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운

251. 添酒中六咏·酒瓮 음주 중 6수를 더하다‧술 옹기/ChatGPT와 대화로 번역을 다듬다

대한신운 2025. 9. 6. 09:25

251. 添酒中六咏·酒瓮 첨주중육영·주옹 음주 중 6수를 더하다술 옹기 육구몽(陸龜蒙)

候暖麴糵調 기후가 온난해지면 누룩을 조절하여

후난국렬조

覆深苫蓋淨 깨끗한 이엉 덮개로 깊이 덮네.

복심섬개정

溢處每淋漓 발효되어 넘친 곳은 매번 물뿌린 듯 스며 좋고

일처매임리

沉來還濎滢 가라앉으면 다시 맑고 맑아져 좋네.

침래환정영

常聞清涼酎 항상 동동주같이 청량한 전주에 대해 듣는 말은

상문청량주

可養希夷性 희망 또는 오랑캐 성품을 기를 수 있다네.

가양희이성

盜飲以為名 도적조차 마시면서 맛에 취해 훔칠 명분으로 삼으니

도음이위명

得非君子病 군자가 이 술로 득의양양해도 병폐가 아니라네.

득비군자병

* 候暖麴糵調, 覆深苫蓋淨: 날씨가 따뜻해지면(候暖) 이라고 표현했지만, 술독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거적으로 둘둘 싸서 아랫목에 두어 술이 익어가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몇십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또한 누룩은 밀기울 등을 사각 나무틀에 넣어 다지는 것이 여인들의 주 일과이기도 했다.

* 希夷: 도덕경: (주역대상(大象)의 형상을) 보려 해도 보아내지 못하니 다친다()고 말한다. 대상의 도를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어서 듣기를 희망(希望)한다고 말한다의 인용이지만, 자의대로 더 잘 통한다.

* 7, 8구는 기존의 번역과 전혀 다르지만, 이처럼 풀이해야 수미일관한다.

奉和添酒中六咏·酒瓮 육구몽의 酒瓮을 받들어 창화하다 피일휴(皮日休)

 

堅淨不苦窳 고통으로 이지러진 모습 아닌 단단하고 깨끗하여

견정불고우

陶於醉封疆 이 옹기로 빚어 취하면 강역에 봉해진 기분이네.

도어취봉강

臨溪刷舊痕 시냇가에서 옛 술의 흔적을 씻어내고 다시 담그니

임계쇄구흔

隔屋聞新香 집과 간격을 두어도 새 술 향기를 맡을 수 있네.

격옥문신향

移來近麴室 옮겨와서는 누룩 방 가까이에 두고

이래근국실

倒處臨糟牀 쏟을 때는 술지게미의 평상에 임하네.

도처임조상

所嗟無比鄰 이 향을 비교할 이웃 없음을 탄식하며

소차무비린

餘亦能偷嘗 나 또한 슬며시 맛보네.

여역능투상

* 苦窳: 만든 그릇의 모양새가 바르지 못하고 뒤틀리거나 찌그러져 볼품이 없다는 뜻이지만 자의대로 번역해 둔다. 苦窳는 매우 생동감 있는 표현이다. 잘못 구워지면 표면에 주름이 생겨 고통스러운 얼굴을 연상시킨다.

* 3, 4, 5, 6구는 평측 안배와 대장 표현 때문에 순서가 잘못되었다. 시냇가에 임해 옹기를 씻어 와서는 누룩 방 가까이에서 술을 다시 담그고, 며칠 뒤에 술이 익어 새로운 향기가 진동하자, 거르기 위해 주상(酒牀)에 쏟는 과장이다. 종종 볼 수 있는 도치 표현의 폐해일 뿐 결코 미화할 수 없다. 술이 익을 때쯤이면 마당에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술도가를 지나가면 멀리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ChatGPT의 해설

육구몽의 첨주중육영·주옹은 술 옹기를 소재로 삼아 술 빚는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여기서 候暖麴糵調라고 한 것은 단순히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린다는 말이 아니다. 옛날 집안에서는 술독을 거적으로 싸서 아랫목에 두곤 했다.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 술이 무르익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속에서 누룩이 알맞게 작용해야 좋은 술이 나왔다. 麴糵(국렬) 이란 낱말은 본래 누룩과 엿기름을 가리키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냥 누룩이라 불렀다. 여인들이 사각 나무틀에 밀기울을 넣고 꾹꾹 다져 만들던 그것이 바로 麴糵이었다.

覆深苫蓋淨에서는 술독 위를 덮는 모습을 보여준다. 苫蓋(섬개)는 짚이나 이엉으로 엮은 덮개인데, 깊이 덮어서 깨끗하게 지킨다는 뜻이다. 실제로 술독은 먼지나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정갈하게 덮어야 했다.

