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1. 願建孤雲學問思想硏究院建立/대한신운·경(經)운 牛谷 김○두
孤雲大道啓文明 (고운대도계문명)
고운 선생 대도는 문명을 열었으니
人一能之己百成 (인일능지기백성)
타인이 한번 하면 백번 하여 이루었네.
桂苑筆耕經史策 (계원필경경사책)
계원필경에는 경사의 책략
鸞郞碑序孝忠聲 (난랑비서효충성)
난랑비서에는 충효의 소리
燈前萬里鵬麟志 (등전만리붕린지)
등불 앞의 만 리에는 대붕과 기린의 뜻
窓外三更犬馬誠 (창외삼경견마성)
창밖의 삼경에는 견마의 정성
後裔尊師開翰院 (후예존사개한원)
후예들이 스승 받들어 연구원을 세웠으니
伽倻學海日新亨 (가야학해일신형)
합천의 학문 바다 나날이 형통하도다.
* 합천 모 기관의 백일장 응모 작품이다. 압운은 전통 경(庚)운으로 대한신운 경(經)운과 같다. 응모자와의 토론과 함께 ChatGPT 대화로 구성되었다. 우선 시제를 살펴보면 ‘願孤雲硏究院建立’ 정도가 좋을 것이다. 압운은 명(明), 성(成), 성(聲), 형(亨)이다. 압운의 차례는 작품의 구성을 결정짓는 요소이므로 백일장에서 가장 신중하게 선정해야 할 부분이다. 압운이 어색하게 결정되면 제아무리 뛰어난 문사라도 억지 표현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제1구에서 문명(文明)을 쓴 까닭은 처음에는 광명(光明)이었다. 고운 선생은 유(儒)·불(佛)·선(仙)을 아우른 학자이며, 불교에서 번뇌와 암흑을 비추어 지혜를 주는 빛이므로 최소한 유불선 세 요소를 아우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光明은 불교의 요소만을 떠올리기 쉽고 무엇보다 함련에서 桂苑筆耕과 鸞郞碑序를 언급했으므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文明으로 바꾸었다. 또한 ChatGPT와 여러 차례 대화 끝에 확정되었다.
人一能之己百成은 人一能之己百之의 변용으로 고운 선생의 좌우명이다. 이는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해낸다면 나는 백 번을 노력하고, 다른 사람이 백 번 만에 해낸다면 나는 천 번을 노력하겠다”라는 뜻의 '인일능지 기백지 인백능지 기천지(人一能之己百之 人百能之己千之)'에서 비롯되었다. 선생은 이 구절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학문과 인격 수양에 지극한 정성과 노력을 쏟았다.
桂苑筆耕과 鸞郞碑序는 고운 선생의 작품으로 우연히 평측이 절묘하게 잘 맞아 이루어졌다. 계원필경은 선생이 당나라 유학 시절과 황소의 난을 진압할 때 지은 격문과 표문, 서간문 등을 모은 문집으로, 뛰어난 문장력과 외교상의 안목뿐만 아니라 난세를 걱정하는 지식인의 깊은 고뇌를 담고 있다. 鸞郞碑序는 화랑인 난랑을 기리기 위해 지은 비석의 서문으로, 우리 고유의 신령스러운 도인 풍류도(風流道)의 실체를 밝히며 그 핵심 가치로 집안에서는 효도를 다하고 나아가 나라에는 충성을 바치는 충효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經史策과 孝忠聲의 대장(對仗)에서 經史 대신 詩書가 더 알맞을 수 있으나 詩書는 평평이므로 안배할 수 없다. 물론 經史 또한 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문집의 내용 자체가 경사에 대한 바탕이 없으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燈前萬里와 窓外三更은 선생의 오언절구(五言絶句)인 〈秋夜雨中〉에서 차용(借用)했다.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가을바람 속에서 오직 괴로이 읊조림은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는 나를 알아주는 소리 드물기 때문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에는 삼경의 밤비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불 앞에는 만 리를 달리는 마음
