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631. 賦得流觴曲水 굽이도는 물에 흐르는 술잔을 얻어/ChatGPT와 대화로 짓다

대한신운 2026. 7. 14. 07:49

631. 賦得流觴曲水 부득유상곡수/대한신운·()

茂林修竹抱(무림수죽포수월)

울창한 숲 곧은 대 물과 달을 품고

靑天白雲隨風 (청천백운수풍)

청천의 백운은 바람 따라 흐르네.

三伏三更享三樂 (삼복삼경향삼락)

삼복의 삼경에 세 가지 즐거움을 누리니

一臥一得一(일와일상득일)

한번 눕고 한잔 술에 한 수를 얻네.

榮辱浮沈已遠去 (영욕부침이원거)

영욕 부침은 이미 멀어져 갔으니

是非直不必 (시비곡직불필)

시비곡직에 얽매일 필요가 없네.

銀河迢迢露下際 (은하초초노하제)

은하 아득하고 이슬 내릴 무렵

因寄所託泛虛 (인기소탁범허)

마음 둘 곳에 뜻 부쳐 빈 배를 띄우네.

* (): , , (), (), , , , , , , , , , ,

* 부득체(賦得體)에 대한 설명은 앞선 622번에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줄인다. 유상곡수(流觴曲水)는 왕희지(王羲之)난정집서(蘭亭集序)에서 취했다. 난정집서는 경물에 감회를 실은 명문이어서 부득체를 구성할 만한 성어와 시상이 풍부하다. 집 주위에 심은 나무들이 1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울창한 숲을 이루어, 길가에서 불과 200미터 떨어진 산록인데도 집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녹음을 드리워, 한여름에도 더위를 잊고 지낼 만큼 시원한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실제 풍경을 바탕으로 유상곡수를 떠올리며 삼복의 더위를 피하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대장(對仗)이 대체로 잘 이루어졌다. 특히 의 대장 표현은 전통 율시에서는 거의 구현하기 어려운 구성으로 대한신운이 지닌 장점이다.

ChatGPT 감상평

왕희지(王羲之)난정집서(蘭亭集序)는 중국 산문(散文)과 서예사를 함께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흔히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 천하 으뜸의 행서)로 널리 알려졌지만, 문학의 관점에서도 육조(六朝) 산문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동진(東晉) 영화(永和) 9(353), 왕희지는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마흔한 명의 명사를 초청하여 음력 삼월 삼짇날 액운을 씻는 수계(修禊)를 행했다. 문인들은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워 잔이 멈춘 자리의 사람이 시를 짓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풍류를 즐겼으며, 이날 지어진 서른일곱 편의 시를 모아 왕희지가 서문을 쓴 것이 바로 난정집서이다.

그러나 난정집서1,6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읽혀 온 까닭은 유상곡수의 풍류를 기록한 데만 있지 않다. 글은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점차 인간의 삶과 죽음 세월의 무상함 그리고 후세를 향한 성찰로 사유를 넓혀 간다. 준험한 산과 높은 봉우리를 이르는 숭산준령(崇山峻嶺) 울창한 숲과 곧게 자란 대나무를 뜻하는 무림수죽(茂林修竹) 맑은 시냇물이 바위에 부딪쳐 세차게 흐르는 모습을 그린 청류격단(淸流激湍) 굽이치는 물줄기에 술잔을 띄우는 유상곡수(流觴曲水)는 난정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 준다. 이어 하늘이 맑고 공기가 깨끗함을 이르는 천랑기청(天朗氣淸) 은혜로운 바람이 온화하게 분다는 혜풍화창(惠風和暢) 눈으로 경치를 마음껏 바라보고 마음을 한껏 펼친다는 유목빙회(遊目騁懷) 술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는 일상일영(一觴一詠)은 난정의 풍류를 생생하게 전하는 대표 성어이다.

