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添酒中六咏·酒池 첨주중육영·주지 음주 중 6수를 더하다‧술 연못 육구몽(陸龜蒙)
萬斛輸曲沼 만 곡의 술을 굽은 못에 수송하여
만곡수곡소
千鐘未為多 천 종을 마셔도 아직 많다 하지 않네.
천종미위다
殘霞入醍齊 잔여 노을은 제제 주 잔 속에 들고
잔하입제제
遠岸澄白酇 먼 언덕은 백주처럼 맑네.
원안징백좌
後土亦沈醉 대지의 신 후토 역시 침잠할 정도로 취하고
후토역침취
奸臣空浩歌 간신들은 공연히 호탕하게 노래 부르네.
간신공호가
邇來荒淫君 근래의 황음무도한 군주는
이래황음군
尙得乘餘波 오히려 득세한 듯 여파에 편승하네.
상득승여파
* 본 번역의 지향점은 한글 속에 잠재한 한자어의 발굴이다. 첫 구의 輸는 못에 쏟아붓는다는 뜻이지만, 수송으로, 7구의 황음, 8구의 여파도 그대로 번역해 둔다.
* 피일휴(皮日休)가 주중십영(酒中十詠〉을 짓자, 육구몽(陸龜蒙)이 이에 창화햇다. 이번에는 육구몽이 6영을 더하자 피일휴가 창화(唱和)했다. 6詠은 〈주지(酒池)〉‧〈주옹(酒瓮)〉‧〈주배(酒杯)〉‧〈주룡(酒龍)〉‧〈주선(酒船)〉‧〈주창(酒槍)〉이다.
* 6구까지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 인용이며, 7, 8구는 현재의 군주를 비난한 표현이다. 후토(後土)를 주와(紂王)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내용이 더욱 뚜렷했을 것이다. 평측 안배의 폐해이다.
* 萬斛: 약 백만ℓ 千鐘: 약 2천 ℓ
* 醍齊: 붉은빛을 띠는 술. * 白酇: 酇白의 도치이다. 백주(白酒). 고유명사나 인명 지명 등을 평측 안배의 이유로 바꾸는 것은 참은로 인정하기 어렵다. 평측 안배의 폐해이다. 酇은 좌로 읽는다. 後土: 토지신. 평측 안배 때문에, 폭군 주왕(紂王) 대신 쓰였으나 매우 어색하다. 空 공연히. 대장을 맞추기 위해 안배했으나 어색하다.
⇕
‧ 奉和添酒中六咏·酒池 〈주지〉를 받들어 창화하다 피일휴(皮日休)
八齊競奔注 여덟 말이 일제히 경쟁하듯 분주히 마시니
팔제경분주
不知深幾丈 몇 미터 깊이를 들이킬지 알 수가 없네.
부지심기장
竹葉島紆徐 죽엽주 권할 때는 섬으로 에도는 듯
죽엽도우서
鳧花波蕩漾 부화주 따를 때는 파도로 출렁이는 듯
부화파탕양
醺應爛地軸 취하면 지축을 흔들 듯 문드러지다가
훈응란지축
浸可柔天壤 잠기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유순해지네.
침가유천양
以此獻吾君 이러한 표현으로 나의 절친 그대에게 헌정하노니
이차헌오군
願銘於几杖 궤와 지팡이에 새겨 두길 원한다네.
원명어궤장
* 齊: 병가제구(並駕齊驅)의 축약. 오언이어서 지나치게 축약되었다. 말 머리를 나란히 하여 나아가다, 어깨를 나란히 하다
* 1丈: 약 3.3m
* 竹葉島紆徐, 鳧花波蕩漾 술을 권할 때는 섬을 에돌 듯 계속 권하고, 술을 따를 때는 파도처럼 출렁거린다는 과장이지만 그렇게 쉽게 읽힐지는 의문이다.
* 醺應爛地軸, 浸可柔天壤: 爛地軸은 고약한 술주정, 浸可柔天壤은 인사불성이 되어 더 이상 주정할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내지만 그렇게 읽힐지는 의문이다. 육구몽은 주사가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吾君: 나의 그대. 나의 절친인 그대.
⇓
피일휴(皮日休)가 〈주중십영(酒中十詠)〉(주중십영)을 지어 술의 세계를 풍자와 해학으로 노래하자, 벗 육구몽(陸龜蒙)이 이에 화답하여 여섯 수를 더하였다. 이른바 〈첨주중육영(添酒中六詠)〉인데, 그 첫머리에 놓인 작품이 바로 〈酒池〉
앞 여섯 구는 잘 알려진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를 빌려온 것이다. 은(殷)의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은 폭정을 일삼으며 사치와 방탕에 빠졌는데,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이루었다 한다. 술이 가득 찬 못가에 고기를 매달아 둔 숲을 만들어, 남녀들을 벌거벗겨 그 속을 뛰어다니게 하며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음탕한 놀이에 빠졌다고 한다. 나라를 망친 군주의 황음무도함을 압축한 은유이다. 육구몽은 이를 그대로 재현한다. 萬斛輸曲沼(만 곡의 술을 굽은 못에 수송하여)라 하여, 만 곡(斛)의 술을 실어 나른다고 했는데, 1곡은 약 100ℓ에 해당하니 무려 백만ℓ 가까운 양이다.