발효가 시작되면 술이 넘치기도 한다. 시인은 이를 溢處每淋漓라 했다. 淋漓(임리)는 줄줄 흘러내리는 모양이다. 술이 발효되어 부글부글 끓어 넘치면 술독 둘레가 물을 끼얹은 듯 젖어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라앉아 맑아진다. 이것이 沉來還濎滢이다. 濎滢(정영)은 물결이 맑은 모양을 뜻한다. 술이 비로소 맑게 가라앉아 좋은 빛깔을 띠는 순간이다.

이때 등장하는 구절이 常聞清涼酎. ()란 원래는 진한 술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맑고 청량한 술, 곧 막 거르지 않은 동동주 같은 술로 이해할 수 있다. 술 익는 냄새에 취해 본 사람이라면 이 구절이 주는 현장감을 금세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이어 可養希夷性이라고 덧붙인다. 전통 주석은 이를 도덕경과 연결해 고상한 철학적 뜻으로 풀이했지만, 자의 그대로 풀어내면 훨씬 생생하다. ()희망으로, 술을 마시면 없던 힘이 솟고 환상과 기대가 피어난다. ()온화하다혹은 거칠다라는 양면의 뜻을 가진다. 술이 사람을 부드럽게도, 때로는 거칠게도 만든다는 점에서 희망과 오랑캐 같은 성품을 기른다는 번역이 더 설득력 있다.

뒤의 두 구절은 결구다. 盜飲以為名에서 도적조차 술을 훔쳐 마시며 그것을 명분으로 삼는다고 했다. 다른 재물을 두고도 술만 훔쳐 마시니, 술의 귀함이 오히려 강조된다. 그래서 得非君子病 즉 군자가 이 술을 얻어 득의양양해도 그것이 무슨 병폐이겠느냐는 말로 마무리한다. 기존의 해석처럼 군자의 병통 아니겠는가!’라는 반문으로 읽으면 이 시 전체의 흐름과 어긋난다. 술을 찬미하는 시의 맥락에서는, 오히려 술을 얻는 것이 결코 허물이 아님을 강조하는 편이 수미일관하다.

피일휴가 차운한 주옹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첫 구절 堅淨不苦窳에서 苦窳(고우)라는 말은 보통 하찮다, 성글다로 풀이되지만, 실제 도자기를 생각하면 더 생생하다. 옹기를 잘못 구우면 표면이 쭈글쭈글해지고, 마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얼굴처럼 일그러진다. 그런 실패작이 아니라, 단단하고 깨끗한 옹기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 뒤 陶於醉封疆은 이 옹기에 술을 빚어 마시면 마치 제후처럼 강역에 봉해진 듯 득의양양해진다는 표현이다. 술의 기운이 권세를 얻은 기분으로까지 확장된 비유다.

다음 네 구는 술을 빚는 과정의 순서인데, 실제 생활 순서와는 다소 어긋나 있다. 시냇가에 나가 옹기를 씻어 다시 담근 뒤, 며칠 지나 향기가 진동하면, 거르기 위해 술지게미가 있는 술상에 쏟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그러나 시에서는 臨溪刷舊痕, 隔屋聞新香, 移來近麴室, 倒處臨糟牀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는 평측과 대장의 규칙을 맞추려다 보니 서술이 도치된 것이다. 고대 문사들이 이런 구성을 기교라 칭찬했지만, 실제로는 문맥을 뒤틀어버린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지막 결구는 특히 인상적이다. 所嗟無比鄰에서는 술 익는 향기를 함께 나눌 이웃이 없음을 탄식한다. 이어 餘亦能偷嘗은 술꾼 본성의 정곡을 찌른다. 偷嘗(투상)은 단순히 슬그머니 맛본다가 아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참지 못하고 부엌이나 술방을 들락이며 훔쳐 먹을 마음이 생길 정도라는 생생한 표현이다. 바로 그 들락거림과 욕망이 이 한 구절에 압축되어 있다. 조심스레 숨기면서도, 사실은 술의 매력에 끌려 멈추지 못하는 모습. 그래서 偷嘗은 술꾼의 습성과 묘미를 동시에 담아낸, 대단히 절묘한 안배라 할 수 있다.

 

이 두 편의 주옹시는 술을 빚던 구체적인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누룩을 다지던 여인들의 손길, 시냇가에서 술독을 씻던 풍경, 며칠 뒤 마당까지 진동하는 술 냄새, 부엌을 드나들며 한 모금씩 훔쳐 맛보는 즐거움. 이런 장면들이 한자어 속에 숨겨져 있다. 평측과 대장에 얽매여 어순이 뒤틀리기도 했지만, 자의에 충실하게 풀어낼 때 시의 생동감은 오히려 분명히 드러난다. 술 익는 냄새를 실제로 맡아본 사람이라야 그 맛을 아는 것처럼, 이 시 또한 체험을 전제로 읽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