글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마음을 붙여 의탁한다는 인기소탁(因寄所託) 육신의 구속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감을 뜻하는 방랑형해(放浪形骸) 세상일이 변하면 사람의 감정도 함께 변한다는 정수사천(情隨事遷) 삶의 길고 짧음은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는 수단수화(修短隨化) 삶과 죽음 또한 인간에게 가장 중대한 문제라는 사생역대(死生亦大) 후세 사람이 오늘을 바라보는 것이 오늘의 사람이 옛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후지시금(後之視今)과 역유금지시석(亦猶今之視昔)에 이르면 자연의 즐거움은 어느새 인생철학으로 승화된다. 이처럼 난정집서는 단순한 서문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풍류와 철학을 한데 아우른 명문이며, 부득체(賦得體)를 구성하기에 가장 풍부한 시어 자산을 간직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난정집서의 수많은 성어 가운데 유상곡수를 시제로 삼았지만, 원문의 경관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풍류와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련(首聯)茂林修竹抱水月/靑天白雲隨風流는 이러한 재창조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부분이다. 첫 구의 무림수죽(茂林修竹)난정집서를 대표하는 성어를 그대로 취했지만, 뒤에 포수월(抱水月)을 더하여 숲과 대나무가 물과 달을 품는 새로운 경관을 창조했다. 원전의 무림수죽이 난정을 둘러싼 실제 자연을 묘사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정서가 서로 스며드는 상징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어지는 靑天白雲隨風流 역시 천랑기청과 혜풍화창의 분위기를 계승하면서도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않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바람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으로 새롭게 형상화했다. 이처럼 수련은 원전의 성어를 단순히 인용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정신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상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부득체가 지닌 재독서의 의미를 잘 보여 준다.

함련(頷聯)三伏三更享三樂/一臥一觴得一首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만하다. 원문의 일상일영(一觴一詠)은 술 한 잔과 시 한 수로 난정 문인들의 풍류를 집약한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를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새로운 구조로 재구성했다. 삼복(三伏)은 계절을, 삼경(三更)은 시간을 나타내어 한여름 깊은 밤이라는 배경을 마련하고 삼락(三樂)으로 그 시간에 누리는 풍류를 총괄했다. 이에 대응하는 다음 구에서는 일와(一臥)로 몸을 쉬는 여유를, 일상(一觴)으로 술 한 잔의 흥취를, 일수(一首)로 자연스럽게 얻어진 시를 제시하여 앞 구의 세 가지 즐거움을 풀어낸다. 앞 구가 전체를 제시하고 뒤 구가 그 내용을 전개하는 구성은 의미의 흐름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대장(對仗)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삼복(三伏)과 일와(一臥), 삼경(三更)과 일상(一觴), ()과 득(), 삼락(三樂)과 일수(一首)가 품사와 의미를 함께 대응하고 있으며, 첫째·셋째·여섯째 자리에 각각 을 반복하여 배열한 점은 매우 뛰어나다. 특히 을 대응시킨 구성은 전통 율시에서는 거의 구현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대한신운이 지닌 표현상의 장점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작일수(作一首)가 아니라 득일수(得一首)를 사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시는 애써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술과 여유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절로 얻어진다는 뜻이므로, 유상곡수의 풍류를 오늘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경련(頸聯)榮辱浮沈已遠去/是非曲直不必拘는 풍류의 세계를 인생의 성찰로 전환하는 부분이다. 왕희지는 난정집서후반에서 정수사천(情隨事遷)이라 하여 사람의 감정은 세상일에 따라 변하고, 수단수화(修短隨化)라 하여 삶의 길고 짧음 또한 자연의 이치를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간은 영원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삶과 죽음마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글을 맺는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사상을 현대의 삶으로 옮겨 놓았다. 영욕부침(榮辱浮沈)은 사람이 평생 겪는 명예와 치욕, 흥망과 부침을 집약한 말이며, 시비곡직(是非曲直)은 세속의 온갖 가치 판단을 아우른다. 여기에 이원거(已遠去)와 불필구(不必拘)를 대응시켜 지나온 세월에 대한 회고와 현재 삶의 태도를 함께 드러냈다. 영욕과 부침은 이미 멀어져 갔고, 이제는 시비곡직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담담한 인생관은 난정집서가 지닌 철학의 깊이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련(尾聯)銀河迢迢露下際/因寄所託泛虛舟는 원전의 성어를 가장 현대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부분이다. 첫 구는 은하가 아득히 펼쳐지고 이슬이 내릴 만큼 밤이 깊어진 여름의 정경을 그려 낸다. 노하(露下)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한밤중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시어이며, 은하초초(銀河迢迢)는 현실의 밤하늘을 넘어 끝없이 펼쳐지는 정신의 공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인기소탁(因寄所託)난정집서에서 직접 취한 성어이다. 원문에서는 사람마다 저마다 마음을 의탁한 바를 따라 살아간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여기에서는 범허주(泛虛舟)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난정의 문인들이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웠다면, 이 작품에서는 은하를 하나의 강으로 삼아 빈배를 띄운다. 곡수(曲水)는 은하(銀河), 유상(流觴)은 허주(虛舟)로 바뀌면서 현실의 풍류는 정신의 세계로 확장된다. 특히 허주(虛舟)는 장자의 전고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마음을 비운 삶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쓰여 왔으므로, 결구는 단순히 빈 배를 띄우는 장면이 아니라 세속의 번뇌를 내려놓고 자연에 마음을 맡기는 경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득체의 가치는 원전을 깊이 읽고 그 속에 담긴 사상과 정서를 다시 이해한 뒤, 이를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하여 독자로 하여금 원전을 다시 펼쳐 읽게 만드는 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난정집서를 단순한 소재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되살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을 읽은 뒤 자연스럽게 난정집서의 원문과 성어를 다시 찾아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득체가 지닌 가장 큰 문학성취의 가치일 것이다.

