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 牧丹 목단/대한신운(大韓新韻) 경(經)운
國色天香花中花 (국색천향화중화)
국색 천향 꽃 중의 꽃
春殘開花稱傾城 (춘잔개화칭경성)
늦봄의 개화는 성을 기울인다네.
千嬌萬態破朝霞 (천교만태파조하)
천의 요염과 만 자태는 아침노을을 뚫고
裁雲綴霜搖風炳 (재운철상요풍병)
구름을 재단하고 서리를 꿰고 바람에 흔들려 빛난다네.
誇示天下無雙艷 (과시천하무쌍염)
천하에 둘도 없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獨占人間第一情 (독점인간제일정)
인간 세상 제일 정을 독점했다네.
古人讚歎不看後 (고인찬탄불간후)
옛사람 찬탄은 뒤를 보지 못했으니
落花慘憺輾空庭 (낙화참담전공정)
낙화는 참담하여 빈 뜰에 나뒹구네.
* 경(經)운: 경, 갱, 녕(령), 냉(랭), 명, 맹, 병, 성, 생, 영, 앵, 정, 쟁, 청, 평, 팽, 탱, 형, 행
* 목단은 목단(牧丹) 또는 모란(牡丹)이라 불리는 낙엽성 관목으로, 작약과 같은 작약과(芍藥科)에 속하지만, 작약이 해마다 땅 위 줄기가 사라지는 초본인 데 비해 목단은 겨울에도 목질의 줄기가 살아남는 다년생 화목(花木)이다. 4월 하순에서 5월 중순 사이에 꽃을 피우며, 한 송이의 크기가 크고 꽃잎이 겹겹이 포개져 있어 단번에 시선을 압도한다. 당(唐)나라 이후로는 국색(國色), 천향(天香), 화왕(花王), 부귀화(富貴花) 등의 상징으로 추앙받으며, 특히 뤄양의 목단은 천하의 절색으로 회자(膾炙)되었다.
〈작약〉의 구성 뒤 자연스럽게 〈목단〉으로 이어졌다. 목단(牧丹)이 언제부터 모란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는 뚜렷한 정설을 찾기 어렵다. 추측건대,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오랫동안 애송되면서, 목단보다는 모란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굳어진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牧을 “소를 기르는 사람(養牛人也)”이라 풀이하였고, 목민(牧民)과 같이 백성을 기른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牧은 단순히 ‘방목’에 머물지 않고, ‘으뜸이 되어 기른다’는 뜻까지 품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丹(단)이 어째서 ‘란’으로 읽히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목단이 본음에 가깝다면, 모란은 확실히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들리기는 한다. 당(唐)나라 유우석(劉禹錫 772~842)의 〈상목단(賞牡丹)〉은 예로부터 회자(膾炙)된다.
庭前芍藥妖無格 (정전작약요무격)
뜰 앞 작약은 요염하나 격이 없고
池上芙蕖淨少情 (지상부거정소정)
못 속의 연꽃은 청정하나 정이 적게 가네.
唯有牡丹眞國色 (유유목단진국색)
오직 목단만이 참된 국색이어서
花開時節動京城 (화개시절동경성)
꽃 피는 시절이면 온 경성을 움직인다네.
池上은 ‘연못 위’가 아니라 ‘연못 속’으로 번역해야 한다. 당시(唐詩)에서는 상·하구의 평측 안배를 맞추어야 하므로, 庭前에 대응하는 池中을 쓰지 못하고 池上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의도한 표현이라기보다, 평측이라는 형식의 제약이 낳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대한신운(大韓新韻)은 평측의 제약을 배제하고 문법과 의미를 우선하므로 池中이라고 써야 한다.
만약 이 시가 겉으로는 목단을 찬미하면서도, 속으로는 작약과 연꽃 같은 참된 아름다움은 홀대받고, 양귀비와 같은 권력의 총애만이 세상을 뒤흔드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면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動京城’에는 단순한 화려함을 넘어, 권력과 욕망에 흔들리는 세태까지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숨은 뜻 없이, 단지 목단을 높이기 위해 작약과 연꽃을 폄하(貶下)한 것이라면 오늘의 눈으로는 마냥 좋은 작품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작약은 작약대로 아름답고, 연꽃은 또 연꽃대로 얼마나 많은 세인의 찬탄을 받아왔던가! 참된 아름다움은 서로를 낮춤으로써 빛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제 자리에서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몇 해 전 목단 두 그루를 사다 난간 앞에 심었다. 해마다 늦봄이면 탐스러운 꽃을 피워 눈길을 사로잡기는 하지만, 옛사람들이 입을 모아 국색(國色)이니 천향(天香)이니 하며 극찬하던 정도까지는 쉽게 공감되지 않는다. 물론 활짝 핀 순간의 화려함은 눈길을 끌 만하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커다란 꽃잎이 한꺼번에 떨어지고, 비라도 한 차례 지나간 뒤 축 늘어진 채 흙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모습은 차라리 처연함에 가깝다.
특히 비에 젖어 짓눌린 꽃잎은, 한때 권세를 휘두르며 천하를 호령하다가 끝내 몰락한 권력자의 쓸쓸하고도 처참한 최후를 떠올리게 한다. 활짝 필 때의 영화가 클수록, 지고 난 뒤의 허망함 또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옛사람들이 예외 없이 목단을 찬양했던 까닭은 꽃 자체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목단이 상징하는 부귀영화(富貴榮華), 경국지색(傾國之色), 그리고 인간이 끝내 놓지 못하는 세속 욕망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련(頸聯)까지는 옛사람들이 목단에 부여했던 찬탄과 상징을 인용하고, 미련(尾聯)에서는 실제로 목단을 가까이 두고 느낀 나만의 단상을 덧붙여 보았다. 꽃이 피는 순간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꽃이 지고 난 뒤까지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또 하나의 목단, 곧 영화 뒤에 남는 허망과 쇠락의 모습을 함께 담아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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