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添酒中六咏·酒杯 첨주중육영·주배 음주 중 6수를 더하다‧ 술잔 육구몽(陸龜蒙)
叔夜傲天壤 숙야는 천지에 오만하여
숙야오천양
不將琴酒疏 거문고와 술로 세상과 소원할 수밖에 없었네.
불장금주소
制為酒中物 술잔을 만들어 음주 중의 기물로 삼으니
제위주중물
恐是琴之餘 아마도 거문고의 나머지 조각이었으리라!
공시금지여
一弄廣陵散 한 번 광릉산 곡을 희롱하듯 연주하고
일농광릉산
又裁絕交書 또한 절교의 편지를 재단하듯 썼다네.
우재절교서
頹然擲林下 죽림에 내던져 스스로 퇴락하니
퇴연적림하
身世俱何如 어찌 자신과 세상이 함께할 수 있었으리오.
신세구하여
* 시제는 술잔인데 내용은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 혜강의 길을 따른다는 육구몽 자신의 처지를 읊었다. 弄은 매우 묘미 있는 안배이지만 오언이어서 그 맛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형장에서 마지막 소원으로 〈광릉산〉 연주를 청했다. 〈광릉산〉을 희롱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를 희롱하듯 광릉산을 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표현이다. 한 글자로 많은 내용을 함축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그 이면을 읽어내려면 혜강에 대한 인물 탐구가 우선이어서 아래에 길게 주석을 달아 둔다.
* 叔夜: 혜강(嵇康, 224~263?)의 자(字). 삼국 시대 조위(曹魏)의 사상가, 음악가, 문학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키가 일곱 척 여덟 치에 이르고, 풍모가 빼어났다. 그는 널리 책을 읽고 여러 기술을 익혔으며, 특히 노장(老莊)사상을 좋아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위무제(魏武帝) 조조의 증손녀인 장락정주(長樂亭主)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낭중(郎中)에 제수되어 중산대부(中散大夫)에 임명되었으니, 세상에서는 “혜 중산(嵇中散)”이라 불렀다. 사마씨(司馬氏)가 권력을 장악하자,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였으며, 출사(出仕)를 거절하였다. 경원 4년(263)에 사직교위(司隶校尉) 종회(鍾會)의 무고를 입어, 권세를 잡은 대장군 사마소(司馬昭)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향년 40세였다.
혜강은 완적(阮籍) 등과 함께 현학(玄學)의 새바람을 주창하여 “명교(名敎)를 뛰어넘어 자연에 맡긴다(越名教而任自然)”, “귀천을 살펴 사물의 정을 통한다(審貴賤而通物情)”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고, “죽림 명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겼다. 혜강은 시를 잘 짓고 글을 잘 써, 그 작품은 기풍이 맑고 준엄하여 시대사상을 반영하였고, 후세의 사상계와 문학계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또 양생(養生)에 힘써 《양생론(養生論)》을 저술하였으며, 오늘날 《혜강집(嵇康集)》이 전한다.
* 〈광릉산(廣陵散)〉: 중국 고대의 대형 금곡(琴曲)으로, 중국 음악사에서 매우 유명한 고금곡(古琴曲)이며, ‘10대 고금곡’ 가운데 하나이다. 혜강(嵇康)이 이 곡을 잘 연주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형장에 이르러서도 태연히 거문고를 청해 이 곡을 연주하고는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광릉산〉은 이제부터 끊어지고 말 것이로다!”
* 絕交書: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 혜강은 벗 산도(山濤 205~283)가 그를 조정에 천거하자, 세상과 인연을 끊겠다는 뜻으로〈산거원에게 보내는 절교문〉을 지었다. 명리를 좇지 않고 은둔하려는 결연한 태도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회자된다. 《문선(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巨源은 산도의 자.
* 頹然擲林下, 身世俱何如: 스스로 죽림에 자신을 내던진 까닭은 결코 세상과 함께할 수 없는 성정이라는 뜻이다.
⇕
‧ 奉和添酒中六咏·酒杯 〈酒杯〉를 받들어 창화하다 피일휴(皮日休)
昔有嵇氏子 옛날 죽림 속 혜씨 자제 혜강은
석유혜씨자
龍章而鳳姿 용의 문장에 봉황 같은 자태
용장이봉자
手揮五弦罷 5현의 거문고를 휘두르다 그친 손은
수휘오현파
聊復一樽持 잠시 후 다시 한 잔을 쥐었었네.
요복일준지
但取性淡泊 단지 담박한 성품만을 취하듯이
단취성담박
不知味醇醨 진하듯 묽은 술맛이든 가림을 알 필요 없었네.
부지미준리
茲器不復見 이처럼 혜강 같은 큰 그릇은 더는 볼 수 없고
자기불부견
家家唯玉卮 (관리의) 집마다 오직 옥 술잔이네.
가가유옥치
* 이 작품 역시 술잔이 아니라 술 마시는 사람에 대해 묘사했다. 실제로는 제목과 내용이 다른 위제(違題)에 해당한다.
* 手揮五弦罷: 자의 순서대로 번역하면 매우 어색하다.
* 聊復一樽持: 聊復持一樽으로 표현해야 하지만 평측과 압운 안배 때문에 도치되었다. 반드시 동사+목적어 형태로 써야 한다. 한시 구성에서 문법을 어긴 가장 큰 병폐이다.