千鐘未為多(천 종을 마셔도 아직 많다 하지 않네)라 하여, 천 종(鐘)을 들이켜도 여전히 부족하다 했으니, 1종이 약 2ℓ이므로 이 또한 엄청난 분량이다. 이처럼 과장된 수량은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탐욕과 방탕이 끝이 없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다.
다음 두 구에서는 자연조차 술에 잠긴다.
殘霞入醍齊: 저녁노을이 ‘제제(醍齊)’라는 술 속으로 스며든다 했다. 醍齊는 붉은빛을 띠는 술의 이름이다. 노을의 붉은 빛과 술의 빛깔이 뒤섞여, 세상이 온통 술로 물드는 장면을 그린다.
遠岸澄白酇: 먼 언덕이 흰 술 ‘백좌(白酇)’에 잠기듯 맑다 했다. 酇(좌)은 본래 지명이나 성씨에도 쓰이는 글자지만, 여기서는 술 이름 ‘酇白’이 도치된 형태다. 원래대로라면 ‘백좌’라 하지 않고 ‘좌백’이라 해야 맞지만, 평측의 안배 때문에 어순이 바뀐 것이다. 이처럼 고유명사를 억지로 바꾼 점은 전통 평측 규율의 폐해라 할 수 있다.
이어지는 두 구에서 육구몽은 고사의 본뜻을 빌려 풍자를 강화한다. 後土亦沈醉: 대지의 신 ‘후토(後土)’마저 취해 잠긴다고 한다. 후토는 원래 토지신, 곧 ‘대지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폭군 주왕을 우의적으로 지칭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사실 차라리 ‘주왕(紂王)’이라 했으면 뜻이 분명했겠지만, 평측 규율에 맞추느라 후토라 한 듯하다.
奸臣空浩歌: 간신들은 공연히 호탕한 노래를 부른다. 空은 ‘공연히, 부질없이’라는 뜻이다. 이 역시 대장을 맞추기 위해 삽입한 듯하지만, 실제 정황으로 보면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 두 구에서는 시선이 고대의 고사에서 시인의 동시대로 옮겨온다. 邇來荒淫君: 근래의 황음무도한 군주. 荒淫(황음)은 본래 ‘荒淫無道’의 축약으로, 방탕하고 무도한 정치를 일컫는다. 여기서 가리키는 대상은 은 주왕이 아니라, 육구몽이 살던 시대의 군주다.
尙得乘餘波: 오히려 그 여파를 타고 득세한다고 했다. 주지육림의 고사를 빌려오되, 그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여파로 남아 현실 정치에 작용하고 있음을 풍자한 것이다.
피일휴의 창화, 술자리의 생생한 묘사
피일휴는 이에 화답하며 〈酒池〉를 다시 노래했다. 이번에는 술 못이 아니라, 실제 술자리의 장면이 더욱 섬세하게 묘사된다.
八齊競奔注: 八齊는 ‘병가제구(並駕齊驅)’의 줄임으로, 말이 나란히 전열을 맞추어 달리는 모습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술병들이 줄지어 경쟁하듯 들이켜진다’는 뜻으로 옮길 수 있다.
竹葉島紆徐/鳧花波蕩漾: 죽엽주를 권할 때는 섬처럼 에돌고, 부화주를 따를 때는 파도처럼 출렁인다고 했다. 술잔이 오가고 술병이 기울어지는 실제 술자리 풍경을 두 술 이름에 비유한 것이다.
醺應爛地軸/浸可柔天壤: 술에 오르면 지축을 흔들 듯 행패를 부리다가, 인사불성이 되면 하늘과 땅이 바뀔 만큼 태도가 달라져 유순해진다. 이는 곧 육구몽 자신의 주사를 반영한 자조적 풍자라 할 수 있다.
以此獻吾君/願銘於几杖: “이로써 나의 절친 그대에게 헌정하니, 궤와 지팡이에 새겨 두길 바란다.” 吾君은 임금이 아니라 ‘나의 그대’를 뜻한다. 幾杖(궤장)은 노인의 곁에 있는 작은 탁자와 지팡이를 가리키며, 늘 곁에 두고 잊지 말라는 교훈의 비유다.
〈酒池〉와 그 화답 시는 단순한 술 노래가 아니다. 고사(주지육림) 를 빌려 당시의 군주를 풍자하고, 나아가 실제 술자리에서의 인간상을 드러낸다. 피일휴와 육구몽의 문답 속에는, 방탕한 권력의 모습을 비웃는 날카로운 풍자와 함께, 시인 자신의 술버릇과 인간적 면모까지 스며 있다.
한자 하나하나도 흥미롭다. 輸는 단순히 ‘부어 넣는다’가 아니라 ‘수송하다’는 뜻으로 번역해야 고사의 배경이 살아나고, 酇은 도치된 고유명사라 억지로 바꾼 평측의 폐해를 보여준다. 後土를 임금 대신 쓴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두 시인의 작품은 술 이야기를 빌려 고사와 현실, 제도와 인간, 풍자와 자조를 교직한 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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