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 追慕玉溪盧禛先生 추모 옥계 노진 선생 합장(合掌) 금지의 예 3/대한신운(大韓新韻) 경(經)운
名家出身修性理 (명가출신수성리)
명가의 출신은 성리를 닦아
滅私先公自經行 (멸사선공자경행)
멸사선공은 절로 경행이었네.
官途淸廉萬人頌 (관도청렴만인송)
관도는 청렴하여 만인이 칭송했고
孝誠至極百代敬 (효성지극백대경)
효성은 지극하여 백 대가 공경하네.
生前旌閭彰明德 (생전정려창명덕)
생전의 정려는 명덕을 현창하고
死後諡號總歷程 (사후시호총역정)
사후의 시호는 역정을 총괄했네.
玉溪垂蔭抱鄕流 (옥계수음포향류)
옥계는 그늘 드리워 마을 안고 흐르니
後人奉祀仰英靈 (후인봉사앙영령)
후인은 제사 받들어 영령을 우러르네.
* 경(經)운: 경, 갱, 녕(령), 냉(랭), 명, 맹, 병, 성, 생, 영, 앵, 정, 쟁, 청, 평, 팽, 탱, 형, 행
* 함양향교에서는 5월 3일(일), 천령(天嶺) 축제 기간에 2026년도 전국 한시 백일장을 개최한다. 올해로 5회를 맞는다. 시제는 〈追慕玉溪盧禛先生(추모 옥계 노진 선생)〉 선생이며, 〈대한신운〉 심사 기준과 시제 자료는 다음과 같다.
1. 옥계 선생의 작품 중에서 4자 이하로 각 구 또는 구에 인용을 권장한다. 단, 대장은 네 자 이하를 인용하되 한 구만 인용하고 나머지는 맞추어야 한다. 2. 문법을 중시한다.
3. 평측을 고려하지 않는다.
4. 함련(頷聯)과 경련(頸聯) 사이의 합장(合掌)을 금지한다.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은 조선 중기의 사림 문신으로, 학문과 행정, 그리고 효행을 함께 갖춘 인물이다.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 또는 칙암(則庵)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그는 경상도 함양에서 태어나 유학 전통이 깊은 가문에서 성장하였다. 증조부는 예조참판(禮曹參判) 노숙동(盧叔仝)이고, 조부 노분(盧昐), 부친 노우명(盧友明) 또한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이 있었으며, 외가는 사성원(司成院) 권시민(權時敏)의 가문이다. 이러한 가문 배경 속에서 어려서부터 성리학 수양과 도의를 중시하는 삶을 본받았다.
1537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6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승문원 박사(承文院 博士)를 시작으로 전적(典籍), 예조 낭관(禮曹 郎官) 등을 거치며 중앙에서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이 시기 그는 문장과 학식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었으나, 그의 진정한 면모는 지방관으로 나아가면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1555년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부임하여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고, 치성(治聲)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담양부사(潭陽府使), 진주목사(晉州牧使), 전주부윤(全州府尹), 곤양군수(昆陽郡守) 등을 지내며 각지에서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힘썼다. 그는 세금과 부역을 공정하게 조정하고, 억울한 일을 직접 살펴 해결하는 등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행정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그는 청백리로 선발되어 청렴한 관료로 인정받았다.
중앙에서도 장령(掌令), 집의(執義), 직제학(直提學), 부제학(副提學), 도승지(都承旨), 이조참의(吏曹參議),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대사헌(大司憲) 등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1575년에는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올랐고, 이후 이조판서(吏曹判書), 형조판서(刑曹判書), 공조판서(工曹判書), 예조판서 등에 연이어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사양하거나 병을 이유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사양이 아니라, 그의 삶이 권력보다 도의를 우선한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노진의 삶에서 제일가는 특징은 효행이다. 그는 30여 년의 관직 생활 동안 실제로 조정에 머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이는 대부분 시간을 노모 봉양에 바쳤기 때문이다. 높은 관직에 있었음에도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지 않았고, 고향에도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권력과 재물을 가까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를 멀리한 그의 태도는 청렴과 절제가 결합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은 당대에도 크게 인정되었다. 그는 생전에 효자로서 정려(旌閭)가 세워졌고, 사후에는 문효(文孝)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또한 남원의 창주서원(滄州書院), 함양의 당주서원(溏州書院)에 배향되어 학문과 덕행을 함께 기리는 인물이 되었다. 저서로는 《옥계문집(玉溪文集)》이 전한다.