아울러 이 작품은 대한신운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도 잘 보여 준다. 특히 함련에서 구현한 의 대응은 의미와 품사뿐 아니라 글자의 배열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대장으로, 전통 율시에서는 평측과 각종 형식 제약 때문에 구현하기 어려운 구성이다. 대한신운은 평측의 속박을 벗어나 대장의 본질인 의미와 구조의 대응을 더욱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 작품은 그러한 특징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한 예로서, 부득체가 원전을 다시 읽게 하는 독서의 즐거움과 대한신운이 열어 가는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함께 보여 준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왕희지(王羲之)난정집서(蘭亭集序)는 중국 산문사와 서예사를 함께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흔히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 천하에서 으뜸가는 행서 작품)라는 서예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육조(六朝) 산문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동진(東晉) 영화(永和) 9(353), 왕희지는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 마흔한 명의 명사를 초청하여 음력 삼월 삼짇날 액운을 씻는 수계(修禊)를 행하였다. 당시 문인들은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워 잔이 멈춘 자리의 사람이 시를 짓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풍류를 즐겼고, 이날 지어진 서른일곱 편의 시를 모아 왕희지가 서문을 쓴 것이 바로 난정집서이다.

그러나 난정집서가 천육백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읽혀 온 까닭은 유상곡수라는 풍류를 기록한 데만 있지 않다. 글은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점차 인간의 삶과 죽음, 세월의 무상함, 그리고 후세를 향한 성찰로 사유를 넓혀 간다. 준험한 산과 높은 고개를 뜻하는 숭산준령(崇山峻嶺), 울창한 숲과 길게 자란 대나무를 이르는 무림수죽(茂林修竹), 맑은 시냇물이 바위에 부딪쳐 세차게 흐르는 정경인 청류격단(淸流激湍), 굽이치는 물줄기에 술잔을 띄우는 유상곡수(流觴曲水)는 난정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이어 하늘이 맑고 공기가 깨끗하다는 천랑기청(天朗氣淸), 은혜로운 바람이 온화하고 부드럽게 분다는 혜풍화창(惠風和暢), 눈길을 머물게 하고 마음을 달린다는 유목빙회(遊目騁懷), 술 한 잔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는 일상일영(一觴一詠)과 같은 명구는 그날의 풍류를 생생하게 전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마음을 붙여 의탁한다는 인기소탁(因寄所託), 육신의 구속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거닐며 즐긴다는 방랑형해(放浪形骸), 세상일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감정도 바뀐다는 정수사천(情隨事遷), 삶의 길고 짧음은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는 수단수화(修短隨化), 삶과 죽음 또한 커다란 일이라는 사생역대(死生亦大), 후세 사람이 지금 사람을 보는 것이라는 후지시금(後之視今), 지금 사람이 옛사람을 보는 것과 같다는 역유금지시석(亦猶今之視昔)으로 이어지는 문장은 자연의 즐거움에서 인생의 철학으로 나아가는 사상의 흐름을 완성한다. 이처럼 난정집서는 단순한 서문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풍류와 철학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부득체(賦得體)를 구성하기에 가장 풍부한 시적 자산을 품은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난정집서의 수많은 성어 가운데 유상곡수를 시제로 삼았지만, 원문의 정경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부득체의 본령은 원전의 글자를 빌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전을 다시 읽고 그 