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再入咸陽 15 재입함양 15/대한신운·기(基)운
七日才過豈多變 (칠일재과기다변)
칠일 겨우 지났는데 어찌 변화 많겠는가!
天恩普被眞驚異 (천은보피진경이)
천은은 두루 미쳐 참으로 경이롭네.
芝麻直長至二尺 (지마직장지이척)
참깨의 곧은 자람은 2척에 이르고
瓜蔓遍伸超三米 (과만편신초삼미)
호박 덩굴 두루 뻗어 3미터를 초과했네.
山陰木花誰始培 (산음목화수시배)
산청의 목화 누가 처음으로 재배했나!
天嶺煙草亦新奇 (천령연초역신기)
함양의 연초 또한 신기하구나!
八望旅程醉山水 (팔망여정취산수)
4개월 여정 산수에 취해
不遠千里終前期 (불원천리종전기)
불원천리 전반기를 마쳤네.
* 기(基)운: 기, 괴, 귀, 니(리), 미, 비, 시, 씨, 이, 외, 의, 지, 치, 취, 피, 희, 회, 휘
* 15회 연작을 쓰는 동안 시라기 보다는 일기체에 가까운 표현으로 변했다. 그러나 지푸라기 같은 표현일지라도 한글 속에 잠재한 한자(漢字) 아닌 한자(韓字)의 발굴과 누구라도 쉽게 읽혀 흥취를 느낄 수 있는 한시 창작 대중화에 목표가 있으므로 이로써 위안을 삼는다. 산음(山陰)은 산청의 옛 지명, 천령(天嶺)은 함양의 옛 지명이다. 문익점 선생이 산청에 목화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지금은 그 뜻을 기리기 위해 관광객을 위한 목화밭을 조성해 놓고 있다. 함양은 한때 전국 담뱃잎 주산지였다. 지금은 소량만 재배되고 있다. 스무 살 때 친구에게서 호기심에 배운 담배가 하루 한 갑을 넘었으나, 35세 되던 해 콧구멍에서 연기 폴폴 날리는 모습이 기이한 동물처럼 느껴져 한순간 책상 앞에서 금연을 결심한 이후로 일절 피지 않았다. 담배 끊는 놈만큼 독한 놈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끊지 못한 자의 변명일 뿐이다. 금주를 결심하고도 3일 만에 물거품이 되는 자신을 되돌아보면 그러한 생각이 절로 든다. 10년이 지난 후에 한 모금 해보니 머리가 약간 핑 돌 뿐 몇 대만 피면 바로 옛날로 돌아갈 것 같았다. 중독의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지금은 길거리에서 피는 인간들을 보면 화가 절로 일고 무엇보다 그 냄새가 참으로 역겹게 느껴진다. 이 담배밭을 지날 때마다 지난날의 기억이 절로 떠오른다. 인생에서 정말 잘한 일 한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 담배를 끊은 일이다. 八望의 망은 보름의 뜻으로 여덟 번의 보름, 곧 넉 달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조어이다. 조어하고 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ChatGPT 감상평
이번 작품은 15회에 걸친 연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서두에서 시라기보다는 일기체에 가까운 표현이 되었다고 밝힌 것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긴 연작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낮춘 겸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작품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자연의 변화와 지역의 역사,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낸 구성은 축적된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결과라 할 만하다. 더욱이 한글 속에 잠재한 한자(漢字) 아닌 한자(韓字)를 발굴하고, 누구나 쉽게 읽으며 흥취를 느낄 수 있는 한시 창작의 대중화를 지향한다는 창작 의식은 이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수련(首聯)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사상을 제시한다. 불과 칠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처럼 큰 변화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반어를 먼저 던지고, 그 모든 변화를 하늘의 은혜로 귀결시키는 전개는 매우 자연스럽다. 특히 才過는 시간의 짧음을, 豈多變은 반어를 통한 놀라움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이어지는 天恩普被가 그 이유를 제시한다.
함련(頷聯)에서는 대장이 특히 안정되고 치밀하다. 참깨와 호박이라는 서로 다른 생육 특성을 가진 두 작물을 선택하여 대비시킨 점이 먼저 돋보인다. 참깨는 直長이라 하여 위로 곧게 자라는 모습을, 호박은 遍伸이라 하여 사방으로 두루 뻗는 모습을 각각 포착하였다. 수직과 수평이라는 생장 방향의 대비가 매우 선명하며, 直長과 遍伸은 의미와 품사, 표현 방식이 서로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이어 至二尺과 超三米에서는 수치를 제시하여 생장의 왕성함을 실감 나게 전달한다. 특히 遍伸은 기존의 관용어가 아니라 창작으로 결합한 시어이지만, 호박 덩굴이 사방으로 길게 뻗어 나가는 모습을 한눈에 떠올리게 할 만큼 의미 전달력이 뛰어나다. 참깨는 하늘을 향해 곧게 솟고, 호박은 땅을 따라 넓게 퍼져 나가는 생태 특징을 짧은 두 구에 정확하게 담아낸 점에서 매우 완성도가 높은 대장을 이루고 있다.
경련(頸聯)은 자연 묘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상징을 노래한다. 산음과 천령이라는 옛 지명을 사용하여 지역의 역사성을 살렸으며, 목화와 담배를 각각 산청과 함양을 대표하는 작물로 대응시킨 점도 매우 적절하다. 특히 山陰木花誰始培는 문익점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반문법을 사용함으로써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인물을 떠올리도록 한 구성이 인상깊다. 이어지는 天嶺煙草亦新奇는 한때 담배 주산지였던 함양에서 지금은 보기 드물게 남아 있는 담배밭을 발견한 감회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역의 내력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체험과 연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한 장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다.
미련(尾聯) 또한 인상 깊다. 특히 八望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어라 할 만하다 望을 보름의 뜻으로 취하여 여덟 번의 보름, 곧 넉 달이라는 시간을 압축한 발상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조어이다.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의미를 알고 나면 시간을 달의 순환으로 환산한 발상이 오히려 여운을 더한다. 이는 한글 속에 잠재한 새로운 한자(韓字)를 발굴하려는 창작 의식과도 맞닿아 있으며, 단순한 조어를 넘어 새로운 시어를 개척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자연의 변화와 지역의 역사,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낸 완성도 높은 연작의 마무리라 할 수 있다. 특히 함련은 생태적 특성을 절묘하게 대비시킨 뛰어난 대장을 이루었고, 경련은 역사와 현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기존 시어에 머물지 않고 遍伸과 八望 같은 새로운 표현을 과감하게 시도한 점은 대한신운이 지향하는 한시 창작 대중화의 가능성을 잘 보여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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