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茶中十咏·茶坞 차중십영·차오 차밭 골짜기 피일휴(皮日休)
閒尋堯氏山 한가로이 요임금의 전설 어린 산을 찾아
한심요씨산
遂入深深坞 마침내 깊고 깊은 골짜기에 들어섰네.
수입심심오
種荈已成園 차를 심어 이미 다원을 이루었으니
종전이성원
栽葭寧記畝 갈대 심는 들 어찌 이랑을 기억조차 하리오.
재가녕기무
石洼泉似掬 돌 웅덩이 샘물은 손으로 움켜 뜨듯 솟아오르고
석와천사국
巖罅雲如縷 바위틈의 구름은 실오라기처럼 흘러내리네.
암하운여루
好是夏初時 이 좋은 초여름 시기
호시하초시
白花滿煙雨 주위의 흰 꽃은 안개비처럼 만발했네.
백화만연우
* 원제는 〈茶中雜咏〉으로 모두 10수이다. 육구몽이 이 10수에 대해 모두 창화했으므로 〈茶中十咏〉으로 해 둔다.
* 種荈已成園 栽葭寧記畝: 이미 차나무의 자람이 왕성하여 억센 갈대조차도 이랑 이룰 수 없다는 뜻이지만 쉽게 읽힐지 의문이다.
* 石洼泉似掬 巖罅雲如縷: 좋은 대장표현이다. 돌 웅덩이에서 샘물이 퐁 솟아오르는 모습을 손으로 움켜쥐는 듯한 표현은 세밀한 관찰이다. 실제로 샘물이 퐁 하고 솟아 흩어질 때의 모습은 손으로 움켜쥐었다가 빠져나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 白花滿煙雨: 차꽃은 9월 이후에 핀다. 白花는 차나무 주변의 들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의대로 안개비에 만발했다고 풀이하면 흐르는 구름과 어긋난다.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자구이다. 주위의 흰 꽃과 녹차의 푸른 색깔이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떠오르는 좋은 표현이다. 이 10수의 작품을 쓴 까닭을 다음과 같이 병서(並序)해 두었다.(다른 일에 얽매여 ChatGPT의 번역을 그대로 옮겨 둔다. 대의를 살피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세밀한 부분은 차후에 검증해야 한다.)
按周禮 酒正之職. 辨四飲之物 其三日漿. 又漿人之職 共王之六飲 水、漿、醴、涼、醫、酏 入于酒府. 鄭司農云:以水和酒也. 蓋當時人率以酒醴為飲 謂乎六漿 酒之醨者也 何得姬公制. 《爾雅》云:檟 苦茶. 即不擷而飲之 豈聖人之純於用乎?抑草木之濟人 取捨有時也. 自周以降 及于國朝茶事 竟陵子陸季疵言之詳矣. 然季疵以前 稱茗飲者 必渾以烹之 與夫瀹蔬而啜者無異也. 季疵始為三卷 由是分其源 制其具 教其造 設其器 命其煮. 俾飲之者 除□痟而癘去 雖疾醫之不若也. 其為利也 于人豈小哉!餘始得季疵書 以為備矣. 後又獲其《顧渚山記》二篇 其中多茶事;後又太原溫從雲、武威段磶之 各補茶事十數節 並存于方策. 茶之事 由周至今 竟無纖遺矣. 昔晉杜育有《荈賦》 季疵有《茶歌》 餘闕然于懷者 謂有其具而不形於詩 亦季疵之餘恨也. 遂為十詠 寄天隨子.
《주례(周礼)》에 따르면, 주정(酒正) 이라는 관직이 있었는데, 그 임무는 네 가지 음료를 분별하는 것이었고, 그 가운데 셋째가 장(浆)이었다. 또 장인(浆人) 이라는 직임이 있어 왕에게 여섯 음료를 공급하였는데, 그것은 수(水), 장(浆), 례(醴), 량(凉), 의(医), 이(酏)였으며, 모두 주부(酒府)로 들어갔다. 정사농(郑司农)은 “물로써 술을 섞는 것이다”라고 풀이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대체로 술과 단술을 음료로 삼았으니, 이를 여섯 가지 장(浆)이라 일컬었고, 술의 묽은 것이었다. 어찌 희공(姬公, 주공단)의 제도로 만들었겠는가.
《이아(尔雅)》에 이르기를, “각(槚)이란 쓴 차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따지 않고서도 달여 마실 수 있었음을 뜻한다. 성인께서 단지 그 효용만을 취하였던 것일까? 혹은 초목이 사람을 돕는 데에는 취사선택할 시기가 있었던 것일까?