그의 인품은 학자들과의 교유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기대승(奇大升), 노수신(盧守愼), 김인후(金麟厚) 등과 도의를 바탕으로 교유하였다. 이는 정치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학문과 인격을 중심으로 한 관계였다는 점에서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서울의 우사(寓舍)에서 별세하였을 때, 임금은 3일 동안 조례를 중지하고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고향 함양으로 장례를 치를 때에는 고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슬퍼하였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조차 집에서 위패를 세우고 통곡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관료가 아니라 백성과 함께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진의 생애는 조선 사림이 추구한 이상을 온전하게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학문으로 자신을 닦고, 행정으로 백성을 이롭게 하였으며, 개인의 삶에서는 효를 실천했다. 또한 권력과 재물을 멀리하고 절제함으로써 공직자의 본분을 지켰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한 시대의 관료를 넘어, 조선 사회가 이상으로 그린 선비의 모습을 실천으로 보여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삶은 단지 과거의 미덕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에도 공직자의 자세와 인간의 도리를 성찰하게 하는 귀감(龜鑑)이 된다. 권력과 이익보다 책임과 절제를 앞세운 그의 태도는, 물질과 경쟁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사사로운 욕심을 억제하고, 가족에 대한 도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조화롭게 실천한 점은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한 가치로 남아 있다. 결국 그의 삶은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 합장(合掌) 금지 원칙을 532, 533에 이어 다시 한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수련(首聯)
名家(관형어)/出身(주어)/修(동사)/性理(목적어)
滅(동사)/私(목적어)/先(동사)/公(목적어)/自(부사)/經行(서술 동사)
함련(頷聯)
官途(주어)/淸廉(형용동사)/萬人(주어)/頌(동사)
孝誠(주어)/至極(형용동사)/百代(주어)/敬(동사)
경련(頸聯)
生前(관형어)/旌閭(주어)/彰(동사)/明德(목적어)
死後(관형어)/諡號(주어)/總(동사)/歷程(목적어)
미련(尾聯)
玉溪(주어)/垂(동사)/蔭(목적어)/抱(동사)/鄕(목적어)/流(동사)
後人(주어)/奉(동사)/祀(목적어)/仰(동사)/英靈(목적어)
멸사선공(滅私先公)은 멸사봉공(滅私奉公) 이 더 좋지만, 제8구의 奉과 중복이어서 바꾸었다. 선생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사양했으니, 사를 앞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이때의 명사는 사심을 버린 상태를 말하므로 충분히 통할 수 있다. 대체로 노진 선생의 행적을 총괄했으니 최소한 가작보다는 앞설 것이다. 이처럼 완벽하게 합장(合掌)을 피했을 때 자구의 묶음은 모두 37 단위이다. 그런데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서 전체 구가 모두 주어/동사/목적어인 합장(合掌) 구조로 표현된다면 최소 24단위이며 부분 합장을 인정하더라도 위와 같이 구성하지 않으면 32단위를 넘기 어렵다. 7자 8구로 구성되는 56자에서 한 단위의 차이는 매우 크다. 멸사선공 대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쓴다면 멸사선공은 동사/목적어/동사/목적어로 4단위지만, 지행합일은 한 단위로 취급되므로 성어의 인용에도 단위수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물론 단순하게 단위 수만 가지고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백일장에서는 압운(押韻)이 대체로 주어지며 같은 압운에서는 표현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 단위 수가 심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이 주어진 자료를 잘 소화해서 나타내었으므로, 보통의 경우라면 심사위원 전원이 장원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위의 심사 기준을 적용하면 이보다 표현이 낮은 작품이 장원으로 선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옥계 선생 100수 중에서 네 자 이하로 인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정한바, 이 작품은 전혀 인용이 없다. 추모의 작품을 쓰는데, 선생작품의 인용이 없다면, 두루뭉술하게 표현되어 진정한 추모가 이루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옥계 선생의 100수를 선정하여 함양향교와 함양군청 홈페이지에 게재해 두었다.
덧붙여 천고의 절창으로 평가받는 시성 두보의 〈등고(登高)〉 단위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風急天高猿嘯哀 바람 급하고 하늘 높고 원숭이 울음 애잔하고
渚淸沙白鳥飛迴 물가 맑고 모래 희고 새는 날다가 돌아오네.
無邊落木蕭蕭下 끝없이 지는 나뭇잎 소슬히 떨어지고
不盡長江滾滾來 다함 없는 긴 강물 도도히 흘러오네.
萬里悲秋常作客 만 리 타향 슬픈 가을 언제나 객을 만들고
百年多病獨登臺 한평생 많은 병에 홀로 누대를 오르네.
艱難苦恨繁霜鬢 힘들고 한스러운 세상에 번다한 귀밑머리
潦倒新停濁酒杯 곤궁하여 이제 막 탁주 잔도 멈추었네.
단위 수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風(주어)/急(상태동사)/天(주어)/高(상태동사)/猿嘯(주어)/哀(형용동사)
渚(주어)/淸(상태동사)/沙(주어)/白(상태동사)/鳥(주어)/飛(동사)/迴(동사)
無邊(관형어)/落木(주어)/蕭蕭(부사형)/下(동사)
不盡(관형어)/長江(주어)/滾滾(부사형)/來(동사)
萬里(관형어)/悲秋(주어)/常(부사)/作(동사)/客(목적어)
百年(관형어)/多病(주어)/獨(부사)/登(동사)/臺(목적어)
艱難(형용동사)/苦恨(형용동사)/繁(부사)/霜鬢(명사)
潦倒(형용동사)/新(부사)/停(동사)/濁酒杯(목적어)
전체 39단위이다. 물론 부분 합장이 있기는 하지만,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어려운 구성이다. 수련(首聯)인 1/2구는 주어/동사/주어/동사로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었다고 해서 최고급 대장(對仗)인 유수대(流水對)라고 한다. 10만 수 중에서도 이러한 구성은 찾기 어려울 것이며, 그래서 천고의 절창이다. 이론상으로는 56단위이며, 합장(合掌)도 완벽하게 피하면서 이처럼 유수대로 나타내어 45단위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가히 신의 영역이라 할 것이지만, 평측이 존재하는 고시에서는 불가능하다. 〈대한신운〉은 평측을 배제하므로 가능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자신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문사는 한 번쯤 도전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의 존경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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