 치유와 재생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뱀이 감긴 지팡이가 의학의 상징으로 쓰이는 것은 이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허물을 벗고 다시 나타나는 생태가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력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처럼 뱀은 동서양에서 생명과 죽음. 재생과 공포. 지혜와 간계라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함께 지녀 왔다. 용두사미(龍頭蛇尾). 화사첨족(畫蛇添足). 타초경사(打草驚蛇) 같은 성어에도 인간이 뱀을 바라본 여러 시선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보편 상징 가운데 공포의 측면을 개인의 경험을 통해 풀어낸다. 어린 시절 모내기를 하다가 물뱀에게 종아리를 물린 경험. 독사에게 물려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은 이웃. 풀을 베다가 독사에게 손끝을 물리자 놀란 나머지 낫으로 검지 끝을 베어낸 중학교 동창의 경험담 등이 오랫동안 겹쳤다.
수련(首聯)의 毒蛇發音同毒死/殺死衝動難制御는 독사(毒蛇)와 독사(毒死)의 한국 한자음이 같다는 데서 출발한다. 글자는 다르지만, 우리말로 읽으면 똑같이 ‘독사’가 된다. 중국 한문의 음운에서는 생기지 않는 한국 한자음만의 언어유희다. 둘째 구의 강한 표현은 오랜 경험이 쌓이면서 생긴 뱀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함련(頷聯)의 辣澟兩舌似巧言/挴撕小眼凌險宰는 대한신운의 조어 실험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한문에서 뱀이 혀를 내미는 모습은 토설(吐舌) 신설(伸舌) 빈토설(頻吐舌)처럼 나타낼 수 있고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섬섬(閃閃) 같은 첩어로 묘사할 수도 있다.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 역시 예안(銳眼) 냉안(冷眼) 엄안(嚴眼) 등의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뜻을 전달하는 데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날름날름’이라는 한국어 의태어가 귀에 닿는 순간 그러한 정서까지 살리기에는 이러한 기존 한자어만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
대한신운은 이 간극을 한국어의 감성을 한자 안으로 직접 끌어들이는 새로운 발상으로 메우려 한다. ‘날름’을 辣澟으로. ‘매서’를 挴撕로 옮긴 것이 그것이다. 辣澟은 우리말 ‘날름’의 소리를 한자로 가차(假借)했고 挴撕는 ‘매서운’의 ‘매서’를 같은 방법으로 옮겼다. 독자가 한자를 뜻으로만 읽다가 辣澟에서 ‘날름’이라는 한국어 소리를 발견하고 挴撕에서 ‘매서’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한시 안에서 뜻과 소리가 교차하면서 일종의 조어 놀이와 언어유희가 생긴다.
가차 조어에서는 본래 글자의 뜻이 새말의 뜻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가 없다. 우선 필요한 것은 소리다. 그러나 같은 음을 가진 여러 한자 가운데 대상의 성질과 뜻이나 자형까지 어울리는 글자를 찾는다면 조어의 완성도와 재미는 더 커진다. 辣은 맵고 매섭다는 느낌을 지니고 澟은 차갑다는 뜻을 지니므로 辣澟은 음을 빌리면서 뱀이 주는 서늘하고 매서운 인상도 어느 정도 품는다. 挴撕에서는 특히 撕의 ‘찢다’라는 뜻이 찢을 듯 날카로운 눈빛을 연상시킨다. 소리를 위해 고른 글자가 뜻에서도 대상과 만나는 셈이다.
여기에서 벽자(僻字)의 활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벽자는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아 일반인에게 낯선 한자를 말한다. 전통 한시에서는 지나친 벽자가 독해를 방해하고 문장을 난삽하게 만들 수 있어 대체로 삼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신운은 벽자를 어려운 지식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잊혀 가는 글자의 음과 뜻과 모양을 찾아 현대 한국어와 결합할 수 있는 창작의 재료로 본다. 挴나 澟처럼 평소 접하기 어려운 글자도 ‘매서’와 ‘날름’이라는 익숙한 한국어와 만나면 외워야 할 벽자가 아니라 새로운 말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오늘날 한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 범위가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자를 옛글자로만 가르치기보다 날름날름을 한자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매서운 이라는 한국어의 느낌을 어떤 한자에 담을 수 있을까! 라고 접근한다면 한자는 암기의 대상에서 창의성의 놀이로 바뀔 수 있다. 기존 한자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쓰되 한국어 특유의 의성어와 의태어, 말맛과 정서를 살리기 어려운 곳에서는 새로운 조어를 시도한다. 辣澟과 挴撕는 바로 이러한 대한신운의 언어 실험을 보여주는 사례다.
함련의 대장도 같은 생각과 이어진다. 辣澟과 挴撕는 가차 조어. 舌과 眼은 신체 기관으로 대응한다. 兩과 小는 각각 수(數)와 크기(大小)를 나타낸다. 같은 종류의 글자는 아니지만 모두 양을 헤아리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마주 선다. 대장을 같은 품사와 같은 뜻의 낱말에만 가두지 않고 개념의 대응까지 넓힌 것이다. 險宰 또한 ‘음험한 재상’이라는 뜻으로 새롭게 결합한 말이다.
경련(頸聯)의 山中必須備長靴/草間恒常着厚鎧는 산중 생활에서 몸에 밴 경계심을 보여준다. 長靴와 厚鎧는 몸을 보호하는 착용 물이며 長과 厚는 길이와 두께라는 치수의 개념으로 대응한다. 실제 갑옷을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풀숲에서는 몸을 두껍게 감싸 입는 모습을 厚鎧로 과장했다.
미련(尾聯)의 突攫蛙狀目前睹/可恐狂氣豈不慨는 최근 정원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에서 나왔다. 뱀이 쏜살같이 달려오다 순간 방향을 틀어 개구리를 낚아채는 광경이었다. 개구리를 잡는 것은 뱀의 자연스러운 포식 본능이지만 오랜 공포를 지닌 사람의 눈에는 그 순간이 狂氣로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광기는 뱀의 생태를 규정한 말이 아니라 그 장면에서 받은 충격을 나타낸 표현이다.
문화에 따라 뱀은 신성한 생명력이 되기도 하고 사악함과 공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이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감정은 문화의 보편 상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강한 경험은 기억에 남고 비슷한 대상을 다시 만났을 때 감정과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 작품은 포식이 생존 본능임을 이해하면서도 뱀을 마주하는 순간 과거의 기억과 공포가 먼저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한 개인의 경험이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인상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나아가 트라우마가 인간의 인식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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