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73. 仰慕梁灌先生 앙모 양관 선생/백일장 대한신운 장원 작품 분석

대한신운 2025. 5. 12. 09:08

73. 仰慕梁灌先生 앙모 양관 선생 茶田 ○○○ 2025년 함양향교 전국 한시 백일장 우리 율시 장원

1廉表象響朝野 청렴의 표상이 조야를 울리니

         청렴표상향조야

2水彈琴傳芳 흰 물은 거문고 타며 향기로운 이름을 전하네.

         백수탄금전방

3上疏欽德奉 관리는 소를 올려 덕을 흠모하며 받들고

         감상소흠덕봉

4賢君下命懸畵 현군은 명을 내려 그림 걸어 맞이했네.

          현군하명현화

5伴鶴士載詩書 학을 동반한 뛰어난 선비는 시와 서를 실었고

          반학사재시서

6臨川年濯冠 시내 임한 노년에는 관과 갓끈을 씻었네.

          임천년탁관

7布衾凌千金 허당의 베와 이불이 천금을 능가하니

          허포금능천금

8貪泉世態警鐘 탐천의 세태에 종을 울리고 가시네.

          탐천세태경종

‧ 대한신운 우리 율시의 약진

함양향교 전국 한시 백일장이 올해로 4회를 맞이했다. 기존의 율시와 대한신운(大韓新韻) 우리 율시의 창작을 나누어 실시했다. 232명의 참여는 한시 백일장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열기이며 우리 율시 부문 응시가 과반이 넘었다는 점은 한국인의 감성에 알맞은 대한신운(大韓新韻) 제안자로서 매우 고무적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신설한 학생부에 초중고 30명과 젊은 학부모 20여 명이 함께 응시한 점은 우리 한시 창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작시 구상의 본질: 신사(神思)

올해의 시제는 조선 제일의 청백리로 칭송받는 양관(梁灌 14371507) 선생에 대한 추모이다. 호는 일로당(逸老堂)이다. 시도 교육청이나 공무원연수원 등의 연수 자료에 소개되고 있으며, 물질만능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시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제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 구상해서 표현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문학가 유협(劉勰 465~521)은 구상의 단계를 신사(神思)’ 즉 신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신의 생각이기에 구름을 타고 대해를 건널 수 있으며, 한여름에 눈을 내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체와 허구가 교착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바로 구상의 단계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추모의 시제가 주어졌을 때, 구상은 상상이 아니라 관련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 이번 시제에 대한 선생의 자료는 첫째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둘째 관련 논문, 셋째 남긴 시문이다. 사료와 논문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작시에서는 남긴 시문의 표현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구상 방법이다. 업적이 많을수록 남긴 시문이 많을수록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며 상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를 수 있어야 진정한 추모를 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도출의 중요성

이러한 구상이 끝나면 핵심 키워드를 추출한다. 이번 시제는 감리의 감찰을 통한 양관 선생 행적이 바로 핵심으로, 귀향(歸鄕), 편주(片舟), 포금(布衾), 소학(小學), 두보 시집, 거문고와 학 그림, 덕천(德川), 그 행적을 그림으로 그려 궁궐 벽에 건 일, 임천(臨川), 초당인 일로당(逸老堂), 귀향 후 벼슬 거부, 청백을 강조한 유언, 자신의 마음을 하늘에 비교한 청천(靑天)을 추출할 수 있다. 칠언(七言) 56자는 바로 이러한 키워드를 어떻게 녹여내느냐에 달려 있다.

선정(善政), 대공(大功), 효도(孝道) 깊은 학문 등은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없다. 훌륭한 관리라면 누구나 기본이며, 이러한 키워드를 이번 시제에 주로 녹여냈다면, 그것은 양관 선생이 아니더라도 청백리 모두에게 해당할 것이어서 두루뭉술한 표현에 그치고 말 것이다. 200여 명의 청백리가 있어도 각자의 행적을 살펴보면 반드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잘 구사하여 표현해야 진정으로 한 사람을 추모할 수 있다. 하객이 천 명이어도 축하의 감정에는 각각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장원 작품은 핵심 키워드를 잘 녹여낸 우리 율시 창작의 방향을 제시한 구성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수련(首聯): 정조를 여는 시적 표현