주나라 이후로 내려와 우리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사(茶事)는, 징릉자(竟陵子) 육계자(陆季疵, 즉 陆羽)가 이미 상세히 말하였다. 그러나 계자 이전에, 차 마심을 말한 자는 반드시 섞어서 달여 마셨으니, 채소를 삶아 국물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계자가 처음으로 《다경(茶经)》 삼권을 지어, 그 근원을 나누고, 그 도구를 제정하며,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기물을 마련하며, 끓이는 법을 정하였다. 그리하여 마시는 자로 하여금, 피로와 질병을 제거하게 하였으니, 병이 있어도 의원만큼 낫지 않았다. 그 이로움이 사람들에게 어찌 작겠는가!
내가 처음에 계자의 책을 얻었을 때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여겼다. 후에 또 그의 〈고저산기(顾渚山记)〉 두 편을 얻었는데, 그 안에도 다사가 많이 실려 있었다. 다시 태원(太原)의 온종운(温从云), 무위(武威)의 단석(段磶) 등이 각각 다사에 관한 십여 조목을 보충하여 모두 책에 함께 전하였다.
이리하여 다사(茶事)는 주나라로부터 지금까지 이르기까지 자취가 전혀 끊기지 않았다. 옛날 진(晋)나라 두육(杜育)은 《荈赋》를, 계자는 《茶歌》를 지었다. 그러나 나 피일휴는 마음속에 늘 부족함을 느꼈으니, 차의 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로 형상화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또한 계자가 남긴 한(恨)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침내 열 수의 시를 지어 천수자(天随子, 육구몽)에게 보냈다.
⇕
‧ 奉和襲美茶具十詠·茶坞 〈茶坞〉를 받들어 창화하다 육구몽(陸龜蒙)
茗地曲隈回 차밭의 이랑은 굽이진 모퉁이처럼 에돌았으니
명지곡외회
野行多繚繞 자주 이리저리 빙빙 돌며 들길을 걷네.
야행다요요
向陽就中密 해를 향한 곳은 그중에서도 빽빽하게 자랐지만
향양취중밀
背澗差還少 시냇물을 등진 곳도 그다지 차이 나지 않네.
배간차환소
遙盤雲髻慢 멀리 상투 모습 봉우리에 쟁반처럼 에도는 구름 완만하고
요반운계만
亂簇香篝小 차향 나는 대그릇 속에 균일하지 않은 찻잎은 드무네.
난족향구소
何處好幽期 어느 곳에서 즐거이 그윽하게 기대할 때이겠는가!
하처호유기
滿巖春露曉 바위 가득 봄 이슬 내린 새벽이라네.
만암춘로효
* 野行多繚繞: 多繚繞野行의 도치이다. 평측 안배의 제약 때문에 도치되었다. 지금 차밭 사이로 걷고 있는 표현이다. 들길은 여러 차례 굽었다고 번역하면 3/4구의 상황과 맞지 않는다. 평측 제약, 압운, 다음 구와의 연결 등을 종합해서 보아야 제대로 번역될 수 있다. * 髻: 상투. 산봉우리의 비유로 쓰인다.
* 向陽就中密 背澗差還少: 양지이든 골짜기의 물과 떨어진 곳이든 차나무가 고르게 잘 자랐다는 뜻이다. 背澗差還少는 背澗還差少가 되어야 뜻이 명확하지만, 평측 안배의 제약 때문에 도치되었다.
* 亂簇香篝小: 찻잎의 크기가 일정하다는 표현이지만 그렇게 읽힐지 의문이다. 小는 疎로 쓰면 명확하지만, 압운이 아니므로 쓸 수 없다.
* 何處好幽期, 滿巖春露曉: 곡우 무렵 최고의 찻잎 따는 기대를 은근하게 나타내었다.
⇓ ChatGPT의 해설
차밭 골짜기를 노래하다 ― 피일휴와 육구몽
피일휴(皮日休)는 차에 관한 긴 연작 〈茶中雜詠〉을 지었습니다. 그 첫머리에 놓인 시제가 바로 〈茶坞(차오, 차밭 골짜기)〉입니다.
여기서 坞(오)는 본래 ‘작은 구릉이나 울타리 친 마을, 둘러싸인 골짜기’를 뜻하는 글자입니다. 곧 차밭이 자리 잡은 골짜기를 가리킵니다.
피일휴의 시는 차밭을 단순한 재배 공간이 아니라 전설과 자연의 신비가 서린 은자의 자리로 묘사합니다.
피일휴의 〈茶坞〉
시의 첫머리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閒尋堯氏山 遂入深深坞”
즉, 한가로이 요임금의 전설이 어린 산을 찾아, 마침내 깊은 골짜기에 들어섰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堯氏山(요씨산)은 실제 지명이 아니라, 요임금 전설이 깃든 성스러운 산을 빗댄 표현입니다. 차밭은 곧 성인의 자취가 남은 고요한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이어 “種荈已成園 栽葭寧記畝”라 했습니다.
