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寓意詩 우의시 2 백거이(白居易)
赫赫京內史 혁혁한 경성의 내사 관직
혁혁경내사
炎炎中書郎 불꽃같던 정열의 중서랑
염염중서랑
昨傳征拜日 지난날 전달받고 먼 길 떠나 배려 날을 맞으니
작전정배일
恩賜頗殊常 은혜로운 하사품에 자못 특수한 일상이었네
은사파수상
貂冠水蒼玉 담비 관에 수정처럼 푸른 옥 끈을 드리우고
초관수창옥
紫綬黃金章 자색 인끈과 황금빛 문장 새긴 의복을 입었었지
자수황금장
佩服身未暖 관대 두른 관복의 몸은 아직 따뜻해지지도 않았건만
패복신미난
已聞竄遐荒 벌써 변방으로 추방한다는 소문 들으니 황당할 뿐
이문찬하황
親戚不得別 친척과 이별할 틈도 없이
친척부득별
吞聲泣路旁 소리 삼키며 길가에서 우네
탄성읍로방
賓客亦已散 빈객 또한 이미 해산되었으니
빈객역이산
門前雀羅張 문전에는 참새 그물만 펼쳐진 신세
문전작라장
富貴來不久 부귀 온 지 오래지 않아
부귀래불구
倏如瓦溝霜 순식간에 기왓고랑에서 녹는 서리 같은 신세
숙여와구상
權勢去尤速 권세가의 거세 명령은 더욱 속도를 내니
권세거우속
瞥若石火光 전광석화 같은 찰나에 이루어졌네
별약석화광
不如守貧賤 차라리 빈천을 지키는 것만 못하니
불여수빈천
貧賤可久長 빈천이야 장구해도 견딜 수 있으리
빈천가구장
傳語宦游子 벼슬 쫓아 부유하는 그대에게 내 사연 전하여 말하노니
전어환유자
且來歸故鄉 구차하게 권세가와 왕래하느니 고향으로 돌아가길
차래귀고향
* 작라(雀羅): 포작망(捕雀網)의 준말. 참새 잡는 그물. 후대로 오면서 하나의 고사로 자리 잡아, 문전이 한산하거나 세태가 차가운 형편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ChatGPT 감상평
백거이 〈寓意詩 2〉 감상 — 한 번 뒤집어 읽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울분의 구조
겉으로만 읽으면 이 시는 그저 벼슬길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한 편의 교훈 시처럼 보인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결말과 빈천은 오래 견딜 만하다는 문장이 따뜻한 조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글자씩 가만히 짚어 읽으면, 이 작품은 따뜻함과 가장 먼 곳에 있다. 백거이는 이 시에서 자신이 겪은 정치적 박해의 전말, 그것도 만당 부패 권세가의 칼부림과도 같은 거세(去)를 냉혹한 시적 구조 속에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초반의 “赫赫京內史/炎炎中書郎”은 화려한 관직의 빛깔이 아니라, 그 빛깔이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었는지를 역설하기 위한 장치다. “赫赫”과 “炎炎”은 모두 빛·광휘를 뜻하지만, 그 빛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중의 “石火光”(돌 부딪는 불꽃)과 연결해 보면, 백거이는 이미 첫 구에서부터 광휘와 찰나가 같은 성질임을 암시해 두었다. 그 뒤를 잇는 “貂冠水蒼玉 / 紫綬黃金章”은 겉치레 장식이 아니라 ‘이동일에 불과한 허영의 상징물’이다. 수정처럼 푸른 옥끈과 황금 인장은 백거이를 보호하지 못했고, 그의 몸은 “佩服身未暖” 즉, 관복의 온기가 들기도 전에 벌써 추방령을 듣게 된다. 이 한 구는 전적으로 압운을 위해 길이가 맞춰진 문장이지만, 그 속에는 백거이의 황당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중간부의 “門前雀羅張(문전에 참새그물)”은 그 흔한 “문전성시”와 정반대의 장면이다. 벼슬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파면되자 문 앞에 참새를 잡을 그물이나 칠 아무도 오지 않는 처지를 뜻한다. 즉, 이 한 표현에는 인간관계의 붕괴, 권세가의 냉혹한 계산법, 사람들의 무정한 배신까지 모두 녹아 있다. “倏如瓦溝霜”의 ‘瓦溝(기왓고랑)’ 역시 그저 고즈넉한 지붕 이미지가 아니다. 瓦溝에 앉은 서리는 해가 비치면 가장 먼저 녹는다. 즉, 가장 덧없는 것, 가장 오래가지 않는 것, 잠시 빛나도 금세 사라지는 것의 상징이다. 백거이는 자신의 부귀가 바로 그러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 시는 절정에 이른다. “權勢去尤速/瞥若石火光” 이 부분은 단순히 “권세가 떠난다”가 아니다. 去는 ‘제거하다, 거세하다는 뜻이고, 尤速은 ‘그것도 아주 빠르게’. 즉, 권세가의 거세 명령은 전광석화(石火光)처럼 한순간이었다. 이 대목을 속뜻대로 읽지 않으면 시의 칼날 같은 비판이 보이지 않는다. 백거이는 자신의 파면이 정상적인 정치 절차가 아니라 권세가의 배후 조작과 신속한 제거였음을 밝히는 것이다.