1廉表象響朝野 청렴의 표상이 조야를 울리니

1구의 구성은 천명이 쓰더라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반상에 바둑돌을 놓을 때 열 수 정도 까지는 18급과 9단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2水彈琴傳芳 흰 물은 거문고 타며 향기로운 이름을 전하네:

2구부터는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된다. 백수()는 맑고 깨끗한 마음의 비유이다. 청백리(淸白吏)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시적 언어를 찾아낼수록 좋다. 탄금(彈琴)은 귀향할 때 조각배에 거문고를 실은 사실을 나타낸다. 단순한 사실의 서술이 아니라 이처럼 시적 언어로 녹여 표현해야 한다.

함련(頷聯): 대장의 구성 분석 1

3上疏欽德奉 관리는 소를 올려 덕을 흠모하며 받들고

4賢君下命懸畵 현군은 명을 내려 그림 걸어 맞이했네.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은 대장(對仗) 구로 율시 구성의 근간이다. 한 글자씩 대응해 보면 다음과 같다.

上疏欽德奉 감리는 소를 올려 덕을 흠모하며 받들고

⇕ ⇕ ⇕ ⇕ ⇕ ⇕ ⇕

賢君下命懸畵 현군은 명을 내려 그림 걸어 맞이했네.

()과 현()은 형용사로, ()과 하()는 위치 대 위치, ()와 명()은 명사, ()과 현()은 동사, ()과 화()는 추상과 구체, ()과 영()은 동사의 대응이다. 이러한 대응이 정교할수록 기울지 않으며, 그래서 기둥에 새길 때는 주련(柱聯) 또는 영련(楹聯)으로 부르는 까닭이다. 즉 기둥이 기울면 안 되는 것처럼 대장은 글로 세운 기둥에 해당한다.

문법 구조는 다음과 같다.

監吏(형용사/명사)/上疏(동사/목적어)/(선행동사)/(목적어)/(후행동사)

賢君(형용사/명사)/下命(동사/목적어)/(선행동사)/(목적어)/(후행동사)

특히 문법 구조에서 동사가 두 개일 경우 반드시 행동한 순서대로 배열해야 한다. 덕을 흠모해서 받들어야 하고, 그림을 그려서 맞이해야 순서가 맞다. 이러한 구성에는 반드시 중간에 명사인 목적어가 안배되어야 한다. 기존 율시에서는 평측 안배 때문에 이 구성이 제일 어렵게 느껴질 것이며, 이러한 구성이 어렵기 때문에, 한시에서는 문법 경시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평측 제약으로 알고도 그렇게 표현했다면 변명에 불과하고 굳이 우리말에 없는 무의미한 평측 안배 방법을 익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자신의 정서를 소멸시키는 창작이 될 것이다. 대한신운을 주창하는 까닭은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 각자가 지닌 정조를 최대한 잘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자는 것이다. 아무리 평측 안배가 까다로워도 필요하다면 반드시 익혀야 하겠지만 우리말 표현에서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대장의 구성 분석 2

5伴鶴逸士載詩書 학을 동반한 뛰어난 선비는 시와 서를 실었고

6臨川老年濯冠纓 시내 임한 노년에는 관과 갓끈을 씻었네.

伴鶴逸士載詩書

 ⇕ ⇕ ⇕ ⇕ ⇕ ⇕ ⇕

臨川老年濯冠纓

()과 임()은 동사, ()과 천()은 동물과 자연, ()과 노()는 형용사, ()와 탁()은 동사, 詩書冠纓은 각각 독립 명사의 대장이다. 그래서 시와 서, 관과 갓끈으로 구성해야 한다. 만약 杜詩冠纓이라면, 두보의 시와 관의 끈으로 명사형 형용사/명사 구성이다. 冠纓은 때에 따라 관과 갓끈 또는 관의 끈으로 안배할 수 있는 단어이다李杜(이백과 두보)로 안배했을 경우 冠纓은 관과 갓끈이 된다. 독립이나 종속이냐의 여부는 백일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순위를 가려야 하는 기준이 된다. 山川은 산과 시내이므로 春秋는 봄과 가을이어서 정밀한 대장이지만 山川春日은 느슨한 대장이다. 즉 산과 시내(명사/명사)에 봄의 날(명사형 형용사/명사)로 대장(對仗) 되기 때문이다.