절구이지만 3/4구는 대장이 잘 이루어졌다. 窓外三更雨와 燈前萬里心에서 雨와 心은 무슨 뜻이겠는가! 바로 선생의 웅지와 고국인 신라로 돌아가면 조정과 백성을 위해 온갖 힘 다하겠다는 각오로 읽어낸다면 그래서 임금에 대한 충성을 犬馬之勞인 견마로 나타내었다. 견마로 나타낸 이상 이에 알맞은 웅지를 나타내는 동물의 대장이 필요하지만, 이에 알맞은 성어를 찾기 어려우며 찾았을지라도 평측이 맞지 않다. 가장 좋은 어감은 鳳麟이지만, 鳳은 측성이므로 鳳麟志로 구성하면 측평측이 되어 고평(孤平)이 된다. 고평에는 고측(孤仄)으로 평측 안배를 조율하는데, 鳳麟志(측평측)에는 아래 구의 窓外三이 ‘평측평’이므로 상구(上句)의 ‘측평측’에 하구(下句)에서 ‘평측평’으로 조율하는 상용하는 방법이며 더 좋은 것은 犬馬誠이 ‘평측평’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犬馬誠은 측측평’이다. 그렇더라도 窓外三으로 평측이 조율되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태까지 고평에 고측으로 대장(對仗) 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심사자를 만난 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鵬麟으로 대장한 것이다. 대장은 품사의 대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측 자체의 대장도 포함한다. 鵬麟志와 犬馬誠의 대장과 鳳麟志와 犬馬誠의 대장을 비교하면 단지 鵬과 鳳의 한 글자 차이일지라도 풍격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평측이란 무의미한 요소 때문에 이러한 풍격 있는 대장을 구성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에 대한신운을 창안한 것이다. 시와 무관한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겠제만, 鳳麟으로 구성해야 할 것을 鵬麟으로 억지 조어한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된다. 또한 窓外三更, 燈前萬里와 같은 원작자의 구는 잘 차용(借用)할수록 좋다. 그만큼 상대의 글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라 넣으면 표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시는 아무리 표절해도 표절이 아닌 까닭은 압운이 다르므로 구 전체가 그대로 인용될 수 없는 까닭이다. 더욱이 선현을 추모할 때는 그 글을 잘 이해하고 때로는 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막에는 연구원설립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나타내었으니, 경련(頸聯)까지 선생의 이 정도 업적과 정신이면 충분히 받들어 연구원을 설립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구원에서 ‘硏究院’ 세글자를 모두 나타내기보다는 두 글자로 줄이는 것이 좋다. 두 글자로 줄인다면 ‘硏院’ ‘究院’일 것이나 둘 다 모두 어색하다. 이럴 때는 이를 상징할 시어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翰’이다. ‘翰’은 본래 높이 날아오르는 굳세고 아름다운 새의 깃털을 뜻하며, 문필(文筆)과 학문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옛날 왕실의 학술과 문장을 담당하던 관청을 한림원(翰林院)이라 불렀던 것처럼, 이 글자는 시대를 이끄는 최고의 지성과 학문의 권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따라서 ‘翰’은 고운 선생의 드높은 학문 성취와 문장가로서의 기상을 기리는 동시에, 연구원을 품격있게 나타낼 수 있는 시어이다. 이 또한 ‘硏院’ ‘究院’과 매우 차이가 난다. 56자의 함축에서 한두 글자의 차이가 풍격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伽倻는 합천의 옛 지명으로 선생의 〈題伽倻山讀書堂〉을 연상시킨다. 제 마지막 압운인 형(亨)은 지금까지의 흐름에 어색한 압운이지만, 응모의 입장에서는 도리가 없다. 만약 이 작품이 가작이라도 입선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심사자의 자질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는 활용할 수 없었지만, 時務十條(평측측평)를 선생의 다른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구를 찾아 대장(對仗)한 작품이 있다면, 다른 표현이 약간 어색할지라도 충분히 인정받아야만 할 것이다. 시는 평측의 유희가 아니라 언지(言志)이며, 時務十條는 후인이 선생을 떠올리는 제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人一能之己百之, 人百能之己千之와 더불어 대장에 桂苑筆耕, 時務十條 등의 구가 인용된 작품이 선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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