의미를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되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 역시 난정의 봄 풍경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그 속에 담긴 풍류와 삶의 태도를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난정집서의 수많은 성어 가운데 유상곡수를 시제로 삼았지만, 원문의 정경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부득체의 본령은 원전의 글자를 빌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전을 다시 읽고 그 의미를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되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 역시 난정의 봄 풍경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그 속에 담긴 풍류와 삶의 태도를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련의 **茂林修竹抱水月靑天白雲隨風流**는 바로 이러한 재해석을 가장 먼저 보여 준다. 첫 구의 茂林修竹난정집서를 대표하는 성어를 그대로 취하였지만, 뒤에 抱水月을 더함으로써 단순한 경물의 묘사를 넘어 숲과 대나무가 물과 달을 품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였다. 원전의 茂林修竹이 난정을 둘러싼 실제 풍경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정서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상징적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어지는 靑天白雲隨風流 역시 원문의 天朗氣淸惠風和暢에서 분위기를 취하되,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않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으로 새롭게 형상화하였다. 이처럼 수련은 원문의 성어를 단순히 인용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는 점에서 부득체의 본령을 잘 보여 준다.

함련은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으로, 난정집서의 일상일영(一觴一詠)을 가장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대목이다. 원문에서 일상일영은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시 한 수를 읊는 난정 문인들의 풍류를 간결하게 집약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三伏三更享三樂一臥一觴得一首**라는 새로운 구성으로 발전시켰다. 먼저 三伏은 계절을, 三更은 시간을 나타내어 무더운 여름밤이라는 공간적·시간적 배경을 설정하고, 三樂으로 그 밤에 누리는 풍류를 총괄하였다. 이에 대응하는 다음 구에서는 一臥로 몸을 쉬는 여유를, 一觴으로 술 한 잔의 흥취를, 一首로 마침내 얻어진 작품을 제시하여 앞 구의 삼락(三樂)을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이처럼 앞 구가 총괄이라면 뒤 구는 그 내용을 실상으로 드러내는 구조를 이루고 있어 단순한 대구를 넘어 의미까지 긴밀하게 연결된다. 더욱이 三伏一臥, 三更一觴, , 三樂一首가 품사와 기능을 함께 대응하고, 첫째·셋째·여섯째 자리에 각각 을 반복하여 배열한 점은 매우 치밀하다. 전통 율시에서는 평측과 용사의 제약 때문에 이처럼 동일한 위치에 숫자를 반복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의미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대한신운은 평측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대신 의미와 구조의 대응을 더욱 중시하므로, 이러한 대장을 비교적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 특히 得一首라는 표현은 이 작품의 품격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시를 애써 짓는다는 의미의 이 아니라 자연과 술과 여유 속에서 시 한 수를 '얻는다'고 표현함으로써, 창작이 의도적인 노동이 아니라 풍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임을 보여 준다. 이는 유상곡수에서 술잔이 흘러가듯 시흥 또한 억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절로 찾아온다는 난정의 정신과도 자연스럽게 통한다.