문법 구조는 다음과 같다.

伴鶴(동사/목적어)/逸士(형용사/명사)/載(동사)/詩書(목적어)

臨川(동사/목적어)/老年(형용사/명사)/濯(동사)/冠纓(목적어)

두 구의 문법 구조는 부절(符節)과 같다. 이처럼 부절일수록 좋은 문법 구성이다.

합장(合掌) 금지의 원칙

이번에는 3/4구와 5/6구 사이의 문법 구조를 비교해 보기로 한다.

3監吏(형용사/명사)/上疏(동사/목적어)/(선행동사)/(목적어)/(후행동사)

4賢君(형용사/명사)/下命(동사/목적어)/(선행동사)/(목적어)/(후행동사)

제5구 伴鶴(동사/목적어)/逸士(형용사/명사)/載(동사)/詩書(목적어)

제6구 臨川(동사/목적어)/老年(형용사/명사)/濯(동사)/冠纓(목적어)

3/4구는 부절처럼 구성되었고 5/6구 역시 부절이다. 그런데 3/4구와 5/6구간의 구성을 비교해 보면 전혀 부절이 아니다. 두 구는 부절이지만 네 구 모두 부절의 표현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이것이 합장(合掌) 금지의 원칙으로 고래부터 문사들이 제일 중요시했다. 표현의 다양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부분합장은 때로 나타날 수 있지만, 이조차 나타나지 않을수록 좋다. 물론 개인의 취미 창작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삶의 총결과 세태 비판의 마무리

7布衾凌千金 허당의 베와 이불이 천금을 능가하니

8貪泉世態警鐘 탐천의 세태에 종을 울리고 가시네.

미련(尾聯)의 제7구에서는 제6구까지의 삶의 자세를 총결하고, 8구에서는 물질만능의 세태에 종을 울리는 모습으로 맺었다. 탐천(貪泉)은 그 물을 마시면 모두 탐욕스러워진다는 샘으로, 이 물을 마시고도 탐욕스러워지지 않는 은자의 고결한 삶을 나타낼 때 반어로 쓰인다.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물질만능경종행(物質萬能警鐘行)으로의 표현과 8구의 표현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 //종을 울리고 간다라고 정확한 문법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 監吏, , , , , 詩書, 臨川, 冠纓, 虛堂 10개의 핵심 키워드를 녹여냈다.

부득(賦得) 형식: 구마다 한 글자 안배의 묘미

 廉表象響朝野 청렴의 표상이 조야를 울리니

 白水彈琴傳芳名 흰 물은 거문고 타며 향기로운 이름을 전하네.

 監上疏欽德奉 관리는 소를 올려 덕을 흠모하며 받들고  

賢君下命懸畵迎 현군은 명을 내려 그림 걸어 맞이했네.       

伴鶴士載詩書 학을 동반한 은일의 선비는 시와 서를 실었고         

臨川年濯冠纓 시내 임한 노년에는 관과 갓끈을 씻었네.          

布衾凌千金 허당의 베와 이불이 천금을 능가하니          

貪泉世態警鐘行 탐천의 세태에 종을 울리고 가시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특징은 청백리일로당(淸白吏逸老堂)을 각 구에 한 글자씩 안배했다는 점이다. 부득(賦得) 형식이다. 이때의 부는 짓는다는 뜻으로 사자성어나 고전의 구에서 취하여 구마다 한 글자씩 안배하는 방법이다. 순서는 상관없다.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얻어서 짓는다면 구마다 , , , 처럼 순서대로 안배할 수도 있고 , , , 처럼 순서가 바뀌어도 된다. 다만 띄어 안배할지라도 한 구에 두 글자 안배는 금지한다. 이 작품에서는 , , , , , 이 순서대로 안배되었다. 율시 창작의 백미이며 수미일관하면서 이처럼 구성할 수 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대한신운(大韓新韻) 우리 율시는 이처럼 뛰어난 표현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평측의 제약이 없다고 해서 결코 쉬운 창작이 아니며, 더 많은 독서와 사고력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