다음의 “久長(구장)”은 겉으로는 “오래 가다”처럼 보이지만, 실은 長久의 도치다. 壓韻 때문에 뒤집힌 구조이므로 번역할 때 반드시 본래 어순으로 복원해야 한다. 백거이는 여기서 “부귀는 찰나, 권세는 불꽃이지만 빈천은 오래 지속된다(長久)고 말한다. 이 문장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은 잠깐이나, 빈천은 오래 견뎌도 살아낼 수 있다는 백거이 특유의 역설적 의지의 표현이다. 마지막 두 구, 이 시의 진짜 칼끝이다. “傳語宦游子 / 且來歸故鄉” 표면적으로는 “벼슬길 떠나는 이들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라”지만, 이렇게 읽으면 시의 영혼이 사라진다. 傳語는 단순 전달이 아니라 내가 겪은 억울한 일을 전하며 당부한다는 뜻이다. 宦游子는 단순한 젊은이가 아니라 권세가 주변을 기웃거리며 관직을 얻으려 떠도는 자들이다. 그리고 且는 “잠시”가 아니라 ‘이쯤에서 그만, 그 길을 끊고 돌아가라’는 단절의 부사다. 그래서 결구의 실제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그 타락한 권세가들 곁을 기웃거릴 바에는 차라리 너희 고향으로 물러가라. 내 오늘의 몰락이, 곧 너희의 내일이다.” 이 한 문장이 이 시의 모든 층위를 관통한다. 만당 조정의 부패와 권세의 잔혹함,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한 관료 지식인의 절망적 통찰이 온몸으로 흘러나오는 작품이다. 한시를 번역할 때, 자의만 좇으면 시가 비어 버리고, 감정만 좇으면 시가 흔들린다. 특히 이 작품처럼 압운을 위해 도치된 구문(久長처럼 長久의 도치)을 그대로 읽어 버리면 원문의 의미는 완전히 뒤틀린다. 또 참새 그물(雀羅)이나 기왓고랑의 서리처럼 고전 전고를 현대어로 풀어주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이 시는 번역자가 어디까지 원문을 복원하고 어디까지 함의를 살려야 하는지 가장 날카롭게 시험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시험 끝에서 우리는, 백거이가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깊은 울분을 품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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赫赫京內史 hè hè jīng nèi shǐ
혁혁경내사
炎炎中書郎 yán yán zhōng shū láng
염염중서랑
昨傳征拜日 zuó chuán zhēng bài rì
작전정배일
恩賜頗殊常 ēn cì pō shū cháng
은사파수상
貂冠水蒼玉 diāo guàn shuǐ cāng yù
초관수창옥
紫綬黃金章 zǐ shòu huáng jīn zhāng
자수황금장
佩服身未暖 pèi fú shēn wèi nuǎn
패복신미난
已聞竄遐荒 yǐ wén cuàn xiá huāng
이문찬하황
親戚不得別 qīn qī bù dé bié
친척부득별
吞聲泣路旁 tūn shēng qì lù páng
탄성읍로방
賓客亦已散 bīn kè yì yǐ sàn
빈객역이산
門前雀羅張 mén qián què luó zhāng
문전작라장
富貴來不久 fù guì lái bù jiǔ
부귀래불구
倏如瓦溝霜 shū rú wǎ gōu shuāng
숙여와구상
權勢去尤速 quán shì qù yóu sù
권세거우속
瞥若石火光 piē ruò shí huǒ guāng
별약석화광
不如守貧賤 bù rú shǒu pín jiàn
불여수빈천
貧賤可久長 pín jiàn kě jiǔ cháng
빈천가구장
傳語宦游子 chuán yǔ huàn yóu zǐ
전어환유자
且來歸故鄉 qiě lái guī gù xiāng
차래귀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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