경련은 작품의 시상을 풍류에서 인생의 성찰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榮辱浮沈已遠去是非曲直不必拘**난정집서후반부의 사상과 가장 깊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왕희지는 즐거운 모임을 기록하면서도 끝내 情隨事遷이라 하여 사람의 감정은 일에 따라 변하고, 修短隨化라 하여 장수와 단명은 모두 자연의 이치에 맡겨질 뿐이라고 하였다. 결국 인간은 영원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삶과 죽음조차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귀결된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사상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榮辱浮沈은 한평생 사람이 겪는 영광과 치욕, 부침을 네 글자로 집약하였고, 是非曲直은 세속의 온갖 가치 판단을 포괄하였다. 이어 已遠去不必拘를 대응시켜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시선과 현재의 마음가짐을 함께 드러냈다. 이미 영욕의 부침은 지나간 세월 속으로 멀어졌고, 이제는 시비곡직에도 더 이상 마음을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세속을 부정하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온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담담한 자각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련은 난정의 철학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현대의 삶 속에서 다시 해석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미련은 원전의 한 구절을 가장 창조적으로 변용한 대목이다. **銀河迢迢露下際因寄所託泛虛舟**에서 첫 구는 은하가 아득히 펼쳐지고 이슬이 내릴 만큼 밤이 깊어진 여름 산중의 정경을 펼쳐 보인다. 露下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한밤중에서 새벽으로 향하는 깊은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시어이며, 銀河迢迢는 현실의 밤하늘을 넘어 끝없이 이어지는 정신의 공간을 암시한다. 이러한 배경 위에 놓인 因寄所託난정집서에서 직접 취한 성어이다. 원문에서는 사람마다 마음을 의탁한 바를 따라 살아간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여기에서는 泛虛舟와 결합하면서 전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난정의 문인들은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웠으나, 이 작품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은하를 하나의 강으로 삼아 허주(虛舟)를 띄운다. 곡수(曲水)는 은하(銀河), 유상(流觴)은 허주(虛舟)로 바뀌면서 현실의 풍류는 정신의 세계로 확장된다. 특히 허주(虛舟)는 장자의 전고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마음을 비운 삶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따라서 결구는 단순히 빈 배를 띄우는 장면이 아니라 세속의 번뇌를 내려놓고 마음을 자연에 맡기는 정신적 경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득체의 가치는 원전의 글자를 차용하는 데 있지 않다. 원전을 깊이 읽고 그 속에 담긴 사상과 정서를 새롭게 이해한 뒤, 오늘의 삶과 결합하여 또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난정집서를 단순히 소재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원전을 다시 펼쳐 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작품을 감상한 뒤 자연스럽게 난정집서의 원문과 성어를 되새기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득체가 지닌 가장 큰 문학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작품은 대한신운이 지닌 표현의 가능성도 잘 보여 준다. 특히 함련의 三伏三更享三樂一臥一觴得一首는 의미와 품사의 대응은 물론 숫자의 배열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대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전통 율시에서는 평측과 다양한 형식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한신운은 평측의 속박을 벗어나는 대신 대장의 본질인 의미와 구조의 대응을 더욱 충실하게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표현 영역을 개척하였다. 이 작품은 그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한 예라 할 수 있으며, 부득체가 원전을 새롭게 읽게 하는 독서의 즐거움과 대한신운이 열어 가는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