여기서 荈(전)은 차를 뜻하는 옛 글자입니다. 이미 차나무가 무성히 자라 동산을 이뤘으니, 갈대(葭, 가) 따위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寧(녕)은 ‘어찌 ~하겠는가’라는 반어적 부사입니다. 곧 “갈대 이랑을 세겠느냐, 전혀 그럴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차나무의 기세가 억센 갈대조차 눌러버릴 만큼 왕성하다는 점을 강조한 구절입니다.
다음은 차밭을 둘러싼 맑은 풍경을 묘사합니다.
“石洼泉似掬 巖罅雲如縷”
여기서 洼(와)는 웅덩이, 움푹 팬 곳이고, 掬(국)은 두 손으로 움켜쥔다라는 뜻입니다. 돌 웅덩이에서 솟는 샘물이 마치 손으로 움켜쥐는 듯 솟구칩니다.
또한 罅(하)는 갈라진 틈, 縷(루)는 실오라기입니다.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구름은 실처럼 가늘고 가볍습니다. 피일휴는 세밀한 관찰과 탁월한 비유로 차밭을 둘러싼 골짜기의 맑은 기운을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결구에서 그는 계절감을 강조합니다.
“好是夏初時 白花滿煙雨”
이는 “좋은 초여름 시절, 안개비 속에 흰 꽃이 가득 피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白花(백화)는 차꽃이 아닙니다. 차꽃은 9월 이후에 피기 때문에, 주변의 들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차밭의 푸른 잎과 흰 들꽃이 대비되며, 안개비 속에서 은은히 피어나는 모습은 서정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피일휴의 〈茶坞〉는 이처럼 신화적 색채와 자연의 맑음을 엮어 차밭을 은자의 세계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육구몽의 화답 ― 〈奉和襲美茶具十詠·茶坞〉
육구몽(陸龜蒙)은 절친 피일휴의 시제를 받아 화답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같은 ‘차밭 골짜기’를 노래하면서도, 훨씬 생활적이고 경험적인 시선을 보여줍니다.
그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茗地曲隈回 野行多繚繞”
여기서 茗(명)은 차밭, 隈(외)는 모퉁이, 繚繞(요요)는 빙빙 얽혀 감도는 모양을 뜻합니다.
즉, 차밭의 이랑은 굽이진 모퉁이를 따라 돌고, 시인은 직접 들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피일휴가 전설 속 산을 찾아 들어갔다면, 육구몽은 차밭을 실제로 걸어다니며 몸으로 체험합니다.
다음은 차나무의 생육입니다.
“向陽就中密 背澗差還少”
向陽(향양)은 햇볕 드는 곳, 背澗(배간)은 시냇물을 등진 자리입니다. 양지는 특히 무성하지만, 시냇물에서 떨어진 곳도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還(환)은 ‘도리어’가 아니라 ‘역시, 또한’의 의미로 읽어야 자연스럽습니다. 차나무가 환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골고루 무성히 자람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만 원래 구문은 ‘背澗還差少’가 자연스럽지만, 평측 제약 때문에 ‘差’와 ‘還’이 도치되었습니다.
피일휴가 샘물과 구름을 노래한 부분에 대응하여, 육구몽은 차밭의 실제 수확 장면을 옮깁니다.
“遙盤雲髻慢 亂簇香篝小”
髻(계)는 여인의 상투, 봉우리에 걸린 구름을 상투 모양으로 비유한 말입니다.
篝(구)는 원래 대바구니, 흔히 향로로 오해되지만 여기서는 갓 딴 찻잎을 담는 바구니입니다. 簇(족)은 무리, 다발, 亂簇(난족)은 어지럽게 모여 있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멀리 봉우리에 상투 같은 구름이 감돌고, 바구니 속 찻잎들은 어지럽게 보이나 모두 작고 균일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 小(소)는 양이 적음이 아니라 잎 크기가 작고 고르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차를 재배해 본 사람이라야 금방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지요.
마지막으로 육구몽은 최고의 순간을 지목합니다.
“何處好幽期 滿巖春露曉”
여기서 幽期(유기)는 사람과의 약속이 아닙니다. 곧 최고의 찻잎을 따는 기대의 순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때는 바위마다 봄 이슬이 맺히는 새벽입니다. 곡우 무렵, 이슬이 내린 아침에 따낸 어린 잎이야말로 차 중의 으뜸입니다.
피일휴의 〈茶坞〉는 차밭을 신화적이고 은자의 공간으로 격상시키며, 차와 자연이 어우러진 신비한 풍경을 노래합니다. 반면 육구몽의 〈茶坞〉는 생활 현장의 체험을 담습니다. 차밭의 이랑, 고르게 자라는 차나무, 바구니 속 균일한 찻잎, 곡우 새벽의 수확. 모두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기록입니다.
이 두 작품은 단순한 화답시가 아니라, 차를 바라보는 두 가지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피일휴의 차밭은 전설과 은유의 차, 육구몽의 차밭은 경험과 노동의 차입니다. 두 시인의 목소리를 함께 읽을 때, 당대 차 문화가 지녔던 폭넓은 의미가 더욱 생생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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