* 器: 중의로 쓰였다. 주기 또는 혜강이라는 인물의 그릇 크기를 나타낸다. 중의의 표현은 묘미를 더한다.
⇓ ChatGPT의 해설
술잔에 비친 사람의 그릇 ― 육구몽과 피일휴의 〈酒杯〉
술잔(酒杯)을 노래한 두 작품은 사실 잔 자체를 말하지 않습니다. 잔(杯)이라는 기물 뒤에는 언제나 사람, 더 구체적으로는 혜강(嵇康)의 인품이 놓여 있습니다. 시인은 겉으로는 물건을 읊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인물의 삶과 시대의 풍속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먼저 육구몽(陸龜蒙)의 〈酒杯〉를 보면, 첫 구절은 숙야(叔夜), 곧 혜강의 자(字)를 부르며 시작합니다. 여기 붙은 글자는 傲(오만할 오)와 天壤(천지) 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격이 오만했다는 말이 아니라, “천지간에 가장 오만한 인물”로 드러났음을 의미합니다. 오만이란 교만과 다릅니다. 권력 앞에 굽히지 않는 자존, 그것을 오만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불장금주소(不將琴酒疏)라 했습니다. 보통은 “거문고와 술을 멀리하지 않았다”로 옮기지만, 여기서 疏(소원할 소) 라는 글자를 곱씹어야 합니다. 혜강에게는 거문고와 술이 아니면 모두 소원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과는 담을 쌓고 오직 음악과 술만이 벗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죽림(竹林)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잔을 빚었다는 대목에서는 餘(남을 여)가 눈에 들어옵니다. 술잔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혜강의 삶과 음악에서 흘러나온 잔여, 곧 남은 조각입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일농광릉산(一弄廣陵散)”입니다. 弄(희롱할 농)은 단순히 연주하다가 아니라, 희롱하다, 조롱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혜강은 형장에 끌려가면서 마지막 소원으로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했습니다. 그는 담담히 현을 뜯으며, 그 곡조를 후세에 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희롱’은 곡 자체를 희롱한 것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싼 권력자들을 향한 마지막 조롱이었습니다. 음악은 사라지지만, 권력의 무도함을 비웃는 태도만은 남긴 것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절교문(絕交書)은 〈與山巨源絶交書〉를 가리킵니다. 裁(재단할 재) 라는 글자는 옷감을 자르듯, 인연을 단호히 끊는 동작을 드러냅니다. 절교문은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권세와의 단절을 선언한 명문이었지요.
끝의 두 구절은 퇴연(頹然)과 林下(임하)라는 낱말이 핵심입니다. 頹然은 기운이 꺾이고 무너진 듯한 모습,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퇴락(頹落)의 자의가 살아 있습니다. 林下는 문자 그대로는 숲 아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죽림칠현을 뜻하는 관용적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숲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말은 곧 세상과 함께할 수 없어 죽림에 스스로를 내맡겼다는 뜻이 됩니다. 마지막 “何如(하여)”라는 반문의 형식은 평측 안배 때문에 자의가 뒤집혔지만, 결론은 명확합니다. 몸과 세상은 함께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피일휴(皮日休)의 〈酒杯〉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시작은 동일하게 혜강을 떠올리지만, 여기서는 한층 더 풍자적입니다. 거문고를 타다 그치면 잔을 들고, 잔을 다하면 다시 현을 뜯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그사이에 담박한 성품(淡泊)과 술맛의 진·묽음을 가리지 않는 평담이 강조됩니다. 그런데 이 시의 진짜 뼈대는 후반부에 숨어 있습니다.
“茲器不復見”에서 다시 등장하는 器는 단순한 술잔이 아닙니다. 혜강 같은 큰 그릇, 큰 인물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의미가 중첩됩니다. 중의적 쓰임을 통해 술잔과 인품을 겹쳐 놓은 것이지요. 이어지는 家家唯玉卮에서는 卮(술잔 치) 가 쓰입니다. 옥으로 만든 잔, 번지르르하고 화려한 기물이지만 속은 비어 있습니다. 피일휴는 바로 여기서 풍자를 터뜨립니다. 집마다 옥 잔만 가득하다는 것은, 현실의 세상에는 혜강 같은 청빈의 인물이 없고, 탐욕과 치장의 관리들뿐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편의 “술잔” 시는 형식상 물건을 읊는 영물시(詠物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물 시이며 동시에 풍속 시입니다. 육구몽은 혜강의 오만과 절교, 마지막 희롱을 압축했고, 피일휴는 器와 卮의 중의를 빌려 세속 관리들의 탐욕을 꼬집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한 글자가 지닌 깊이입니다. 弄은 연주이자 희롱, 조롱이 되고, 器는 술잔이자 사람의 그릇이 되며, 卮는 작은 술잔이자 탐욕의 상징이 됩니다. 이처럼 시 속의 한 글자는 단순한 뜻풀이를 넘어서, 인물과 시대의 풍속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술잔을 노래하면서도 사람을 그리고, 잔의 모양을 말하면서도 세상의 풍조를 풍자하는 것—그것이 바로 육구몽과 피일휴의 〈酒杯〉가 지닌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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